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타임라인] '세월호 구조 참사' 110분의 기록

2020년 02월 27일 14시 05분

<<편집자 주>>

지난 2월 18일 검찰 세월호 특별수사단이 세월호 구조 지휘 과정에서 업무상 과실을 저지른 혐의로 참사 당시 해경 핵심 지휘부 10명을 무더기로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한 달에 걸친 해경 본청 압수수색과 관계자 100여 명 소환 등 석 달여의 강도 높은 수사 결과물이었습니다. 이로써 특수단의 여러 수사 과제들 가운데 ‘해경의 구조 책임’ 관련 수사는 사실상 마무리되고 기소된 10명에 대한 형사처벌 여부는 향후 법정에서 가려지게 됐습니다.

이에 따라 뉴스타파는 최근 수 개월에 걸쳐 제작해온 <영상 타임라인, ‘세월호 구조 참사’ 110분의 기록>을 공개합니다.

이 영상물은 뉴스타파가 지난 6년에 걸친 세월호 탐사취재 과정에서 수집한 세월호 구조 당시의 모든 현장 영상들과 교신음성 파일들, 문서들을 엄격한 ‘시간적 동기화’ 과정을 거쳐 하나의 화면 속에 묶은 것입니다.

여기엔 참사 당일 오전 8시 49분 40초 무렵 세월호가 급격히 기울어진 순간부터 선수 일부만 남긴 채 침몰한 직후인 10시 40분까지 약 110분 동안 구조와 관련해 수집 가능했던 모든 객관적 상황들이 실시간으로 담겨 있습니다.

이 영상은 세월호 특수단의 이번 수사 결과에 대한 평가는 물론, 해경의 구조 실패가 ‘무능과 시스템 부재의 결과물’인지 ‘고의적 살인’인지에 대한 판단, 나아가 기소된 해경 지휘부의 형사처벌 여부를 결정할 법원의 최종 판단 과정에서도 유용한 참고자료로 기능하게 될 것입니다.

‘세월호 구조 참사’ 영상 타임라인, 어떤 자료들로 채워졌나?

<영상, 타임라인, ‘세월호 구조 참사’ 110분의 기록>(이하 구조영상 타임라인)은 세월호가 급격히 기울어진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9분 40초부터 세월호가 대부분 물 속에 잠겨 더 이상의 구조가 불가능해진 10시 40분까지 110분의 시간을 그대로 복원한 영상 기록물이다. 이 영상을 구성하는 자료들은 크게 영상과 음성, 문자 기록물들이며 모두 진위 여부에 대한 확인을 마친 것들이다.

우선 영상 기록물들. 구조 과정 동안 선체 외부에서 촬영된 영상으로는 해경 구조세력의 채증영상(123정, B511헬기, B512헬기, B513헬기, B505헬기, CN235 초계기)과 관공선의 채증영상(진도 어업지도선), 그리고 민간 상선이 촬영한 영상(두라에이스호, 드라곤에이스11호)이 사용됐다.

선체 내부에서 촬영된 영상으로는 세월호 탑승객들이 촬영한 휴대전화 영상(故 김동협, 故 김시연, 故 박수현, 故 박예슬, 故 김홍경, 손정아, 김동수, 한승석)과 화물칸 차량 블랙박스 복원 영상(총 7대)이 포함돼 있다.

다음은 음성 기록물들이다. 세월호가 기울어진 직후 탑승객들의 119 및 122 신고전화, 해경 경비전화, 해경-청와대 핫라인, 해경 TRS(무선공용통신), VHF 통신(진도/제주VTS), SSB 통신(제주운항관리실)을 통해 110분 간 이뤄진 모든 교신의 음성파일이 사용됐다.

마지막 문자 기록물로는 해경의 코스넷(문자상황정보시스템) 복원 내용을 담았다.

‘시간 동기화’ 어떻게 가능했나?

구조영상 타임라인에 담긴 영상과 음성, 문자 기록물의 대부분은 2014년 검찰이 수사를 통해 확보했던 것들을 뉴스타파가 장기간 취재 과정에서 입수한 것이다. 검찰 수사 기록에 없던 승객 동영상 일부는 416가족협의회 등에 공식 협조 요청해 입수했으며, 차량 블랙박스 영상의 경우는 지난 2017년 뉴스타파의 단독 취재 과정에서 입수했다.

