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동색'...권력이 권력을 수사하는 법

2022년 01월 28일 16시 25분

국회의원들이 입법과 정책 개발 명목으로 허위 연구보고서와 표절 정책자료집을 발간해 국회 예산을 타낸 이른바 ‘세금도둑’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가 나왔다. 고발장을 접수한 지 3년 2개월 만이다.
지난달 29일 서울남부지검이 시민단체에 발송한 고발사건 결과통지서
지난해 12월 29일, 서울남부지검은 사기와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10명의 20대 국회의원 중 이은재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을 약식기소했다. 또 백재현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곽대훈 전 미래통합당 의원에 대해선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며 사건을 경찰로 이송했다. 안상수 전 의원 등 나머지 7명의 의원에 대해선 증거 불충분과 형사소송법상 해석을 이유로 혐의없음 및 공소권없음 처분을 내렸다. 고발인 측은 수사 결과는 물론 수사 과정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며 “봐주기 수사”라는 입장을 밝혔다. 

‘세금도둑’ 의원 10명 중 1명 약식기소…2명은 경찰로 사건 이송

앞서 세금도둑잡아라, 함께하는시민행동, 정보공개센터 등 시민단체 3곳은 허위 연구용역 자료를 만들어 국회 예산을 빼돌리거나 국책 연구기관의 연구보고서를 베껴 정책자료집을 발간하는 등의 수법으로 세금을 타낸 비리 의원들을 수사해달라며 서울남부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시민단체의 고발은 20대 국회 임기 중인 2018년 10월과 11월 모두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이들이 고발한 비리 의원은 총 10명이다. 이중, 이은재 전 의원, 백재현 전 의원 등 6명은 사기 혐의로 고발됐다. 의정활동을 한다며 국민을 속이고 허위 서류를 제출해 세금을 빼돌렸다는 이유다. 남은 4명은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고발됐다. 이들은 타인의 연구보고서나 공공저작물을 출처나 인용표기 없이 통째로 베껴 표절 정책자료집을 발간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기 혐의로 고발된 6명의 의원, 왼쪽 상단부터 오른쪽으로 이은재, 백재현, 곽대훈, 강석진, 황주홍 전 의원, 오른쪽 하단은 유동수 의원
이 사건은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현 공공수사·반부패·마약범죄전담부)에 배당됐다. 검찰은 고발 당사자인 하승수 변호사(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를 불러 두 차례 조사를 진행했다. 형사6부는 남부지검에서 권력형 비리 등 특수 수사를 맡아온 부서다. 수사 초반 시민단체 3곳이 검찰의 ‘성역 없는 수사’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이유다.
 “(검찰) 수사관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고, 담당 검사하고 충분히 얘기도 나눴고, 조서를 작성할 때 (형사6부) 부장검사까지 신중하게 검토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승수 변호사 /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그러나 검찰은 고발인 조사 이후 어떤 이유인지 강제수사에 착수하지 않았다. 심지어 20대 국회 임기가 끝날 때까지 아무런 처분을 내리지 않았다. 그 결과, 비리 의원 중 절반이 넘는 7명이 임기 만료 등의 이유로 국회를 떠났다. ‘전·현직 국회의원을 의식한 늑장 수사가 아니었느냐’는 질의에 남부지검 측은 “사건 처리 지연에 대한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검찰 수사의 문제점은 늑장 수사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남부지검이 작성한 ‘고발사건 결과통지서’와 ‘불기소 결정서’에 따르면, 검찰은 사기 혐의로 고발된 6명의 의원 중 1명만 약식 기소하고, 다른 2명은 경찰로 사건을 이관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남은 3명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이들 중 유일한 현역 신분인 더불어민주당 유동수 의원의 경우, 유 의원이 아닌 전직 보좌관 서 모 씨가 불구속기소 됐다. 정책자료집 발간 명목으로 허위 영수증을 제출하고 국회 예산을 빼돌린 혐의다. 국회 예산 사용 권한이 최종적으로 의원에게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석연찮은 결과다. 앞서 비리 의원들을 고발한 정진임 정보공개센터 소장은 “가장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은 의원인데 핵심 책임자는 빠지고 주변의 이해관계자로만 꼬리를 자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늑장·부실 수사’ 비판 속 국회 예산 집행 투명성 높이는 계기

