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언론사 포럼 행정심판 : 상식을 뒤집는 공공기관들

2021년 11월 24일 10시 00분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려 했다. 공공기관 6곳이 '언론사 주최 포럼 참가 내역'을 공개해 달라는 뉴스타파의 요구에 비공개로 대응했을 때, 잠시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미 대다수 공공기관이 정보를 공개한 상태라 데이터 취합과 기사 작성엔 문제가 없었다. 기사에 "정보를 비공개한 공공기관은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 예금보험공사, 기업은행, 예금보험공사, 방송통신진흥원(부분공개), 인사혁신처(부분공개)다"라고 쓰고 끝내면 될 일이었다.(관련기사 : 언론의 '포럼 장사'...코로나19 시대에도 계속됐다) 번거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행정심판을 제기할 마음은 애초에 없었다. 하지만 공공기관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접한 뒤 생각이 바뀌었다.  

상식이 전도되는 경험

공공기관 6곳이 내건 비공개 사유는 '영업상 비밀'이었다. '법인·단체 또는 개인의 경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법인 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는 비공개할 수 있다'는 정보공개법 9조(비공개 대상 정보) 7항을 근거로 들었다. 한마디로, 공공기관이 자기 돈으로 언론사 포럼 티켓을 샀는데, 그 사실을 공개하면 누군가의 영업상 비밀을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궁금증이 일었다. 도대체 이게 왜 영업상 비밀이고, 누구의 비밀을 침해한다는 것인지, 이유를 알고 싶었다.
'언론사 포럼 참가 내역'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공공기관 6곳은 '경영·영업상 비밀'을 이유로 비공개·부분공개 처분을 내렸다.
먼저 수출입은행에 전화를 걸었다. 수출입은행 홍보팀 관계자는 "언론사의 영업상 비밀이 침해된다"고 말했다. 여기서 알아둘 사실이 있다. 언론사 포럼 티켓은 공공기관이 가격을 협상해서 구입하는 게 아니다. 티켓 가격은 언론사 포럼 사이트에 이미 다 공지돼 있고, 공공기관은 사이트에 접속해 표를 사면 된다. CGV에서 영화표를 구입하는 방식과 똑같다. 그런데 이 영화표를 몇 장 샀는지 알려주면 CGV의 영업상 비밀 침해라는 논리였다. 그리고 곧 이런 주장을 내놨다. 
(뉴스타파) "만약 제가 편의점에서 볼펜을 하나 샀다고 칩시다. 누가 그 볼펜 어디서 얼마에 샀느냐고 물어봐요. 그래서 어디 편의점에서 얼마에 볼펜을 샀다고 알려줍니다. 그럼 저는 그 편의점의 '영업상 비밀'을 침해한 건가요?"

(수출입은행) "보기에 따라 다르죠. 그것도 일종의 계약입니다."

수출입은행 홍보팀 전화통화 
기업은행의 답변은 더 놀라웠다. "정보 비공개 사유가 무엇이냐, 이게 왜 영업상 비밀이냐"라는 뉴스타파 질문에 기업은행 측은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업은행의 돈으로 언론사 포럼에 갔는데, 이에 대한 판단을 기업은행이 내릴 수 없다는 얘기였다. 말문이 막혔다. 예금보험공사도 똑같았다. '자기들은 영업상 비밀이라고 결론내렸으니, 깊은 뜻은 알아서 이해하라'는 식이었다. 
그동안 이들 공공기관이 국민들의 정보공개청구에 어떻게 대응해왔는지 미뤄 짐작됐다. 일단 '영업상 비밀' 조항을 들이밀고, 이유를 물어보면 무논리나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것. '불만 있으면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하라'는 식이었다. 언제까지 이런 태도를 두고볼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재진은 곧바로 공공기관 6곳을 상대로 '정보 비공개 처분 취소'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뉴스타파는 '초능력 언론'이었다

