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페이퍼스에 불법 'FX마진거래' 조직 다수 발견

2021년 12월 16일 15시 19분

2021년 12월 16일 15시 19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2021년 10월 4일부터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주관으로 전세계 600여 명의 언론인과 함께 <판도라페이퍼스: 조세도피처로 간 한국인들 2021>프로젝트 결과물을 차례로 보도합니다. 국제협업취재팀은 트라이던트 트러스트, 알코갈, 아시아시티 트러스트, 일신회계법인 및 기업컨설팅(홍콩) 등 14개 역외 서비스업체에서 유출된 1190만 건의 문서를 입수해 취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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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페이퍼스 데이터에서는 지난 2010년대 초반부터 FX마진, 즉 외환차익 거래를 빙자한 도박 사이트 등을 운영해온 한국인 사기꾼 일당이 다수 발견됐다.
뉴스타파는 판도라페이퍼스의 조세도피처 고객 정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FX마진거래와 코인 거래 관련 역외 법인 9개를 확인했다. 이 가운데 FX마진거래 관련한 회사는 포스코인, 오션크리스트레이드, 마이라이프엔터프라이즈 등 6개다. 
▲판도라페이퍼스 데이터에 국내 FX마진거래 및 코인 거래 관련 역외법인 9개가 발견됐다. 한국인 12명이 FX마진거래 관련 회사 6개에 이사, 주주 또는 실소유주로 이름을 올렸다.
이 6개 조세도피처 페이퍼컴퍼니에는 모두 12명의 한국인이 이사(Director), 주주 또는 실소유주(Ultimate Beneficial Owner)로 이름을 올렸다. 이들을 그룹으로 나눠보면 5개다. 이들은 2010년부터 2019년 사이에 벨리즈, 영국령버진아일랜드, 세이셸 등 조세도피처에 유령회사를 만들었다. 역외서비스 업체 시티트러스트(Cititrust), SFM, OMC그룹 등이 이들의 법인 설립을 대행했다.
판도라페이퍼스 자료에 따르면, 이들은 조세도피처 당국에 낸 법인설립 신청서에 외환거래업 허가증을 취득하기 위한 목적으로 법인을 설립한다고 기재했다. 페이퍼컴퍼니에 외환거래업 허가를 받아놓고 한국에서 외환차익 거래 투자자를 모을 때 합법적인 해외 외환거래소와 제휴하고 있다고 홍보하기 위한 목적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역외회사 활용 사업 허가 취득 ... 새로운 조세도피처 활용법 

자산가나 법인들이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는 이유는 주로 검은 돈을 은닉하거나, 탈세, 불법 거래를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번 판도라페이퍼스 데이터에는 조세도피처를 악용하는 새로운 유형이 등장한 것이다. 
이들 FX마진거래를 가장한 도박업자들은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사업 허가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역외회사를 설립해 해외 금융당국에서 인가받은 후, 합법적인 사업이라고 국내 투자자를 유혹해 사실상의 인터넷 도박, 유사수신, 사기 등에 활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FX마진거래란 두 개 통화를 동시에 사고 팔아 그 차익을 얻는 일종의 파생상품 투자에 해당한다. 금융감독원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외환차익거래는 아무나 할 수 없고 일정 수준 이상의 자산을 가진 투자자들이 인가된 사전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한 후 금융투자업 인가를 받은 증권회사 또는 선물회사에서만 거래할 수 있다. 국내 거주자가 직접 해외 증권·선물회사를 통해 거래하는 것도 금지돼 있다. 

