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뉴스타파] 정부는 무시하고, 경찰은 짓밟았다

2023년 06월 15일 20시 00분

지난 5월 31일 새벽 전라남도 포스코 광양 제철소 앞에서 고공농성을 하던 한국노총 간부를 경찰이 유혈진압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노총은 대통령 직속 노사정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 전면 불참을 선언했다. 한국노총은 경사노위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노동계 대표다. 한국노총의 불참 선언으로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 3자의 사회적 대화는 파탄 위기에 놓였다. 윤석열 정부 출범 13개월 만의 일이다. 
노사정 대화 기구의 파탄을 불러온 이 사건은 대체 왜 일어났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유혈 진압 이후 '과잉 진압'이라는 비판이 일자 정부와 여당은 '정당한 법 집행'이었다고 반박했다. 노동자가 쇠 파이프를 먼저 휘둘렀기 때문에 무력 진압이 불가피했다는 주장이다. 지난 8일 대통령실도 경찰 진압은 '엄정한 법 집행'이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과연 그렇게 볼 수 있을까. 
뉴스타파가 직접 광양 현장을 찾아 경찰의 진압이 정당했는지, 공권력 행사 과정에서 경찰이 정해 놓은 법과 원칙은 제대로 지켰는지, 그에 앞서 한국노총 간부는 왜 철탑에 오르게 된 것인지 등 사건의 세부 사항과 전후 맥락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철탑 농성 시작부터 유혈 진압까지...그 날의 재구성

한국노총 금속노동자연맹(이하 금속노련)의 김준영 사무처장이 고공농성에 돌입한 건 지난 5월 29일 밤 11시경이다. 이날은 포스코 사내하청업체 '포운' 소속 노동자들의 임금 협상 전날이었다. 금속노련 측은 포스코 광양 제철소 입구 근처 도로에 7m(지붕 포함 8.5m) 높이 철탑을 세웠다.
김 사무처장은 이 철탑 꼭대기에 올라 홀로 농성을 시작했다. 포스코 하청노동자들의 실태를 알리고, '노동3권을 보장하라'고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다음날 예정된 임금 협상에서 성과를 내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경찰은 다음 날인 5월 30일 아침부터 고공농성장 주변을 에워쌌다. 하지만 진압을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포스코 하청업체인 '포운'의 박옥경 노조 위원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때도 (경찰에게) 물어봤습니다. '이거 강제 철거 들어오냐'라고 물어보니까 그 당시에 '저렇게 위험한데 어떻게 들어옵니까, 경찰들이. 아마 그러지 않을 겁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좋다, 좀만 참아줘라 지금 우리가 협상이 있으니까 이거 협상이 좋게 끝나면 철수할게'라고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끝난 겁니다.

박옥경 / 포스코 하청업체 '포운' 노조 위원장
곧 분위기가 달라졌다. 5월 30일 오전 9시경 더 많은 경찰력이 투입됐다. 경찰 기동대 3개 중대 약 180명 규모였다. 경찰은 폴리스라인을 쳤고, 철탑 아래에 에어매트도 설치했다. 김준영 처장과 시민 안전을 위한 조치였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반면 김준영 처장과 노조는 '곧 진압에 나서겠다는 신호'로 느꼈다고 한다. 금속노련에 따르면, 농성 시작 반나절 만에 경찰의 진압 의지를 인지한 김준영 처장은 강력히 반발하며 철탑을 흔드는 등 방식으로 경찰에 항의했다.
지난 5월 30일, 한국노총 금속노련 김준영 사무처장이 고공농성 중인 철탑을 경찰이 둘러싼 모습. 

