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결재하고 내가 가져가는' 지청장의 셀프 특활비

2023년 09월 21일 20시 00분

현직 검사가 지청장 시절, 지청이 관리하는 특수활동비(특활비)를 본인이 결재하고, 본인에게 지급하는 방식으로 매달 ‘셀프 수령’한 사실이 처음으로 드러났다. 
이준엽 검사는 대구지방검찰청 서부지청장으로 재직 중이던 2021년 9월~2022년 6월까지 10개월간 매달 본인 명의로 총 1천만 원이 넘는 서부지청 특활비를 받아 갔다. 지방검찰청 산하 기관장으로서 특활비를 관리·감독해야 할 지청장이 특활비를 반복적으로 ‘셀프 수령’한 사례가 드러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준엽 검사는 “(내가 쓰지 않고) 다른 검사나 수사관에게 수사활동비로 나눠줬다”고 주장했다.

대구 서부지청 특활비, 지청장이 ‘셀프 수령’ 확인

‘검찰 예산 검증 공동 취재단’인 뉴스타파와 뉴스민은 대구지검 서부지청의 6년 치(2018~2023년) 특활비 증빙 서류를 교차 검증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독립언론 뉴스민은 대구·경북 지역의 지방검찰청·지청 10곳이 쓴 특활비 예산 검증을 맡고 있다. 이 중, 대구지검 서부지청의 경우, 기관장인 지청장이 특활비 수령자로 본인(지청장)을 지정해 결재한 뒤, 현금으로 수령한 이른바 ‘셀프 특활비 영수증’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 대구지검 서부지청의 2022년 2월 3일 특활비 영수증, 오른쪽 문서 하단 수령인 서명란에 지청장이라고 쓰여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지난해 2월 3일, 이준엽 당시 지청장은 대구지검 서부지청의 특활비를 ‘셀프 집행’했다. 2장짜리 영수증 서명란에 자신을 수령자로 기재한 뒤 현금 50만 원을 가져간 것이다. 첨부된 영수증의 수령인 서명란을 보면 ‘지청장’이라고 정확히 기재돼 있다. 또 같은 달, 대구지검 서부지청이 집행한 특활비는 총 172만 원으로, 서부지청 검찰 직원 가운데 이 지청장보다 더 많이 특활비를 가져간 사람은 없었다.
▲ 대구지검 서부지청의 2022년 2월 특활비 지출내역기록부, 좌측 맨 상단에 당시 지청장이었던 이준엽 검사의 사인이 들어 있다. 이 검사는 2월 3일 특활비 50만 원을 '셀프 수령'했다. 
같은 해(2022년) 6월 작성된 특활비 장부에서도 앞선 영수증과 동일한 양식의 영수증이 발견됐다. 6월 30일 자 영수증 겉표지엔 ‘집행내용확인서 생략’이라고 적혀 있다. ‘기밀 수사’에 쓴다는 명목으로 누가, 어디에, 어떤 목적으로 썼는지 증빙을 남기지 않겠다는 뜻이다.
▲ 대구지검 서부지청의 2022년 6월 30일 특활비 영수증, 왼쪽 문서 상단에 집행내용확인서 생략이라고 쓰여 있다.
해당 영수증 본문에 해당하는 두 번째 장(아래 사진 참조)엔 수령인이 가려져 있었다. 때문에 뉴스타파와 뉴스민은 특수촬영 기법 등을 통해 검찰이 가린 수령인을 파악했다. 영수증을 확대해 보니, 감춰져 있던 이름이 보였다. ‘이준엽’, 이번에도 특활비를 받은 사람은 당시 지청장이었던 ‘이준엽 검사’로 확인됐다.
▲ 대구지검 서부지청의 2022년 6월 30일 특활비 영수증을 확대해보니 '이준엽'이라는 서명이 발견된다.
이처럼 이 검사가 지난해 6월 30일, 2장 짜리 영수증을 쓰고 받은 현금은 정확히 100만 원이다. 그러나 영수증을 쓰면서 ‘집행내용확인서’를 생략한 까닭에, 어떤 용도로 썼는지 증빙은 남아있지 않다.
더구나 이 검사가 특활비 100만 원을 받은 6월 30일은 자신에 대한 인사 발령이 발표된 이틀 뒤였다. 앞서 법무부는 2022년 6월 28일, 이 검사를 포함한 검사 인사를 발표했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지금의 한동훈 장관이다.
결국, 이 검사는 법무부 인사로 대구 서부지청을 떠나기로 결정된 6월 30일에 갑자기 기밀 수사에 필요하다며, 특활비를 ‘셀프 집행’했다. 6월 한 달로 범위를 넓히면, 그 달에만 320만 원을 몰아서 본인에게 ‘셀프 집행’했다. 
결국에는 예산을 자기네들 멋대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다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나 싶습니다.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고 잘못했다고 얘기하지 않고 그리고 감찰하지 않으면 그 돈주머니는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구나라는 생각은 누구나 가지게 되는 것 같고 그걸 지금까지 검찰은 누구의 감시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그대로 해왔던 것 아닌가 의심이 되고요. 