두 한국인 불법 외환업자, 똑같은 서류로 조세도피처 외환거래업 허가 신청

판도라페이퍼스 데이터에 등장하는 한국인 정헌재 씨는 역외서비스 업체 시티트러스트를 통해 지난 2015년 8월 홍콩에 포스코인 리미티드(FOS COIN LIMITED), 이듬해인 2016년 2월에는 또 다른 조세도피처인 벨리즈에 오션크리스트레이드 리미티드(OCEAN KRIS TRADE LIMITED)라는 법인을 설립했다.  
포스코인은 홍콩달러 1만 달러를 주금으로 한 법인으로, 정 씨가 주식 50%를 소유했다. 2016년 2월 11일 설립된 오션크리스트레이드는 정 씨가 이사이자 지분 전량을 소유한 실소유주인 회사였다. 정 씨는 오션크리스트레이드 설립 일주일만인 2월 18일, 벨리즈 헤리티지국제은행(Heritage International Bank)에 법인계좌 개설 신청서를 접수했다. 이어 미화 10만 달러를 예치한 예금계좌를 개설했다. 계좌 개설 목적은 “벨리즈 당국으로부터 외환거래 라이선스를 받기 위함”이라고 돼있다. 이후 정 씨는 홍콩에 있는 솔포렉스라는 업체를 통해 벨리즈 당국에 라이선스 신청했다. 
뉴스타파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정 씨는 포스코인 지분을 함께 소유했던 채해수 씨 등의 소개로 싱가포르의 한 브로커 회사를 통해서 오션크리스트레이드를 벨리즈에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벨리즈 금융당국에서 외환거래업 허가를 받은 후 1개월 만에 회사를 양도했다고 주장했다. 정 씨는 “회원 유치가 안 됐다. 회원들이 있어야 사고 팔고 수수료 수익도 나는데 회원 유치를 못 했다”라고 말했다.
판도라페이퍼스 데이터 분석 결과, 똑같은 행보를 보인 한국인이 또 나왔다. 역시 역외서비스 업체 시티트러스트를 통해 2015년 1월 1일 벨리즈에 마이라이프엔터프라이즈 리미티드(MY LIFE ENTERPRISE LIMITED)를 설립한 김영진 씨. 김 씨는 이 회사 지분 90%를 소유한 대주주이자 이사였다. 
김 씨도 이 역외 법인 설립 5일 만인 1월 6일 벨리즈 헤리티지국제은행에 법인 계좌를 개설하고 미화 10만 달러를 예치했다. 법인계좌 개설 목적은 역시 벨리즈 외환거래업 라이선스 취득으로 기재돼 있었다. 
김 씨는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지인이 조세도피처 유령회사 설립을 주도했기 때문에 자신은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조세도피처 벨리즈에서 외환거래업 허가 신청을 한 두 한국인과 이들이 세운 두 유령회사. 뉴스타파 취재진은 이들을 살펴보던 중 공통점을 발견했다. 
홍콩에 있는 솔포렉스라는 업체를 통해 각각 조세도피처 벨리즈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후 현지 금융당국에 신청서를 제출했고, 이들이 제출한 신청서와 사업계획서 내용이 완전히 똑같았다는 것이다. 

뉴질랜드 당국 인가 받았다는 솔포렉스, 알고보니 한국인 업자 소유

솔포렉스는 홍콩, 싱가포르 등지에 사무실을 두고 있지만 본사는 뉴질랜드에 있다. 또 뉴질랜드 금융당국의 선물거래업 허가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뉴질랜드 솔포렉스 법인 등기를 떼 보니 이 회사는 유영진이라는 이름의 한국인이 지분 전량을 소유한 회사였다. 회사 홈페이지는 이미 경찰청이 불법 유해 사이트로 지정해 접속이 막혀 있었다. 
취재 결과, 솔포렉스의 실소유주인 유영진 씨는 1조원대 사기 행각으로 큰 논란을 빚은 IDS홀딩스의 전 임원으로 확인됐다. 
유 씨는 IDS홀딩스와 비슷한 수법으로 FX마진거래를 빙자한 다단계 업체 ‘HM월드’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는 HM월드 사건과 관련해 지난 2016년 유사수신, 사기, 자본시장법 위반죄로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유 씨는 HM월드가 뉴질랜드 당국에서 정식으로 인가 받은 선물회사 솔포렉스를 통해 외환거래를 하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점을 내세우며 투자자들을 모집해 3천 명이 넘은 피해자들에게서 1660억 원 가량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았다.

솔포렉스 끼고 조세도피처로 간 불법 FX업자의 정체는?

불법 FX마진거래 업자 유영진 씨의 솔포렉스를 통해 조세도피처 벨리즈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벨리즈 현지 외환거래업 허가를 신청한 업자들은 누구일까. 뉴스타파 취재진은 판결문 검색 등을 통해 이 업자들의 과거 행적을 추적했다. 그 결과 이들이 지난 2010년대 초반부터 외환차익거래, 파생상품 거래 등을 빙자해 유사수신 사기를 저질러온 사실을 확인했다.
2015년 홍콩에 포스코인, 이듬해 벨리즈에 오션크리스트레이드를 설립한 정헌재 씨. 그는 이보다 앞선 2010년 유사수신 사기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당시 정 씨는 국내에 오케이에셋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선물거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직접 선물거래를 해서 3개월마다 높은 이자를 주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정 씨 일당은 대구, 울산, 포항 등에 지점까지 열어 500여 차례에 걸쳐 32억여 원을 모았다. 이들은 결국 ‘유사수신 행위 규제에 대한 법률’과 ‘자본시장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정헌재 씨 일당은 대구, 울산, 포항에 지점을 두고 32억 원을 끌어 모았다.

‘오션크리스트레이드’ 정헌재 씨, 고수익 미끼로 투자자 유혹

정 씨가 받은 처벌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1천만 원 등이다. 정 씨는 사법처리 이후에도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다시 FX 차익거래를 내세운 사업에 나섰다. 또 최근까지도 ‘글로벌포스’라는 이름으로 AI자동거래 등을 내걸고 회원을 모집해 왔다. 정 씨는 조세도피처 페이퍼컴퍼니는 다른 사람에게 넘겼고, 글로벌포스도 더 이상 운영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정헌재 씨와 함께 홍콩에 포스코인을 설립한 채해수 씨도 유사수신 사기 전과가 있었다. 채 씨는 2014년 공범들과 함께 지앤유홀딩스라는 업체를 만들어 FX마진거래를 명목으로 돈을 끌어 모았다.