문제는 이 기록물들이 생성된 시간 정보와 실제 시간을 일치시키는 ‘시간 동기화’ 작업이었다. 세월호 승객 구조가 진행되는 동안 선체 안팎에서 벌어진 상황과 해경 등 구조세력의 보고와 지시, 조치 내용들을 모두 실제 시간과 일치시켜야만 해경의 세월호 구조가 얼마나 적정하게 진행됐는지 여부를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상 기록물의 경우, 내부 승객들과 해경 123정, B512헬기, 두라에이스호, 드라곤에이스11호의 영상은 모두 휴대폰으로 촬영돼 파일명이 촬영 시작시간으로 저장되어 있어서 동기화가 수월했다. 그러나 해경 B511헬기와 B513헬기, B505헬기, CN235 초계기의 영상은 촬영 장비에 세팅된 시간값이 실제 시간과 적잖은 오차를 가지고 있었다. 뉴스타파는 이 영상들 속의 세부 장면들을 일일이 분석해 동일한 장면을 포착해 같은 시간대에 정렬하는 방식으로 시간 동기화를 완성했다. 차량 블랙박스 영상의 경우는, 지난 2018년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의 종합보고서가 확정한 동기화 값을 적용했다. 뉴스타파의 보정 작업을 거친 결과 모든 영상들은 ±3초 이내에서 동기화된 상태다.

음성 기록물들의 경우는 시간적 오차가 더욱 컸다. 뉴스타파는 먼저 해경 본청 경비전화 파일 중 여인태 경비과장이 김경일 123정장의 휴대전화로 통화를 했던 기록을 기준으로 시간 오차를 보정했다. 검찰 수사기록에 나와 있는 김경일 정장의 휴대전화 통화기록 중 해당 통화의 시작과 마무리 시점을 포착해 비교한 결과, 해경 본청 경비전화 음성파일은 실제 시간보다 12분 49초 늦은 시간으로 기록돼 있었다. 이를 기준으로 본청 상황실에서 녹음된 해경-청와대 핫라인의 오차도 보정이 가능했다. 그러나 그밖의 음성파일들은 영상 파일들처럼 정교한 오차 보정이 쉽지 않았다. 이에 따라 서로 다른 교신 내용들의 상호간 맥락 등을 파악해 보정하는 것이 최선이었고, 그 결과 ±20초 정도의 오차범위로 동기화된 상태다.

구조 관련 가장 의미 있는 기록 중심 ‘실시간’ 구성

구조영상 타임라인 속의 시간은 참사 당일 오전 8시 49분 30초부터 10시 40분까지의 110분이 멈춤 없이 그대로 흘러간다. 그러나 영상과 음성의 소스가 워낙 많은 만큼 동시간에 여러 영상과 음성이 겹쳐질 수밖에 없었다. 영상의 경우 동시간에 최대 6개, 음성의 경우 최대 5개가 겹치는 구간이 존재했다.

이에 따라 영상의 경우는 4분할 화면을 사용해 동시간에 촬영된 영상을 최대 4개까지 한꺼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음성의 경우는 2개의 음성만 겹쳐도 내용을 식별하기가 어려운 점을 감안해, 동시간대 음성들 가운데 ‘해경의 구조 활동 적정성’ 판단에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음성들을 선별하여 가급적 하나의 음성 소스만 들릴 수 있도록 조정해 자막을 입혔다. 그러나 대단히 중요한 음성 기록이라고 판단되는 경우엔 2개 음성을 동시에 배치한 구간이 일부 존재하며, 이 경우에도 두 음성 기록에 대한 자막이 동시에 보일 수 있도록 했다.

교신 채널별 특이사항

구조영상 타임라인 속에는 110분 간 해경 등 구조세력을 중심으로 한 각종 교신 음성들이 끊임 없이 등장한다. 그런데 교신 채널마다 청취할 수 있는 구조세력의 범위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해경 등의 구조 활동 적정성을 평가하기 위해선 각종 교신 채널들의 특성들을 미리 알고 있을 필요가 있다.

먼저 119와 122 신고전화, 해경 경비전화, 해경-청와대 핫라인은 모두 일반적인 유선전화이기 때문에 당연히 1대1 대화다. 여기서 이뤄진 교신 내용들은 직접 통화한 사람이 보고나 전파를 하는 과정이 없으면 다른 구조세력이 공유할 수 없다.

TRS(Trunked Radio System)는 주파수무선공용통신이다. 이 통신망은 현장의 구조 세력부터 해경 본청과 서해지방청, 목포서 등 전국 어느 곳에 있는 해경들도 장비만 갖추고 있으면 청취가 가능하다.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 구조세력의 핵심 통신망이었다.