채연하 함께하는시민행동 사무처장
▲ 이준엽 검사의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임기(2021.07~2022.06) 중 특수활동비 수령 내역
이런 식으로 이 검사가 대구 서부지청장 시절, 2장짜리 영수증을 쓰고 챙겨간 것으로 파악된 현금은 최소 1,386만 원에 달한다. 전체 지청장 임기인 1년(2021년 7월~2022년 6월) 동안 앞선 두 달을 제외하고 2021년 9월부터 지청을 떠나던 2022년 6월까지 빠짐없이, 매달 적게는 50만 원에서 많게는 320만 원까지 사실상 월급처럼 특활비를 받았다. 더구나 이 검사가 ‘셀프 지급’하고 수령한 특활비 1,386만 원의 사용처는 여전히 불분명해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이 검사는 휴대전화 문자 답변을 통해 “(수령한) 특활비는 전부 수사활동비로 지급되었다”고 해명했다. 다른 검사나 수사관을 대신해 기관장으서 서명하고, 이후 특활비를 지급한 것이란 주장이다. 
▲ 이준엽 전 대구지검 서부지청장의 해명. 특수활동비는 전부 수사활동비로 지급되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실제 이 검사가 ‘셀프 수령’한 특활비를 수사 목적에 맞게 썼는지 입증할 자료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 검사의 해명대로 다른 검사나 수사관의 활동비로 지급됐다면, 지급받은 사람의 확인이 있어야 하는데 해당 지출 증빙은 전혀 없다. 더구나 이 검사는 누구에게 특활비를 지급했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 뉴스타파 취재진은 9월 20일 이준엽 검사가 지청장으로 재직 중인 수원지검 평택지청을 찾아가 이 검사와 면담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지난 20일, 취재진은 추가 해명을 듣기 위해 현재 평택지청장으로 재직 중인 이준엽 검사를 찾아가 면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 검사 측은 “(취재진과) 만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취재진은 대검찰청에도 이 같은 취재 내용을 전달하고, 이 검사의 주장처럼 ‘기관장의 특활비 대리 서명’이 가능한 것인지 물었다. 그러나 현재(9월 21일)까지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했다. 
한편, 뉴스타파 확인 결과, 대구 서부지청과 정확히 같은 양식의 ‘셀프 특활비 영수증’은 대검찰청, 울산지검, 전남 장흥지청 등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됐다. 그러나 대구 서부지청과 달리, 수령자가 누군지 확인 서명란을 철저히 가려놔 검찰총장 또는 지검장 등의 수령자 서명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제작진
취재박중석 조원일 임선응 강민수 강현석
공동취재단뉴스민
공동기획세금도둑잡아라,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함께하는시민행동
촬영정형민 최형석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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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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