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사냥법] ③ 서울남부지검이 덮은 두번째 '원유철 뇌물' 자백

2021년 09월 28일 09시 50분

횡령 혐의 등으로 4년간 옥살이를 했던 한 중견기업 대표가 감옥에서 쓴 비망록 13권을 들고 뉴스타파를 찾아왔다. 검찰의 회유와 협박, 선택적 수사를 고발하기 위해서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134번 검찰에 불려갔던 그는 검찰에서 대체 무엇을 보고 겪었던 것일까. 뉴스타파는 4회에 걸쳐, 없는 사건을 만들고 있는 사건은 덮었으며,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했던 '대한민국 검찰'을 고발한다. <편집자 주>
2014년, 죄수 박진우(가명)는 '국회의원 원유철에게 뇌물을 줬다'고 검찰에 자백했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에 나서지 않았다. 원유철은 승승장구했고, 이듬해 7월 여당인 새누리당의 원내대표 자리까지 꿰찼다. 
검찰은 박진우에게 공무원 뇌물 진술을 강요하면서 "수사에 협조하면 횡령 혐의 금액을 50억 원 이하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검찰은 회삿돈 138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박진우를 재판에 넘겼고, 박진우는 실형을 선고받았다. 박진우의 눈에 비친 검찰은 한마디로 '강자는 봐주고, 약자는 죽이는' 곳이었다. 2015년 10월 박진우가 쓴 비망록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다. 
- 개도 이런 짓은 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천벌이 내리지 않으면 이는 하늘이 잘못된 것이다.
(비망록 / 2015.10.5)

"검찰은 사냥감을 쫓는 개" (전 우양HC 임원) 

2016년 금융당국이 박진우를 검찰에 고발했다. 박진우가 대표인 우양HC에서 분식회계가 벌어졌다는 이유였다. 수사는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이하 남부지검)이 맡았다. 2016년 2월 12일, 박진우는 남부지검 금융조사2부 기노성 검사실로 불려갔다.  
- 오후에 출정을 간다고 1급 옷을 점심 먹고 받아와 입었다. 곧바로 검찰에 갔다. 706호.
(비망록 / 2016.2.12)
2016년 사업가 박진우(가명)를 수사한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전경.
당시 기결수였던 박진우는 분식회계 혐의로 추가 기소될까 두려웠다고 한다. 추가 기소가 되면 형기가 늘어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검사는 이런 박진우의 두려움을 이용해 압박을 시작했다. 박진우는 비망록에 이렇게 적었다.  
- 담당 검사가 바로 부른다. 요지는 협조하지 않으면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고 한다. 평택에 처음 잡혀갔을 때보다 분위기가 더 안 좋다. 5년 구형을 할 것이라고 한다. 면회 금지, 서신 금지도 한다고 한다. 구형 1~2년으로 해주겠다고 한다. 평택지청에서 있었던 일은 자신들은 모른단다.
(비망록 / 2016.2.12)
검사는 박진우에게 '뇌물을 준 사람들이 더 있는지'를 물었다고 한다. 분식회계 혐의와 상관없는 별건 수사였다. 박진우와 함께 분식회계 혐의 조사를 받았던 우양HC 전 임원인 B 씨는 최근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썼던 장부가 있다. 이미 2014년 평택지청에서 조사한 장부다. 그런데 2016년 남부지검에서 그걸 다시 들춰냈다. '누구 한 명 잡아들이려고, 엮으려고 그런 거다'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진우의 증언도 비슷했다. 
'빨리 분식회계 혐의 인정하면 최대한 잘 봐줄테니까'라면서 협조하라고 하고. 분식회계에 대한 조사보다는 '어디 은행 누구한테 뇌물 줬지? 그거 빨리 얘기해라. 협조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게 도와주겠다'라는 조사가 더 많았습니다. 계속 그런 식으로 수사가 진행됐습니다. 

박진우(가명) / 전 우양HC 대표
우양HC 전 임원인 B 씨는 당시 검찰의 수사 행태를 '사냥감을 물고 늘어지는 개'에 비유했다. 
개예요, 개. 저는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자기가 생각한 것 뭔가 하나를 갖고 계속해서 물고 늘어지는 거예요, 계속해서. 수사관들도 마찬가지고요.

