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재무부 첩보 유출] 로비스트 박동선-매너포트 자금거래 확인..."돈 출처 수상"

2020년 09월 25일 17시 05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등 전세계 110개 매체, 언론인 400여 명과 함께 미국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단속국(FinCEN)에서 유출된 수상한 금융거래첩보, 즉 ‘의심거래보고서’(SAR) 2100여 건을 입수해 분석했습니다. 2013년 <조세도피처 프로젝트>, 2016년 <파나마 페이퍼스>, 2017년 <파라다이스 페이퍼스>에 이은 네 번째 역외금융범죄 관련 국제공조 취재 프로젝트 <美 재무부 첩보 유출(FinCEN Files)>을 9월 21일부터 차례로 보도합니다.

①'김O삼'과 '강O희', 수백개 돈세탁 유령회사 임원 등재
②삼성전자 수상한 외환거래, 美 금융감시당국에 포착
③중동 돈세탁 조직 거래내역에 한국기업도 대거 나와
④'천억 원 벌금' 기업은행 사건...배후에 국제 돈세탁 조직
⑤로비스트 박동선-매너포트 자금거래 확인..."돈 출처 수상"

한국과 미국의 두 악명 높은 로비스트 사이에 지난 2016년 말 수천만 원대 수상한 자금이 오간 사실이 미국 재무부에서 유출된 ‘의심거래보고서(SAR)’에서 확인됐다. 1976년 한미 정가를 뒤흔든 ‘코리아 게이트’의 장본인, 박동선과 2016년 ‘러시아 미 대선 개입 의혹’의 키맨, 폴 매너포트 이야기다.

박동선과 폴 매너포트, 두 사람의 인생 굴곡은 이리저리 만난다.

● 미 ‘정치 1번가’ 워싱턴의 명문 사립, 조지타운대학교 동문이다.
● 미 중앙정계를 누비는 직업 로비스트로 살았다.
● 40년 간격으로 초대형 스캔들의 주인공이 됐다.
● 불법 로비 활동에 연루돼 옥살이를 했다.

박동선이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선 시기에도 매너포트의 이름이 겹친다. 1970년대, 박동선은 박정희 유신 정권의 대미 로비 최전선을 누볐다. 미 상·하원 의원들에게 뿌려댄 거액의 뇌물이 꼬리를 밟혔다. 1976년 10월 15일 미 워싱턴포스트 1면 기사로 불이 붙은 사건, ‘코리아 게이트’다. 카터 정권이 들어선 이후 가뜩이나 차가웠던 한미 관계는 얼어붙었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 흐른 1990년, 박동선의 행적이 다시 세상에 노출된다. 그해 3월, 월스트리트저널은 박동선이 대미 로비 활동을 재개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당시 박동선의 주선으로 아프리카 자이르 공화국 대통령은 워싱턴 로비회사 한 곳과 대미 로비 계약을 맺는다. 바로 매너포트가 세운 로비 법인, ‘블랙 매너포트 스톤 앤드 켈리’(Black, Manafort, Stone & Kelly)다.

▲ 정치 논픽션 ‘남산의 부장들’은 한 챕터를 할애해 박동선(사진)의 ‘코리아 게이트’을 둘러싼 한미 관계 막전막후를 다룬다. 올해 초 개봉한 동명 영화의 전반부도 이 사건을 조명하며 시작한다. (출처: 남산의 부장들, 김충식 저, 폴리티쿠스)

2006년, 박동선은 또 다시 불법 로비 혐의가 포착돼 미 당국에 체포된다. 미국에서 해외정부·기관 등을 대리하는 로비 활동을 하려면 미 연방 외국대리인등록법(FARA, Foreign Agent Registration Act)에 따라 로비스트 신분과 계약 사항을 정부에 신고해야 한다. 신고 내역은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미 법무부가 공개한다. 박동선은 이런 FARA 등록 규정을 어겼다. 무등록 신분, 즉 불법 로비스트로서 당시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의 대미 로비 활동을 하다 적발된 것이다. 그는 이 일로 징역 3년 1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08년 9월 만기 5개월을 남기고 출소해 귀국길에 오른다.