"강제 진압 말라"항의한 금속노련 위원장에 뒷수갑 채운 경찰

이 모습을 본 금속노련 김만재 위원장이 경찰에 다가가 항의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김만재 위원장은 "김준영 처장이 위험하니까 경찰은 무리한 행동을 하지 말라고 했다. 무리하게 에어매트를 설치하지 말라고 했다. 김 처장이 너무 흥분한 상태이기 때문에 안정을 시키기 위해서 그랬다"고 말했다. 
김만재 위원장에 따르면, 항의 과정에서 경찰은 김 위원장의 신체를 제지하려고 했다. 김 위원장이 '몸에 손을 대지 말라'며 경찰의 손을 뿌리쳤다. 그러자 경찰은 김 위원장을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체포했다. 광양경찰서 형사 6명이 달려들어 김 위원장을 넘어뜨렸고, 목을 짓누르며 뒷수갑을 채웠다. 경찰 측은 '김 위원장이 경찰을 향해 물을 뿌렸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마시던 물병을 들고 있었는데, 경찰의 손을 뿌리치는 과정에서 그 물이 뿌려진 것이다. 경찰에 항의할 때도 말로만 했다. 에어매트 설치를 몸으로 막지도 않았다"고 반박했다. 
지난 5월 30일, 금속노련 김만재 위원장을 체포하고 있는 경찰의 모습. 김 위원장을 넘어뜨려 목을 짓누르고, 뒷수갑을 채웠다. 
'인권 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에 따르면 경찰관은 체포·구속 시 상대방의 신체와 명예 등을 부당히 침해하지 않는 장소, 시간, 방법 등을 선택해야 한다. 또 '경찰 물리력 행사의 기준과 방법에 관한 규칙'(이하 경찰 물리력 행사 기준 규칙)에는 '수갑은 원칙적으로 대상자의 도주, 폭행, 소요, 자해 등의 위험이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드러난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고, 뒷수갑은 도주, 폭행, 소요, 자해 등의 우려가 높다고 판단되는 경우 사용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 
뉴스타파는 광양경찰서에 연락해 왜 김만재 위원장을 물리력으로 제압하고, 뒷수갑을 채웠는지 물었다. 전남경찰청이 광양경찰서를 대신해 입장을 밝혔다. 전남경찰청은 "위해성 경찰 장비 사용기준 등에 관한 규정 등에 따른 정당한 장구 사용"이라고만 답했다. 김만재 위원장의 도주, 폭행, 소요, 자해 우려가 높다고 판단한 이유에 대해선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 

"강제 철거 없다"던 경찰, 30시간 만에 유혈진압

김만재 위원장 체포 다음 날인 5월 31일 새벽 5시경, 고공농성장 주변으로 경찰력이 더 투입됐다. 경찰 기동대 6개 중대로 약 600명 규모였다. 형사들도 여럿 포진해 있었다. 포스코 사내하청업체 '포운'의 박옥경 노조위원장은 "원래 철탑 주변에는 경찰이 한 줄로만 둘러 있었는데, 31일은 인원이 더 많이 와서 2중, 3중으로 섰다. 우리 노조원들한테는 방패를 들고 와서 농성장 주변 가장자리로 밀어버렸다"고 설명했다.   
5월 31일 새벽 5시 40분경 경찰은 사다리차 2대를 동원해 진압 초읽기에 들어갔다. 사다리차에는 헬멧을 쓰고 곤봉을 든 경찰관 6명이 타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김준영 처장은 칼로 철탑 기둥을 서로 고정하고 있던 끈을 제거하고, 철탑 지붕 위로 올라갔다. 
이때부터 현재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경찰봉 진압이 시작된다. 5시 45분경 사다리차에 탄 경찰관들이 지붕 위에 있는 김준영 처장에게 접근했다. 김 처장은 다가오지 말라는 듯 쇠 파이프와 칼을 허공에 휘둘렀다. 경찰은 잠시 사다리차를 물렸고, 김 처장은 쇠 파이프와 칼을 내려놓았다.
5시 48분, 경찰은 지상에서 방패를 챙겨 다시 김준영 처장에게 다가갔다. 김 처장도 다시 쇠 파이프를 들었고, 사다리차 난간과 방패를 치며 저항했다. 5시 49분, 사다리차에 탄 경찰 6명 중 3명이 김 처장을 가격하기 시작했다. 곤봉 세례가 이어졌다. 약 40초 뒤 김 처장은 정신을 잃었고, 경찰에 체포돼 사다리차에 실려 내려왔다. 김 처장이 지상으로 내려온 시간은 5월 31일 새벽 5시 52분, 고공농성 시작 약 30시간 만이었다.  
5월 31일 새벽, 경찰이 고공농성 중인 금속노련 김준영 사무처장을 강제 진압하는 모습.
이에 대해 경찰은 "김준영 처장이 쇠 파이프와 칼로 위협했기 때문에 강제진압은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박옥경 포운 노조 위원장은 "칼은 김준영 처장이 낚시할 때 쓰는 수초 제거용 칼이다. 처음에는 철탑에 걸린 현수막을 뜯기 위해서 갖고 올라갔다. 그런데 (경찰이 진압하러) 올라오니까 자위권 발동 차원에서 올라오지 말라고 칼을 휘두른 거다. 자기도 그게 위험하니 다시 바닥에 내려놨다"고 말했다. 
진압 당시 8.5m철탑 위에서 김준영 처장이 휘두른 칼과 쇠파이프가 경찰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었는지, 아니면 경찰에게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의 신호였는지는 해석이 엇갈린다. 분명한 것은, 고공 진압과정에서도 경찰은 자체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사전 설득 없었다... 김준영에게 말 한 번 걸지 않은 '대화 경찰'