B 씨 / 전 우양HC 임원

"검찰 협박에 결국 허위진술했다"

검찰이 원한 사냥감은 명확했다. 박진우의 비망록에는 검찰이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 직원들에게 뇌물을 준 사실을 인정하라'고 압박했다는 내용이 수차례 등장한다. 아래는 박진우가 쓴 비망록 내용 중 일부. 
- 두 수사계장이 영상 녹화실로 부르더니, 산업은행은 줬을 것 같은데 왜 안 줬냐고 하냐고 다그친다. 자신들을 믿으란다. 양아치 짓은 하지 않겠다고 한다. (비망록 / 2016.2.12)
- 산업은행을 콕 찍어 얘기한다. (비망록 / 2016.2.18)
박진우는 뇌물을 준 적이 없다고 맞섰다. 그러자 검사가 "수사에 불이익을 주겠다"며 협박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박진우는 검사가 "접견과 편지도 금지했다"고 비망록에 기록했다.   
- 2시간 대기. 하루 종일 시달린다. (코스닥 상장사) 신텍이 분식회계로 3년 살았다고 판결문 읽어준다. 어쩌면 검찰은 그렇게 하나 같은지 모르겠다. (비망록 / 2016.2.18)
면회, 서신 금지란다. 아내 만이라도 풀어달라고 했지만 어림없다.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비망록 / 2016.2.18)
- 접견 금지 해제 (비망록 / 2016.2.22)
면회 기록에 따르면, 박진우는 거의 매일 가족·지인들과 면회를 했다. 하지만 2016년 2월 16일부터 2월 22일까지 면회가 전혀 없었다. 면회가 다시 시작된 건 2월 23일이었다. 검찰 수사에 협조하지 않은 데 대한 일종의 '불이익'이었고, 죄수 박진우에 대한 압박이었다. 
검찰에 마음을 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산업은행에서 대출 받으려면 반드시 돈을 주어야 한다고, 또 브로커가 반드시 끼어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미치겠다. (비망록 / 2016.3.7)
기노성 검사가 영상녹화실로 부른다. 미치겠다. 내가 뭘 했다고. 없는데 무슨 사람을 대라는 건지.
(비망록 / 2016.4.15)
고함에 조소에. 공소장 한 번 봐라. 깜짝 놀랄 거다. 이게 다 무슨 말인가? 그들은 사람 잡아 넣는 것을 재미로 하는 것 같다. (비망록 / 2016.5.6)
결국 검찰의 압박에 지친 박진우는 "산업은행 직원들에게 금품을 줬다"고 허위진술을 했다. 
협조하란다. 바로 하겠다고 했다. 산업은행 최, 김 두 지점장이다. (비망록 / 2016.5.12)
박진우는 뉴스타파와 인터뷰에서 "허위진술을 할 당시 죄책감이 엄청났다"고 토로했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나 때문에 누군가 고초를 받을 생각을 하면 더 고통스러웠다"는 것이다. 이런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박진우의 비망록에는 진술 번복을 고민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 산업은행 두 지점장은 어떻게 하나? 분위기 봐서 산업은행은 바른대로 말해야겠다. 미칠 것 같다.
(비망록 / 2016.5.18)
-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건 어떻게든 바로잡아야 할 것 같다. (비망록 / 2016.6.24)
하지만 진술은 번복되지 않았다. 검찰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박진우는 "진술을 번복하면 일단 목소리부터 높아진다. '네가 검찰을 어떻게 생각하고 이러느냐', '우리를 우습게 안다'는 식이다. 평택지청에서 한 번 진술을 번복했다가 많이 힘들었기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진우의 허위진술로 시작된 수사는 결국 흐지부지됐다. 박진우는 "정식 조서를 한 번도 안 꾸민 걸로 기억한다. 검찰에서도 '이 건은 확신을 가질 수 없겠다'고 생각했을 거다.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망록에도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 두 지점장(산업은행 최, 김)은 수사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다행이다. (비망록 / 2016.9.21)

원유철 뇌물 비리 '두 번째 자백'

