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소송, 검찰 예산의 '빗장'을 풀어라

2021년 04월 27일 13시 55분

2021년 04월 27일 13시 55분

국민의 세금으로 쓰는 검찰의 예산. 그 중에서 특수활동비는 성역 중의 성역이다. 예산 심의 권한을 가진 국회도, 검찰의 감독권을 쥔 법무부도 접근하지 못하는 이른바 '무소불위'의  예산이다. 한 조직의 민주적 통제와 운영의 시작은 예산의 투명한 공개와 감시에서 출발한다.  
2년 전인 2019년 11월, 뉴스타파는 세금도둑잡아라 등 시민단체 3곳과 함께 검찰이 세금으로 쓰고 있는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 등의 집행 세부 내역을 모두 공개하라는 행정 소송을 냈다. 하승수 변호사(녹색당 전 공동운영위원장,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가 단체를 대표해 현재 소송을 수행 중이다. 검찰의 예산 오남용 추적은 2017년∼2020년, 3년간 진행한 '국회 세금도둑 추적'에 이은 뉴스타파의 두 번째 '공직감시 시민단체 협업프로젝트'이다. 

검찰 특활비 최초 소송① 법무부·국회도 접근 못하는 '무소불위' 예산

특수활동비는 다른 예산 항목과 달리 현금 집행이 가능하다. 증빙 영수증을 따로 남길 필요가 없다. 그러나 사용은 엄격히 제한된다. 기획재정부의 예산 지침에 따르면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수사, 안보, 기타 그에 준하는 업무에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2020년) 기준 법무부가 검찰에 배정한 특수활동비 총액(국정원이 배정한 검찰 예산은 제외)은 약 94억 원이다. 총액 규모만 드러날 뿐, 나머지는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다.

현금으로 집행, 소수 검찰간부에게 배정, 영수증 등 증빙하지 않아

전국 43개 검찰청이 어떤 기준으로, 얼마를 배정받아서, 어디에 사용하는지 전모가 공개된 적이 없다. 정확한 내역은 검찰총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 검찰 고위간부 일부만 알고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검찰의 특수활동비 집행 사실을 정리하면 이렇다.
①법무부는 특활비 예산의 일부를 검찰국이 사용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대검찰청에 내려 보낸다. 
②검찰총장은 돈을 주기적으로 전국 고등검찰청, 지방검찰청 등에 내려준다.
③다시 각 검찰청의 검사장이 차장검사 또는 부장검사에게 돈을 나눠준다.
이렇게 현금으로 집행하고 소수에게만 할당·분배되기에 외부의 감시는 불가능하다. 2019년, 검찰의 특활비 집행실태를 점검한 바 있는 감사원도 세부 지출 내역을 확인하지 못했다. 이처럼 예산 사용의 불투명, 비공개로 인해, 각종 비리와 오·남용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특수활동비가 엉뚱한 곳에 유용되거나, 검찰총장과 검찰 고위간부들의 ‘쌈짓돈’처럼 쓰이는 것이다.
2011년 4월, 당시 김준규 검찰총장이 부하 검사 45명에게 200만~300만 원씩 모두 9천 800만 원의 돈봉투를 돌렸는데, 돈의 출처는 특수활동비였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사건'의 국정조사에서 검찰총장의 특수활동비가 현금으로 인출돼 청와대에 건네졌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2017년 4월 21일 당시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은 저녁을 함께 한 후배 검사들에게 70만~100만 원씩 현금을 나눠줬는데, 역시 특수활동비에서 나왔다.
▲ 왼쪽부터 김준규 전 검찰총장, 이영렬 전 서울지검장, 안태근 전 검찰국장
정권이 바뀐 뒤에도 부정 의혹은 계속됐다. 지난해 11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돌연 윤석열 검찰총장과 검찰이 사용한 특수활동비를 감찰하라고 지시했고, 이 과정에서 법무부의 부적절한 특활비 집행 의혹이 터져나왔다. 

검찰 특활비 최초 소송②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라

2017년 5월 정권이 바뀐 뒤, 뉴스타파는 '적폐청산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시민단체 3곳과 함께 '국회개혁 프로젝트-국회 세금도둑 추적'의 협업을 진행했다. 국회를 상대로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 그리고 입법·정책개발비 등의 예산 집행 내역의 공개를 요구했다. 당시 국회 사무처는 자료를 순순히 내놓지 않았다. 예산의 집행 내역과 증빙 자료를 공개할 수 없다고 버텼다. 국회 사무처가 내세운 사유는 이러했다.
'공개 시 (국회의원 및 국회)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지장을 받는다.’ 
이 때문에 특수활동비 등 국회의 예산 내역을 확보하는 데, 1년 넘는 행정 소송을 벌여야 했다. 2018년 7월, 서울행정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국회의 특수활동비가 부당하게 집행된 사례가 드러나 이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문제 의식이 대두되고 있다.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국민의 알권리를 실현하고 국회 활동의 투명성과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그 공개의 필요성이 크다.

