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확인> 국가보훈처 수십억대 기부금 강요...'거짓말'로 은폐 시도

2021년 10월 06일 16시 25분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보훈처가 수년 동안 공기업을 대상으로 특정 민간재단에 기부금을 낼 것을 강요한 사실이 처음으로 드러났다. 뉴스타파가 확인한 모금액은 20억 원, 모금에 응한 공기업은 16곳으로 파악됐다.

■ 국가보훈처 공기업 상대 수년간 20억 원대 기부금 모집 강요

뉴스타파가 전체 350개 공공기관·공기업의 기부·후원 예산을 전수 조사하고, 송재호 의원실(더불어민주당, 제주시갑)과 함께 6년 치(2015~2020년) 공공기관의 기부금 집행 내역을 공동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비리를 확인했다. 현행 법률상 국가기관은 기부금을 모집할 수 없다.
그러나 보훈처는 거짓말로 축소·은폐하는 데 급급했다. 보훈처는 지난 8월 "사실무근"이라고 거짓 해명을 했다가 뉴스타파가 협조 공문 등 관련 물증을 제시하자, "차후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뒤 지금껏 묵묵부답이다. 보훈처가 공기업을 강요해 받아 낸 기부금을 몰아준 민간재단은 함께하는나라사랑(이하 나라사랑재단)이다. 나라사랑재단은 2008년 보훈처 출신의 전직 공무원들이 주축이 돼 설립됐다.

■ 국가보훈처 '사실무근'이라며 거짓말로 발뺌 

취재가 시작된 초기, 보훈처는 강제 모금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지난 7월 뉴스타파는 나라사랑재단을 통해 기부금을 모집한 사실이 있는지 보훈처에 공식 질의서를 보냈다. 보훈처는 8월 10일 서면 답변을 보내왔는데, "나라사랑재단과 공동으로 기부 업무를 추진한 사항이 없고, 보훈처가 기부금품을 직접 접수하지 않아 법적 위반 사항이 없으며, 보훈처가 해당 재단의 업무를 대행한 사실도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8월 10일, 보훈처가 보내온 서면 답변. 보훈처의 해명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보훈처의 거짓말은 곧 들통났다. 보훈처가 매년 각 지방보훈청장 명의의 공문을 통해 공공기관·공기업을 상대로 기부를 강제한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뉴스타파와 송재호 의원실은 지난 두 달 동안 공공기관·공기업이 받은 보훈처 공문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입수한 공문에는 각 지방보훈청장의 날인이 찍혀 있다. 보훈처 사업을 소개하고 돈을 낼 기부처로 '나라사랑재단'을 지정해 명시하는 등 노골적으로 기부를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기부 금액까지 구체적으로 적어놓은 공문도 여럿 나왔다.
기관 협조 형식이지만, 기부 강압 또는 강요와 다름없었다. 상당수 공기업은 국가기관인 보훈처를 고려해 나라사랑재단에 기부금을 낼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실제 공기업은 공문 접수 이후, 보훈처가 요구한 대로 재단에 기부금을 냈다.
저희가 아무 재단을 (후원) 할 수 있는 거는 아니잖아요. 저희 인근에 서울지방보훈청이 있거든요. 그쪽이랑 콘택트를 해서 협업을 한 것으로 저희가 확인이 됐습니다.

공기업 A 직원
저희가 국가보훈처가 주관으로 하는 사업에 기부금을 추진하면서 지원하고 있는 사업이다 보니까 말씀드렸던 대로 실제 보훈대상자 선정이라든가 기준 심사 이런 것들은 다 보훈처에서 진행을 하시고요. 출연기관은 보훈처에서 지정을 해주시니까. 

공기업 B 직원
나라사랑재단에 대한 공기업의 기부는 보훈처 주도로 이뤄졌다. 민간재단을 내세웠지만, 이들 기부가 과연 자발적이었는지 의심이 드는 공문도 여럿 확인됐다. 한국도로공사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도로공사는 2016~2017년까지 2년 동안 나라사랑재단에 모두 500만 원을 기부했다. 온누리상품권과 기부 물품을 후원했다. 그런데 도로공사가 2017년 9월 작성한 내부 문서를 확인한 결과, 후원 결정에 보훈처가 깊이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공문에는 ‘광주지방보훈청의 협조 요청에 의거, 지원한다’고 적혀 있다.
뉴스타파와 송재호 의원실이 입수한 보훈처 공문
공기업을 상대로 한 보훈처의 기부금 모집 수법을 정리하면 이렇다. ① 먼저 지방보훈청장 명의로 기부금 협조 공문을 공기업에 보낸다. ② 구체적 사업을 소개하고 부처 소관 재단법인인 ‘함께하는나라사랑’으로 기부금을 보내 달라고 기부처를 명시한다. ③ 심지어 기부금액까지 할당해 적시한다. ④ 대다수 공기업은 보훈처의 요구대로 나라사랑재단에 기부금을 보내고 보훈처에 보고한다.

