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보트, 해외 학회·교육훈련 빙자해 불법 관광접대

2019년 01월 23일 18시 51분

뉴스타파-ICIJ 공동기획 후속보도
인체이식 의료기기의 비밀: 업체와 의사의 '검은 공생법'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지난해 11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ICIJ와 36개국, 59개 언론기관과 함께 글로벌 의료기기 산업의 문제점을 공동취재하면서 의료기기 업체와 의료인들이 불법적인 유착 관계를 맺어 온 실태를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후 후속 취재 과정에서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된 한 의료기기 업체의 비리 관련 공익신고 자료를 입수했습니다. 그 업체는 바로 지난 보도에서도 등장한 국내 심혈관 스텐트 시장 점유율 1위 한국애보트였습니다. 뉴스타파는 애보트가 수년 간 의사들에게 불법 로비를 벌여 온 내막을 1월 22~23일 이틀 연속 보도합니다.

1월 22일
(1) 의료기기업체-의사 부당거래 증거...애보트 내부 자료 무더기 입수
(2) 애보트의 해외학회 '의사 모시기'...세션조율부터 비자발급까지

1월 23일
(3) 해외학회·교육훈련 빙자 불법 관광 접대
(4)업체-의사 부당 이득...부담은 국민 몫

지난 2011년 의료기기 업계는 업계와 의료인 사이의 리베이트와 로비 행위 근절을 목적으로 공정경쟁규약을 제정해 공정거래위원회 승인을 받았다. 규약에 따르면, 업체들은 의사들의 해외 학술대회 참가 비용을 지원할 때 협회에 기부금을 납부하는 간접 지원 방식을 취해야 한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입수한 한국애보트 내부 자료에 따르면, 이 같은 공정경쟁규약 제정 이후에도 이 회사는 일부 의사들의 주요 해외 학술대회 일정을 사전조율하고, 참가 의사를 선정했을뿐만 아니라 직원들을 동행시켜 현지 관광과 식사 일정까지 꼼꼼하게 챙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13년 7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3일간 진행된 말레이시아라이브(Malaysia Live) 학술대회에는 국내 심장내과 의사 9명이 심장학연구재단에서 비용을 지원받아 참석했다. 한국 애보트 담당 영업직원들은 업무 채팅방을 통해 각 의사들의 일정과 취향을 파악해 공유했다. 학술대회 일정 중 의사들에게 골프와 현지 투어 일정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직원들은 스스로를 ‘패키지 여행사' 직원이라고 자조하기도 했다.

  • A직원: A선생님, B선생님, C선생님, D선생님, E선생님이 같이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이 마지막 날 오전 밖에 없네요.
  • B직원: 첫날 시내 투어, 둘째 날 반딧불 투어, 마지막 날 외곽 투어까지. 완전 패키지 여행사네.
  • A직원: 이런 스케줄은 오랜만에 짜보네요.

뉴스타파는 당시 골프와 관광 일정에 참여 의사를 밝혔던 복수의 의사들에게 당시 상황을 듣기 위해 여러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해당 의사들은 답변을 거부했다.  

한국애보트는 규약에 따라 말레이시아 학회에 참여하는 이 의사들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를 통해 심장학연구재단에 2천156만 원을 기탁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뉴스타파 확인 결과 애보트 내부 회계 자료에는 당시 학회 지원에 4천29만 원을 사용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애보트, 동행하는 의사 가족까지 비용 지원하며 불법 로비

한국애보트는 가족들을 동행하겠다는 의사들의 요청에 이들 가족의 항공권과 관광 비용까지 대주며 로비를 벌인 정황이 확인됐다. 지난 2016년 8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33회 세계내과학회 학술대회(WCIM)에 참석한 의사 2명은 가족을 동행하겠다고 한국애보트 측에 알려왔다. 담당 영업직원들의 단체 메신저 방에는 영업직원들이 직접 이들을 위한 골프와 관광 등 일정을 기획했고, 가족들의 비용은 해당 의사를 관리하는 지역의 대리점과 나눠 부담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 A직원: 이번에 발리 가는 선생님들 2명 가족 데리고 가신다고 해요.
  • B직원: 공짜 가족여행 대박이네요.
  • A직원: 그쪽 현지에 있는 지인이 골프랑 투어 어레인지 해주기로 했습니다. 중요한 사람이면 직접 케어해 주겠다고 했는데 현지 사람 붙여주라고 해야겠네요.

애보트 직원들이 의사 가족들의 관광가이드 역할까지 한 사례도 있다. 한국애보트는 지난 2016년 7월 대만 애보트 지사에 생체흡수형 스텐트 신제품 교육훈련을 위해 국내 심장내과 의사 8명을 보냈다. 그 중 한 명은 동생 2명과 동행했다. 해당 의사가 교육훈련을 받는 동안 동생들은 관광을 즐겼고, 이 일정에 애보트 영업직원이 동행해 사진을 찍어주는 등 가이드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애보트 직원은 당시 동행한 의사 동생들의 관광 비용은 한국애보트 서울 본사와 지역 대리점에서 나눠서 부담했다고 전했다. 해당 의사는 애보트 직원이 동생들에게 관광을 지원한 사실은 몰랐으며, 동생들의 여비와 체류비는 자비로 부담했다고 주장했다.

