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 사무관' 부활?

2013년 10월 04일 08시 04분

정부가 현역 또는 전역한지 3년 이하의 예비역 장교를 5급 사무관으로 특채, 박정희 군사정권의 잔재인 유신사무관 제도가 부활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유신 사무관 제도란 군의 사기 진작과 인사 적체를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박정희 유신독재 정권이 1977년부터 1988년까지 사관학교 출신 대위 전역자를 5급 사무관으로 특별 채용한 제도를 일컫는 말이다. 

전라북도는 지난 4일 조직개편을 통해 비상대비 업무 담당 사무관 자리를 신설하고, 예비역 소령급 장교를 특채하기로 했다. 전라북도 외에도 다음 달 중으로 전국 16개 광역시·도에 비상기획관과 비상업무 담당자 신설이 마무리될 전망이다. 1995년 지방자치가 시작되면서 폐지됐던 비상대비 업무가 되살아 난 것.

정부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전쟁과 테러 등 비상사태와 관련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각 광역단체에 군 장교 출신의 비상계획관 또는 비상대비 업무 담당자를 두도록 했다. 비상계획관은 전시업무 수행과 관련되거나 직장민방위대와 을지연습 등의 업무를 맡도록 돼 있다. 이에 대해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군 출신의 5급 사무관 특채는 유신 사무관 제도를 부활시키려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는 군인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겠다며 ‘퇴역군인을 위한 일자리 5만개’를 국정과제로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장기복무 퇴역군인의 전역 연령이 민간기업의 일반적 퇴직 연령보다 높은데다, 20년 이상 복무한 군인들은 퇴직 후 다음 달부터 수백만 원의 군인연금을 바로 받는다는 점에서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1년 퇴역한 대령 395명의 평균 연령은 53세로 이들의 연금수령액은 월 320만원이었다. 원사와 준위 역시 퇴직연령이 53세였고, 이들은 다달이 280만원의 군인연금을 타고 있다. 일반 국민들은 만 65세가 넘어야 쥐꼬리만한 국민연금을 수령하는 것과 비교하면 적잖은 특혜다. 

지난 9월 25일 인천시 재향군인회 교육장. 

나이 지긋한 남녀 수십 명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최근 전역했거나 곧 예편할 군인들입니다. 오랫동안 몸 담았던 군에서 나와 사회에 적응하는 데 두려움이 있을 법한데도 대부분 밝은 표정입니다. 

[강명운 예비역 장교]

“제대 군인한테는 엄청나게 큰 배려고 혜택이고, 그만큼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은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희들은 흡족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기회에 좋은 일자리를 찾아가고 싶습니다.”

이들의 표정이 밝은 것은 올해부터 장기 복무 군인들에 대한 제대 후 취업 지원이 확대됐기 때문입니다. 군인들이 보상받고 존경받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나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여러분의 헌신과 희생이 반드시 존경받고 보상받는 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실제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는 군인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겠다며, 퇴역 군인을 위한 일자리 5만개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새로 늘리는 군 관련 일자리에는 비상대비 업무가 포함돼 있습니다. 비상대비 업무는 전쟁과 테러 등 각종 비상사태에 대비해 을지연습과 민방위훈련 등을 주관하는 일자립니다. 

이 업무는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도입됐다가, 1995년 문민정부 때 폐지됐습니다. 하지만 MB정부 시절인 지난 2010년 서울, 인천, 경기, 강원 등 북한과 맞닿아 있는 광역자치단체 4곳에서 다시 운영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박근혜 정부가 이번에 후방지역에도 군과 경찰 등 안보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가 필요하다며 폐지 18년 만에 전국 18개 시도로 확대한 것입니다.

[김인태 안전행정부 비상대비기획국장]

“국가비상대비 업무라는 것은 일종의 보험이라고도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만약에 이런 사항이 평상시에 대비를 안하고 있다가 북안의 연평도 포격 도발상황처럼 발생한다면 그 피해는...국가에서 만약 제대로 대비를 안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한테 돌아오게 되거든요. 그래서 국가에서는 이런 조직이 필요하고, 평상시 이에 대한 계획도 가지고 있고 훈련도 해야되고...”

그러나 정부가 비상대비 업무를 다시 전국으로 확대 도입하면서 공무원 사회가 술렁이고 있습니다.  

지난 2일 전북도청. 조직개편을 앞두고 분위기가 뒤숭숭합니다. 하위직 공무원들의 승진이 적체돼 있는 상황에서 신설될 5급 사무관 자리에 이미 누군가가 내정됐기 때문입니다. 

