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사장이 만들고 대표인 단체에 예산 5억 '셀프 후원'

2021년 06월 09일 16시 00분

 우리나라 공공기관·공기업 350곳이 한해 쓰는 기부·후원금 예산은 1조 원이 넘는다. 소외·취약 계층을 돕는데 쓰인다. 그런데 ‘낙하산’이 이 예산을 제 마음대로 쓴다. 자신의 총선 출마 지역에, 모교에, 자신이 만든 단체에, 심지어 자신의 취미 생활 등으로 흘러간다. 낙하산 권력의 오작동의 폐단이 공공기관 예산의 사유화, 오·남용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대선이 300일 앞으로 다가왔다. 다음 대통령이 누구든 낙하산의 폐해를 답습하게 놔둬선 안 된다. 뉴스타파가 공공기관 개혁 프로젝트 [낙하산이 쏜다]를 시작하는 이유이다.  - 편집자 설명
 이만하면 성공한 인생이다. 1971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27년 동안 공직 생활을 무난하게 마쳤다. 이후 박근혜 새누리당 대표와 인연을 맺고 새 인생을 맞았다. 2010년 박근혜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에 합류했고, 2년 뒤 2012년에는 박근혜 후보 중앙선대위에서 농어촌 공약을 총괄한 '행복한농어촌추진단장'에 발탁됐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면, 입신양명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고 6개월이 지난 2013년 9월, 약속이나 한 듯 그는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에 올랐다. 이상무 7대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이다. 관료 출신으로 유력 정치인의 싱크탱크와 대선 캠프에 합류한 뒤 공공기관 사장에 오른 낙하산의 전형이다.   
▲ 2012년 박근혜 대선 후보 중앙선대위에서 농어촌 공약을 총괄한 이상무 행복한농어촌추진단장
 취임 이후, 이상무 사장은 한국농어촌공사 임직원들에게 '무궁화에 대한 사랑'을 유독 강조했다. 나아가 공사 예산으로 '사단법인 무궁화사랑(이하 무궁화사랑)'이라는 단체에 기관 후원을 하기 시작했다. 2015년 현금 5천만 원씩 두 차례, 2016년 현금 5천만 원씩 두 차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2억 원을 '무궁화사랑'에 기부했다. 이 돈은 이상무 사장 개인이 아닌 농어촌공사의 기부·후원 예산에서 나왔다.  
 그런데 '무궁화사랑'에 대한 농어촌공사의 기부·후원은 이상무 사장 재임 전과 후로 확연하게 갈린다. 2013년 9월 이 전 사장의 취임 전이나 2016년 9월 퇴임 후엔 후원 기록이 전혀 없다. 이 사장의 재임 시절인 2015, 2016년에만 딱 네 번 후원이 이뤄졌다.
▲ 한국농어촌공사의 '사단법인 무궁화사랑' 기부·후원 내역
 취재진이 당시 농어촌공사가 '무궁화사랑'이라는 단체에 후원한 이유를 묻자, 이상무 전 사장은 "농어촌공사에서 무궁화 사랑을 선도적으로 실천하자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마치 나라 사랑이나 보훈, 선양을 담당하는 기관장이 할 법한 답변이었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국농어촌공사의 설립 목적은 정관 1조에 밝힌 대로 이렇다. '공사는 환경 친화적으로 농어촌 정비사업과 농지은행 사업을 시행하고 농업기반시설을 종합 관리하며 농업인의 영농규모 적정화를 촉진함으로써 농업 생산성의 증대 및 농어촌의 경제·사회적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취재진은 되물었다. "무궁화 사랑을 선도하는 것이 농어촌공사의 사업이나 설립 목적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이상무 전 사장은 머뭇거리더니 "딱히 관련은 없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무궁화사랑'이 어떤 단체인지 확인했다. 등기부 등본을 열람해 법인 소재지(서울 용산구 한남동)를 찾아갔다. 해당 주소지에는 '무궁화사랑' 간판도, 사무실도 존재하지 않았다. 전혀 다른 업체가 입주해 있었다. 현재 '무궁화사랑'은 뚜렷한 활동을 하지 않는 상태로 보였다.
 그런데 자료를 검색하던 중, 한 인터넷 카페에서 '무궁화사랑'의 흔적을 찾았다. 2011년 3월 서울에서 열린 '무궁화사랑'의 창립 총회 사진이었다. 사진 속 창립 총회장, 가운데 의장석에 앉아 있는 남성이 눈에 띄었다. 이상무 농어촌공사 사장이었다. 
 확인 결과, '무궁화사랑'은 이 전 사장이 만들고, 초대 상임대표까지 지낸 단체였다. 취재 결과에 대한 확인을 요청하자, 이 전 사장도 인정했다. 결국 이 전 사장은 농어촌공사 낙하산 사장에 오른 뒤, 공사 예산으로 자신이 세운 단체에 '셀프 기부'를 한 것이다. 본인이 인정했듯, "딱히 관련은 없음"에도 결정된 기부였다. 사장의 권한을 이용한 공공기관 예산의 사유화에 해당한다.   
▲ 2011년 '사단법인 무궁화사랑' 창립 총회 현장 사진. 가운데 앉은 이가 이상무 전 사장 
 이상무 사장 재임 시절, 이 같은  '셀프 기부' 혹은 '셀프 후원' 사례가 또 있는지 추가 취재에 들어갔다. 뉴스타파는 한국농어촌공사의 기부·후원 예산 집행 내역 5년치(2015년~2019년)를 샅샅이 조사했다. 이 사장의 주요 이력과 대표 경력을 대조하며 기부·후원금 내역을 살폈다. 
 그 결과, '무궁화사랑' 외에도 3곳을 더 찾아낼 수 있었다. 자신이 지금도 대표로 있는 '세계농정연구원' 1억 원(2회, 2015∼2016년),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으로 오기 직전까지 9년 동안 회장으로 있던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 한국협회' 1억 375만 원(3회, 2015∼2016년), 그리고 2009년부터 2011년까지 2년 동안 회장으로 있던 '한국농식품정보과학회'에 1억 원(1회, 2016년)의 기부·후원 예산을 집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무궁화사랑'에 집행한 네 번의 기부·후원금 2억 원을 합치면, 자신이 설립하거나 대표로 몸 담았던 단체 4곳에 모두 10차례에 걸쳐, 5억 375만 원의 예산을 기부·후원 명목으로 몰아준 것이다. 이 전 사장이 기부 집행을 최종 결재했다. 
▲ 이상무 전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의 ‘셀프 기부·후원’ 예산 집행 내역
 확인해보니, 공교롭게도 이상무 사장이 2016년 9월 퇴임 이후에는 4곳 중 3곳의 기부·후원 예산이 전액 끊겼다. 나머지 1곳도 후원액이 1천만 원, 전보다 1/10 규모로 크게 줄었다. 사장의 권한을 남용해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한 예산을 사유화했다는 비판은 물론 배임 등 위법 소지가 있는 예산 집행이다.
(세금으로 볼 수 있는 공사 예산이 몰아져서 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세요?)
글쎄요. 보기에 따라서 어떻게 보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마침 제가 잘 알던 네트워크가 있으니까, 그것을 이용해서 농어촌공사의 해외 사업 개척에 활용하느라고 했던 것이고...