경찰 물리력 행사 기준 규칙에 따르면, 위해 감소 노력 우선의 원칙에 따라 경찰관은 대상자에 대한 직접적인 물리력 사용 이전 언어적 통제(설득·위로·대화 등)를 사용하여 현장 상황을 종료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언어적 통제를 사용한 경우 대상자가 경찰관의 경고·설득에 따를 충분한 시간을 부여해야 한다. 진압에 앞서 흥분상태에 있는 농성 당사자를 설득해 안전하게 지상으로 내려오려는 노력이 선행됐어야 한다는 뜻이다. 
취재 결과, 경찰은 진압 전 김준영 처장에 대한 직접적인 사전 설득 작업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5월 30일부터 농성 현장에는 '대화 경찰관'이 여럿 있었다. 대화 경찰관은 집회·시위 현장에서 집회 주최 측과 소통하며 갈등과 물리적 충돌을 최소화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대화 경찰은 김준영 처장에게 말 한 번 걸지 않았다. "김준영 처장이 높이 있었고, 전화번호를 몰라 말을 못 걸었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광양경찰서 정보과 소속 경찰관은 "그분(김준영 처장)과는 직접 접촉은 못 했다. 고공에 있었고, 연락처도 몰랐다. 노조에서 번호를 안 알려 줬다"고 말했다.
대화 경찰은 농성장에 있었던 박옥경 포운 노조 위원장에게만 한차례 얘기를 꺼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전남경찰청은 "광양경찰서 정보관이 박옥경 위원장에게 "(김준영 처장이) 빨리 내려오도록 조치하라"고 하자 박 위원장이 "'고공농성은 한국노총 차원에서 한 거라 내게는 권한이 없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대화 경찰이 고공농성의 평화적 종료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민관기 전국경찰직장협의회 위원장(현직 경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게 집회를 관리하는 것이 저는 경찰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강경 대응을 하다 보면 서로 감정선을 건드릴 수밖에 없고, 또 공권력이 너무 노사관계에서 초반전에 진입하면 반발도 생기거든요. 그러다 보면 노동자 측이나 우리 경찰 측에서 부상자가 발생할 거 아닙니까. 이렇게 빨리 30시간 만에 공권력이 투입돼서 강제 해산을 시켰어야 되는지는 미지수로 남는 것 같습니다. 대화 경찰관 제도가 잘 운영돼서 노동자에게 좀 내려올 수 있는 여지라든가,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고 철수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는지 부분은 한번 확인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좀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민관기 / 경감 (전국 경찰직장협의회 위원장)
뉴스타파는 전남경찰청에 김준영 사무처장에 대한 사전 설득 작업이 충분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전남경찰청은 "진압 전 여러번 경고 방송을 했고, 사다리차를 타고 간 형사들도 육성으로 '여기서 이러면 위험하니 내려가자'고 4~5회 정도 말했다"며 "충분히 설득했다. 4차선 도로에 망루를 설치하는 건 이미 법치에 대한 부정이다. 위법 상태를 방치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규정 위반'해 머리 타격... 곤봉 부러질 정도로 때려