행정심판 과정에서 나온 공공기관들의 주장은 상식을 초월했다. 첫째, 공공기관의 언론사 주최 포럼 지출 내역을 알게 되면 언론사의 수익 구조 전반을 파악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산업은행은 서면 답변서에서 "공공기관들로부터 지급받은 금원의 규모만 확인되면 해당 언론사 매출액에서 공공기관의 포럼 참가비 등이 차지하는 비율에 따라 언론사의 수익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고 답했다.  
취재진은 이 주장이 사실인지 따져봤다. 언론사 포럼 중 가장 규모가 크다고 알려진 매일경제신문 주최 '세계지식포럼'을 사례로 조사했다. 뉴스타파 확인 결과, 2020년 국내 공공기관들이 세계지식포럼에 지출한 금액은 총 5억여 원이다. 언론사 포럼에는 공공기관을 제외하고도 사기업·정치권·대학 등이 참여하니 공공기관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매일경제의 연매출 규모는 어떨까.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매일경제의 2020년 매출(개별 재무제표 기준)은 약 2270억 원이다. 공공기관의 포럼 지출액은 전체 매출의 0.22%에 불과하다. 이 0.22%를 보고 매일경제신문의 수익 구조를 유추해낼 수 있다? 그게 가능하다면, 뉴스타파는 '초능력 집단'이다.  
두 번째 주장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국민들이 '초능력자'다. 산업은행은 "어떤 언론사 포럼에 참여했는지가 공개되면 산업은행의 특정 주제에 대한 견해나 관심분야 등이 쉽게 유추 가능해져서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금융기관에 비해 불이익한 지위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기업은행은 "정보가 공개될 경우 기업은행이 진행·추진하고 있는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고, 이 경우 기업은행의 영업상 비밀이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언론사 포럼의 주제는 대부분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경제·사회의 변화'였다.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도 않은 신기술과 신지식이 아닌 매우 대중적인 주제를 다뤘다. 그런데 이런 포럼에 참석했다는 사실만으로 정말 공공기관의 경영 방향이나 사업 진행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까.  
공공기관들의 '아니면 말고식' 주장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수출입은행은 서면 답변서에서 "포럼 참가 내역이 공개되면 뉴스타파가 직접적인 이득을 취하여 다른 언론사에 비해 경쟁상 유리한 위치에 있게 될 우려가 크다"고 주장했다. 물론 뉴스타파가 어떻게 이득을 얻게 된다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전무했다. 참고로, 뉴스타파는 한 번도 유료 티켓을 파는 포럼을 개최한 적이 없고, 계획도 없다.
예금보험공사는 황당하게도 "언론사 주관 포럼의 등록 참가비 정보는 공개돼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미 인터넷 홈페이지에 포럼 티켓 가격은 다 공개돼 있다"고 설명하고 화면 캡쳐까지 떠서 보여줬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우리나라 공공기관의 민낯이었다. 

