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김관진과 이병기 … 그들만의 의혹 해소법

2015년 05월 13일 16시 00분

국방부가 고등학교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교사채용 계획이 갑자기 바뀌고 그 자리에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의 친인척이 채용됐다는 의혹이 보도된 이후 많은 분들이 반응을 보였다.
분노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친인척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는 반응도 있었다. 가장 마음 아팠던 반응은 의혹에 공감하면서도 “그 정도는 있을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보다 더한 비리도 많은데 그 정도가 무슨 대수냐?” 는 것이었다. 어느덧 우리 사회가 비정상에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청탁 안 통했을 거예요. 3성 장군 정도면 모를까?”

한민고의 교육과정이 바뀐 근거를 알아보기 위해 경기도교육청을 취재할 때였다. 교육청 관계자는 교육과정이 바뀌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계속 취재를 하자 단지 교육과정이 바뀐 것 말고 다른 뭔가가 있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자세히는 얘기 못 하고 “교사 채용과정에서 외부 영향력이 미쳤을 수도 있다는 제보가 있어 확인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관계자는 단호하게 말했다. “한민고를 제가 잘 아는데 국방부가 만든 학교라 청탁 같은 건 안 통했을 거예요. 3성 장군 정도가 청탁했다면 모를까?” 나중에 ‘국방장관’이라는 보도를 보고 그 관계자가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다.
취재 과정에서 가장 답답하고 한심스러웠던 것은 학교와 재단 측이었다. 재단 사무국장이 기자를 1시간 기다리게 한 것에 대해 분노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문제가 아니다. 기자는 취재원을 만나기 위해 밤을 새울 수도 있고 며칠을 기다릴 수도 있다. 문제는 그들이 아예 만남 자체를 피했다는 것이다. 왜 그토록 피하려고 했을까?
취재 과정에서 학교와 재단 측에 일관되게 요구했던 것이 2가지이다. 첫째는 직접 만나서 의혹을 들어보고 설명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의혹을 뒷받침하는 몇 가지 보충자료가 있었다. 결정적인 물증은 아니고 일종의 정황증거에 해당하는 자료들이었다. 취재원 보호와 당사자의 명예 때문에 보도에는 내보내지 못했지만, 취재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는 보여준 서류들이다. 교감 선생님과 재단 사무국장에게 “보충자료를 보여드려야 하니 직접 보고 나서 설명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의혹을 부인하면서도 끝까지 직접 만나는 것을 거부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왜, 무슨 근거로 의혹이 제기되느냐가 아니라 어떤 의혹이든 사실이 아니라는 것뿐이었다.
둘째는, 교육과정이 바뀐 근거를 보여달라고 했다. 내부 문서나 회의록도 좋고 다른 어떤 형식이라도 좋다고 했다. 교과과정을 앞당기는 것은 학교의 판단 상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계획을 바꾸면서 이런저런 판단에 인해 바꿨다는 흔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교육과정과 교사채용 계획이 바뀌었다는 결과만 남아있을 뿐, 왜 바뀌었는지 어떤 논의를 거쳐 바뀌었는지 중간과정은 실종된 상태이다. 교육과정을 논의한 자료에 대해 국방부는 학교로 물어보라 했고, 학교는 국방부에 있을 거라고 서로 미뤘다.