서울행정법원 판결(2017구합63405)
이렇게 뉴스타파와 시민단체가 1심 소송에서 이겼다. 그해 11월 국회 사무처는 항소를 취하했고, 국회 특수활동비의 집행 내역을 받아내 오남용 실태를 검증할 수 있었다.  

검찰 특수활동비, 최초로 '법정에 세우다'

국회와 국회의원들의 예산 오남용을 추적하면서 뉴스타와 시민단체는 예산 및 공직 감시의 영역을 넓히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 한 곳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또 다른 권력기관인 검찰이었다. 2년 전 국회에 했던 것처럼, 검찰의 예산 사용 정보의 공개를 요구했다. 2019년 10월 하승수 변호사(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 前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가 중앙지방검찰청에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의 집행 내역의 공개를 청구했다.
▲ 검찰 예산의 세부 집행 내역에 대한 정보공개청구서 (2019년 10월)
검찰은 국회와 마찬가지로 공개를 거부했다. 검찰이 내세운 사유도 3년 전, 국회의 주장과 '판박이'였다. 
'공개할 경우 범죄의 수사 등 직무 수행이 현저히 곤란해진다.' 
뉴스타파와 시민단체는 예산 내역을 공개하더라도 범죄 수사가 곤란해지지 않으며, 오히려 공개함으로써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고 맞섰지만 소용이 없었다.

국회와 검찰의 정보공개 '평행이론'

한 달 뒤인 2019년 11월 소송에 들어갔다. 하 변호사가 프로젝트팀을 대표해 서울행정법원에 검찰의 정보공개거부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냈다. 국회를 상대로 벌였던 지루한 법정 싸움이 또다시 되풀이된 것이다.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알권리 확보가 험난하다. 검찰과의 소송은 1년 6개월 째 진행 중이다. 검찰은 국민의 알권리를 외면하며 비공개의 '참호' 속에서 버티고 있다.
 뉴스타파는 지난해 1월과 10월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답변서와 준비서면을 검토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의 '황당한' 주장을 확인했다. 크게 두 가지인데 정리하면 이렇다.
① 검찰의 특수활동비 '집행 내역'이 사실 검찰에는 없다. 
② 존재하지 않는 자료를 어떻게 공개하나.
국민 세금을 사용해 놓고는 그 돈을 누가, 언제, 어디에, 어떻게, 왜 썼는지 세부 지출 결의서와 증빙 자료가 아예 없다니.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 행정소송 과정에서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답변서와 준비서면
곧바로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지난해 10월 29일 하승수 변호사가 재판부를 통해 검찰의 상급 감독기관인 법무부에 '사실조회 신청서'를 보냈다. 특수활동비 집행 내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검찰의 주장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한 달 뒤, 법무부 검찰과에서 회신이 도착했다. 답변은 특수활동비 세부 집행 내역의 자료가 없다는 검찰의 주장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법무부의 회신 내용은 이렇다.
대검찰청과 산하 검찰청 및 사업부서에 배정된 특수활동비의 세부 집행은 감사원 특수활동비 계산증명지침에 따라 이를 배정받은 기관장·사업부서장의 책임 하에 이루어지고 있음.

법무부 사실조회 회신서(2020.11.27)
검찰이 '엉터리 답변서'를 법원에 제출한 것이다. 어처구니 없는 검찰의 주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재판에서 불리해지자, 검찰은 말장난을 하듯 이런 답변을 내놓기에 이른다.  
"집행 내역이 없다는 것이지. 사용 내역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일까. 집행내역과 사용내역이 뭐가 다른가. 올해 1월 28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속개된 3차 변론 기일에서, 검찰을 대표해 나온 대검찰청 공판송무부 소속 검사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궤변에 가까운 구차한 해명이다.  
특수활동비는 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에게 돈을 내어줄 때 그게 '집행'이라는 개념입니다.
그 이후의 사용은 '구체적인 사용 내역'에 불과한 것이라서 저희가 그 자료를 법적으로 작성해서 보관하고 관리할 의무가 없다는 취지입니다.
저희 검찰 내부에서 투명하게 사용하기 위해서 작성하는 '내부 자료'가 있을 뿐인 것입니다. 그 개념은 분리를 해서 생각하셔야지...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정보공개 행정소송 3차 변론 / 2021.01.28)
검찰의 상식 밖의 대응은 더 있다.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또 다른 답변서에서 특수활동비의 세부 집행내역의 자료가 이번엔 감사원에 있다고 밝혔다. 2017년 감사원이 검찰의 특수활동비의 집행 실태를 점검했기 때문에 관련 자료가 감사원에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재판부를 통해 감사원에 해당 자료를 보내달라는 '문서송부촉탁'을 정식 신청했다. 얼마 뒤, 감사원에서 회신이 왔다. 감사원에 그런 자료가 없고 법무부와 검찰에 요청하라는 짧은 답변이었다. 이번에도 검찰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 (감사)원에 해당 사항은 존재하지 않으며 해당 자료는 소관기관 (법무부 및 검찰청)에 요청하여야 함을 알려드립니다.