현재도 박동선은 대미 로비 활동에 관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단,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미 법무부 FARA 홈페이지에 공개된 로비 등록 내역을 뒤져보면 박동선이 운영하는 컨설팅 업체 ‘파킹턴 인터내셔널’(Parkington International Inc., 이하 파킹턴)이 튀어나온다. ‘정부간 관계 자문’, ‘경영자문’을 사업목적으로 밝히고 있다. 로비 활동이 사업의 중심임을 알 수 있다.

FARA 등록 서류에 따르면 파킹턴은 지난해 1월 “한국 민주당을 대신해(on behalf of the Democratic Party Korea)” 미 로비회사 ‘프라임 폴리시 그룹(Prime Policy Group)’에 대미 로비를 맡겼다. 정부정책 자문, 미 의회 로비 등이 계약 사항이다. 이때 미 정부에 제출한 서류상 파킹턴의 소유주는 김○○으로 나온다. 박동선과 가까운 한국인 사업가 가운데 같은 이름을 가진 인물이 파악된다. 또한 파킹턴 부회장 명의로 로비 의뢰 계약서에 서명한 인물은 박○○이다. 그는 박동선의 조카다. 이들이 파킹턴의 로비 계약 책임자로 실질적 자격을 갖췄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파킹턴이 미 정부에 로비 계약을 신고한 시점, 회사 등기부등본에서 확인되는 사내이사는 박동선뿐이기 때문이다. 조카 박○○도 2016년에 먼저 파킹턴 사내이사에서 물러났고, 미 계약서에 파킹턴 소유주로 이름 올린 김○○은 임원이었던 기록이 없다.

박동선이 이렇게 측근들을 세워 워싱턴 정가의 끈을 붙잡고 있던 때에 매너포트는 경력의 정점에서 추락한다.

2016년 미 대통령 선거에서 매너포트는 도널드 트럼프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는다. 그러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 등 친러시아계 우크라이나 정계 인사들을 위해 일하고 돈을 챙긴 이력이 들통나면서 선본을 떠난다. 이후 러 정부·정보기관이 같은해 미 대선에 개입하고, 트럼프 선본과 내통했다는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의 핵심인물로 지목된다. 이 의혹을 수사한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가 처음 재판에 넘긴 인물이 매너포트다.

뮬러 특검 수사에서 드러난 알맹이는 매너포트의 광범위한 자금세탁망이었다. 그는 친러 우크라이나 정권 측 자문비 등을 세탁하고, 세금을 탈루한 혐의 등이 인정돼 지금까지 7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복역 중 코로나19 사태를 이유로 풀려나 가택연금 조치됐다. 2024년까지 남은 형기를 자택에서 보낼 수 있게 되면서 특혜 논란까지 터졌다.

▲ ICIJ 국제협업팀은 미 재무부 유출 SAR 자료를 분석한 뒤 국제 자금세탁망의 핵심 20인 중 하나로 폴 매너포트 전 트럼프 선대본부장을 지목했다. (출처: ICIJ 공식 홈페이지)

ICIJ와 뉴스타파 등 국제협업취재팀이 함께 분석한 미 재무부 금융범죄단속국(FinCEN·핀센) 유출 ‘의심거래보고서(SAR) 2100여 건 중 주요 문건에는 매너포트가 자금세탁에 활용한 유령업체들과 금융거래 이력이 빼곡히 담겼다.

2017년 3월 7일, 미국 주요 은행 중 하나인 PNC은행은 매너포트의 로비회사(DMP International LLC) 계좌로 흘러간 자금 1건을 금융범죄단속국에 보고한다. ‘31XXXXXXXXXX96’ 14자리 문서번호가 찍혔다. 일곱 장 분량의 이 보고서 5~6쪽을 보면 2016년 12월 29일, 한국 외환은행발 자금 2만5000달러(약 3000만 원)가 매너포트 회사 DMP 법인계좌에 일시에 꽂혔다는 내용이 나온다. 송금자는 파킹턴. PNC은행은 바로 “박동선과 관련된 송금(wire transfer that were associated with Tongsun Park)”이라고 짚어냈다.

