홍용표 통일부 장관후보자 논문 중복 게재... ‘연구윤리 위반’

2015년 02월 24일 10시 52분

박근혜 정부의 고위직 인사는 참사 수준이다. 박 대통령 자신의 폐쇄적 인사 스타일에 근본 원인이 있겠지만,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는 시스템 탓도 있다. 그나마 인사청문회 대상인 장관급 이상 공직자들의 경우 최소한의 검증이 이뤄지긴 하지만, 중요한 공적 역할을 수행하는데도 청문회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올들어 10명의 특보와 수석, 차관이 임명됐다. 또 오늘(2월 17일) 자 소폭 개각으로 4명의 장관 후보자가 발표됐다. 설 연휴 이후 후속 인사 개편도 발표될 예정이다. 뉴스타파는 박근혜 정부 중반기 국정운영을 책임질 고위공직자에 대한 자질과 도덕성 검증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이들에 대한 검증 보도에 집중할 계획이다.

2015, 고위공직자 검증 ③

홍용표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한양대 교수 시절, 10년 전 자신의 논문을 인용이나 출처 표기 없이 다른 학술지에 중복 게재한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 결과 드러났다. 특히 홍 후보자가 논문을 중복 게재한 2010년은 인용 없는 논문 중복 게재를 연구 부정행위로 보는 인식이 국내 학계에서도 확립된 시점이어서, 연구 윤리 위반 논란이 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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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용표 후보자는 2010년 5월, 연세대 통일연구원이 발행하는 전문학술지 <통일연구>에 이승만의 반공정책과 한반도 냉전을 주제로 한 영문 논문 ‘The Evolution of Syngman Rhee's Anti-Communist Policy and the Cold War in the Korean Peninsula (이승만의 반공정책과 한반도의 냉전)’를 게재했다. 참고문헌과 요약을 포함해 모두 30쪽 분량이다. <통일연구>는 한국연구재단에 등재 후보지로 등록돼 있다.

그런데 이 영문 논문은 홍 후보자 자신이 지난 2000년 영국에서 출판한 영문 논문 ‘State security and regime security : President Syngman Rhee and the insecurity dilemma in South Korea, 1953-60 (국가안보와 정권안보 : 1953년에서 60년 사이 이승만 대통령과 남한의 불안정 딜레마)’ 제2장의 내용을 거의 대부분 그대로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 이전 논문에서는 미주에 있던 내용이 2010년 논문에는 본문으로 옮겨진 차이 정도가 있을 뿐 내용은 대부분 같았다. 두 논문을 대조한 결과 전체 30쪽 분량인 2010년 논문의 95% 이상이 이전 논문의 내용과 동일했다. 홍 후보자는 자신의 이전 논문을 사실상 그대로 베꼈지만 2010년 논문 어디에도 자신의 이전 저작물을 인용했다는 출처 표기를 하지 않았다. 이는 인용 없는 중복 게재로, 연구 부정행위 또는 연구 부적절 행위에 해당한다.

▲ 홍 후보자는 이전 2000년 박사논문에서는 미주로 다뤘던 내용을 2010년 논문에는 본문에 그대로 옮겨 적었다.
▲ 홍 후보자는 이전 2000년 출판논문에서는 미주로 다뤘던 내용을 2010년 논문에는 본문에 그대로 옮겨 적었다.

2010년 중복 게재 당시 이미 중복 게재는 연구윤리 위반으로 규정

홍용표 후보자가 논문을 중복 게재한 시점을 보면 고의적으로 연구 윤리를 위반한 의혹이 더욱 짙어진다. 홍 후보자는 2010년 5월 논문을 중복 게재했는데, 국내 대부분의 학계는 이미 2008년부터 ‘인용 없는 논문 중복 게재’를 심각한 연구 윤리 위반 행위로 받아들였다. 2006년 당시 교육부총리였던 김병준 부총리와 이필상 고려대 총장이 논문 중복 게재 의혹 등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각 대학과 학회에서는 연구 윤리 규정을 새로 만들고 논문 투고 규정을 고쳐 중복 게재를 엄격하게 금지하기 시작했다.
▲ 홍 후보자가 논문을 중복 게재한 <통일연구> 학술지는 이미 2008년 3월부터 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무단으로 표절하는 행위를 연구윤리 위반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 홍 후보자가 논문을 중복 게재한 <통일연구> 학술지는 이미 2008년 3월부터 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무단으로 표절하는 행위를 연구윤리 위반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 한양대는 2010년 1월 연구윤리 규정을 제정해 “자신이 생산한 기존의 연구결과의 일부 또는 전부를 명시적인 설명이나 인용없이 서로 다른 두 개 이상의 출판물에 게재하는 행위”를 “중복게재”로 정의 내린다.
▲ 한양대는 2010년 1월 연구윤리 규정을 제정해 “자신이 생산한 기존의 연구결과의 일부 또는 전부를 명시적인 설명이나 인용없이 서로 다른 두 개 이상의 출판물에 게재하는 행위”를 “중복게재”로 정의 내린다.

