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민원'에서 '종북타령' 심의까지

2014년 02월 04일 20시 03분

‘방송심의’ 들여다 봤더니...
‘초등’ 수준 민원으로 시작, ‘정치심의’로 끝나

지난 해 9월 7일 KBS <추적 60분>이 이른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을 다룬 프로그램을 내보낸 이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이 방송의 ‘공정성’ 조항 위반 여부 등에 대해 심의에 들어갔다. 1심 법원에서 이미 무죄 판결이 난 사건을 다룬 프로그램이어서 방심위의 심의 회부 자체가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과연 이 심의는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방송이 나간 후 방심위에 한 통의 민원이 접수됐다. 민원인은 <추적 60분>이 “국민여론을 종북세력의 선동에 휘둘리게 하기 위한 악의적인 방송”이라고 주장하며 “관련자들에 대한 무거운 징계를 요청"했다.

▲ KBS 방송을 심의해 달라며 방심위에 접수된 민원 '국민여론을 종북세력의 선동에 휘둘리게 하기 위한 악의적인 방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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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추적 60분> 방송을 심의해 달라며 방심위에 접수된 민원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민원 하나가 들어왔다. 맞춤법조차 엉망인 초등학생 수준의 글이었다. 줄곧 ‘팩트’를 강조했지만 사실관계도  맞지 않는 내용이었다.

“(법원이) 간첩죄 다 인정하는데 미란다 고지를 안했다고 생각해서 무죄로 판결내린겁니다.”

마치 재판에서 간첩죄가 인정된 것처럼 썼지만 당시 법원은 간첩 혐의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결국 이런 수준의 민원을 근거로 방심위 심의가 시작됐고, 지난해 11월 21일 결국 <추적 60분>은 법정 제재인 ‘경고’ 조치를 받았다.

방심위는 민원이 제기되면 요청에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해당 프로그램을 심의한다고 말하면서도 민원인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심의 과정은 ‘저질 정치판’과 판박이

▲ 1월 23일 방심위 회의에서 엄광석 여당 추천위원의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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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23일 방심위 회의에서 엄광석 여당 추천위원의 발언

방심위의 심의 수준도 민원 수준에 못지않다. 지난 1월 23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대한 심의에서 여당 추천 방심위 위원들은 박창신 신부가 국기문란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며, 박 신부를 종북세력으로 규정하는 듯한 발언을 연달아 쏟아냈다.

엄광석(여당 추천위원): 연평도 포격이 정당하다고 하는거야  당신?? 연평도 포격을 인정하는거야?

여당 추천 방심위원들의 이 같은 발언은 박신부를  “사제의 옷을 입은 혁명전사죠"라고 매도한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의 발언과 흡사하다. 극우성향의 여당 정치인들과 비슷한 시각으로 방송 심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중 잣대로 스스로 공정성 잃어

▲ 방심위가 너그러운 심의 결정을 내렸던 친정부 성향 방송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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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심위가 너그러운 심의 결정을 내렸던 친정부 성향 방송들

이처럼 정부 비판 방송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취했던 방심위. 그러나 친정부나 극우보수 성향의 방송에 대해서는 관대한 처분을 내리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실제 최민희 민주당 의원 등을 ‘종북세력 5인방’으로 규정해 물의를 빚은 채널A의 <탕탕평평>, 친일행적이 뚜렷한 백선엽에 대한 미화로 논란을 일으킨 KBS의 <전쟁과 군인> 백선엽 편, 노동조합과의 충돌과정에서 거짓말을 했던 MBC 권재홍 보도본부장 부상 보도 등 친정부, 극우보수 성향의 보도와 프로그램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법정 제재를 내리지 않았다.

방심위의 공정성 심의가 시대착오적인 이념 전쟁의 수단으로 전락했을 뿐만 아니라,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방심위 정기회의 주요 발언 발췌록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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