검찰이 박진우를 상대로 "국책은행 직원에게 뇌물을 준 사실을 실토하라"고 압박하는 사이, 박진우는 또 다른 자백도 했다. 2014년 평택지청에 제보했다 묻힌 '원유철 뇌물 비리 의혹'이었다. 박진우는 "변호사들이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검찰에 진술했다. '2014년 평택지청에서 한 번 조사받았는데, 별다른 게 없었다'는 얘기도 검사에게 했다"고 말했다.
협조하란다. 바로 하겠다고 했다. 원 의원과 산업은행 최, 김 두 지점장이다. (비망록 / 2016.5.12)
박진우(가명)의 비망록 중 2016년 5월 12일자 내용. 검찰에 '원유철 뇌물'을 진술했다고 나온다. 
박진우의 자백을 들은 기노성 검사는 처음엔 수사에 의욕을 보였다고 한다. 실제로 비망록에도 검찰이  박진우에게 자백을 입증할 자료를 요구했다고 적혀 있다. 자백 다음 날인 2016년 5월 13일, 박진우는 원유철의 보좌관 권 모 씨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내역을 검찰에 제출했다. 
- 아침부터 검찰이다. 전화기를 가져오란다. 이OO(전 우양HC 직원)이 권 보좌관 핸드폰 내용을 보내왔다. 자료에 검찰은 고무되는 것 같다. (비망록 / 2016.5.13) 
문자 내역에는 박진우가 권 씨와 2012년 10월과 2013년 9월에 약속을 잡는 내용이 있었다. 문자메시지를 본 박진우는 기억을 떠올려 구체적으로 진술을 해나갔다. 
박진우의 진술에 따르면, 2012년 10월 박진우는 서울 여의도 중식당에서 원유철과 원 의원 보좌관 권모 씨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박진우는 원유철에게 우양HC에 대한 산업은행 대출이 잘 되게 해달라고 청탁했다. 식사가 끝나자 원유철은 먼저 자리를 떴고, 박진우는 권 보좌관에게 현금 3천만 원을 건넸다. 한 달 뒤인 2012년 11월, 산업은행은 우양HC에 대한 490억 원 대출을 승인했다. 
그리고 2013년 9월, 박진우는 서울 여의도의 한 커피숍에서 권 보좌관을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현금 2천5백만 원을 전달했다. 2천만 원은 원유철에게, 5백만 원은 권 씨에게 준 것이었다고 한다. 박진우는 이렇게 말했다. 
아예 돈 봉투를 나눠 가지고 갔어요. 그리고 ‘500만 원은 보좌관님 따로 쓰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알아서 (나머지 돈은 원유철한테) 줄 거 아닙니까?

박진우(가명) / 전 우양HC 대표
박진우는 권 모 보좌관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내역과 함께, 자신이 직접 권 씨에게 보낸 이메일도 검찰에 제출했다. 이메일에는 우양HC가 대출받아야 하는 돈이 얼마인지가 상세히 적혀 있었다. 박진우가 산업은행 대출을 원유철 측에 청탁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박진우(가명)가 원유철의 보좌관 권 모 씨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 우양HC가 대출을 받아야 하는 금액이 얼마인지가 상세히 적혀 있다.
박진우의 자백과 증거 제출 이후, 검찰은 우양HC에 대한 산업은행 대출이 승인되기 직전인 2012년 11월 초 원유철과 강만수 당시 산업은행장이 독대했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뇌물공여자의 자백과 진술, 이를 뒷받침할 증거 등 원유철의 뇌물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인 정황과 증거가 모두 검찰 손에 들어간 것이다. 박진우는 "상당히 고무된 검찰이 나에게 수사 편의를 약속했다"고 비망록에 기록했다. 
- 검사가 (구형량을) 2년 밑으로 줄이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왜 말을 안 믿고 이렇게 어렵게 했느냐고 한다. 수사계장도 똑같은 소리다. 변호사에게 돈 주지 말고 검사님 붙들고 늘어지란다. (비망록 / 2016.5.13)
- 권 보좌관에게 이메일로 소요자금 내역을 보낸 것이 나왔다. 될 것 같다고 흥분한다. 검사가 어깨를 몇 번 주물러 준다. (비망록 / 2016.5.27)
이렇게 원유철에 대한 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원유철은 하지 말라고 한단다"

