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특활비 공개 소송, 검찰 항소이유서 '궤변'

2022년 03월 04일 11시 11분

대검찰청이 검찰총장 특수활동비 등 예산 정보의 공개를 거부하고 항소하면서 내놓은 ‘항소이유서’를 뉴스타파가 확인해보니, 정보 비공개 주장을 뒷받침할 새로운 논거를 내놓지 못 한 채 궤변 투성이로 드러났다. 특히 방대한 예산 집행 자료를 정리할 수 없어 공개가 불가능하다는 억지 주장까지 내놓았다.
대검찰청 공판송무부는 지난달(2월) 28일, 뉴스타파와 세금도둑잡아라 등 시민단체가 승소한 검찰 예산 정보공개 행정소송 1심 판결에 불복하고 서울고등법원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했다. 항소장을 낸 지 34일 만이다. 이번 항소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지휘로 이뤄졌다. 
▲ 대검찰청 공판송무부가 서울고등법원 제7행정부에 제출한 항소이유서
검찰의 항소이유서는 모두 40쪽 분량이다. 많은 내용이 담겨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1심 재판부가 기각하고 받아들이지 않은 주장을 ‘재탕’, ‘삼탕’ 되풀이했다. 비공개 주장을 뒷받침할 새로운 근거 역시 제시하지 못 했다.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어떻게든 예산 정보의 공개를 피하고 보겠다는, 검찰의 ‘시간 끌기 꼼수’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검찰의 항소이유서가 얼마나 억지와 엉터리로 이뤄져 있고,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하는지 정리했다. 

검찰의 항소 전략 ① : ‘자료 없다’

검찰은 항소이유서에서 특수활동비를 누가, 언제,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썼는지, 관련 자료가 아예 없다는 주장을 또다시 폈다. 이른바 ‘정보 부존재’ 논거다. 항소이유서에 나온 검찰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검찰 특수활동비는 ① 관서 운영경비 출납공무원인 대검찰청 수사관이 검찰총장에게 현금으로 인출해 전달한다. ② ‘국고금 관리법’과 ‘특수활동비 계산증명지침’에 따라, 검찰총장은 이 현금을 집행내용확인서 같은 지출내역 자료를 아예 남기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판시하며 ‘정보 부존재’ 논거를 산산조각 냈다. ‘대표 없는 곳에 과세가 없듯, 증빙 없는 곳에 세금도 없는’ 것이 지당하다. 
  1. 2020년 11월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대검찰청에서 특수활동비의 지출내역을 직접 확인한 사실이 있고
  2. 검찰 특수활동비는 검찰총장과 산하 검찰청의 기관장, 부서장이 감사원의 지침에 따라 근거를 남기고 사용한다는 법무부의 ‘사실 확인서’와 더불어
  3. 국민 세금을 사용하면서 지출내역 자료를 어떻게 아예 남기지 않을 수 있냐는 것이다. (검찰 예산 정보공개 행정소송 1심 판결문)

검찰의 항소 전략 ② : ‘있어도 못 준다’

이렇듯 ‘특수활동비의 지출내역 자료가 없다’는 검찰의 주장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없다. 이를 의식한 듯 검찰은 항소이유서에서 ‘자료가 있다고 하더라도 공개할 수는 없다’는 단서를 달았다. 갖다 붙인 사유는 ‘수사 기밀’이다. ‘수사 기밀의 유지라는 공익을 후퇴하여서까지 투명성 확보의 공익을 추구할 이유가 없다’고 항변한 것이다. 같은 사유로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의 지출내역 자료도 공개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러나 법원은 ‘예산 정보를 공개하면 수사에 지장을 준다’는 주장 역시 인정하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의 지출내역 자료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뒤, 이 자료만으로는 ‘수사 내용이나 수사 기밀 등을 유추해내기 어렵다’며 정보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특히 재판부는 검찰총장이 쓰는 업무추진비의 지출내역 자료를 직접 확인했는데 ‘수사 업무가 아닌 간담회 등 검찰청 공식 행사를 수행하기 위해 지출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따라서 ‘정보가 공개된다고 해서 향후 수사 업무의 공정하고 효율적인 수행에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장애를 줄 고도의 개연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판사가 보기에도 예산의 지출내역 정보와 수사 기밀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즉, 검찰총장이 간담회를 하면서 식대 등으로 쓴 업무추진비의 지출내역 자료는 수사 기밀이 아니니 마땅히 공개하란 이야기다. 그런데도 검찰은 ‘수사 기밀이라 공개할 수 없다’는 주장만 무한 반복하고 있다. 