교육훈련과 무관한 관광 접대는 향응 간주… 규약 무시한 애보트

한국애보트는 매 분기 일본, 중국, 싱가포르에 있는 자사 연구소에 한국 의사들을 초청해 제품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러나 취재진이 입수한 과거 해외 교육훈련 이력에 따르면, 애보트가 의사들에게 공정경쟁규약 상 명백하게 향응으로 분류되는 여행과 관광을 제공한 사실이 확인됐다.

의료기기산업협회 공정경쟁규약은 업체가 국내 미수입 신제품 교육훈련을 목적으로 의사들을 자사의 해외 연구소 또는 해외 병원에 보낼 때, 의사들에게 항공권과 숙박비, 식비 등을 제공하는 것은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외의 여행 또는 관광 접대를 제공하는 것은 향응으로 간주해 금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애보트 심혈관사업부는 지난 2013년 10월 25일부터 2박 3일 간 중국 상하이에 위치한 자사 연구소에 한국 심장내과 전문의 10명을 초청해 제품 사용법 교육훈련을 진행했다. 의사들은 25일 밤에 현지에 도착해 다음 날 하루는 제품 관련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는 애보트 측이 짠 일정에 따라 상하이의 상징인 동방명주 관광을 진행했다.

당시 의사들의 일정 전체를 안내했던 현지 관광가이드 김 모 씨는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업체에서 기본적으로 그걸(차량 등) 다 섭외를 하고, 의사 선생님들은 그냥 ‘이런 일정 잡혀 있으니까 가서 관광하시죠’ 하면서 모시고 다닌다"라고 설명했다.

수입 가능성 낮아보이는 제품을 반복적으로 해외 교육

의료기기산업협회 공정경쟁규약은 의사들을 해외로 데려가 제품 교육훈련을 진행하려면 대상 제품이 국내에 수입되지 않았으나 향후 수입 계획이 있다고 협회에 보고한 제품이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애보트는 수입 인가만 받고 실제는 수년 간 수입하지 않은 의료기기의 사용법을 교육하겠다며 반복적으로 의사들을 해외로 데리고 간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애보트는 지난 2017년 모두 세 차례에 걸쳐 국내 심장내과 교수 수십 명을 일본 지사로 데려가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교육은 HT 위글 가이드와이어(Wiggle GW)라는 제품이다. 심혈관에 스텐트 시술을 할 때 꽉 막혀있거나 좁아진 혈관을 카테터가 뚫고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하는 의료용품이다. 특히, 위글 제품은 일반적인 가이드와이어와는 달리 끝 부분이 지그재그 모양으로 특수한 병변에 시술이 용이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인 결과, 위글 가이드와이어는 이미 지난 2013년 4월 수입 인가를 받았지만 지난해까지 단 한 번도 수입된 이력이 없는 제품으로 확인됐다.

의료기기 업체의 해외 교육훈련 신청서를 심의하는 전영철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공정경쟁규약심의위원장은 이미 과거 수입된 이력이 있거나, 곧 출시될 계획이 없는 제품이라면 심의를 통과하지 못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 규약상 해외에서의 교육훈련은 신제품을 식약처로부터 허가 받은 후 출시 전에 한해서만  술기(시술기법) 교육을 받도록 돼있습니다. 출시를 목적으로 교육만 보내고 판매를 하지 않으면 그런 것들은 우리 규약심의위원회에서 철저히 검색을 해서 그 다음번에 신청할 때는 허가를, 승인을 하지 않습니다.

전영철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공정경쟁규약심의위원장

한국애보트를 비롯한 의료기기 업계가 매년 의사들의 해외 학술대회 참석을 지원하고 해외 교육훈련을 진행하면서 공정경쟁규약이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골프 및 관광 접대를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 심의위원장은 2011년 규약 제정 후 합법적으로 가능한 마케팅 활동의 폭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업체들이 최근엔) 제품에 대한 교육훈련 쪽에 아무래도 많이 판촉을 한다고 봐야 되겠죠. 공정경쟁규약이 생기고 나서부터 실질적으로 의료기기 회사가 병원을 상대로 해서 보건의료인을 상대로 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은 학회지원 내지는 제품설명회 또 제품을 통한 교육훈련 그것 밖에 사실 없어요.

전영철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공정경쟁규약심의위원장

취재 : 김지윤, 김성수, 홍우람, 연다혜
촬영 : 김기철, 오준식, 정형민, 최형석
편집 : 정지성
CG : 정동우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