문제는 또 있다. 경찰 물리력 행사 기준 규칙에 따르면, 경찰관은 체포 대상자의 저항 수준이 가장 높을 때에도 경찰봉으로 가급적 머리 부분은 때리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진압 당시 영상을 보면, 경찰은 김준영 처장의 머리를 계속 내리쳤다. 또 김 처장이 주저앉아 더는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등 저항하지 않는데도 김 처장을 10회 정도 더 가격했다. 
그렇다면 경찰이 김준영 처장 진압에 사용한 경찰봉은 어느 정도의 위해성을 가진 장비일까. 그동안 경찰은 진압 때 사용한 곤봉이 '플라스틱 소재 경찰봉'이라고 설명해 왔다. 뉴스타파는 경찰봉을 직접 확인해 봤다. 진압 과정에서 부러진 경찰봉 조각을 현장에 있던 노조원이 수거한 것이었다.
박옥경 '포운' 노조 위원장은 "이 경찰봉으로 철제 의자를 때렸는데 철제 의자가 부러지더라고요. 아무리 때려도 경찰봉은 안 부러져요. 이게 부러질 정도로 사람을 때렸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주장했다. 실제로 경찰봉으로 내리친 철제 의자에는 휘어진 자국이 선명했다. 이 경찰봉에 수차례 머리를 맞은 김준영 처장은 진압 과정에서 정신을 잃었고, 머리와 무릎에 큰 부상을 입었다. 
이에 대해 경찰청 인권위원을 지낸 김원규 변호사는 "경찰이 필요 이상으로 과도한 물리력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비록 실정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제압하는 게 능사가 아니지 않습니까. 문제를 푸는 게 중요한 건데... 더군다나 국민의 생명·신체나 인권에 대해서는 필요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최소한으로만 제약하는 게 우리 헌법이 요구하는 바고 법치주의의 핵심 정신인데, (경찰이) 그걸 과연 지켰는지가 의문입니다. 그 진압 영상을 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과도한 물리력을 행사한 거 아닌가라는 의심이 강하게 듭니다. 또 김준영 사무처장이 제압이 됐는데 그 이후까지 계속 물리력을 가해서 신체에 손상을 끼칠 이유가 과연 있는 건지도 의문이고요.

김원규 / 변호사 (전 경찰청 인권위원)
5월 31일 금속노련 김준영 사무처장을 무력 진압하는 과정에서 부러진 경찰봉 조각. 
5월 31일 새벽 5시 52분경, 체포돼 지상으로 내려온 금속노련 김준영 사무처장의 모습. 

경찰, 구급차 있었는데 금속노련 사무처장 바로 치료 안 했다

강제진압 종료 후 경찰의 조치에서도 이해하기 힘든 점이 발견된다. 체포 당시 김준영 처장의 머리에서는 많은 피가 흘렀고, 의식도 없었다. 뉴스타파가 확보한 김준영 처장 상해진단서에 따르면, 오른쪽 무릎 안쪽 근육도 파열된 상태였고, 손목과 우측 어깨 관절에도 다발성 찰과상과 타박상이 있었다. 
경찰 물리력 행사 기준 규칙에는 "경찰관이 대상자에게 물리력을 사용한 경우에는 반드시 대상자의 부상 여부를 즉시 확인하고, 부상 발생 시에는 지체 없이 의료진 호출, 응급조치 실시, 병원 후송 등의 긴급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나온다. 
체포 당시 현장에는 구급차 2대가 대기 중이었다. 그런데 경찰은 김 처장을 바로 치료하지 않았고, 호송차에 태우고 자리를 떴다. 광양소방서 관계자는 "농성장하고 조금 멀리 떨어진 쪽에 대기했는데, 인파가 하도 많아서 상황을 잘 모르고 있었다. 우리는 경찰이 신고하거나 요청하지 않는 이상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찰이 향한 곳은 병원이 아닌 광양경찰서였다. 체포 직후 김준영 처장의 동선을 따라갔다는 박용락 금속노련 부위원장은 "내가 광양경찰서에 간 뒤 15분 뒤에 호송차가 왔다. 앰뷸런스는 도착해 있었고, 형사들이 김준영 처장을 앰뷸런스로 옮겼다. 얼굴을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왜 빨리 병원 안 가냐'고 수 없이 얘기했는데, (경찰이) 자기네들 지침에 따라서 한다고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확인 결과, 김준영 처장이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5월 31일 새벽 6시 42분이었다. 체포(새벽 5시 50분경) 약 1시간 뒤였다. 이 병원은 농성 현장에서 차로 20분도 걸리지 않는다.  
금속노련 김준영 사무처장이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체포 약 1시간 뒤인 오전 6시 42분이다. 