■수법① 구체적 액수까지..."300만 원을 기탁하라"

2015년 5월, 서울지방보훈청이 작성한 공문이다. 서울지방보훈청장 날인을 찍어 공기업인 예금보험공사에 보냈다. 제목은 ‘가정의 달 맞이 생계 곤란 보훈 가족 지원 대상자 추천’이다. 무공수훈자인 박00 씨를 지원하려고 하는데 300만 원을 기탁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런데 지원 방식이 수상하다. 예금보험공사가 박 씨를 직접 지원한 것이 아니다. 나라사랑재단에 돈을 보내라고 요청한다. 공문에는 나라사랑재단 명의의 은행 계좌번호까지 적어놨다. 며칠 뒤, 예금보험공사는 보훈처가 지시한 대로 나라사랑재단에 300만 원을 보냈다.
2016년 8월 광주지방보훈청이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보낸 공문에도 나라사랑재단에 기부금을 몰아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보훈처가 후원을 요청하면서 ‘후원금 및 후원물품은 (재)함께하는나라사랑을 통해 기부처리해 드립니다’라고 적어놓은 것이다.
서울지방보훈청이 2015년 5월 작성한 공문, 나라사랑재단 명의의 은행 계좌번호까지 적어놨다.
광주지방보훈청이 2016년 8월 작성한 공문, '후원금 및 후원물품은 (재)함께하는나라사랑을 통해 기부처리해 드립니다’라고 쓰여 있다.

■수법② 재단과 보훈처는 ‘한몸’이다. 

2016년 6월, 인천보훈지청이 공기업인 한국중부발전에 발송한 공문이다. 제목은 ‘한국중부발전 인천화력본부 기부금 신청을 위한 사업 계획서 제출’이다.
그런데, 공문 발신의 주체가 이상하다. 인천지방보훈청장 명의의 공문인데도 발신처로 ‘(재)함께하는나라사랑(인천보훈지청)’이라고 밝히고 있다. 나라사랑재단의 기부금 모집 업무를 보훈처가 대행해주고 있는 증거다. 보훈처는 공문에서 ‘인천 관내 85세 이상의 보훈 대상자를 지원하는 사업을 계획하고 있는데, 예산 300만 원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그리고 얼마 뒤, 중부발전은 보훈처가 아닌 나라사랑재단에 300만 원을 기부했다. 보훈처가 공문을 보낸 뒤, 돈은 재단이 받게 하는 수법이다.
인천보훈지청이 2016년 6월 작성한 공문, 함께하는나라사랑이 공문을 보낸 발신처로 기재돼 있다. 

■수법③ 행사나 사업은 보훈처가 하고 돈은 재단으로 보내라

2014년 8월 공기업인 한국도로공사는 진주보훈지청으로부터 공문을 받았다. 추석을 맞아 보훈 사업인 ‘이동보훈 복지서비스’ 사업에 적극 협조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도로공사는 기부 예산 100만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런데, 도로공사가 100만 원을 준 곳은 보훈처가 아니었다. 나라사랑재단 이사장인 유병혁 명의의 계좌로 100만 원이 보내졌다. 더구나 이 사업은 보훈처가 2004년부터 추진하던 정부 사업이었다. 결국 공기업 예산이 보훈처 사업에 쓰여진 것인데, 돈은 엉뚱하게 민간재단이 받고 있는 기형적 구조다.  
진주보훈지청이 2014년 8월 작성한 공문에 첨부된 사업소개서, 국가보훈처 사업을 홍보하고 있다.
보훈처가 주관한 공식 행사 비용을 공기업에 요청하면서 재단이 중간에 돈을 챙긴 경우도 발견됐다. 2015년 6월 10일, 울산광역시청 대강당에서 ‘나라사랑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울산보훈지청, 6·25참전유공자회 울산시지부가 주관·주최했다. 해당 콘서트 장소를 대관하고, 강사 섭외 등을 기획한 곳은 울산보훈지청이었다.
행사 한 달 전인 2015년 5월 23일, 울산보훈지청은 공기업인 한국동서발전에 공문을 보내 행사 경비 700만 원의 후원을 요청했다. 동서발전은 700만 원의 후원금을 냈다. 그런데 동서발전이 돈을 보낸 곳은 보훈처가 아닌 나라사랑재단이었다. 보훈처가 일은 다 하고, 돈은 재단이 챙긴 것이다. 행사 비용을 보훈처가 직접 받는 것을 피하기 위한 꼼수였다.
울산보훈지청이 2015년 5월 작성한 공문, 협조사항에 700만 원 후원이라고 적혀 있다.

■ 전국 보훈지청·호국원 등 6개 기관, 공기업에 공문 보내

이런 식으로 국가기관이 민간단체를 동원해 공기업에 기부금을 강요한 사실이 최초 확인됐다. 뉴스타파와 송재호 의원실이 파악한 결과, 인천보훈지청 등 6개 보훈처 소속 기관(국립영천호국원 포함)이 공기업에 기부금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집계됐다. 뉴스타파 확인 결과, 2015~2017년까지 3년 동안, 나라사랑재단에 기부금을 낸 공공기관·공기업은 모두 16곳이다. 기부금 액수는 20억 6,700만 원이다.