감사원 문서송부촉탁 회신서(2020.11.10)
이날 법정에서 하승수 변호사는 '법원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검찰을 비판했다. 검찰에는 특활비 지출결의서의 존재 등 사실 관계를 명확히 해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이건 명백히 법원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있는 문서를 없다고 하니까 명백히 법원을 기만하는 것이고...
명백하게 사실 관계를 정리해주셔야지, (자료가) 존재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애매하게 계속 넘어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승수 변호사(정보공개 행정소송 3차 변론 / 2021.01.28)
보다 못 한 재판부가 나설 수밖에 없었는데, 검찰의 주장을 서면으로 다시 정리해 제출하라고 검찰 측에 촉구했다. 그렇다고 재판의 성과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이날 재판부는 검찰에 특활비 자료의 제출을 분명하게 요청했다. 비공개 열람을 통해 정보공개법상 비공개 사유에 해당하는지 재판부가 직접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당시 재판부와 검찰 측 검사 사이에 오간 대화를 통해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법정이 아닌 판사실로 가져다 봐야 할 정도로 검찰의 특활비 관련 자료의 양이 매우 방대하다는 것, 또 하나는 피고인 검찰총장을 대신해 나온 대검의 검사조차 아직까지 특활비 자료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래는 재판부와 검사 사이에 오간 문답의 일부다.
재판부 : 저희한테 (특수활동비) 기록을 제출해달라는 말씀입니다.
검찰 측 검사 : 제출해야 될 기록의 양이 방대할 것 같습니다. 
재판부 : 법정으로 가지고 오시는데 너무 무겁다고 하면, 바로 판사실로 갖다 주시는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분량이 될까요?
검찰 측 검사 : (작게 웃으며) 저도 그 기록 자체를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양은 체크를 해봐야 될 것 같습니다.
재판부 : 음... 예. 그러면 일단 판사실로 갖다 주시는 것으로 이렇게 알겠습니다.
검찰 측 검사 : 네.
검사가 민망한 듯 웃을 때, 방청석에 앉은 취재기자도 웃었다. 그리고 취재 노트를 펼쳐서 이렇게 적기 시작했다. '특활비 자료가 방대. 대체 얼마나? 소송 이기면 복사할 시간 꽤 걸릴 듯! 검사도 못 봄. 엄청난 자료 추정?'   
이후 재판에 속도가 붙나 싶었다. 곧 선고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4차 변론기일을 사흘 앞둔 지난 3월 15일, 갑자기 검찰은 재판 날짜를 미뤄달라는 '기일변경신청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퇴로 총장이 공석이 돼 재판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연기 사유였다. 검찰의 재판 연기 사유를 정리하면 이렇다. 
  • 현재 이 사건 피고1(검찰총장)이 부재한 상황입니다.
  • 본건은 검찰 예산과 관련된 최초의 소송으로서, 관련 자료가 외부로 제출되거나 공개된 바가 없고,
  • 특수활동비 관련 부분은 검찰 내에서도 검찰총장과 관련 담당자만이 관여하는 보안사항입니다.
  • 따라서 본건 소송수행은 통상적인 업무수행 범위 내의 의사결정에 의해 수행하기가 어렵고,
  • 비공개열람기일에 제출할 자료와 관련하여, 내부의 적절한 절차에 따라 의사결정을 이루기가 매우 곤란한 상황입니다.
▲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변론기일변경신청서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줬다. 오는 6월 3일로 4차 변론기일이 연기됐다. 검찰은 이미 지난해 10월에도 국정 감사와 재판 일정이 겹친다는 이유로 변론기일의 변경을 요청한 바 있다. 뉴스타파와 시민단체가 검찰을 상대로 예산 집행내역을 공개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지, 1년 6개월을 맞고 있다. 국회를 상대했을 때 만큼의 긴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조금 더뎌질 뿐 언제가는 드러날 것이다. 늦어도 올해 안에 검찰과의 ‘정보공개 전쟁’의 결말이 나올 것이다.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소송의 승패가 어떻게 나오든 주권자인 국민에게 모두 공개할 것이다. 권력 기관의 민주적 통제는 예산의 투명한 공개로부터 시작한다. 검찰 권력도 국민의 알권리를 막지는 못할 것이다.
제작진
영상 취재최형석, 신영철, 오준식
편집박서영
CG정동우
웹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데이터 최윤원
소송 하승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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