병원 조사도 가능한데... 경찰, 유치장에 김준영 구금 

5월 31일 새벽 6시 42분 병원에 갔던 김준영 처장은 당일 치료와 검사가 끝나자마자 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됐다. 조사가 급하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경찰 범죄수사규칙'에 따르면 경찰서 조사가 원칙이지만, 부득이한 사유가 있을 때는 경찰서장의 사전 승인을 받아 수사관서 이외의 장소에서도 조사를 할 수 있다. 병원 조사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김준영 처장은 변호사의 도움으로 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다. 5월 31일 유치장에 있던 김준영 사무처장을 직접 본 한국노총 중앙법률원의 문성덕 변호사는 "김 처장은 혼자서는 거동도 못 하고,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5월 31일) 오후 5시 반쯤이었을 거예요. 순천경찰서 유치장에서 김준영 사무처장을 뵈었는데, 오른쪽 다리로 땅을 못 딛는 상태였죠. 혼자서는 당연히 거동을 못 하시는 상태였고... 그날 저녁 6시 반부터 조사도 한다는 거였어요, 원래 경찰이. 영장 청구를 (체포 후) 48시간에 안에 해야 되니까요. 도저히 이거는 유치장에 있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경찰들한테 '이거 봐라, 지금 앉지도 못하는 사람이고.' 그때는 말씀도 하기 어려웠거든요. 그래서 순천병원에 입원하시게 됐어요. 입원한 게 그날 밤 11시가 넘어섭니다.

문성덕 / 변호사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이후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도 구속 장소를 병원이 아닌 경찰서 유치장으로 명시했다. 영장은 그대로 발부됐고, 김준영 처장은 입원 3일 만인 6월 2일 다시 철창 안에 구금됐다. 지난 6월 8일 김 처장을 면회했던 이효원 한국노총 금속노련 홍보차장은 "8일엔 이미 단식을 한 지 1주일이 넘어서 많이 야윈 상태였다. 지금 힘들어서 못 걷고 있고, 무릎이 파열된 거여서 지지대를 대고 있다. 치료는 이틀에 한 번 통원 치료를 하고 있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금속노련 김준영 사무처장에 대한 진압과 수사를 담당한 전남 광양경찰서의 모습.  
뉴스타파는 경찰에 연락해 이번 진압 과정이 적절했다고 보는지, 왜 부상을 입은 김준영 처장을 바로 치료하지 않았는지 등을 물었다.
전남경찰청은 "김준영 처장이 쇠 파이프를 놓치 않고 계속 휘저으며 저항했고, 완전 제압 후에는 더 이상 경찰봉을 사용하지 않았다"며 적절한 대응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전남경찰청은 "김준영 처장 호송시 노조원들이 호송 차량을 막으며 극렬히 제지해 일단 경찰서로 호송하며 119구급대를 불렀다. 체포 당일 김 처장이 아프다고 해 조사는 하지 않았고, 조사는 다음날 오후 병실에서 진행했다"고 말했다.

김준영 사무처장은 왜 7m 높이 철탑에 올랐나

그렇다면 김준영 사무처장은 왜 7m 높이 철탑에 올랐던 것일까. 이 배경에는 포스코 하청노동자들의 싸움이 있다. 
지난 2020년 포스코 하청업체인 '성암산업'이 폐업했다. 약 80개에 달하는 포스코 하청업체들은 그동안 폐업하고, 쪼개지고, 합병되길 반복했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하청노동자들도 일자리를 잃거나 경력이 인정되지 못 한 채 신규 입사하는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 노동자들이 흩어지며 노조가 깨지는 일도 있었다. 
성암산업도 비슷했다. 포스코는 폐업할 성암산업의 작업권을 쪼개 여러 업체에 나눠주겠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각기 다른 회사로 흩어지고, 성암산업 노조는 와해될 위기였다. 그동안 성암산업 노조가 만들어 왔던 단체협약이나 복지제도도 모두 물거품이 될 상황이었다고 한다. 
분사가 되면 또 단협(단체협약)이 사라지고, 단협에 대부분 임금성이나 복지가 들어 있기 때문에... 단협이 날아가면 (근로조건이) 저하되는 거예요. 그런 과정을 많이 봤어요. 그래서 우리 회사(성암산업)를 매각한다고 해서 저희들은 극구 반대했거든요. 뭘 반대했냐면 매각은 찬성하되 분사는 시키지 말아라.

