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공짜 취재'] ② 가스공사 돈으로 '해외 출장' 간 기자들

2020년 08월 20일 15시 00분

언론의 생명은 신뢰다. 언론 사업은 뉴스와 프로그램 등을 통해 정보를 판매하는 비즈니스지만 사실은 그 속에 담긴 신뢰를 판다고도 할 수 있다. 2020년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공개한 세계 40개 국가 언론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언론 신뢰도는 21%였다. 조사 대상 국가 중 꼴찌다. 그것도 5년 연속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망하는 언론사가 거의 없다. 왜일까?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한국 언론의 기이한 수입구조에 주목했다. 그중 하나가 기사를 가장한 광고다. 또 하나는 세금으로 조성된 정부의 홍보, 협찬비다. 이 돈줄이 신뢰가 바닥에 추락해도 언론사가 연명하거나 배를 불리는 재원이 되고 있다. 여기엔 약탈적 또는 읍소형 광고, 협찬 영업 행태가 도사리고 있다. 이런 비정상적인 구조가 타파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서 언론이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게 불가능하다. 뉴스타파는 이 시대 절체절명의 과제 중 하나가 언론개혁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관련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추적 결과물은 언론개혁 계기판 역할을 할 뉴스타파 특별페이지 ‘언론개혁 대시보드’에 집약해서 게재한다. -편집자 주

‘공기업 가스공사’, 2016년에만 두 번 ‘공짜 취재’ 지원

2016년 5월,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를 출입하는 기자단 일행이 비행기를 타고 출장길에 올랐다. 행선지는 미얀마와 인도네시아, 산자부 산하기관인 한국가스공사(이하 가스공사)의 가스전·LNG공장 등을 돌아보는 7박 9일짜리 일정이었다.

뉴스타파는 당시 출장 내역이 담긴 가스공사 내부문서를 입수해 살펴봤다. ‘산업부 출입기자단 해외사업현장 취재지원’이란 제목의 문서에는 뉴시스, 머니투데이, 연합뉴스, 한국경제TV, MBN 등 국내 언론사 기자 13명이 참여했다는 내용과 함께 “가스공사가 기자들의 출장비를 전액 지원했다”고 적혀 있었다. 한마디로 ‘공짜 취재’라는 것이다.

문서에 따르면, 기자들은 출장 일정 내내 5성급 최고급 호텔에서 투숙했다. 기자 1인당 호텔비로만 1700달러, 우리 돈 200만 원이 넘게 들어갔다. 기자 한 명당 항공료도 300만 원 정도였다. 미얀마를 돌아다닐 때는 전세기까지 띄워 기자들을 실어 날랐다.

이외에도 기자들에게는 식사비(68만 원), 차량비(37만 원), 커피 및 음료비(12만 원), 가이드비(28만 원), 비자발급료(16만 원) 등이 지원됐다. 기자 한 명당 총 지원 금액은 730만 원 정도, 가스공사가 기자 13명에게 쓴 출장비는 모두 1억4천여 만 원(부가세 포함)이었다.

▲ 2016년 5월 가스공사가 진행한 ‘미얀마·인도네시아 기자 해외출장’의 지원 내역. 기자 한 명 당 730만 원 가량이 지출됐다.

취재지원 배경? “출입기자단이 먼저 요구한 해외출장”

그런데 뉴스타파가 입수한 가스공사 내부문서에는 눈에 띄는 내용이 있었다. 가스공사의 ‘공짜 취재 지원’이 기자단의 요청으로 만들어졌다는 내용이었다.(아래 사진 참조) 취재진은 가스공사에 연락해 자세한 내용을 물었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이렇게 답했다.

