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회] 철도 민영화 '멘붕 777'

2012년 06월 02일 04시 11분

<기자>

자정이 가까운 늦은 밤. 서울 여의도. 150여 명의 전국 철도노조조합원들이 노숙을 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이른바 KTX 민영화 계획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영익 전국철도노조 위원장] “그동안 정부가 민자사업을 할 때 요금이 안 오를 것이다, 라고 얘기했지만 다 요금이 상당히 인상되고 폭등을 했습니다. 이것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가된 것이고요...”

@ KBS 뉴스9 2012년 4월 19일

“네. 정부가 코레일이 독점 운영하는 철도 부문에 경쟁 체제를 도입해 요금을 낮추겠다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지난 4월 19일. 국토해양부는 KTX 일부 노선의 운영권을 민간에 넘기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른바 경쟁체제를 도입해 철도운영의 독점을 없애고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철도민영화를 공식 선언한 것입니다.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 “경쟁을 도입하게 되면은 KTX 운영에 있어서도 요금이 싸지게 되고 정부에서 받아들이는 선로 사용료는 더 많이 징수할 수 있게 돼서 국민 세금부담이 줄어들고 또 재정부담도 줄어듭니다.”

정부가 계획중인 민영화 노선은 오는 2015년 개통될 KTX 수서발 경부 호남선. KTX 는 다른 열차와 달리 3천억 원의 흑자를 내는 이른바 황금노선입니다.

[박태만 전국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 “경부선 KTX 만 흑자를 보는 거잖아요. 1년에 3천5백억 정도 흑자를 내거든요. 그리고 그 3천5백억 가지고 적자보는 나머지 기차는 다 적자입니다.”

민간자본에 막대한 이득을 챙겨주는 특혜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김성희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철도의 경우에 수서발 KTX 의 경우에 운영권을 줄 경우에는 막대한 이익을 거둘 수 있는 알짜 산업을 세금으로 건설해서 민간 기업이 호주머니를 채우는데 넘겨주게 되는 그러한 문제들이 생기게 되죠.” [고용석 국토해양부 철도운영과장] “선로 사용료 임대료 그것도 기존 코레일보다 더 많이 내도록 하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수입보장을 안 한다. 그리고 경쟁할 때 공정한 경쟁 입찰을 통해서 업체를 선정한다. 이렇게 종합적으로 봤을 때 특혜의 소지는 전혀 없는 거죠.”

이렇게 특혜 논란도 문제지만 가장 큰 쟁점은 요금 문제입니다. 과연 KTX를 민영하 했을 경우 철도요금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하는 점입니다.

[김철호 대전시 도룡동] “민영화가 되다 보면 요금이 천정부지로 오를 것 같기 때문에 이용객들도 차라리 여기서 조금 더 부담하는 게 낫지. 민영화 된 다음에 훨씬 더 비싼 요금을 내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서덕임 전남 해남군 문내면] “민영화되면요? 오를테죠. 국가에서 하는 것보다 더 오를 것 같죠. 국가에서 하는 것보다 더 오를 것 같지 않아요?” (그러면 승객입장에서는 좀 더 부담스러우시겠죠?) “그렇죠. 살기도 힘든데... 진짜 살기 힘드니까 부담스럽죠.”

이미 십여 년 전부터 철도 민영화를 경험한 영국은 어떨까. BBC와 가디언 등 영국의 주요 언론들은 유럽에서 가장 비싼 요금, 그러나 서비스는 엉망이고 크고 작은 고장이 자주 발생하는 등 민영화 이후 벌어지는 영국의 철도 시스템을 연일 질타합니다.

영국정부 스스로도 철도민영화를 실패한 정책이라고 시인했습니다.