박옥경 / 포스코 하청업체 '포운(구 성암산업)' 노조 위원장
포스코는 '분사는 막아달라'는 하청노동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2020년 초 국회 앞으로 가 무기한 농성을 시작했다. 
그리고 7월 중순, 당시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의 중재로 성암산업 노조와 포스코, 하청업체 등은 사회적 합의를 하면서 농성은 마무리됐다. 합의 핵심은 신생 하청업체인 '포운'이 성암산업 노조원들을 모두 고용승계하고, 근로조건을 기존대로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노조에 따르면, 하청업체는 사회적 합의 이후 태도를 바꿨다. 고용승계만 했을 뿐 근로조건을 유지한다는 합의 내용은 지키지 않았다. 현재 하청노동자들의 처우는 성암산업 때보다 오히려 악화됐다.
박옥경 포운 노조 위원장은 "아직 2018년도 임금을 받고 있다. 이제서야 그동안 못 받았던 임금 인상분을 요구하고 있다. 성암산업에서 있던 단체협약도 있는데, 포운 사측에서는 다 무시하고 사측 방침을 따르라고 한다"고 말했다.
또 박 위원장은 "연차 사용도 원래 단체협약에는 근로기준법을 준용한다고 돼 있었는데, 포운 사측은 7일 전에 보고 안 하면 연차도 못 가게 한다. 노조 사무실도 안 주고, 노조 운영에 필요한 집기 지원도 끊었다. 노조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포스코 광양 제철소 근처에 걸려 있는 현수막. 포스코 사내하청업체 '포운' 소속 노동자들이 포스코와 포운 측에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회사에 항의하며 여러 번 파업도 시도했지만, 회사와 원청인 포스코는 그때마다 대체인력 투입 등으로 파업을 무력화시켰다고 말했다. 현행법에선 노동자의 파업에 대해 사용자가 대체인력을 투입하는 것은 불법이다. 대체인력 투입은 사용자가 노조 파업을 무력화시키는 행위로 노동3권 중 하나인 단체행동권 침해에 해당한다. 
다만 하청업체 노조의 파업에 대해 원청이 다른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고 대체인력을 투입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심지어 매출 100%가 원청이 주는 일감에서만 나오는 사내하청업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행법상 원청은 하청업체 노동자의 사용자로 인정되지 않는다. 즉, 하청업체가 직접 대체인력을 투입하면 불법, 원청이 투입하면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그동안 포운 노조에서 파업을 하면 포스코는 다른 업체를 통해 그 공백을 메꾸는 일이 있었다. 이런 행위가 현행법을 위반한 게 아니기 때문에 고용노동부가 제재할 방법이 없었다"며 '노동자 입장에선 사각지대'라는 취지로 말했다.
이런 법의 헛점 탓에 그동안 포운 노조의 파업은 효력이 없었다. 오히려 노조를 향한 사측의 고소·고발이어졌다. 박옥경 포운 노조 위원장은 "(업무방해 등으로) 고소·고발하고 계속 압박을 했다. 어떨 때는 20장짜리 고발장이 들어온 거예요. 그걸 한국노총의 변호사가 보더니 '전형적인 노동조합 탄압하는 그 메뉴얼대로 진행된 것 같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무관심과 천막농성 '400일'... "고공농성은 최후의 수단이었다"

결국 포운 노조는 지난해 4월 26일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경사노위 합의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는 포스코 하청노동자 문제를 외부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1념 넘게 농성중인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곳은 없었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아무런 중재안이나 그런 것은 없었고, 간혹 우리한테 전화로 물어보고 그런 것만 있었죠. 사회적으로 시끄러울까 봐, 국회에서 부른다고 하면 저한테 면담을 하거나 어쨌든 면피용 그런 것만 있었죠. 제가 (포스코) 사내하청 투쟁을 지금 한 5년 동안 해봤는데요. 무관심의 극치입니다. 지역사회에서도 저희들을 외면하고 정치인도 외면하고 관에서도 외면하고 그런 상황이었어요.