“기자들이 ‘해외 현장을 안 가보고 기사를 쓰기가 상당히 한계가 있다. 가스공사 해외사업 기사를 내실있게 쓰려면 한 번 방문해서 상황이 어떤지 실제로 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요청을 계속 해 왔습니다.”
- 한국가스공사 홍보팀 관계자

▲ 가스공사의 2016년 기자단 해외출장 계획문서 중 일부. 추진배경에 ‘출입기자단이 취재지원을 요청했다’고 적혀 있다.

6000억대 적자 기업 가스공사, ‘공짜 취재’에 수억 원 지출

가스공사는 정부(26.2%)와 지방자치단체(7.9%)가 대주주인 공기업이다.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한전)도 20.5%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한전 지분을 통해 들어간 정부(한전 지분 18.2% 보유) 간접지분(3.73%)까지 합하면, 가스공사에 들어간 정부와 지자체 지분은 37.83%에 달한다. 가스공사는 매년 수십억 원에 달하는 정부보조금도 받고 있다.

기자들에게 ‘공짜 취재’를 지원하던 2016년 당시, 가스공사의 경영 상태는 좋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자원외교 실패의 여파로 2014년 37조 원이던 매출(연결재무제표 기준)은 2016년 21조 원까지 떨어졌고, 6,125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공짜 취재’ 이듬해인 2017년에는 당기순손실이 1조2천억 원까지 늘어났다.

결국 경영상태가 부진했던 가스공사에 기자들이 ‘공짜 취재’를 요구하고, 가스공사는 이를 또 받아줘 억대가 넘는 공적자금을 낭비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가스공사의 ‘공짜 취재 지원’은 한 번이 아니었다. 2016년 8월, 가스공사는 2차 ‘산업부 출입기자단 해외사업현장 취재지원’ 사업을 추진했다. 가스공사가 해외사업장을 갖고 있는 미국과 멕시코를 돌아보는 5박 8일의 일정이었다. 이 행사에는 뉴시스, 뉴스1, 이투데이, 한국경제, 한국일보, BBS, MBN 등 11개 언론사 소속 기자 13명이 참여했다. 1차 때와 마찬가지로 기자단이 먼저 요구해 만들어진 행사였다.

뉴스타파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한 가스공사 내부 자료에 따르면, 2차 해외 출장에 들어간 비용도 모두 가스공사가 냈다. 기자 1인당 지원 금액은 호텔비(137만여 원), 항공료(394만 원), 식사비(47만 원), 차량 및 가이드비(94만 원), 현지여행사 알선수수료(14만 원) 등을 포함해 738만 원 정도. 가스공사가 쓴 총액은 1억4천만 원 정도로 1차 때와 비슷했다.

기자들에게 지원된 내역에는 취재와는 관련이 없는 ‘문화체험 비용’도 들어 있었다. 가스공사 측은 이에 대해 “호텔에서 음료비 등으로 쓴 것 등을 문화체험비라고 적은 것이다. 서류상으로만 그렇게 돼 있을 뿐, 취재와 관련이 없는 문화체험은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가스공사의 ‘2차 공짜 취재 지원’이 이뤄진 때는 공교롭게도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을 한 달 정도 앞둔 시점이었다. 혹시 가스공사가 청탁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서둘러 기자들에게 ‘공짜 취재’를 시켜줬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대목. 취재진은 가스공사에 연락해 물었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김영란법 때문에 앞으로는 못 가니까, 부득이 1년에 두 번 출장을 추진하게 됐다. 당시 사장님도 국정감사에서 시인한 바 있다”고 말했다.