■ 확인한 강제 모금액 20억 6,700만 원

국토정보공사, 농어촌공사, 농수산식품유통공사, 도로공사, 동서발전, 마사회, 산업단지공단, 예금보험공사, 전력거래소, 주택도시보증공사, 중부발전, 중소기업은행, 철도공사, 토지주택공사, 코레일네트웍스, 한전KDN 등이 기부금을 냈다. 2018년 이후 나라사랑재단에 대한 이들 공기업의 기부·후원은 모두 중단됐다.

■ 언론사, 대학 등에도 무차별 공문 보내

보훈처는 공기업뿐 아니라 관할 지역 내 언론사와 대학 등에도 공문을 무차별 발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2014년 8월 진주보훈지청이 작성한 기부 협조 공문이 이를 증명한다. 공문 하단 수신자 명단에 지역 공공기관 및 관공서 등 51곳이 적혀 있다. 농어촌공사나 한국전력 등 공공기관은 물론 경상대, 진주교육대 등 대학기관, KBS진주방송국, MBC경남, 서경방송, 경남일보 등 언론사가 다수 포함돼 있다.
진주보훈지청이 2014년 8월 작성한 공문, 공문 수신자에 지역 공공기관, 관공서가 적혀 있다.
광주지방보훈청도 2017년 8월 <추석 명절 계기 보훈 가족 위문 등 사랑나눔 지원 협조>라는 공문을 작성해 공기업에 보냈는데 공문 수신자에 ‘관내 기업체 대표이사, 관내 공공기관 사장’이라고 적혀 있다. 해당 공문은 실제 각 기관에 발송된 것으로 확인됐다. 보훈처의 기부금 모집 행위가 전방위적으로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보훈처의 이런 광범위한 기부금품 모집은 현행 기부금품법 위반 소지가 다분하다. 형식상 민간재단을 내세웠지만, 국가기관인 보훈처가 주도했고, 사실상 강요한 기부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공문과 증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현행 기부금품법 제5조는 ‘국가나 그 소속 기관ㆍ공무원은 기부 금품을 모집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 물증 제시 이후 보훈처 묵묵부답, 직인 찍힌 공문도 인정 안해 

처음에 부인하며 거짓 해명했던 보훈처는 취재진이 공문을 제시한 후엔 모든 답변을 거부한 채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 지방보훈청장의 직인이 찍힌 공문을 보낸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 보훈처 관계자는 “보도 내용을 보고 필요한 경우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문제의 나라사랑재단은 2008년 보훈처 출신의 공무원을 지낸 유병혁 씨 등이 설립한 법인이다. 박승춘 보훈처장 시절인 2011년 8월 보훈처와 ‘보훈 가족 나눔·후원’ 협약을 맺었다. 이 협약은 매우 이례적인데, 보훈 사업에 필요한 경비는 보훈처가 제공하고 나라사랑재단은 보훈처가 계획한 사업을 수행하는 형태의 내용이었다. 보훈처가 받은 기부금으로 재단 사업을 진행하는 파격적인 특혜를 제공한 것이다. (특혜 구조의 자세한 이야기는 2편)
박근혜 정부 시절 기부금이 급증했다가 2018년 이후 횡령 등의 범죄 혐의가 드러나면서 재단 설립이 취소됐다.

■ 나라사랑재단, 2018년 횡령 등 비리 드러나 재단 취소 

협약 이후, 나라사랑재단은 잘 나갔다. 보훈처 사업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박승춘 전 처장의 임기인 2013~2017년까지 나라사랑재단이 거둔 기부금 수익은 119억 원에 이른다. 한 해 평균 24억 원이다. 이 돈의 대부분은 보훈처가 공기업을 대상으로 기부를 강요해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뉴스타파는 2015~2017년 사이에 공기업 기부 예산 20억 원이 모금돼 재단으로 흘러갔음을 확인했다.
반면, 박 전 처장이 물러나고 2018년 재단의 기부금 수익은 600만 원에 그쳤다. 2017년 정권 교체 이후, 나라사랑재단은 횡령 등의 범죄 혐의가 드러나 보훈처에 의해 고발됐고 재단 설립이 취소됐다.
그렇다면, 이렇게 재단으로 흘러간 막대한 공기업 기부금은 어디에 어떻게 쓰였을까. 기부금 모집을 주도한 보훈처는 이후 제대로 쓰였는지 확인했을까. 또 횡령 등 혐의로 고발당한 나라사랑재단 간부들은 합당한 처벌을 받았을까. 보훈처가 특정 재단에 기부금을 몰아준 속사정은 뭘까.  더구나 기부금 모집을 끝까지 감추려 했던 이유는 뭐였을까.
뉴스타파는 보훈처 출신이 만든 전관 단체인 나라사랑재단과 국가보훈처의 믿을 수 없는 민관 유착 구조, 그리고 불법적인 특혜 제공의 실태를 2편(10월 8일 보도)에서 폭로한다.
제작진
취재강현석, 임선응, 박종화, 박중석
데이터 최윤원
웹디자인 이도현
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