박옥경 / 포스코 하청업체 '포운(구 성암산업)' 노조 위원장
천막 농성은 성과 없이 약 400일이 흘렀다. 하청노동자들은 상급단체인 한국노총 금속노련에 도움을 요청했다. 5월 20일 금속노련 김만재 위원장과 김준영 사무처장은 포운 노조를 돕기 위해 광양을 찾았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은 "이런 사태까지 오게 된 원인이 경영진 측에 있는데 (정부는) 무관용으로 일관하고, 무책임했다. 포운의 노동자들이 사측에 요구하는 교섭 내용이 다른 포스코 하청업체보다 더 많은 게 없다. 예를 들면, 다른 업체에서 자유롭게 사용하는 연차 사용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도 못 들어주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5월 29일 밤 11시경, 김준영 사무처장이 철탑에 올랐다. "하청노동자들의 상황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최후의 수단으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는 게 주변의 이야기다.
(김준영 사무처장은) 사내 하청노동자들이 단체행동권을 보호받지 못하면 앞으로 제3·4의 포운과 같은 일은 계속 일어나겠구나. 사측은 계속 '그래 파업해? 우리 대체인력 투입해서 조업에 지장 없어. 사장은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식이고... 결국은 노동3권을 보장 못 하는 사내하청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 이렇게 판단하고 망루 위로 올라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박옥경 / 포스코 하청업체 '포운(구 성암산업)' 노조 위원장
금속노련 김준영 사무처장은 포스코 하청노동자들의 천막 농성이 400일 가까이 이어진 뒤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하지만 김준영 사무처장은 철탑에 오른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고공농성은 30시간 만에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끝이 났다. 전 경찰청 인권위원을 지낸 김원규 변호사는 이번 진압에 대해 "정치권력이 무능하다는 걸 스스로 입증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김준영 사무처장의 고공농성이 있기 전 그동안 정부와 정치권은 무엇을 했는지 봐야 한다. 집회·시위는 뭔가 항의할 게 있으니까 열리는 것이다. 그 문제가 정치적으로 풀릴 수 있으면 집회·시위가 열리지 않는다. 열린다고 해도 과격해질 이유가 없다. 집회·시위가 격화되는 이유는 정치 영역에서 항의의 원인이 된 문제를 해결 못 해서고, 경찰과 집회 시위자들의 대립도 격화되는 거다. 결국 이건 정치의 실패이고, 정치권력의 무능을 자인하는 것이다.

김원규 변호사 (전 경찰청 인권위원)

경찰 특진자 중 33%가 '노조 수사'... "강제진압, 정말 시민 위한 일이었나"

취임 이후 윤석열 정부는 노조에 대한 엄정 대응을 주문해 왔다. 윤희근 경찰청장도 대대적인 노조 수사와 강경한 집회·시위 관리를 지시했다. 노조 수사와 집회·시위 관리 우수 경찰관에게는 특별승진도 내걸었다. 금속노련 김만재 위원장과 김준영 사무처장을 향한 경찰의 대처도 윤석열 대통령과 경찰청장이 '노조 강경 대응 기조'를 밝힌 이후 벌어졌다. 경찰이 정부의 입맛에 맞춰 '과잉 진압'을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올해는 노조 관련 업무로 특진한 경찰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더불어민주당 김교흥 의원실을 통해 받은 경찰 특진자 자료(올해 1월부터 6월 2일까지)에 따르면, 전체 특진자 130명 중 건설노조 수사와 건설현장 상황관리로 공을 인정받아 특진한 경찰관은 모두 43명(33.1%)이었다. 특진 사유별로 분류하면 1위에 해당했다. 다음으로는 전세사기 단속·수사 경찰관이 15명(11.5%), 마약 단속·수사가 12명(9.2%)이었다. 특별승진자 자료를 본 한 현직 경찰관은 "노동단체에 대한 현 정부의 시각을 볼 수 있는 현상이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해 경찰 특진자 자료에 따르면, 전체 특진자 130명 중 43명(33.1%)은 노조 수사 및 관련 업무를 한 경찰관이었다. 금속노련 김준영 사무처장에 대한 강제진압도 이러한 정부 기조와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이 나온다. 
민관기 전국경찰직장협의회 위원장은 "대통령실이라든가 경찰청장님의 지시 사항이 내려오고 난 이후에 바로 한 2, 3일 있다가 (진압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정말 시민을 위한 집회·시위 관리를 한 건지 아니면 정권의 뜻에 따라 현장에서 집회·시위를 관리한 건지 한 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경찰청에 연락해 이번 고공농성 강제진압이 대통령실·경찰청의 노조 강경 대응 기조와 유관하다는 비판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경찰청은 답변을 거부했다. 
제작진
취재박상희 신동윤 홍여진 홍주환
촬영오준식 정형민 이상찬
편집박서영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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