[김철모 전북도 행정지원관]

“지자체가 독립적으로 일반 공무원을 채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법에서 안행부에서 시행하는 시험에 합격하는 사람에 채용하는 사람에 한해서 채용하기 때문에 저희가 자리를 마련하면 안행부가 추천을 할 것이고 자원에 대해 임용절차를 진행할 것입니다.”

(단수추천인가요 복수추천인가요?)

“저희가 알기로는 단수로 일고 있습니다.”

(그럼 안행부에서 사실상 정해준 사람을 그대로 받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이미 내정된 것은 다름 아닌 비상업무 담당 사무관 자리입니다.

[전북도 공무원노조 관계자]

“20년 30년 동안 열심히 근무를 해서 밤낮 고생을 해서 일을 해 왔는데 하루 아침에 5급 달고 내려온다고 하면 좀 자괴감이 많이 빠지죠. 그동안 지자체에서 업무라든지 훈련을 담당공무원들이 잘 수행해왔기 때문에 갑자기 군출신 비상대비 담당자를 뽑아서 해야된다는 것은 그것은 좀 아니지 않나.”

특히 정부가 현역 또는 전역한지 3년 미만의 군 장교를 비상대비 업무 담당 사무관으로 특별채용하면서 군사독재 잔재인 ‘유신 사무관’의 부활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유신 사무관이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독재 시절 사관학교 출신 대위를 5급 사무관으로 특채했던 공무원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유신사무관은 1977년부터 1988년까지 모두 700여명이 채용돼 정부 각 부처에서 활동했습니다. 이들은 공무원 조직에 상명하복의 군대식 문화를 전파하는 역할을 했고, 군사정권이 보낸 감시원이란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정종현 전국공마원노조 수석부위원장]

“부정부패라든가 이런 쪽에 많이 벗어나 있는 (유신 사무관이) 있었지만, 그 반대로 군대 문화에 도취되어서 직원들에게 폭력을 휘두른다거나 그 직위를 이용해서 나쁜 짓 하던 그런 유신 사무관들도 꽤 있었습니다. 기존 자리를 뺏어서 온 것이었기 때문에 중하위직 공무원들에게는 사기 저하라든가...”

이 때문에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 당시 민정당 후보는 사관학교 출신자의 공무원 특별채용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고, 실제 이듬해에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26년 만에 유신사무관과 유사한 제도가 부활한 것입니다.

정부는 해마다 수천 명씩 쏟아져 나오는 장기복무 퇴역 군인들을 위해 수만 개의 일자리 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청년 실업과 민간부문 조기 퇴직자를 위한 대책과 비교하면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국방부가 지난 2011년 국회에 제출한 자료입니다. 전체 4200여명의 퇴역 군인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원사 1000여명의 전역 연령은 53세입니다. 준위와 대령 역시 평균 53세에 군복을 벗는 것으로 나옵니다.

승진에서 누락돼 전역하는 일부 대위와 소령급 장교를 제외하면 이른바 사오정이 보편화된 민간 기업보다 훨씬 재직 기간이 깁니다.  

게다가 이들은 퇴역한 다음 달부터 매월 수백만 원의 군인연금을 받습니다. 대령은 평균 320만 원을, 중령과 원사, 준위는 280만 원 안팎의 연금을 다달이 받습니다.

이들은 새로 직장을 얻어도 연금을 계속 받습니다. 예를 들어 예비역 중령이 연봉 4천만 원을 받는 직장에 다니면, 군인연금을 전부 수령해 연소득이 7천만 원을 넘습니다. 연봉이 8천만 원을 받을 경우, 연금 수령액은 월 70만 원 깎일 뿐이어서, 둘을 합치면 사실상 억대 연봉을 받게 됩니다.

일반 국민들은 만 65세가 돼야 쥐꼬리만 한 국민연금을 받고, 그것도 소득이 연 2400만 원을 넘으면 연금수령액이 반토막 나는 것과 비교하면 특혜나 다름없습니다. 

더구나 군인연금은 이미 30년 전에 기금이 고갈돼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고 있습니다. 지난 해 1조 2500억 원에 이어, 올해는 1조 5000억 원의 세금이 지원됩니다.

나라를 위해 오랜 기간 복무한 군인들을 위해 퇴역 후 일자리를 늘려주는 것 자체는 바람직한 일입니다. 하지만 일반 국민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 범위 안에서 합리적으로 추진돼야 것입니다. 뉴스타파 황일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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