▲ 2016년 10월 4일 국회 국정감사장에 나온 이승훈 당시 가스공사 사장(맨 왼쪽).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된 가스공사의 ‘공짜 취재 지원’

2016년 10월, 가스공사의 ‘공짜 취재 지원’ 문제는 국회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된 바 있다. 김병관 당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이승훈 당시 가스공사 사장에게 “기자들을 매수한 행위”라고 몰아 붙였다. 아래는 2016년 10월 4일 진행된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 회의록 내용 중 일부. (김병관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승훈 당시 가스공사 사장 간 문답내용)

“(김병관) 가스공사 사장님, 매년 산업부 출입기자단 해외 현장취재 지원사업을 계속 하시더라고요.
(이승훈) 예, 지난 8월까지 했습니다.
(김병관) 이게 회계상 어떤 명목으로 계정을…
(이승훈) 가스공사의 해외자원개발사업 현황을 소개하는, 홍보하는 이런 쪽입니다.
(김병관) 이게 그러면 홍보비에서 나가는 항목인가요?
(이승훈) 예, 홍보비입니다.
(김병관) 이게 당연히 이번에 김영란법 되면서 불법이라는 것은 아실 것 같은데요.
(이승훈) 예, 이제 없을 겁니다.
(김병관) 기존의 관행이었다고 생각을 하겠습니다. 그런데 매년 보니까 1년에 한 번 정도씩 했더라고요. 그런데 올해(2016년)는 두 번 하신 이유가 있나요?
(이승훈) 아마 김영란법 시행하고 상관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김병관) 그렇게 솔직하게 말씀하시니까요. 가스공사가 어쨌건 지금 자구노력을 많이 해야 되는 기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그 말씀을 국민들이 얼마나 선의로 받아들일지 잘 모르겠는데요. 어쨌거나 기자들을 돈으로 매수하는 행위잖아요? 앞으로는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될 것 같고요. 이게 사장님까지 결재가 된 사안인 것이죠?
(이승훈) 그렇습니다.”
-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 (2016년 10월 4일)

▲ ▲BBS의 2016년 9월 7일자 기사. BBS는 가스공사 해외출장을 다녀온 뒤 이틀 연속 기획보도를 내보냈다.

‘공짜 출장 ’ 이후 쏟아진 가스공사 광고·홍보 기사

1·2차 ‘공짜 출장’이 끝난 뒤, 행사에 참여한 언론들은 가스공사 해외사업장의 실적을 소개, 홍보하는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다음은 2016년 5월 29일 MBN 주말 저녁뉴스에 보도된 기사 내용.

“가스전 가능성을 본 포스코대우와 가스공사는 15년 전 미얀마와 손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과정은 험난했습니다. IMF 이후 자금난에다 미얀마 서부해상에서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며 위기에 몰렸지만, 자금 부족을 몸으로 때워가며 결국 10년 만에 가스전 발견과 함께 채굴에 성공했습니다.”
- MBN (2016. 5. 29)

BBS는 ‘가스공사 기획’ 기사를 이틀 연속 보도했다.

“BBS에서는 오늘과 내일 이틀동안 한국형 LNG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해외 수출 영역 확대에 나선 한국가스공사의 사업 현황과 앞으로의 과제 등을 짚어보는 기획특집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첫 시간으로 한국 가스공사가 최초로 LNG 투자기술을 수출한 멕시코 만사니요 LNG터미널 현장을 소개합니다.”
- BBS (2016. 9. 7)

‘기술수출의 성공모델’, ‘적도의 꽃’, ‘대박’, ‘잭팟’ 등의 표현을 쓰며 가스공사 사업장을 홍보해주는 기사들도 넘쳐났다.

▲ 가스공사의 2차 해외출장이 끝난 뒤 나온 이데일리 기사.

저널리즘 전문가들 “공짜 취재 뒤에는 편향된 기사”

공기업이 돈을 대 기자들에게 ‘공짜 해외취재’ 기회를 제공하고, 기자들은 해당 공기업을 사실상 홍보해 주는 기사를 쏟아내는 행태. 취재진은 저널리즘 전문가들에게 이런 관행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물었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편향된 기사가 나올 가능성”을 지적했다.