검찰의 항소 전략 ③ : ‘정리가 안 돼 못 준다’

검찰의 다음 주장은 ‘후안무치’하다. 항소이유서에 있는 항변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대검찰청에서 관리 중인 정보의 형식은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 예산 항목별로 정리하여 보유하고 있지 않으며, 전체 예산 사용 내역을 연도별, 사업별로 장부 형태로 정리하여 이를 관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한 권의 장부에는 본건과 무관한 수많은 예산 항목들이 혼재되어 있고, 특정 예산 항목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장부 안에 포함된 모든 내용을 검토하여야 구분이 가능하며 매년 생산되는 자료의 양이 매우 방대하여 이를 재분류하는 작업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검찰 항소이유서 37쪽
세 줄로 요약하면 아래와 같은데, 세금을 내는 주권자인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1. 예산 자료가 혼재돼 있어 항목 별로 정리해놓지 않았다.
  2. 예산 자료의 양이 많아 재분류 작업이 불가능하다.
  3. 그러니 공개하고 싶어도 못 한다.

검찰의 항소 전략 ④ : ‘주더라도 최대한 늦게 준다’

1심 재판에서 검찰은 줄곧 선고 일자를 최대한 늦추는 ‘지연 전략’을 폈다. 대표적인 것이 재판 날짜를 미루는 ‘기일변경신청’이다. ‘다른 재판 때문에 바빠서’, ‘검찰총장이 사퇴해서’ 등 갖은 사유를 들어 1심에서만 4차례 재판을 연기했다.
이와 더불어 재판 일정을 뒤로 미루기 위해 검찰이 활용한 또 다른 법리적 수단은 ‘사실조회신청’이다. 예를 들어, 1심 재판에서 검찰은 ‘특수활동비 지출내역 자료가 검찰에는 없고, 감사원에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했다. 뻔한 거짓말인데, 검찰이 이 주장을 펴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아무리 엉터리 주장이라도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① 검찰이 예산 자료가 감사원에 있다고 주장하자 ② 사실 확인을 하기 위해 재판부는 감사원에 ‘사실조회신청’을 했고 ③ ‘관련 자료가 검찰에 있다’는 감사원의 답변서가 법정에 올 때까지 재판은 멈췄다. ①에서 ③까지 걸린 기간은 약 1개월이다. 그런데 검찰은 항소이유서 마지막 페이지에 의미심장한 문장을 적어놨다. 
항소심에서는 원심에서 사실조회 회신한 내용 중 그 의미가 다소 불분명하거나 사실조회 신청한 사항이 충분히 회신 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재차 사실조회를 신청하고, 그 외 필요시 (중략) 추가 사실조회를 신청하여 주장 내용을 소명하려고 합니다.

검찰 항소이유서 40쪽
항소심에서도 ‘사실조회신청’을 통해 최대한 시간을 끌겠다는 속셈으로 읽힌다.
이번 행정소송을 맡고있는 하승수 변호사(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검찰이 1심 법원에서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은 주장을 되풀이하며 항소를 한 것 자체가 시간 끌기다. 기를 쓰고 감추려고 하는 것을 보면 ‘국민 세금을 엉터리로 쓴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2심 법원이 단호하고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하기를 기대할뿐이다”라고 말했다. 
▲ 박범계 법무부장관은 검찰개혁을 주창하면서도 검찰 예산의 지출내역 정보가 공개되어서는 안 된다며 항소 지휘를 했다.

검찰의 항소로 대선 기간 중 윤석열 후보의 예산 검증 못 해

2019년, 뉴스타파와 시민단체는 검찰 개혁을 위해서는 예산 사용내역의 투명한 공개가 필수적이라 판단하고 검찰을 상대로 정보공개 행정소송을 진행했다. 2년 2개월 만에 승소하면서 사상 최초의 공개 판결을 끌어냈지만, 검찰의 항소로 예산 사용내역 정보의 공개는 미뤄지게 됐다. 이로 인해 윤석열 대선 후보가 검찰총장 시절, 예산을 어떻게 썼는지 검증할 기회 또한 사라졌다.
그러나 1심 판결에서 확인했듯 검찰 예산의 투명한 공개는 결국 이뤄질 수밖에 없다. 어떤 이유로도 주권자인 국민의 알권리를 뭉갤 수 없다. 예산의 투명한 공개야말로 ‘특별한 권력기관’인 검찰을 민주적 통제 아래의 ‘보통 행정기관’으로 탈바꿈하는 출발점이다. 뉴스타파는 40쪽짜리 검찰의 항소이유서 전문을 공개한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내려받을 수 있다.
제작진
웹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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