명백하지만 씁쓸한 승리

다행히도 행정심판위원회는 뉴스타파의 손을 들어줬다.(관련기사 : "언론사 포럼에 들어간 세금 공개하라"... 뉴스타파, 행정심판 승소) 공공기관들의 주장은 모두 배척됐다. 지난 9월 말 행정심판위원회는 "언론사 포럼의 등록·참가비는 당사자 간 협상과 계약을 통해 정해지기보다는 일정한 금액으로 책정되어 있는 점, 일부 공공기관의 참가비가 공개된다고 하여 언론사의 전체 매출 규모를 추단할 수 없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정보를 공개한다고 해서 공공기관이나 언론사의 사업활동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승소 후에도 공공기관들의 행태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행정심판에서 이겼지만, 정보는 알아서 오지 않았다. 정보를 공개하겠다며 먼저 연락을 해 온 공공기관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 했다. 공공기관 6곳에 일일이 연락해 "언제 어떤 방식(이메일, 우편 등)으로 정보를 줄 건지"를 문의해야 했고, 차일피일 미루는 곳에는 독촉 전화도 해야 했다. 현행법에는 행정심판에서 패소한 쪽이 정보를 주지 않아도 이를 처벌할 조항이 없다. 때문에 승소한 쪽이 오히려 '제발 정보를 빨리 달라'고 읍소해야 한다. 결국 최초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행정심판을 거쳐, 자료를 받기까지 대략 6개월이 걸렸다. "그것도 엄청 빠른 거다"라는 동료 기자의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공공기관들이 '영업 비밀'이라며 꽁꽁 감싸던 자료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언론사 포럼의 홍보 브로슈어와 일정표, 지출 금액이 적힌 내부 결재문서가 전부였다. 정보가 공개되면 자신들의 사업 진행 상황이 노출된다던 기업은행의 내부 문서는 아래와 같았다. 경영·영업상 비밀로 볼 수 있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기업은행의 매일경제신문 '세계지식포럼' 참석 관련 내부 결재문서. 기업은행은 이 자료가 공개되면, 자신들의 사업 진행 상황이 외부에 노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공공기관의 자료도 대동소이했다. 공공기관들은 정말로 이 자료가 영업 비밀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끈질기게 비공개 입장을 고수했던 것일까. 오히려 출입처를 상대로 티켓 장사를 해온 언론사의 이익과 체면을 지켜주려 했던 것은 아닐까.(뉴스타파는 이 허울 뿐인 영업 비밀들을 '언론개혁 대시보드'를 통해 공개했다.
억측이 아니다. 방송통신전파진흥원 관계자는 "언론사들이 정보 비공개를 요청해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정보공개법에는 "공개 청구된 정보가 제3자와 관련이 있다면, 그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제3자가 언론사라면 '들을 수 있다'는 어느새 '들어야 한다'로 변하고 마는 게 현실이다. 아마 행정심판까지 갈 여력이 없는 일반 국민이었다면, 공공기관들은 끝까지 언론사의 눈치를 보며 정보를 숨겼을 것이다. 행정심판·소송에서 이미 공개 사례로 지정된 정보에 대해 계속 비공개를 해도 아무런 법적·행정적 제재가 없는 현 구조에서는 더욱 그렇다. 

정보공개청구는 계속 된다

뉴스타파는 지난해 <언론사의 변종 돈벌이② 약탈적 "포럼 장사"> 보도를 통해 언론사들의 포럼 티켓 강매 실태를 고발했다. 올해 4월에는 코로나19 시대에도 계속되는 언론의 포럼 장사를 다뤘다.
취재 과정에서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비를 털어서라도 포럼 표를 사야 했다. 출입기자가 몇 장은 사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번 행정심판 과정에서도 공공기관들은 언론의 약탈적 행태가 두렵다고 호소했다. 예금보험공사는 "예금보험공사의 포럼 등록·참가비 등이 공개될 경우, 다른 언론사로부터 특정 언론사 수준의 협찬을 요구받을 개연성이 상당하다"고 주장했다. 인사혁신처는 "언론사들이 포럼에 대한 추가 참여 요청을 하거나 집행비용 상승을 압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쟤네 포럼 티켓은 천만 원 어치나 사주고, 왜 우리 꺼는 5백만 원만 사? 티켓 더 사줘"라는 얘기였다. 권력을 남용하는 우리 언론의 낯부끄러운 현실이다. 
최근 언론사 포럼엔 대선 주자들이 단골 손님으로 등장하고 있다. 지난 22일 TV조선 주최 '글로벌 리더스 포럼'에 이재명·윤석열 두 대선 주자가 연설자로 나왔다. 'SBS D 포럼'엔 이재명·윤석열·심상정·안철수 후보가 모두 출연했고, 한국경제신문 주최 '글로벌 인재포럼'에도 이재명·윤석열·심상정 후보가 나왔다. 이들 언론사는 대선 후보의 포럼 참석 사실을 활발히 홍보했고, 대선 후보들은 '흥행 수표'로 활약했다.  
지난 22일 TV조선 주최 글로벌 리더스 포럼에 연설자로 참석한 윤석열·이재명 대선 후보. (출처 : 뉴스TVCHOSUN 유튜브)
올해 '대선 특수'를 누린 수많은 언론사 포럼에 대해서도 뉴스타파는 조만간 정보공개청구를 할 예정이다. 돈벌이에서도, 정보공개에서도 특권은 있을 수 없다. 언론을 감시하는 것도 언론의 역할이자 의무다. 
*언론개혁 대시보드(http://pages.newstapa.org/n1907)    
제작진
연출신동윤
촬영정형민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