“취재편의를 다 특정기관에서 봐주는 취재의 경우, 취재와 인터뷰 일정이 사전에 다 짜여있게 됩니다. 해당 프로젝트나 해당 기관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홍보용 일정과 인터뷰죠. 그렇게 취재를 하고 나서 별도의 시간을 내 비판 거리를 찾아 균형 잡힌 기사를 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 제정임 세명대학교 저널리즘대학원장

“기자가 마음을 먹고 ‘공정하게 쓰겠다’고 해도 이런 출장에서는 어렵습니다. 지원기관은 당연히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섭외와 일정 조율을 하기 때문에 취재 과정에서부터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를 하기가 어렵죠.”
- 박영흠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초빙교수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가스공사의 1·2차 출장 취재일정은 모두 가스공사가 사전에 만든 것이었다. 인터뷰이도 대부분 가스공사가 미리 섭외한 사람들이었다. 취재일정 자체부터 ‘편향적일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가스공사가 만든 ‘해외시찰 세부일정표’를 보면, 기자들이 어디서 어떤 브리핑을 받을지, 누구를 인터뷰할지까지 모두 상세히 기재돼 있었다.

▲ 2018년 8월 가스공사의 2차 기자 해외출장 세부 일정표. 취재 일정은 모두 가스공사가 일방적으로 짠 것이었다.

가스공사의 의도대로 진행된 취재결과는 고스란히 기사에 반영됐다. 동일한 내용의 인터뷰가 여러 매체에 게재되는 기형적인 일이 벌어졌다. 2016년 5월 1차 출장에 동행한 가스공사 김 모 기획본부장의 인터뷰는 출장 참여 언론사 11곳 중 8곳의 기사에 들어갔고, 8월 2차 출장에 함께 간 안OO 당시 가스공사 부사장의 인터뷰는 함께 출장을 간 언론사 11곳 중 10곳의 기사에 실렸다.

뉴스타파는 가스공사 해외출장에 동행했던 기자 10여 명에게 수차례 이메일을 보내 “가스공사의 편의 제공이 기사 작성에 영향을 끼쳤는지” 등을 물어 봤다. 하지만 답변을 보낸 기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 2016년 5월 29일 MBN 기사. 당시 출장에 동행했던 가스공사 기획본부장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한전·중부발전도 ‘공짜 해외 취재’ 지원

그런데 ‘호화 공짜 취재’는 가스공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역시 공기업인 한전도 2016년 3월과 8월, 두 번에 걸쳐 산자부 출입기자단을 데리고 아랍에미리트·요르단, 미국·멕시코·캐나다 출장 취재를 진행했다. 국민일보와 뉴스핌, 문화일보, 부산일보, 한국경제, MBC, OBS 기자 등이 참여했다. ‘해외 전력사업 현장 취재를 통한 세계전력회사 1위 한국전력공사 홍보’, ‘지속적인 언론인과의 유대 강화로 전력사업 우호 기반 제고’를 목적으로 하는 행사였는데, 출장비용은 모두 한전이 댔다.

한전은 이 두 번의 ‘공짜 취재 지원’에 2억5,700여만 원의 예산을 집행했다. 아래는 이런 내용이 담긴 한전 내부문서.

▲ 2016년 한국전력공사가 진행한 1·2차 ‘공짜 취재 지원’ 관련 내부문서.

에너지 공기업인 중부발전도 2016년 5월, 일간지와 경제지·방송사 기자 등 총 8명을 데리고 인도네시아 출장을 진행했다. 중부발전은 이 행사에 총 2,800만 원(기자 1인당 244여만 원) 정도를 지출했다.

취재진은 한전과 중부발전에도 연락해 기자들에게 ‘공짜 해외출장’을 지원한 이유 등을 물었다. 중부발전은 “사업 성과를 홍보하려고 진행한 행사”라는 입장을, 한전은 “기업 입장에서 홍보 필요성이 있어 해외취재를 기획했고, 홍보를 위해 기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한 것이 그리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제작진
취재홍주환
촬영이상찬 오준식 최형석 정형민
편집윤석민 정지성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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