학교, 재단 답변 오락가락… 끝내 설득력 있는 해명 못 내놔

관련자들의 답변도 도무지 수긍이 가지 않았다. 교육과정이 바뀐 이유를 교감은 처음에 이렇게 설명했다.
금일철 / 한민고 교감
"와서 보니까 학급을 13학급으로 (편성)해 놨습니다. 대한민국 아무리 찾아봐도 13학급인 학교는 없습니다. 교육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말도 안 되게 계획을 세워놨습니다. 교육과정도 완전 엉터리로 짜여 있었습니다. 거기서 출발해서 중간에 수없이 바뀌었습니다."
개교 이전의 계획을 확인해 보니, 교감의 설명대로 한 학년을 13학급으로 편성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한민고는 개교 때도 13학급이었고, 개교한 지 2년이 된 지금도 한 학년이 13학급으로 편성돼 있다. 13학급이 왜 문제이고, 도대체 무엇을 바꿨다는 것인지… 한마디로 횡설수설이었다.
학교의 공식 답변은 처음부터 교육과정이 변경될 필요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부 문서를 확인한 결과, 교사 채용을 앞두고 해당 과목의 채용 계획이 없다가 불과 2~3개월 사이에 계획이 바뀌었다. 보도에서 자세히 설명한 내용이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재단의 설명은 학교 측 답변과 달랐다. 재단과 학교의 말이 다른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지만, 아무튼 재단 사무국장이 전화로 밝힌 해명은 다음과 같았다.
이재봉 / 한민학원 사무국장
"제2외국어는 중국어 몇 명, 일본어 몇 명 등으로 학생들 수요가 나와야지 교과과정을 편성할 수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걸 2학년으로 옮겼고, 대신 논술과 00 (과목)을 넣었다고 합니다."
그나마 개연성이 있는 답변이었다. 확인해 보니, 사무국장이 밝힌 제2외국어 수요조사의 근거는 ‘2009 개정시기 고등학교 교육과정 편성·운영 규정’에 나와 있는 “제2외국어 과목을 개설할 경우, 2개 이상의 과목을 동시에 개설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강제규정이 아니라 ‘노력해야 한다’는 권고규정일뿐더러, 내용도 사무국장의 설명과는 달랐다.
[신설 사립고 관계자]
"일선 학교에서 수요조사를 한다는 것은 제2외국어 과목은 예를 들어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 3개를 열어놓고 그중에 어떤 것을 할래 이렇게 묻는다는 거죠."
(그러면 1학년부터도 가능한 거네요?)
"그렇죠. 1학년 때부터 제2외국어 하는 학교들도 있습니다."
보다 자세한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교육부에 정보공개를 요청했다. 최근 10년 내 설립된 사립고등학교(특목고, 특성화고 제외)들의 개교 첫해 교육과정을 알려달라고 했다. 공립학교는 기존에 임용된 교사들을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과목 선택에 제약이 있어 신설 사립고등학교로 한정했다. 취합된 학교는 모두 5개였다. 이 중에 2개 학교는 1학년부터 제2외국어를 가르쳤고, 한민고를 포함한 2개 학교는 2학년 때 가르쳤다. 나머지 1개 학교는 1, 2학년 아무 때나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했다.
결국, 학교뿐만 아니라 재단 측도 근거자료는 고사하고 교육과정이 바뀐 경위조차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했다.

재단, 셀프조사 뒤 “문제없어” ... 청와대와 닮은꼴

한민고는 사립학교이다. 지금은 교사 채용시험을 교육청에 위임하기 때문에 투명성이 보장된다. 그러나 해당 교사를 뽑을 때는 재단에서 전적으로 관리할 때였다. 문제가 있었다면, 재단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다. 재단 사무국장에게 교사 채용 과정의 의혹을 전하고, 해당 과목 응시자들의 채점내역을 확인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재단 측은 채점내역을 공개하지 않았다. 대신 다음과 같은 답변을 보내왔다. “확인해보니 교사채용과 관련된 문제는 조금도 없었습니다. 오해인 것 같습니다.”
재단은 의혹을 받고 있는 처지인데, 자신들이 “문제없다”고 하면 문제가 없어지는 것인가? 최근의 한 기사가 떠오른다.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의 기사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성완종리스트와 관련해 이병기 실장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고, 이병기 실장은 “문제없다”고 대답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병기 실장은 이날 국회 운영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비서실장이 성완종 리스트에 거명된 것을 보고 박(근혜) 대통령은 뭐라고 했느냐”는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질문에 “’이름이 났는데 어떻게 된 것이냐’ 정도로 물으셨고 전혀 금전 관계가 없다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이 실장은 이어 “이름이 나왔지만 (박 대통령이) 비서실장은 믿겠다고 하고 끝났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그렇다”고 답했다.

서울신문(5.1)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의혹을 받고 있는 당사자 본인이 “아니다”라고 말하면 아닌 게 되는 그런 세상이 됐는지? 채용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사학재단이 “(우리가) 알아보니 문제없더라”고 하면 그것으로 모든 의혹이 해소되는 건지?
그런 사회라면 지금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이 가장 억울한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완구 전 총리,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등은 하나같이 돈을 받은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지금 내가 성완종 리스트란 올무에 얽혀 있다(홍준표)” “돈을 받은 증거가 있다면 목숨을 내놓겠다(이완구)” “단 1원이라도 받았다면 정계 은퇴를 하겠다(홍문종)”
‘비정상의 정상화’가 아닌 ‘비정상의 고착화’가 정계 고위직뿐만 아니라 온 사회에 만연해 가고 있는 것 같아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