▲ PNC은행이 핀센에 제출한 매너포트 관련 의심거래보고에 박동선(Tongsun Park)의 이름과 이체액수, 날짜가 적혀 있다. 취재 핵심과 무관한 부분은 뉴스타파가 검게 가렸다. (자료 공유: 버즈피드, ICIJ)

공교로운 점은 박동선 측 자금을 받은 직후 매너포트의 행보다. 의문의 2만5000달러가 송금된 이튿날, 한국 시각으로 2016년 12월 30일, 매너포트는 전격 방한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이 무르익고 조기 대선마저 점치던 시기, 한국 언론은 유난히 들떴다. 의미 부여가 남달랐다. ‘트럼프 측근’, ‘트럼프 오른팔’이라는 후광이 헤드라인을 어지럽혔다. 사실상 ‘러시아 스파이’로 지목된 탓에 불명예를 안고 트럼프 옆자리를 떠났지만, 한국에서 위상은 달랐다.

● [단독] 트럼프 측근, 이병호·정치인 ‘극비 회동’ (2017.1.2 국민일보)
● 트럼프 측근, 극비 방한해 국정원장·여야 정치인 회동 (2017.1.3 한국일보)
● 72시간 한국 속속들이 훑고 간 ‘트럼프 오른팔’ (2017.1.3 매일경제)

매너포트는 서울 시내 특급호텔 스위트룸에 묵으며 여야 정·재계 인사들을 불러들인다. 김종인, 손학규 등 대권잠룡들이 그를 만났다. 대한민국 정보기관의 수장, 이병호 당시 국정원장까지 달려갔다.

신문들은 매너포트가 한국에 온 ‘의중’을 헤아리기 바빴다. 한 일간지는 이렇게 풀이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측근인 폴 매너포트 전 선거대책위원장의 연말 방한은 트럼프정부 출범에 따른 한·중·일 3국과의 현안 사전조율 성격을 갖고 있다.”

직업 로비스트, 매너포트의 관심은 딴데 있었다. ‘돈벌이’다. 한·중·일 정세는 구실이었다. 뮬러 특검의 수사보고서는 매너포트의 진술을 바탕으로 그의 속내를 건조하게 정리했다.

“트럼프가 2016년 12월 8일 대통령에 당선됐다. 매너포트는 ‘트럼프 승리 직후 행정부 직책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특검에 진술했다. 대신 그는 바깥에 머물길 바랐다. 그리고 대선 캠프 직책으로 돈을 벌고 싶어 했다. 자신의 인지도와 트럼프, 차기 행정부와의 관계로 형성된 사업을 창출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중동과 쿠바, 한국, 일본, 중국을 돌면서, 트럼프 정권의 전망을 설명하고 돈을 받는 계획을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 2019.3. 뮬러 특검 보고서 1권, 141쪽

매너포트의 계획을 돕는 인물이 있었다. 한국과 일본에서만큼은 조력자의 윤곽이 뚜렷하다. 2016년 12월, 매너포트의 깜짝 방한 사건으로 돌아간다. 당시만 해도 그를 데려온 인물이 누구인지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3년이 흐른 2019년 11월, 박동선이 20년 가까이 활동한 한 사교단체 회장의 기고문에서 배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박동선 이사장은 과거나 지금이나 국가가 나서기 민감한 부분에 대하여선 민간외교를 하고 있다”며 “트럼프가 당선되자 선대본부장 폴 매너포트를 초청하여 국가이익에 도움되게 노력하였다”고 했다.

일본 정계 인사들과 매너포트가 인연을 맺는 데에도 박동선의 발이 움직였다. 한국을 들썩이게 한 매너포트는 일본으로도 건너갔다. 2017년 3월 25일자 일본경영자동우회 기관지에 실린 사진 속에 매너포트와 박동선이 나란히 섰다. 일본 정·재계 인사들이 옆을 채우고 있다. 일본 극우정당 일본유신회 소속 중진도 카메라 앵글 구석에 섰다. 6선 중의원, 시모지 미키오(下地幹郞)다. 매너포트, 박동선이 만찬을 함께 한 극우 의원 시모지는 이후 카지노 사업 비리 연루 혐의로 도쿄지검 특수부 수사망에 감긴다. 올해 초 그는 카지노 진출을 노리는 중국 기업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을 시인하고 당에서 쫓겨났다. 매너포트, 박동선 일행과 시모지 일행의 동상이몽이 무엇이었든 사진으로만 남게 됐다.