이상무 전 사장 / 한국농어촌공사
 아무리 낙하산 사장이라도 이런 식의 예산 집행이 가능한 배경은 뭘까. 이상무 전 사장에게 당시 기부·후원 예산의 집행 과정과 절차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답변이 왔다. 한국농어촌공사의 기부·후원 예산은 원래 사장이 마음대로 쓰도록 돼 있는 일종의 '쌈짓돈'이라고 말했다. 
(공사 예산이 나가면 나중에 정산 관리는 하시나요? 이 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기부금은 원래 정산을 하게 돼 있는 것이 아니고, 사장 마음대로 쓰도록 돼 있는 것이었어요.

이상무 전 사장 / 한국농어촌공사
 이 어이없는 말이 사실일까. 농어촌공사의 기부금·후원금 예산도 엄연히 세금으로 조성한 것이다. 그런데 이 예산이 사장 마음대로 쓰는 '쌈짓돈'이라니. 확인해보니, 사실이었다. 한국농어촌공사 측은 "2018년 이전에는 기부·후원처의 결정 기준이 없었고 내부 통제 시스템도 전무했다"고 실토했다. 최소한의 심사나 선정 시스템도 없이, 경영진 임의로 결정했다는 뜻이다.
▲ 한국농어촌공사 외경 
 농어촌공사는 2018년부터 달라졌다고 주장했다. "2018년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 내부 기준을 마련했고, 이후엔 기부·후원 예산 집행이 엄정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특정 경영진이 몸 담았다고 해서 (특정 단체에) 지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공사 측의 '호언장담'은 거짓말이었다. 지금도 기부금·후원금 예산은 낙하산 사장의 전유물이었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이상무 사장에 이어 내려온 또 다른 낙하산 사장은 기부금 예산을 가져다 자신의 취미 활동에 쓴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한국농어촌공사 낙하산 사장이 벌인 기부금 비리의 현장을 다음 편(6월 11일)에서 폭로한다. 
제작진
영상 취재이상찬, 최형석
편집박서영
CG정동우
웹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