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뉴스타파 '론스타 ISD' 참관 거부돼...누구를 위한 비밀주의?

2015년 05월 15일 15시 00분

"국익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답변하기 어렵습니다." - 국무총리실 관계자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어 비공개하는 것임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법무부 관계자
국익이라는 무거운 단어 앞에 말문이 막힌다. 내가 취재하는 내용이 국익에 저해되는 내용인지 다시 생각해 본다.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제기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첫 심리를 앞두고 정부의 준비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국무총리실과 법무부 등 관련 기관에 ISD 대응 TF팀의 그동안 활동 내용에 대해 문의했다. 돌아온 답은 위와 같았다. TF팀의 인원 구성, 회의 개최 횟수 등 기본적인 내용을 공개하는 게 국익에 무슨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인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법무부에 따르면 론스타는 금융위원회의 외환은행 매각 승인 지연과 국세청의 자의적 과세 처분 때문에 총 46억 7,900억 달러 (약 5조 1,300억 원) 손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론스타가 ISD를 제기한 이유다. 우리 정부가 이번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5조 원이 넘는 국가 예산이 유출될 수 있는 문제이지만 정부의 철옹성 같은 비밀주의에 막혀 국민들은 ISD 진행 상황을 전혀 알 수 없다. 현지시각으로 15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첫 심리가 열리는데 증인으로 누가 채택됐는지 뿐만 아니라 시간, 장소 등도 모두 베일에 싸여 있다. 이런 정보를 공개하는 게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중재 판정에 과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렇듯 천문학적인 국민 세금이 걸린 희대의 소송이 철저한 비밀 속에서 벌어지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나는 지난 11일 멕 키니어(Meg Kinnear) ICSID 사무총장에게 ISD 심리 참관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다. “한국 국민들에게 큰 중요성을 가지는 심리를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은 국민들의 정당한 관심을 묵살하는 처사이고, 최종 판정의 근거가 될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것도 국민의 알 권리 침해”이기 때문에 취재진 참관을 허용해 달라고 했다.
▲ 기자가 보낸 ISD 심리 참관 요청서 중 발췌
ICSID 규칙은 어느 한 당사자가 반대하지 않는 한 중재판정부가 사무총장과의 협의 후에 제 3자가 심리의 전부 또는 일부에 참관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 ICSID 구술 심리에 관한 규칙
그리고 어제(14일) ICSID 측으로부터 “당사자들과 논의한 결과 양측이 제 3자의 참석을 반대했기 때문에 심리 참관을 허용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 ICSID 측 참관 요청 거부 답변
구체적인 반대 사유를 다시 물었지만 뚜렷한 답변을 얻을 수 없었다. 대신 ICSID 중재재판의 비밀유지와 투명성 원칙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참조 링크를 보내왔는데, 여기에 따르면 당사자들 간 합의가 재판의 투명성 보장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당사자들 합의로 재판의 비밀유지와 투명성 범위를 조정할 수 있게 돼 있고, 심지어 대중의 접근이 가능할 수 있게 심리 과정을 인터넷이나 동영상으로 중계하는 것도 허용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의지가 있었으면 최소한의 투명성 보장은 가능했을 걸로 여겨지는데 지금과 같이 국민의 알 권리를 원천 봉쇄하는 극단적 비밀주의를 고수하는 배경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도 어제 ISD 쟁점 설명회를 열고 정부에 민변의 참관을 허용할 것을 촉구했다. 민변 측도 ICSID 규칙에 따라 심리 참관 요청서를 보냈으나 같은 이유로 거부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변은 설명회를 통해 이번 소송의 쟁점으로 론스타의 투자가 중재 신청 자격을 충족하는 적법한 투자인지를 내세워 이를 집중적으로 따져봐야 한다고 밝혔다. 론스타는 ‘한-벨기에 투자보호협정’을 근거로 ISD를 제기했는데 민변은 “한-벨기에 투자협정은 적법한 투자만을 보호대상으로 하므로 외환은행 인수 시 대주주 적격 심사 자료를 고의적으로 누락하고, 외환카드 주가를 불법적으로 조작한 론스타 벨기에 자회사의 한국 투자는 보호 대상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론스타의 벨기에 회사가 중재 신청 자격이 없고, 따라서 ISD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정부가 강력하게 주장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론스타의 ‘먹튀’를 방조했다는 비판을 받은 금융당국이 론스타의 행위가 보호받을 수 없는 불법 투자라는 점을 국제중재에서 강하게 제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ISD에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으로 알려진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의 경우 2003년에는 금융감독위원회의 감독정책1국장으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길을 터 준 핵심 실무자 중 한 사람이었고, 2012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매각하고 떠날 때는 금융위원장이었다. 당시 김 전 위원장은 론스타가 산업자본이 맞다면서도 매각을 허락해줘 론스타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뉴스타파는 최근 론스타가 버뮤다에 세운 회사의 주주 명부를 입수해 론스타 투자를 통해 혜택을 받은 한국인 직원들의 정체를 확인했다. 여기에는 김 전 위원장의 처조카도 포함돼 있었다.
ICSID는 론스타와 한국 정부 간 소송과 관련된 정보는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ICSID 홈페이지에서 이번 중재재판 관련 페이지는 텅 비어있는 상태이다. 모두 비공개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면 이후 중재판정부가 최종 결론을 내려도 그 판정문조차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판정이 내려진 근거가 무엇인지, 정부가 과연 제대로 대응했는지에 대한 어떠한 검증도 없이 수조 원의 국민 세금이 유출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국익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재판의 공정성과 신뢰성, 국민의 알 권리를 모두 무시하고 비밀주의를 앞세우는 정부의 태도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되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