홍 후보자가 논문을 중복 게재한 학술지 <통일연구>도 2008년 3월 연구윤리 규정을 제정했다. 이 규정을 보면 “(논문) 투고자가 타 연구자 또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무단으로 표절하는 행위. 이때 표절이라 함은 타인 또는 자신의 아이디어나 주장의 일부 혹은 전부를 출처를 밝히지 않고 자신의 연구나 주장인 것처럼 제시한 경우”를 연구윤리 위반행위로 명시하고 있다. 또 홍 후보자가 재직하던 한양대학교 역시 2010년 1월 연구윤리 규정을 새로 만들었다. 규정 제2조 연구부정행위 항목에는 “자신이 생산한 기존의 연구결과의 일부 또는 전부를 명시적인 설명이나 인용없이 서로 다른 두 개 이상의 출판물에 게재하는 행위”를 “중복 게재”로 정의하고 표절 및 위,변조와 함께 연구부정행위의 하나로 명문화하고 있다.

투고 학술지 및 정치학회, 이미 중복 게재 금지 규정과 처벌 규칙 제정

홍용표 후보자가 특임이사로 있는 한국정치학회의 저술 윤리강령도 마찬가지다. “학술지, 단행본, 학회발표논문집에 기 출간된 자신의 저술을 인용부호, 각주, 내용 주, 또 는 기타 적절한 방식을 통해 명시하지 않는 경우”를 아예 표절로 규정한 것이다. 또 “최종적으로 표절 판정을 받은 저자는 한국정치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에 판정 후 3년간 단독 혹은 공동으로 논문 게재를 신청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 윤리강령이 적용된 시점은 2009년 1월부터였다.

이와 관련해 이인재 서울교육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2000년대 중반부터 중복 게재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면서 인문,사회,이공계를 포함해 모든 학계에서 중복 게재를 심각한 윤리 위반 행위로 인식하고,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는 합의가 이뤄진 만큼 2010년 이후에 이뤄진 중복 게재는 연구 윤리 위반의 심각성이 더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2000년대 중반 이전에 이뤄졌던 다른 고위공직자들의 중복게재 논란과 달리 홍 후보자의 경우 연구 윤리 위반과 도덕성 논란이 더욱 제기되는 대목이다.

1995년 박사학위 논문 → 2000년 공식 출판 → 2010년 논문 2장의 내용을 인용 출처 표기 없이 국내 전문학술지에 게재

▲ 홍용표 후보자는 1995년 박사학위 논문을 내고, 2000년 같은 내용을 공식 출판한다. 이어 2010년에는 박사학위 논문의 일부를 그대로 옮겨 전문학술지에 인용출처 없이 게재했다.
▲ 홍용표 후보자는 1995년 박사학위 논문을 내고, 2000년 같은 내용을 공식 출판한다. 이어 2010년에는 박사학위 논문의 일부를 그대로 옮겨 전문학술지에 인용출처 없이 게재했다.

홍 후보자가 2000년 출판한 저작물은 5년 전인 1995년 자신의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박사학위 논문 ‘STATE SECURITY AND REGIME SECURITY : THE SECURITY POLICY OF SOUTH KOREA UNDER THE SYNGMAN RHEE GOVERNMENT, 1953-1960(국가안보와 정권안보 : 1953년에서 60년사이 남한 이승만 정부의 안보정책)’을 그대로 출판한 것이다. 즉 1995년 박사학위 논문 → 2000년 박사학위 논문을 공식 저작물(영어)로 출판 → 2010년 박사학위 논문 중 2장의 내용을 인용 및 출처 표기 없이 국내 전문 학술지에 영문으로 연속 출판한 것이다.

2008년 이후 국내 학계에서 논문 중북 게재를 엄격히 금지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전에 나온 연구 성과인데도 인용이나 출처를 표기하지 않음으로써 마치 새로운 연구 성과인 것처럼 혼란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중복 게재는 연구실적 부풀리기와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취재팀은 홍용표 장관 후보자에게 논문을 중복 게재하는 과정에서 출처를 표기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이러한 행위가 연구 윤리 위반에 해당하는 것은 아닌지 질의했다. 또 홍용표 후보자가 한양대 교수 재직시절, 논문 실적 평가와 교수 승진 심사 과정에서 중복 게재한 논문을 제출했는지 여부에 대한 확인을 공식 요청했다. 그러나 홍 후보자는 이에 대해 뚜렷하게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양대 교수 출신의 홍용표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2010년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의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이후 박근혜 대선 캠프와 대통령인수위 외교국방통일분과 실무위원을 거쳐 박근혜 정부 초대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맡았고, 지난 17일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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