VHF(Very High Frequecy)는 초단파무선통신망이다. 전파 도달거리가 제한적이고 기상 조건에 따라 통신 상태가 일정하게 영향을 받는다. 한반도 해안을 따라 설치돼 있는 여러 VTS(해상교통관제센터)와 해상을 운항하는 선박들의 주요 통신 수단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엔 서해지방청 소속의 진도VTS와 해수부 관할이던 제주VTS가 이 통신수단을 통해 세월호와 교신했다. 그러나 일정 권역 내에 있는 선박들은 누구나 이 통신망으로 이뤄지는 교신 내용을 청취할 수 있어서 123정과 3009함 등 당시 사고 현장을 향하던 해경 경비함들도 신경을 썼더라면 청취가 가능했다.

SSB(Single Sideband)는 단파무선통신망이다. VHF에 비해 출력은 낮지만 도달거리는 길어서 멀리 떨어져 있는 어선들 간의 통신에 많이 활용된다. 세월호 참사 당시엔 제주운항관리실이 SSB를 통해 세월호와 교신했다.

코스넷(KOSNET)은 해경의 문자상황보고시스템으로, 일반에서 사용하는 카카오톡과 유사한 해경 내부용 문자 메신저 시스템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 구조세력은 TRS와 함께 코스넷을 통해 중요 보고와 지시를 주고 받았다. 그런데 정작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상황 보고와 구조 활동을 벌여야 했던 123정에는 코스넷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해경은 2013년부터 각급 함정에 코스넷을 단계별로 도입하던 중었이었는데, 참사 당시인 2014년 4월에는 300톤급 이상 해경 함정(위성망 이용)과 100톤 미만 소형 경비정(3G망 이용)까지만 코스넷이 설치된 상태여서 123정과 같은 100톤급 중형 경비정들은 이 시스템을 활용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당시 해경본청과 서해지방청은 123정이 볼 수 없는 코스넷을 통해 현장 상황 보고를 요구하고 각종 지시를 하달하는 난맥상을 보였다.

추가로, 당시 해경 경비정들 가운데는 위성망과 3G망을 이용해 현장 영상을 실시간으로 상황실에 송출할 수 있는 ‘비디오 컨퍼런스 시스템’이 탑재된 경우가 있었지만, 이 역시 123정 등 100톤급 함정에는 설치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당시 해경 지휘부는 123정에게 이 시스템을 빨리 작동시키라고 수 차례에 걸쳐 요구하는 모습도 연출했다.

‘구조 실패’ 야기한 4번의 ‘결정적 순간’

① 9시 22분 : 두라에이스호도 ‘승객 탈출’ 권고... 서해청은 “선장이 판단”

오전 8시 49분 50초 무렵 세월호가 급격히 기울어진 뒤 8시 52분 단원고 학생 故 최덕하 군의 119신고로 해경은 세월호 사고 사실을 파악했다. 123정은 목포 상황실의 지시를 받아 사고 현장으로 출발한 직후인 9시 3분 무렵 세월호와 VHF 67채널로 3차례 교신을 시도했으나 응답이 없자 이후로 교신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해청 소속인 진도VTS는 9시 6분 경부터 세월호와 교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9시 22분 교신에서 세월호는 “지금 승객을 해상으로 탈출시키면 해경이 바로 구조할 수 있느냐”고 진도VTS에 문의했다. 진도VTS가 머뭇거리자 이 교신 내용을 듣고 있던 두라에이스호 문예식 선장이 답답한 듯 “라이프링(구명튜브)이라도 착용을 시켜서 탈출을 시키십시오”라고 개입했다.

그러나 진도VTS는 즉시 대답하지 않고 서해청 상황실로 유선전화를 걸어 이 내용을 보고하고 승객 탈출을 지시할지 여부를 물었다. 보고를 받은 서해청 유연식 상황담당관은 “승객 탈출은 선장이 판단할 일”이라고 일축한 뒤 이 내용을 어디에도 보고하지 않았다.

진도VTS는 유연식 상황담당관의 대답 그대로 “승객 탈출은 선장님이 판단해서 빨리 결정하십시오”라고 세월호에 전했다. 그러자 세월호는 “그게 아니고, 지금 탈출을 시키면 바로 구조할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라고 되물었지만, 진도VTS는 10분 이내에 경비정이 현장에 도착한다는 말을 전하며 교신을 마무리했다.

