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배달사고' 고 김은범 군 유족, 업주 상대 민사소송 '승소'

2021년 03월 03일 11시 30분

식당 업주의 지시로 무면허인 상태에서 오토바이 배달을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숨진 고 김은범 군(당시 18세)의 유족이 업주와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 
제주지방법원(이하 제주지법)은 지난달 8일 은범 군의 부모에게 업주 윤 모 씨 부부가 각각 1억 2천만 원씩 모두 2억 4천만 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은범 군의 어머니 장 씨는 은범 군이 배달 사고로 목숨을 잃고 난 뒤 업주 부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제주지법은 "2018년 4월 9일(은범 군 사망 사고 익일)부터 1심 판결 선고일까지는 연 5%, 그 이후로는 연 12%의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이는 은범 군 유족이 업주 부부에게 각각 손해배상액으로 청구했던 약 1억 4천만 원 중 대부분이 인정된 금액이다. 이에 앞서 은범 군에게 무면허 배달을 시킨 업주들은 각 30만 원의 형사 사건 벌금을 받은 바 있다. 
뉴스타파는 지난 2019년 <프레시안>과의 공동기획 '배달 죽음' 연속보도에서 고 은범 군의 사례를 보도한 바 있다. 은범 군은 제주도의 한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오토바이 운전 면허가 없었지만 업주의 지시와 묵인 하에 음식 배달을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숨졌다. (기사링크 : [배달 죽음] 1-① 무면허 배달 내몰렸다 사망...18살 은범 군 이야기)
그러나 당시 수사 기관과 법원이 은범 군 죽음과 관련해 업주들에게 물었던 책임은 고작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의 벌금 30만 원이 전부였다. 사건을 처음 수사했던 경찰은 업주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와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그러나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업주 부부가 은범 군의 무면허 배달을 사전에 알고 있었고, 그 상태에서 배달을 시킨 것까지는 인정된다"면서도 "그 같은 사실이 교통사고로 인한 은범이의 사망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성립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에 대해서는 혐의없음(증거불충분) 처분했다.  
당시 뉴스타파와 인터뷰에서 은범 군의 어머니 장 씨는 '벌금 30만 원'이라는 결과를 두고 "어디 가서 땡빚이라도 내서 로펌 변호사를 사면 어떻게 될 수도(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는 말도 있더라"라며 "이렇게 될 줄 알았겠냐. 당연히 업주들이 마땅한 처벌을 받게 될 줄 알았다"며 눈물을 흘렸다. 
뉴스타파는 장 씨의 인터뷰와 은범 군과 함께 해당 음식점에서 일했던 진우(가명) 군 인터뷰, 경찰의 사건 수사 기록, 제주노동청 취재 등을 통해 당시 형법과 노동법상 이런 상황에서 업주에게 적용할 수 있는 혐의가 도로교통법 위반 밖에 없다는 점, 은범 군 같은 사례가 노동법적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번 판결에서 제주지법은 은범 군 사망에 대한 업주의 책임을 인정했다. 제주지법은 "사용자는 노동자가 노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생명, 신체,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야 할 보호 의무를 부담하고, 이러한 보호 의무를 위반함으로써 노동자가 손해를 입은 경우 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적시했다.
그러면서 "업주들이 이미 은범 군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날부터 운전면허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배달을 위해 오토바이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적극적 조치를 취한 바가 없고, 은범 군에게 배달을 지시했거나 적어도 은범 군의 배달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 걸로 보이는 점, 수사 당시 CCTV 등으로 보아 업주들이 은범 군의 배달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던 점 등으로 볼 때 업주들이 은범 군과 유족에게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 은범 군이 어린 나이에 사망에 이르게 된 점, 은범 군이 당한 사고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사고였던 점 등이 고려됐다. 
이 판결에 대해 노동건강연대 안현경 노무사는 뉴스타파와 통화에서 "(은범 군이) 앞으로 살 날이 많은 학생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는 손해배상 금액이 크다고 볼 순 없지만, 업주가 노동자의 안전에 대해 적극적 조치를 하지 않고 묵인한 부분에 대해서까지 재판부가 책임을 인정한 부분에 의미가 있다"고 언급했다. 
한편 업주 측은 이 같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은범 군의 어머니 장 씨는 뉴스타파와 통화에서 "아직 업주들이 한 번도 미안하다는 사과를 한 적이 없다. (피해 배상) 금액이 문제가 아니라 업주들이 잘못을 인정했으면 좋겠다"며 1심 소송 결과에 대한 심경을 밝혔다. 
제작진
취재강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