하지만 검찰은 곧바로 강제수사에 나서지 않았다. 무슨 이유였을까. 원유철 뇌물 사건을 자백할 당시인 2016년 5월, 박진우는 비망록에 이렇게 적었다.  
- 원은(원유철 뇌물 건) 부장검사에게 얘기했다고. 그런데 반응이 좋지 않다고 한다고 두 변호사가 얼마나 얘기했던가? (비망록 / 2016.5.12)
- 오후에 검찰 갔다. 황 변호사 만났다. 엄청 당황한 기색이다. 검사가 ‘부장님이 기소 내용을 줄여주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원유철은 하지 말라고 한단다. (비망록 / 2016.5.18)
수사 책임자인 부장검사가 원유철 뇌물 수사를 방해했다는 의미로 읽히는 내용이다.
취재진은 박진우에게 비망록 내용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었다. 박진우는 "당시 담당 검사가 '위에서는 하지 말라고 그러는데, 당신이 협조 잘 해주면 그래도 수사는 가능할 거다'라는 취지로 말한 걸로 기억한다"고 증언했다. 담당 검사였던 기노성 검사는 원유철 수사에 의욕적이었지만, 부장검사를 포함한 윗선에서 수사를 막으려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검찰의 행태는 이상했다. 검찰은 2016년 5월 이미 박진우의 자백과 진술을 확보하고 이를 뒷받침해 줄 여러 증거도 손에 넣은 상태였지만, 약 3개월의 시간을 그냥 흘려보냈다. 원유철과 권 보좌관을 소환하지 않았고, 박진우도 부르지 않았다. 박진우의 출정 기록을 보면, 6월 24일부터 9월 13일 사이가 텅 비어 있다. 
박진우(가명)의 출정 기록. 2016년 6월 24일부터 9월 13일 사이 출정을 간 내역이 없다. 
비망록에서도 원유철에 대한 내용은 일순간 사라졌다. 2016년 5월 27일부터 3개월이 넘도록 원유철 뇌물사건에 대한 내용은 등장하지 않았다. 비망록에 원유철 뇌물 사건에 대한 얘기가 다시 등장한 건, 9월 13일이었다. 
- 원유철 의원 건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원 의원 건은 다시 하려나 보다. (비망록 / 2016.9.13)

보좌관 기소로 끝낸 검찰... "꼬리 자르기"

2016년 9월 21일, 남부지검은 박진우를 상대로 원유철 뇌물 사건에 대한 첫 진술조서를 작성했다. 박진우가 원유철 뇌물 의혹을 자백하고 네 달이나 지난 후였다.
취재진은 당시 검찰이 작성한 박진우의 진술조서를 입수해 검토했다. 그런데 피의자 명단에 원유철이 없었다. 보좌관 권 씨의 이름만 올라 있었다. 검찰이 권 씨에게 적용한 혐의는 '알선수재'. 보좌관에 불과한 권 씨가 박진우로부터 돈을 받고 산업은행 대출을 알선했다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었다. 
2016년 서울남부지검이 박진우(가명)를 상대로 작성한 진술조서. 피의자로 원유철의 보좌관 권 모 씨가 올라 있고, 혐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적혀 있다.
검찰의 이런 판단은 "돈을 직접 받은 것은 원유철의 보좌관 권 모 씨였지만, 뇌물의 목표는 원유철이었다"는 박진우의 진술과는 사뭇 다른 결론이었다. 아래는 박진우 진술조서 중 일부. 
검사 : 권OO(원유철 보좌관)에게 지급했다는 5,500만 원은 원유철 의원에게 교부한 것으로 해석되는데요.
박진우 : 맞습니다. 제 입장에선 2012년 10월 지급한 3,000만 원 현금과 2013년 9월 지급한 2,500만 원 중 2,000만 원, 총 5천만 원은 원유철 의원에게 드린 것이고 남은 500만 원을 권OO 보좌관에게 드린 것입니다.  
검사 : 원유철 의원에게 산업은행 대출을 부탁하면서 돈을 건넨 이유는 무언가요.
박진우 : 어려운 부탁을 하는데 빈손으로 가기가 어려웠습니다. 제가 처음 3천만 원을 줄 때 권OO도 ‘아휴 안 주셔도 되는데’라고 말하면서도, ‘고맙다, 잘 전달해 드리겠다’며 바로 돈을 받아 갔습니다.  

