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에 물었다..."국회개혁 의지 있나요"

2020년 09월 18일 17시 02분

뉴스타파는 21대 국회 개원을 맞아 지난 8월 28일 300명 국회의원에게 국회 예산 중 입법 및 정책개발비 예산을 구체적으로 감시할 방안에 대해 질의서를 보냈다. 33명이 답변을 보내왔다.

뉴스타파는 지난 2017년부터 지금까지 3년 동안 진행해 온 ‘국회개혁 프로젝트’를 통해 국회의원이 사용하는 ‘입법 및 정책개발비'의 오남용 실태를 지적해왔다. 입법 및 및 정책개발비는 국회의원의 입법 및 정책개발 활동을 지원해 의원입법의 내실화 및 의원의 입법정책개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예산으로 2019년 기준 83억 원에 달한다.


16개 문항으로 구성된 공통질의서는 지난 20대 국회에서 ‘입법 및 정책개발비'가 ‘의원실 경비 만드는 창구' 등으로 악용된 것을 근절하기 위한 시스템 개선책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300명 21대 의원 가운데 33명(초선 20명, 재선 10명, 4선 2명, 5선 1명)이 답변을 보내왔다.

▲ 뉴스타파가 21대 국회의원 300명에게 보낸 공통 질의서 중 일부

①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찾을 수 있는 자료를 베낀 정책연구 보고서와 정책자료집에 ‘입법 및 정책개발비’를 사용하는 것은 세금 낭비다.

20대 국회에서 표절 정책연구와 정책자료집을 발간하는데 세금을 사용한 의원은 총 71명으로 확인됐다. 20대 국회의원 4명 중 1명꼴이다. 이들이 오남용한 세금은 뉴스타파가 확인한 것만 4억여 원에 이른다.

뉴스타파가 국회개혁 프로젝트를 시작한 2017년 당시, 표절 정책연구보고서와 표절 정책자료집을 발간한 것으로 드러난 국회의원들은 ‘관행’이라는 말을 되풀이하거나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우리 선배 정치인들이 쭉 계속 있어 왔잖아요. 그분들이 일종의 관행처럼 국정감사 때마다 정책자료집을 냈다 이 말이죠. 저희는 후배로서 선배가 하는 걸 보고⋯ 우리가 처음부터 개발한 게 아니라 그러면 만에 하나 지금 하고 있는 방식대로 정책자료집이 문제가 있었다면 국회사무처가 잘못한 거죠. 그렇지 않습니까? 국회사무처가 그러면 거기에 대해서 가이드라인을 정해줘야죠.”
- 조경태 / 자유한국당 의원 (2017년)

“그걸 전수조사를 해요? 그동안에 관행적으로 그랬던 거 아닌가 싶어요.”
- 이용호 / 무소속 의원 (2020년)

반면 뉴스타파가 표절 문제를 지난 3년간 지속적으로 지적하자 이번 설문조사에 응답한 21대 국회의원 33명은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찾을 수 있는 자료를 베낀 정책연구 보고서와 정책자료집에 ‘입법 및 정책개발비'를 사용하는 것은 세금을 낭비하는 행위”라는 데 전원 동의했다. 표절 정책연구, 표절 정책자료집이 세금 오남용이라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됐다.

② 국민 세금 낭비를 막기 위해 표절 검사 프로그램 도입 등을 통한 국회 차원의 검증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뉴스타파의 보도 이후 국회사무처는 “발간물 제작에 논문 및 도서 등 인용 시 반드시 출처를 상세히 명시하여 저작권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유의”하라고 ‘국회 의정활동 안내 지원서'에 안내하고 있다. 또한 2019년부터 국회사무처는 국회의원 개인의 소규모 용역 결과물을 국회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투명한 입법 및 정책개발비 사용을 위해 제도가 개선됐지만, 홈페이지를 통해 정책연구보고서가 공개되는 2019년 이후 연구용역에서도 표절 행위는 계속 확인되고 있다.

▲ 2019 국회 의정활동 안내 지원서 39쪽 갈무리

▲ 2019년부터 국회사무처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국회의원 연구용역보고서를 확인할 수 있다.

표절, 짜깁기, 비전문가 용역수행 등으로 대표되는 국회의 엉터리 정책연구에 계속 혈세가 낭비되는 이유는 누구도 검증하지 않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제도상 허점 때문이다.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국회의원은 자체적으로 보고서를 검증할 여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국회사무처는 의원실의 회계 출납 업무를 대행할 뿐 발주처는 각 의원실이기 때문에 국회사무처는 정책연구 결과물을 검증할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것을 검증할 수 있는 수단이 의원실 단위에서는 불가능해요. 그러면 의원실에 있는 보좌진들이 연구용역이나 이런 것들 할 때 학회에, 중복성 검증은 학회가 보통 많이 하거든요, 대학이나. 그 정도의 시스템을 갖춰놓고 일을 해야 된다는 말씀이신 건가요?”
- 의원실 관계자 (2020년 5월)

“사실은 의원실이라는 게 하나의 기관이지 않습니까. 헌법기관이고 그래서 사실은 의원실에서 연구용역을 수행하고 다 책임을, 자기들이 연구자 선정하고 연구용역이 잘 됐는지까지 사실은 원래 그분들이 다 해야 돼요. 그런데 그 300개 기관에 모두 출납공무원을 줄 수가 없거든요. 저희가 회계공무원인데 회계공무원을 (의원실에 다) 둘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저희는 사실은 대행을 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거든요. 저희가 이제 그분들이 ‘우리 연구용역 수행했으니까 돈 주세요’ 그러면 결과보고서가 오면 ‘하셨구나’하고 돈을 드리는 거예요.”
- 국회 사무처 관계자 (2020년 5월)