검찰이 유일하게 혐의를 인정한 이은재 전 의원은 벌금 500만 원에 약식 기소됐다. 이 전 의원은 허위 연구자를 내세워 국회 예산 1,200여만 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는다. 국회의원이 뇌물 수수나 정치자금법 위반이 아닌 국회 예산 비리 사건에 연루돼 사기 혐의로 기소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검찰의 늑장・봐주기 수사에도 불구하고 입법 권력에 대한 감시 측면에서 예산 사용의 투명성을 높이는 전기가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잘못 쓰인 돈에 대해서는 그리고 잘못 쓰였다고 하는 내용이 명확하게 증거가 있다면 수사 대상이고 판결을 받을 수 있다라고 하는 판례가 쌓이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채연하 좋은예산센터 예산감시 국장
검찰은 사기 혐의로 이은재 전 의원을 벌금 500만 원에 약식기소했다.
하지만 이 전 의원을 제외하고, 현재까지 검찰이 혐의를 인정한 의원은 단 1명도 없다. 유령 연구 단체를 만들어 9000만 원이 넘는 예산을 자신의 선거운동원 등에게 몰아준 백재현 전 의원, 자신의 보좌관 지인에게 정책연구를 맡기고, 표절 연구보고서를 만든 곽대훈 전 의원 모두 서울 영등포경찰서로 사건이 이송됐다. 최초 고발로부터 3년이나 지난 시점에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며 또다시 사건을 경찰로 내려보낸 것이다. 
허위 서류를 제출하고 1000여만 원의 용역비를 의원실 직원 등에게 편법지급한 강석진 전 의원은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 허위 연구자를 내세워 세금을 타낸 사실은 인정되지만 “용역비를 편취하였다고 보긴 어렵다”는 이유다.
또 연구 수행자의 신분을 속이고 정책연구를 진행해 표절 정책자료집을 발간한 황주홍 전 의원도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 모든 혐의를 사망한 그의 전직 보좌관에게 떠넘겼기 때문이다. 검찰은 “당시 황주홍 의원실 보좌관이 지인 명의를 빌려 용역비를 지급받은 것은 의심스럽지만 피의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불기소 사유를 밝혔다. 
마찬가지로 유동수 의원 역시 보좌관이 모든 법적 책임을 떠안고 불구속기소 됐다. 특히 유 의원은 지난 2018년 뉴스타파 보도로 비리 혐의가 드러나자, 의원실 통장을 관리하던 인턴 A 씨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횡령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기까지 했다. A씨는 경찰 수사 결과, 혐의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 기사: http://www.newstapa.org/article/3A5cw)
검찰은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4명의 전현직 의원에 대해 공소권없음 처분을 내렸다.
이렇게 비리 혐의를 받는 의원들에 대해 잇따라 혐의없음 처분을 내린 검찰은 저작권법 위반 혐의가 제기된 의원들에 대해서도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 정부 보도자료와 공공저작물, 기존 연구보고서 등을 베껴 정책자료집을 만들고 국회 예산을 지급한 국민의힘 박덕흠·조경태 의원, 안상수·경대수 전 의원 등 4명은 전원이 ‘공소권없음’ 처분을 받았다. 저작권법 위반의 경우, 저작권을 가진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라는 점을 적용한 것이다. 
하지만 공공저작물을 만든 공무원, 피감기관에 속하는 국책 연구기관의 연구원이 국회의원을 상대로 ‘저작권을 침해당했다’고 고소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시민단체 3곳이 이 사건을 고발한 취지를 살펴봤을 때 검찰의 ‘공소권없음’ 처분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시민단체의 설명이다. 
자기가 한 연구용역이 아닌데 이렇게 표지만 바꿔서 다른 기관이나 다른 사람 것을 국회의원실 표지만 붙여서 보고서를 낼 이유도 없고, 자료집을 낼 이유도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이것도 허위 용역이거나 허위 자료집일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이거는 당신들(검찰)이 수사해서 사기죄인 걸 밝혀 달라고 했고, 그랬다면 사실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그냥 저작권법 위반이 공소권 없다라고 할 게 아니라 사실 사기죄로 수사를 했어야 하는 거죠.

하승수 변호사 /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역시나 너희는 다 똑같은 권력 기관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게 하는 그런 소송 결과였던 것 같습니다.

채연하 좋은예산센터 예산감시 국장

처벌받지 않는 국회 권력과 처벌하지 않는 검찰 권력, 개혁 필요성 제기

뉴스타파와 시민단체 3곳은 지난 2017년 1월부터 5년간 국회 세금도둑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적잖은 성과를 남겼다. 2억 원이 넘는 예산을 국고로 환수시켰고, 국회 정책연구 관련 표절 지침이 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심각한 예산 비리가 드러난 일부 의원의 경우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고, 비록 1명뿐이지만 실제 기소가 이뤄지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처벌받지 않은 국회 권력은 존재하고, 검찰은 지난 3년간 늑장·부실·봐주기 수사로 일관했다. 국회와 검찰 등 권력기관 개혁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하 변호사는 “확실하게 수사해서 처벌을 안 했기 때문에 이런 행위들이 지금도 벌어지지 않고 있다고 장담할 수가 없다”고 했다. 
제작진
영상취재오준식, 이상찬, 정형민
CG정동우
그래픽이도현
편집정지성
공동기획세금도둑잡아라, 좋은예산센터, 정보공개센터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