[김성희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운수성에서 자체 보고서를 냈습니다. 민영화된 영국철도에 어떤 결과를 초래했느냐에 대해서 영국 운수성 자체가 실패다, 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2010년에 낸 보고서에서 명시하고 있습니다. 우리 철도의 구조개편은 실패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철도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의 판단은 전혀 다릅니다. 장관까지 직접 나서 영국에서 큰 폭의 요금 인상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 “분석을 해보니까 요금이 그게 87년부터인가 실시됐는데 물가상승률 이내로 안정이 됐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알려진 거하고는 상황이 다릅니다.”

이 같은 권도엽 장관의 주장은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 것일까. 국토해양부가 공식 운영하는 블로그입니다. 경쟁체제 도입, 즉 철도 민영화 정책을 옹호하는 자료를 올려놓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영국의 철도요금 체계를 좌석 등급 별로 그래프 형태로 제시한 자료가 눈에 띕니다. 특실에 비해 일반석은 많이 오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말합니다. 특히 정부의 요금 규제를 받지 않는 특실의 요금은 올랐지만 규제를 받는 일반석의 요금은 소매물가 지수와 거의 동일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용석 국토해양부 철도운영과장] “우리는 이런 부분에 자신이 있어요. 정부의 목표니까 이거는 요금을 인하시키는 게 정부의 목표니까 정부가 요금 인하하려고 이 어려운 사업을 하는데 요금이 올라간다고 하면 정부가 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런데 영국 같은 경우에는 민영화 이후에 사고도 사고지만 2000년 이후로 요금이 두 배 정도 올랐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반대측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특실요금은 올랐어요. 두 배.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보면은 우리가 규제할 요금이 있고 비규제할 요금이 있어요. 그래서 돈을 많이 내고 타겠다는 사람, 뭐 특실 같은 경우 그 부분은 올라갈 수도 있는 거예요. 그건 정부가 규제할 대상이 아니니까. 영국 같은 경우에.. 그런데 영국 자체도 일반실 요금은 안 올랐어요. 일반실 요금은 물가수준으로 딱 올랐어. 물가수준... 그러니까 그것도 규제를 했으니까. 영국에서도.”

그렇다면 이 통계수치 그래프는 제대로 작성된 것일까. 뉴스타파의 취재 결과 그렇지 않았습니다. 국토해양부가 불리한 데이터 자료는 빼고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국토부가 인용했다는 영국 철도당국이 작성한 원문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영국의 경우 철도요금 체계에서 STANDARD CLASS 즉 일반석은 두 가지로 분류돼 있습니다. 정부의 요금규제를 받는 일반석은 물가상승과 비슷한 149 정도 상승했습니다. 일주일 또는 한달치 정기권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반면 당일 매표소에서 구입하는 정부의 요금규제를 받지 않는 일반석 요금은 특실과 비슷한 지수인 220까지 요금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더욱이 이 같은 규제를 받지 않는 일반석의 지출 비중은 26%로 규제를 받는 일반석의 3배 수준입니다.

그런데도 국토부는 규제를 받지 않는 일반석의 요금인상 부분은 완전히 삭제한 채 마치 일반석 전체가 149정도만 인상된 것처럼 자료를 꾸몄습니다. 상대적으로 인상률이 높고 지출비중이 큰 규제를 받지 않는 일반석 통계를 삭제한 것입니다. 이는 삭제를 통한 전형적인 통계 왜곡에 해당합니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뉴스타파 취재팀은 국토해양부를 찾았습니다.