만약 이때 진도VTS나 서해청 상황실이 세월호 측에 배가 기울어지고 있는 속도 등의 정보를 더 구체적으로 확인한 뒤 승객 탈출을 결정했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② 9시 28분 : B511헬기 “승객들 배 안에” 보고...지휘부, 항공구조사에 지시 전무

9시 27분 경 해경 구조세력 가운데 B511헬기가 가장 먼저 세월호 상공에 도착했다. B511은 곧 TRS를 통해 9시 28분 “현재 여객선 40~45도로 기울어져 있고 지금 승객들은 대부분 선상, 선상과 배 안에 있음”이라고 보고했다. 이에 목포서 상황실은 “밖으로 나와 있는 사람들 몇 명이야?”라고 되물었고, B511은 “해상에는 지금 인원이 없고 인원들이 전부 선상과 중간에 있음”이라고 재차 보고했다.

세월호에 450명 이상 탑승하고 있다는 정보는 이미 해경 전체에 공유된 상태였다. 그런데 사고 현장 해상에 표류하고 있는 승객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곧 모든 승객들이 배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B511의 보고를 받은 해경 지휘라인 어느 곳에서도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지에 대한 지시가 내려오지 않았다.

보고 이후 아무런 지시가 없자 B511은 동승한 항공구조사 2명을 우현 객실 창문 쪽으로 내려보냈다. 외부로 나와 있는 몇몇 승객들의 모습이 포착됐기 때문에 즉시 헬기에 태워야 한다고 스스로 판단했던 것이다. B511은 첫 보고 4분 뒤인 9시 32분 “구조사 2명 함내 진입 완료”라고 보고했다.

결과적으로 이 4분 동안 항공구조사에게 구체적 임무 지시를 하지 않았던 것이 구조 실패를 야기한 결정적 요인 중 하나가 됐다. 항공구조사들은 배 위는 물론 해상에서도 구조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몸에 어떤 전자통신 장비도 부착하지 않아 한번 헬기에서 내려가면 소통할 수단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B511의 첫 보고를 받은 해경 지휘부가 즉각 항공구조사에게 배 안으로 들어가 승객들을 밖으로 나오도록 유도하라고 지시한 뒤 헬기에서 내려갔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다. 실제로 해경 지휘부는 선체가 60도 이상 기울어진 9시 45분 무렵 이후부터 헬기 항공구조사들을 선내에 진입시켜 승객 탈출을 안내하라는 지시를 지속적으로 내리게 된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③ 9시 38분 : 123정, 배·승객 상황 구체적 보고...본청 경비과장 “계속 보고하라”

B511에 이어 9시 35분 무렵 현장에 도착한 123정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승객이 450명이나 된다는데 막상 해상에도, 갑판에도 승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123정의 현장 보고가 올라오지 않자 다급해진 해경 본청에서 김경일 정장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상태를 보고 받는다. 보고를 받은 사람은 여인태 본청 경비과장이었다.

두 사람의 통화는 2분 20여 초간 길게 이어졌다. 김경일 정장은 “해상에도 갑판에도 사람이 안 보인다”, “구명정도 해상에 하나도 투하되지 않았다”, “배는 좌현으로 50도 정도 기울어진 상태”라고 보고했다. 이 보고가 이루어진 시점이 9시 38분 경이다. 여인태 경비과장은 “침몰할 것 같으냐?”고 물었고, 김경일 정장은 “현재 봐서는 계속 더 기울어지고 있다”고 대답했다.

사실상 사고 현장의 모든 정보가 해경 본청에 직접 보고된 상황이었다. 더구나 배가 계속 더 기울어지고 있다는 정보까지 들어 있었다. 123정의 대공마이크 방송, 혹은 123정 승조원을 선내로 들여보내 승객들을 밖으로 나오게 하라는 판단과 지시가 이어져야 마땅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여인태 경비과장은 김경일 정장에게 “지금부터 전화기 다 끊고 모든 상황을 TRS로 다 실시간 보고하라”고만 지시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TRS 무전기를 집어들고 “123정이 TRS로 현 상황을 보고할 테니까 모든 국은 본 네트에 개입하지 말고 청취를 할 수 있도록”이라고 송신했다. 여인태 과장은 계속해서 보고만 받으면 무엇이 어떻게 나아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일까.