검증도 책임도 없이 오로지 선의에 기대어 집행되는 국회 입법 및 정책연구용역비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 표절 검사 프로그램을 도입해 국회 차원의 검증 체계가 필요하지 않느냐 21대 국회의원에게 물었다. 설문에 응답한 33명 전원이 국회 차원의 검증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동의했다. 그러나 검증 시스템의 마련과 해당 체계의 작동을 주관하는 곳이 어디여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의견이 갈렸다. 국회사무처가 검증해야 한다는 답변이 22명, 국회의원실에서 각각 검증해야 한다는 답변이 5명, 국회사무처와 의원실에서 중복 검증해야 한다는 의견이 6명이었다.

③ 낭비된 국민 세금을 강제로 환수하는 시스템을 제도적으로 명문화하는 데에 나설 의향이 있다.

뉴스타파가 국회의원의 예산 오남용 실태를 연속 보도하자 국회 예산을 잘못 쓴 의원들의 예산 반납이 잇따랐다. 2020년 9월 15일을 기준으로 국회의원들이 연구비를 잘못 사용한 사실을 인정하고 국회사무처에 반납한 돈은 2억 1천만 원에 이른다. 자체 조사를 통해 입법정책개발비 오남용 사례를 인지한 일부 의원실은 관련 예산을 자진 반납하기도 했다.

하지만 표절 등 엉터리 연구가 드러나거나 용역 발주 과정에 문제가 확인되더라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버티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는 부산 남구 갑에서 4선을 지낸 김정훈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다. 김 전 의원이 지난 20대 국회에서 진행한 정책연구 가운데 9건이 심각한 표절로 드러났다. 김정훈 전 의원의 ‘표절 정책연구 보고서' 9건은 20대 국회의원 중 가장 많은 수치다. 여기에 쓰인 국회 예산은 4천만 원이 넘는다.

하지만 국회를 떠난 김 전 의원은 예산을 반납하지 않고 있다. 취재진은 김 전 의원의 국회 예산 오남용에 대한 입장을 묻기 위해 여러 차례 질의했으나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이 밖에도 서청원 전 미래통합당 의원, 백재현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20대 국회 임기를 끝으로 국회를 떠난 많은 전직 의원들이 표절과 짜깁기 등 연구 과정의 문제가 확인됐으나 예산을 반납하지 않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처럼 입법 및 정책개발비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관련 예산의 낭비와 오남용 사실이 명백히 드러나더라도 국회의원, 정책연구용역 수행자 등의 반납 의사가 없다면 해당 금액을 제도적으로 환수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뉴스타파는 21대 국회의원들에게 낭비된 세금을 강제로 환수하는 시스템을 제도적으로 명문화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응답자 중 한 명을 제외하고 32명, 응답자의 97%가 ‘그렇다’고 답했다.

④ 표절 정책자료집을 펴낸 국회의원에게 법적 책임을 강력히 물어야 한다.

국회의원이 자신의 이름으로 펴내는 정책자료집은, 출처와 인용표기 없이 타인의 보고서 등 저작물을 베끼거나 짜깁기할 경우, 저작권법에 저촉될 소지가 높다. 표절 가운데에서도 ‘표지 갈이’처럼 타인의 저작물을 완전히 도용하면 원작자의 고소가 없이도 처벌이 가능하다는 법원 판례도 존재한다. 그러나 표절 정책자료집으로 법적 처벌을 받은 국회의원은 없다. 뉴스타파는 21대 국회의원들에게 “정책자료집을 표절해 발간하는 국회의원에 대해 저작권법을 강력히 적용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십니까?”라고 물었다. 해당 문항에는 응답자 33명 중 2명이 ‘아니오’, 31명이 ‘예’라고 답했다. 응답자의 94%가 국회의원의 표절 행위를 처벌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국회예산 오남용 방지 위해 ‘연구자 풀(Pool) 생성'이나 예산 현실화도 필요해

이외에도 설문을 통해 21대 국회의원들은 국회의 예산 오남용 방지를 위한 다양한 해법을 내놨다. 이중 가장 많은 제안은 정부에서 발주한 용역보고서 공개 시스템(Prism)과 같이 국회에도 자료공개를 위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밖에 보좌관의 친구, 국회의원의 지인 등 국회의원실 관계자와의 친분 외에, 전문성을 전혀 갖추지 못한 연구용역 수행자를 선정하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국회 차원의 연구자 풀을 마련해 분야별 전문가 인적 자원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여 연구실적은 많지 않아도 유능한 석박사들에게 고루 기회가 제공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소규모 연구용역 제도가 가진 한계를 지적하는 답변도 많았다. 정부 부처의 용역비는 최소 수천만 원이 책정되는 반면 국회의 소규모 정책연구용역의 경우, 집행 금액의 상한선이 500만 원으로 제한된다. 검증 시스템을 마련함과 동시에 연구용역비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답변이다.

21대 국회의원들이 보내온 답변서는 일부 응답자의 요청으로 인해 원문 공개는 하지 않으며 응답자의 실명도 밝히지 않는다. 뉴스타파가 21대 국회의원 300명에게 보낸 질의서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제작진
취재임선응 강현석 연다혜 박중석
데이터최윤원
촬영신영철
편집김은 윤석민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공동기획세금도둑잡아라,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좋은예산센터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