[고용석 국토해양부 철도운영과장] (물가 수준만큼 올랐기 때문에 덜 올랐다, 라고 하는 것은 이것은 규제 받는 것만 쓴 것이 잖아요. 그런데 규제 받지 않은 것은 200까지 올랐잖아요.) “아.. 그러니까 그것을... 그러니까 이런 거죠.” (정부 스스로 왜곡시킨 것이 아니냐.. 통계 자료를.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왜곡? 아 그건 우리가 또 해줄 수도 있어요. 아니 우리는 요기다가 일반석 규제.. 일반에서 규제하는 것은 안 올랐다. 그렇게 설명해서 만들 수 있는데... 이때 논리는 뭐냐면.. 상대측에서 두 세 배 올랐다고 하니까 일반석 중에 안 오른 것도 있다. 이렇게 우리가 얘기를 한 것이지. 그래서 우리가 이런 거 다 공개되어 있어요. 지금. 이게 우리 자료실에 다 오픈시켜 놨어요. 그러니까 이걸 국민들에게 일반 규제되는 것은 얼마고. 우리는 뭐냐면 영국도 무한정 오른 것이 아니고 필요한 부분은 안 오르고 필요하지 않은 부분은 시장에 의해 올랐다. 그렇게 객관적으로 입장을 알려주는 거지...”

내용을 전부 밝히는 게 어렵고 간단하게 작성하기 위해 비규제 일반석은 뺐다는 답변. 그러면서 왜곡이다, 거짓이 아닌 미비한 것이다, 고 주장합니다.

[고용석 국토해양부 철도운영과장] (이 그래프만 보면 이 그래프도 국민들에게 오해의 소지를 줄 수 있다.) “그렇죠. 그러니까 오해의 소지가 있으면 우리가 또 거기에 대해 추가로 얘기를 하는 거거든요.” (오해의 소지를 줄만큼 굉장히 잘못된 그래프를 만들었다는 것이죠. 정부가.) “아니 잘못된 게 아니고 미비한 거지.” (아 미비.) “미비지... 왜곡이 아니라..” (누락한 거죠.) “그러니까 미비한 거지.” (예를 들면 일반석 중에서 가격이 많이 오른 규제를 받지 않은 부분, 그 부분은 안 쓴 거죠.) “그러니까 이걸 다 쓸려면 우리가 어떤 거는 있고 다 이렇게 되잖아요. PT라는 자료 자체가 한계가 있잖아요.”

계속 확인하자 이번엔 다시 작성하면 문제될 게 없다고 말합니다.

[고용석 국토해양부 철도운영과장] (정부한테 유리한 자료만 보여주려고 한 게 아니냐, 라는 지적이 가능하지 않냐?) “아 지적 가능해요.” (자기한테 유리한 자료만 쏙 뽑아서 할 순 없는 거잖아요. 해선 안 되는 거잖아요. 더더군다나 정부는...) “아... 그러니까 그런 부분에 대해서 지적을 하면은.. 다시 정리를 잘 해서 우리가 공개를 할 수 있는 거죠.”

[김성희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모든 자료를 솔직히 공개하고 좋은 점과 나쁜점을 내놓고 평가를 해야 하는데, 나쁜점에 대해서는 귀를 막고 자료까지 왜곡을 한다, 라는 것은 과연 이게 당국이 해야 될 태도인가, 에 대해서 심각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죠.”

국토 해양부는 최근 KTX 민영화 추진과 관련해 많은 시민들이 지나친 억측으로 오해하고 있다며 대대적인 홍보자료를 내놓으며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민] “편리하긴 한데 자주 이용하기에 비용면에서 부담스러워요.”

[시민] “항상 KTX를 타려면 코레일만 이용해야 되는데. 그러다 보니까 선택권이 너무 없어서 불편한 점이 있어도 KTX에서 개선을 안 해주면 방법이 전혀 없으니까.”

하지만 지난 1월 국토해양부는 산하기관인 한국철도시설공단 직원들에게 인터넷에 KTX 민영화를 찬성하는 댓글을 쓸 것을 지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최근에는 국토부 소속 기관 직원들에게 KTX 민영화를 옹호하는 글을 트위터 등 SNS에 올리도록 지시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부가 여론조작을 하려 했다는 의혹까지 사고 있습니다.

여기에 정부 입장의 불리한 내용을 빼고 유리한 통계치만 꾸며 사실과 다른 왜곡된 자료를 만들어 홍보하고 있는 사실이 새롭게 들통이 났습니다.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의 슬픈 현주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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