박진우 검찰 진술조서 / 2016.9.21
진술조서에 따르면, 박진우는 청탁과 뇌물 공여의 대상으로 원유철을 선택한 이유까지 자세히 검찰에 설명한 걸로 나온다. 
검사 : 권OO 보좌관이 아닌 원유철 국회의원에게 산업은행 대출을 부탁했단 말인가요.
박진우 :네, 그렇습니다. 원유철 의원이 산업은행 강만수 회장과 친분이 있다는 말을 듣고, 원유철 같은 유력인사가 도와주면 산업은행 대출이 실행될 수 있겠다고 판단됐습니다.
검사 : 원유철 의원은 당시 우양의 지역구 의원도 아니고, (국회 상임위) 외교통상위원으로 산업은행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데요.
박진우 : 당시 강만수 산업은행 회장과 MB정권 때부터 친분이 두텁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원 의원에게 부탁한 것이지, 만약 다른 사람이 강만수 회장과 친분이 있다고 알게 됐다면, 그 사람에게 부탁했을 겁니다. 우양HC 소재지 지역구는 평택을로 여당인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아니었기에 그쪽은 아예 청탁을 넣을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검사 : 산업은행 대출을 위해 원유철 국회의원을 직접 만나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박진우 : 이명박 대통령 대선 당시 평택지역 선거대책본부장이었던 사람을 통해 원유철 의원을 만나 인사한 적이 있고, 권 보좌관의 경우에는 몇 차례 만나 인사도 했고 돈도 300만 원을 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원유철 의원이라면 만나서 부탁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박진우 검찰 진술조서 / 2016.9.21
보좌관 권 씨는 검찰 조사에서 "돈을 받은 사실을 원유철에게 보고하지 않았고, 혼자서 돈을 다 썼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원유철은 뇌물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말이었다. 참고로, 권 씨는 원유철의 중학교 동창으로 원유철을 약 20년 동안 보좌해온 측근 중의 측근이었다.
검찰은 이런 권 씨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원유철을 참고인 신분으로만 한 번 불러 조사했다. 검찰 조사에서 원유철은 "보좌관이 돈을 받은 사실을 몰랐다. 우양HC에 대한 대출을 산업은행에 부탁한 것은 지역 민원을 들어준 차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원유철의 주장도 받아들였다. 
결국 검찰은 2016년 11월 보좌관 권 씨만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하고 사건을 마무리했다. 박진우가 청탁과 뇌물 공여의 대상으로 지목한 사람이 원유철이고, 산업은행장을 만나 우양HC 대출을 부탁한 사람도 원유철이었지만, '박진우에게서 돈을 받고 산업은행 대출을 알선해 준 것은 보좌관 권 씨'라는 논리였다. 이 사건 수사기록을 검토한 검사 출신의 이민석 변호사는 2016년 남부지검 수사를 이렇게 평가했다.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산업은행장 강만수가 원유철을 보고 부당대출을 해준 것지, 원유철 보좌관을 보고 해준 건 아니지 않습니까. 검찰이 '꼬리 자르기'를 한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민석 변호사 / 전 검사

돈의 행방도 쫓지 않은 검찰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보좌관 권 씨의 공소장에는 권 씨가 박진우로부터 2012년 10월 여의도 중식당, 2013년 9월 여의도 커피숍에서 돈을 받았다고만 간단하게 적혀 있다. "원유철에게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고, 혼자 다 썼다"는 보좌관 권 씨가 이 돈을 대체 어디에 썼는지는 전혀 나와 있지 않은 것이다. 이 돈의 행방은 4년 가까이 지난 2020년 1월에야 밝혀졌다. 
피고인(원유철)은 권OO(원유철 보좌관)으로 하여금 박진우에게서 받은 3천만 원을 의원회관 사무실에 보관하면서 의원 사무실 경비 및 피고인의 카드 비용 등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원유철 1심 판결문 / 2020.1.14
그럼 2016년 당시 남부지검은 이 돈의 행방을 찾기 위한 수사를 하기는 했던 걸까. 
취재진은 전직 원유철 의원실 직원들에게 연락해 2016년 남부지검이 원유철 의원실을 상대로 수사한 사실이 있는지 물었다. 한 전직 원유철 의원실 관계자는 "당시 이미 직원들이 많이 바뀐 상태여서 조사받은 사람이 없고, 내가 사무실에 있었는데 압수수색이 들어온 적도 없다"고 말했다. 다른 전직 직원도 "사무실에 재직했던 사람 중에 조사받은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김정범 변호사는 "이런 걸 확인하지 않고 수사를 했다고 말할 수가 있느냐"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보통 수사가 확대되는 걸 막기 위해 뇌물로 받은 돈을 '내가 다 썼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경우가 있죠. 그러면 당연히 검찰은 돈을 어디에 썼는지 확인해야죠. 그 돈으로 어떤 물건을 샀는지, 샀다면 어디서 샀고, 그 장소에서는 정말로 그 물건을 판 적이 있는지 등을 파악해야 합니다. 이러 걸 하지 않고 수사를 했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수사 자체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죠. 