④ 9시 45분 : 123정 “승객 못 나온다, 잠시 후 침몰 예상” 보고...탈출 방송 지시 없어

9시 40분쯤 123정은 세월호 4층 좌현 출입구 쪽에 나와 있던 사람들을 발견하고 고무단정으로 태워 온다. 123정의 첫 구조였다. 고무단정에서 123정으로 올라탄 사람들 가운데는 기관장 박기호 등 세월호 기관부 선원 4명이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123정 해경들에게 현재 배 안의 승객들 상황을 전달해 줬다.

이를 전해 들은 김경일 정장은 9시 45분 TRS를 통해 “현재 승객이 안에 있는데 배가 기울어져 가지고 못 나오고 있답니다. 그래서 이곳 직원을 한 명 배에 승선시켜 가지고 안전 이동을 하게끔 유도하겠습니다”라고 보고한다. 여기까지는 적정한 판단과 조치였다.

그런데 고무단정에서 4층 핸드레일을 붙잡고 올라간 이형래 경사의 실제 움직임은 김경일 정장의 보고와는 딴판이었다. 4층 출입문을 통해 승객들이 머물고 있는 객실 로비 안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선수 방향으로 이동해 구명벌을 터뜨리려고 노력했다. 그는 마치 해상에 구명벌을 아무리 많이 띄워놔도 승객이 타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 행동했고 이를 지켜보는 김경일 정장도 추가 지시를 하지 않았다.

그때 조타실 문 앞에서 바깥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조타수 박경남이 해경들을 불렀다. 이에 123정은 조타실 쪽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제주VTS와 진도VTS는 세월호의 상태 파악을 위해 지속적으로 교신을 시도했지만 이미 조타실 선원들은 승객보다 먼저 탈출할 것을 마음 먹고 어떤 교신에도 응하지 않은 채 123정의 접근에만 관심을 쏟고 있었다. 답답해진 진도VTS는 사고 해역 부근에 도착한 민간 상선 드라곤에이스11호를 불러 세월호의 상태를 물었다. 드라곤에이스11호는 “좌현 쪽 핸드레일이 완전히 잠긴 상태”라고 알려줬다. 이때가 9시 46분이었다. 좌현 핸드레일이 잠기기 시작했다는 건 해경 대원이 진입하기도, 선내 승객이 좌현 출입구로 빠져나오기도 힘든 상황이 곧 펼쳐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현장에서 이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123정도, 진도VTS의 교신 보고를 계속 받아야 할 서해청도 승객 탈출 조치를 지시하지 않고 있었다.

123정은 계속해서 조타실의 선원들을 한 명씩 태우고 있었다. 그러나 김경일 정장은 그 당시 이들을 선원이 아니라 승객으로 생각했다고 후일 수사 과정에서 진술했다. 실제로 9시 49분 김경일 정장은 TRS를 통해 “현재 본국이 좌현 선수를 접안해 가지고 승객을 태우고 있는데, 경사가 너무 심해 가지고 사람이 지금 하강을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 잠시 후에 침몰할 걸로 파악됩니다”라고 보고했다.

문제는 바로 이 보고에서 ‘잠시 후 침몰’이 언급됐다는 것이다. 이미 좌현 핸드레일이 물에 잠겨 출입구가 막히기 시작했고, 헬기 항공구조사와는 소통이 되지 않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마지막 남은 수단은 123정의 대공마이크를 통해 승객들에게 즉각 탈출하라는 방송을 하는 것이었지만 역시 해경 지휘부의 지시는 내려오지 않았다.

김경일 정장은 123정에 올라탄 세월호 선원들로부터 승객들이 꼼짝 못하고 선내에 갇혀 있다는 말을 또 한 번 전해들었다. 이에 따라 9시 52분쯤 다시 TRS로 “현재 승객이 절반 이상이 안에 갇혀서 못 나온답니다. 빨리 122구조대가 와서 구조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보고했다. 122구조대를 언급했다는 건 잠수 가능한 요원이 있어야만 구조를 할 수 있는 상황, 즉 승객들의 자력 탈출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는 의미다.

그제서야 서해청 상황실을 통해 김석균 해경청장과 김수현 서해청장의 지시가 TRS로 전달됐다. 그러나 이미 늦었을 뿐더러 지시 내용 자체도 황당하기만 했다. “본청 1번님(해경청장)하고 명인집 타워 1번님(서해청장) 지시 사항임. 123정 직원들이 안전장구 갖추고 여객선 올라가서 승객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안정시키기 바람.” (9시 53분)

제작진
취재기자김성수
편집조문찬, 김기철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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