▲ (붉은 원 표시 좌측부터) 매너포트와 박동선, 시모지 미키오 중의원이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다. (출처: 2017.3.25 일본경영자동우회 일본경영자신문)

이번에 핀센에서 유출된 보고서는 오랜 세월 이어진 한미 양국 거물 로비스트의 밀월 관계를 정확히 비춘다. 매너포트 측에 돈을 보낸 파킹턴은 최근까지도 대미 로비 사업에서 박동선의 존재를 감추려 애썼지만, 미 당국은 그의 정체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보고서는 코리아 게이트 등 위키피디아를 출처로 인용한 정보를 언급하면서 박동선의 어두운 과거를 요약한다.

의문의 2만5000달러는 외형만큼은 사업 자금의 모양새를 갖췄다. 박동선의 파킹턴과 매너포트의 DMC, 두 로비회사의 ‘법인계좌’ 사이에 오간 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회사가 정식 로비 계약을 맺고 돈을 주고 받았을 가능성도 따져 봐야 한다. 따라서 돈의 진짜 출처, 즉 파킹턴 배후의 로비 의뢰인이 존재할 여지도 남는다. 정식 로비 계약서류가 실존한다면 미 법무부 FARA 데이터베이스에서 열람할 수 있어야 한다. 인터넷에서 클릭 몇 번, 몇 가지 키워드 검색으로 5분이면 끝날 일이다. 그러나 의문을 해소해줄 서류, 다시 말해 수상한 자금 이체를 정당화할 서류는 조회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문제의 자금이 매너포트의 위법한 로비나 해외 활동을 지원하는 비자금 성격이 짙다고 속단하긴 이르다. 뉴스타파는 매너포트에게 흘러간 자금의 목적과 출처를 직접 묻고자 박동선이 사용한 이력이 있는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했지만 ‘지금은 없는 번호’라는 안내만 흘렀다.

▲ 서울 한남동 한 빌딩 계단 앞에 박동선이 운영하는 컨설팅 업체 ‘파킹턴’의 간판이 걸려 있다.

취재진은 파킹턴을 직접 찾아갔다. 서울 이태원 언덕 사이 골목에 숨은 빌딩 2층에 닿았다. 굳게 닫힌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외부에는 초인종이 없었다. 한 남성이 문을 반쯤 열고 마주섰다. 그는 “제가 박○○이에요”라고 밝혔다. 파킹턴 이사를 지낸 박동선의 조카였다. 기자가 취재 경위를 설명했다. 그는 무심하게 “다 지나간 일을 가지고…”라고 반응했다. 파킹턴과 매너포트의 자금 거래에 대해서는 “지금은 매너포트와 별로 관계가 없다. 연락 안 한 지도 오래 됐다”고 했다. 그는 “다시 전화를 주겠다”고 여러 번 약속했다. 그러고 다시 문을 잠갔다. 전화는 오지 않았다.

박동선과 매너포트는 모두 미 연방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의 등록 절차를 무시하고 미국 내 로비 활동을 하다 적발된 이력이 있다. 박동선의 경우, 이라크 후세인 정권을 배후 삼아 대미 활동을 하다 2006년 체포당하게 된 결정적 이유였다. 매너포트는 친러 우크라이나 정권 측이 의뢰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대미 로비를 대행했다. ‘러시아 스캔들’ 수사 과정에서 뒤늦게 확인된 일이다. 이 탓에 그는 2017년 6월, 은폐했던 우크라이나 로비 계약 건을 미 정부에 소급 신고했다. 글로벌 은행과 미 금융당국이 최근까지도 두 거물 로비스트들의 수상한 자금 거래를 눈여겨 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핀센 보고서는 두 사람의 돈 거래를 짧게 묘사한다. 보고서 2쪽 맨 아래, 자금세탁(Money laundering) 항목 공란을 딱 여섯 단어가 채우고 있다.

“Suspicious concerning the source of funds(돈의 출처가 수상하다)”

제작진
취재김용진 홍우람 김지윤 이명주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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