김정범 변호사 / 전 검사
원유철의 보좌관이었던 권 모 씨.

침묵한 보좌관, 그리고 또 하나의 죄수... "원유철과 합의 봤다고 한다"

취재진은 2018년 출소한 보좌관 권 씨에게 연락했다. 당시 검찰이 어떤 수사 행태를 보였는지 묻기 위해서였다. 권 씨는 "그 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기억에서 지우려고 한다"며 취재를 거부했다.  
끝내 입을 닫은 보좌관 권 씨. 취재진은 권 씨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남부지검 기노성 검사실(706호, 715호)의 출정 기록을 입수해 살펴봤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보좌관 권 씨와 같은 날 기노성 검사실에 출정을 간 죄수가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바로 수출입은행 비서실장으로 재직 중 3조 원 대의 대출 사기 사건을 일으킨 가전업체 모뉴엘로부터 뒷돈을 받은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서 모 씨'였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기노성 검사실 출정 기록에 따르면, 서 씨는 2016년 10월 26일과 11월 3일에는 원유철 보좌관 권 씨와, 11월 9일에는 박진우와 같은 시간 출정을 간 것으로 기록돼 있다. 
취재진이 서 씨의 출정기록에 주목한 이유는, 2016년 11월 9일 박진우가 쓴 비망록에 기록된 의미심장한 내용 때문이다. 
- 아침에 검찰에서 부른다고 함. 갈 때 서 실장과 한 차로 감.  권OO 기소하려고 마지막 진술조서 손 봄. 서OO 말에 원유철과 합의 보았다고 함. (비망록 / 2016.11.9)
해석하면, 서 씨가 박진우에게 "검찰이 원유철과 합의를 보았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사실일까. 
취재진은 먼저 박진우에게 비망록에 적힌 내용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박진우는 "구치감에서 서 씨를 만났을 때 얘기를 들은 것 같다. 서 씨가 검찰 조사를 받을 때 (검찰 관계자가 누군가와) 전화통화하는 거나 분위기를 보고 나에게 전해준 것 같다"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건 박진우가 서 씨에게 이 말을 들었다는 11월 9일이 보좌관 권 씨의 기소 이틀 전이라는 점이다. 권 씨에 대한 기소를 앞둔 검찰이 원유철 측과 모종의 거래를 했다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취재진은 서 씨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서 씨는 남부지검에 출정을 간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서 씨는 왜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 검찰의 '도돌이표' 답변 

취재진은 남부지검에서 박진우를 수사했던 기노성 검사에게 연락해 입장을 물었다. 원유철을 의도적으로 봐 준 것인지 등을 묻는 내용이었다. 기 검사를 대신해 대검찰청이 뉴스타파에 입장을 전해 왔다.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했고, 압력을 받거나 사건을 축소하는 등 위법하거나 부당한 점은 일체 없었다"는 원론적인 답변이었다.  
2016년 당시 남부지검에서 사건을 지휘했던 박길배 전 부장검사에게도 입장을 물었다. 하지만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인 박 전 부장은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남부지검에도 "2016년 원유철 뇌물 수사 과정이 적절했는지"를 물었지만 아무런 답도 들을 수 없었다.
제작진
취재홍주환
촬영오준식 신영철 최형석
편집박서영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신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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