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는 사주와 전쟁 중

2013년 05월 10일 09시 16분

<앵커 멘트>
한국일보 기자들이 회사가 새로 임명한 편집국장을 불신임하고 사주 장재구 회장을 배임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습니다. 한국일보는 전성기 대는 조중동 이상의 사세를 떨치면서 이른바 기자사관학교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장씨 형제들이 돌아가며 회장을 맡는 동안 거듭된 경영 실패로 위상이 추락했고 지금은 기자들과 편집 간부들까지 사주 일가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장재구를 구속하라. 구속하라. 구속하라. 구속하라.”
“불법비리 부실경영 장재구를 구속하라.”

지난 8일 검찰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입니다. 취재 일선에서 바쁘게 뛰어야 할 기자들이 자신들의 회사 회장을 제대로 수사해 달라고 촉구합니다. 수사대상은 바로 한때 발행부수 1위를 기록하기도 했던 종합일간지 한국일보의 회장 장재구씨였습니다.

[정상원 한국일보 노조위원장]
“자유롭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한국일보를 다시 세우는 그 가치와 철학을 다시 되찾는 첫걸음입니다.”

[강성남 전국언론노조 위원장]
“언론사주로서의 명예욕만 앞세워 한국일보의 미래와 장래에 대해서 진정한 고민이 없고..”

현재 한국일보 회장인 장재구씨는 2002년에 다시 회장에 취임해 10년 넘게 재임하고 있습니다. 창업주인 고 장기영 전 부총리의 처남입니다. 전 회장이었던 4남 장재국씨가 부실경영과 해외도박 등으로 회장직에서 물러나면서 형인 그가 컴백했습니다.

[최진주 한국일보노조 부위원장]
“장재국 회장 때도 다양한 비리나 이런 것들이 있었고, 그때 굉장히 빚이 많이 늘어나서 어려움을 겪었고 그래서 사실은 장재국 회장이 물러나고 장재구 회장이 들어오게 된 계기가 됐었던 거거든요. 근데 채권단과 증자약속을 하고 장재구 회장이 들어오게 된 것이고, 그때가 2002년이에요.”

당시 막대한 부채로 워크아웃에 들어간 한국일보의 회장직을 다시 맡게 된 장재구씨는 미주 한국일보 지분 매각을 통해 500억을 증자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약속을 여러 차례 어긴 끝에 2005년 6월에야 겨우 완납했습니다. 신문사의 경영권을 유지하는 대신 경영 정상화를 위해 200억을 추가 증자 하기로 한 약속은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신문사로서 제대로 된 기사를 생산해 내기 힘든 상황이 지속되자 일선 편집국의 분위기는 폭발 직전, 인내의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이영성 한국일보 편집국장]
“정말로 우리 기자들에게 줘야 하고 당연히 해야 할 모든 것들이 중지된 거예요. 월급 빼놓고는. 그러니까 예를 들어 기자실 운영비 1년 이상 지급을 못해 가지고 기자실에서 퇴거 통보를 받는다든지, 전화료 팩스료까지도 못 낸다든지, 그 다음에 원고료를 1년 반씩 교수들이나 기고자들한테 못 주고 있다든지.”

지금 한국일보는 자체 사옥이 없습니다. 워크아웃 과정에서 옛 사옥이 한일건설에 매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매각 당시의 한국일보 측은 새 건물 상층부 2000평에 입주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이 매각 과정은 장재구 회장이 주도하고 직원들은 회사 측의 말대로 새 사옥에 입주할 날만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입주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장재구 회장은 옛 사옥 매각 상대사인 한일건설로부터 200억을 빌렸는데 그 돈으로 증자에 참여해 대주주가 된 다음 그 빚을 회사의 입주우선권을 팔아 갚습니다. 결국 자신의 지분율을 높이는데 회사 돈을 사용한 셈입니다. 배임 행위에 해당합니다. 장재구 회장은 수 년 간 이 사실을 계속 숨겨왔습니다.

[최진주 한국일보 노조 부위원장]
“증자를 해서 대주주의 지위를 계속 유지를 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돈으로 해야 되는 거잖아요. 그러면 남한테 빌려오더라도 자기 돈으로 갚아야 되는데 중학동 사옥에 관련된 200억 원의 한국일보의 자산을 사실 넘겨주고 그 빚을 샆은 셈을 친 것이니까.”

이 사실을 몰랐던 대다수 한국일보 구성원들은 중학동 새 건물로의 복귀가 무산되자 장재구 회장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동안 한국일보 경영 정상화를 위해 진행됐던 매각 협상에서 장재구 회장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구성원들의 불신을 가중시켰습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 1일 장재구 회장은 자신에게 비판적인 이영성 편집국장을 전격 경질합니다. 이 사건은 기름에 불을 끼얹은 겪이었습니다.

“98.8%의 지지율을 받았습니다.”

기자들은 장회장의 인사 조치를 정면으로 거부하며 압도적으로 이영성 국장을 신임함으로써 장 회장 퇴진 싸움을 본격화 했습니다.

[이영성 한국일보 편집국장]
“여러분은 불의를 거부하고 정의를 택한 것이며 과거가 아닌 미래를 택한 것이며 비겁한 굴종 대신 당당한 명분을 택한 것입니다. 저는 좋은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는 우리의 숭고한 가치에 엄청난 상처를 내고 있는 지금의 파행상황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회사가 합당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노조 또 편집국 여러분들과의 대화를 거부한 채 계속 불법적이고 부당한 자세를 고집한다면 저는 기자 여러분들과 함께 지금처럼 단호하고 완강한 저항과 투쟁의 대열에 설 수 밖에 없음을 밝혀드립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 체제로는 안 된다. 결국 매각협상이 이뤄져서 한 500억 정도 투자되는 이런 구조가 되어야 한국일보가 살아갈 수 있다, 그런 생각에 내가 동의를 한 거예요.”

[최진주 한국일보 노조 부위원장]
“우리가 생각하는 거는 별 게 아니에요. 제대로 된 오로지 회사 걱정. 이번 달에는 월급이 잘 나올까 이런 걱정 말고. 이런 회사 걱정 말고. 그냥 기사만 열심히 썼으면 좋겠다, 라는 것이 저희의 굉장히 단순한 소망이거든요.”

권력만 누리고 책임은 지지 않는 언론 사주는 창업주의 자식이라 하더라도 과연 그 자리를 지킬 자격이 있는 것인가.

한국일보 기자들은 지금 장재구 회장을 향해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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