‘포스코인’ 채해수 씨, 투자자 신뢰 얻기 위해 그럴듯한 해외법인 내세워

채 씨 일당은 “투자금융종합물류 기업인 GIC는 국제금융라이선스를 가진 회사다. 중국에서 600억 원 규모의 FX외환운용을 하고 있다. 지앤유홀딩스도 30억 원을 투자해 20% 수익을 내고 있다. 중국 투자자들은 중국 검사, 판사 등 탑 리더다” 같이 그럴듯한 내용을 내세우며 피해자들을 현혹했다.
▲‘지앤유홀딩스’ 사건 판결문에 외국회사를 내세운 채 씨 일당의 사기수법이 나와 있다.
채 씨 등은 피해자 64명에게서 7억 원 가량을 받아 챙긴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판결에서 ‘GIC와 지앤유홀딩스 모두 실체가 없는 회사’라며 두 회사가 사실상 한 몸이라고 판단했다.
그럴듯한 외국회사를 내세워 투자자의 신뢰를 얻는 것은 유사수신 사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법이다. 조세도피처 등에 법인을 설립하면, 국내에서 실체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FX마진거래를 내세운 유사수신 사건을 여러 차례 다룬 한채영 변호사는 “홍콩 등 외국에 법인을 설립하면 국내에서 (실체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사기를 하는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많이 짜놓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단계 사기 조직, 네트워크 통해 사기 수법 전수

유사수신 사기 사건은 대개 다단계 영업망을 통해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사건마다 체계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본부장’, ‘지점장’, ‘영업사원’ 등의 직급을 갖춘다. 그러다보니 한 사건에서 수법을 배운 사기꾼이 또 다른 사건을 일으키는 일도 많다.
채 씨와 함께 유죄판결을 받은 일당 가운데 두 사람은 이듬해인 2015년 ‘지엠씨랜드’라는 또 다른 유사수신 사기 사건을 일으켰다. 사업 명목은 ‘성인용 도박 게임기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게임장 사업을 하는 것’이었는데, 1년간 110%에 달하는 고수익 이자를 제시하며 피해자들을 현혹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뉴질랜드 등에 솔포렉스를 세운 유영진은 또다른 초대형 유사수신 사기 사건인 IDS 홀딩스 사건에서도 주요 모집책이었다. IDS홀딩스 사건은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총 피해규모가 1조원을 넘겼던 대포적 유사수신 사기사건이다. 하지만 유 씨는 당시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고, 새로운 사기 사건인 ‘HM월드’ 사건에 가담했다.
▲HM월드는 고객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조작된 수익률을 고지했다. 유 씨와 HM월드 일당은 피해자 3천여 명으로부터 1660억 원을 챙겼다.
HM월드는 합법적인 해외 금융회사인 솔포렉스를 통해서 투자한다면서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피해자들은 앱을 다운로드받아 수익률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 앱은 사실 매일 0.2% 내외의 수익이 나는 것처럼 조작된 정보를 보여줬다. 유 씨와 HM월드 일당은 3천 명이 넘는 피해자로부터 1660억 원을 챙겼다.
이 사건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유 씨가 IDS홀딩스의 사기 수법을 솔포렉스의 HM 월드 사건에 그대로 베껴왔다고 지적했다. 특히 뉴스타파 취재 결과 유 씨가 세운 솔포렉스는 단순히 해외업체라는 간판만을 위해 사용되지 않고, 다른 업자들의 역외 회사 설립과 FX 라이선스 허가 신청을 지원하는 역할도 했다. 정헌재 씨의 오션크리스트레이드, 김영진 씨의 마이라이프엔터프라이즈 모두 솔포렉스가 설립을 대행한 회사다. 조세도피처를 이용해 페이퍼컴퍼니를 세우고 현지에서 외환업 허가를 받는 수법이 관련 사기업계에서 공유되고 있다는 뜻이다.
▲판도라페이퍼스 자료에 등장한 국내 유사수신 업자들과 이들이 설립한 회사, 그리고 이들이 연루된 사기사건의 연결망이다. 회사는 네모, 사람은 원으로 표현돼 있다.
현재 오프라인과 온라인 등에는 여전히 FX차익거래를 빙자해 고율의 수익을 보장한다는 광고가 넘쳐나고 있다. FX마진거래를 내건 불법 유사수신 사기 범죄가 크게 늘면서, 금융감독원은 지난 2020년 FX마진거래에 대해 소비자경보 ‘주의’ 단계를 발령했다. 또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당국의 엄정한 단속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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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취재신영철, 오준식
편집김 은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