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 섬나라 피지가 지상낙원이라며 신도 400명 가량을 집단 이주시킨 이단교회가 있다. 바로 신옥주 목사 모자가 운영하는 ‘은혜로교회’다. 이 교회는 피지로 간 지 10년도 안 돼 거대한 기업 집단을 일궜다. 그 이면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신도 통제와 폭행, 강제 노동이 있었다. 한국 경찰이 현지까지 가서 강제 수사에 나섰으나 은혜로교회는 피지 정부 실세의 비호 하에 여러 사업체를 운영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뉴스타파는 국제 탐사보도 기관인 ‘조직 범죄와 부패 보도 프로젝트(OCCRP·Organized Crime and Corruption Reporting Project)'와 함께 현지 취재한 신옥주와 은혜로교회의 실상을 2회에 나눠 싣는다.-편집자 주
지난 6월 11일 인천공항 입국장. 피지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던 은혜로교회 간부 나 모(71) 씨가 공항 경찰대에 체포됐다. 그는 같은 교회 신도들을 폭행한 혐의로 지난 2018년 체포영장이 발부돼 인터폴 적색 수배가 내려진 상태였다. 나 씨는 바로 특수상해 등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7월 21일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나 씨는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신도를 감금, 폭행한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됐으나 피지 현지에 계속 체류한 은혜로교회 간부는 목사 신옥주의 아들 김정용과 나 씨를 포함해 모두 6명이다. 이 가운데 한국에서 기소된 사람은 현재까지 나 씨가 유일하다. 이들은 2013년 신옥주 목사와 함께 신도들을 데리고 피지로 집단 이주한 인물이다.
그동안 일부 신도가 교회의 가혹 행위 등을 견디지 못해 한국으로 탈출한 경우는 있었지만. 체포영장이 발부된 폭행 피의자가 자진 입국한 건 처음이다. 나 씨는 경찰 조사에서 몸이 좋지 않아 귀국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피지 은혜로교회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신옥주 목사의 은혜로교회
사진 : 신옥주 목사
은혜로교회는 신옥주 목사가 설립했다. 1958년 생인 그는 2002년 목사 안수를 받은 뒤 2005년부터 3년간 중국 선교사 생활을 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자기 교회를 차리기 시작했다. 2008년 경기도 부천의 개척교회를 거쳐, 2011년 용인에 은혜로교회를 세우고 2013년에는 과천으로 옮겼다.
신옥주의 설교는 일반 기독교 교회 목사와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고 한다.
“처음에 신옥주 목사는 요즘에 없는 그런 목사였어요. 보통 한국 교회에서는 좋은 말만 하고, 책망이 없는데…한 번은 한 장로가 교회 밖에서 장로답지 못한 행동을 했나봐요. 신옥주 목사가 그 장로를 예배 시간에 설교로 강하게 질타를 하는 거예요. 그 분이 얼마나 창피했겠어요.”
2008년부터 신옥주 목사가 세운 교회에 다녔던 전 신도 박찬문 씨의 말이다.
신옥주는 성경이 이른바 ‘방언’으로 기록돼 있다며 그 방언은 통역을 해야 뜻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성경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신도들에게 설파했다. 종말론도 내세웠다. 재앙이 임박했다며 신도들에게 ‘지상낙원’인 피지로 이주해야 한다고 압박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신옥주는 자시의 교리를 널리 알리기 위해 온라인도 적극 활용했다. 외국에 있는 한국 교민에게도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진출해 환자에게 ‘영적’ 처방…피해자는 결국 다리 절단
신옥주는 피지로 이주를 결행하기에 앞서, 지난 2012년 먼저 미국 진출을 꿈꿨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뉴스타파·OCCRP 협업 취재팀은 신옥주와 그 신도들이 연루된 미국 법원 소송 자료를 다수 입수했다. 소장과 판결문에 따르면, 미국에 은혜로교회 지부 설립을 계획한 신옥주는 2012년 9월 몇몇 신도와 함께 미국 뉴욕으로 갔다.
문제는 신 목사의 신도였던 정수진(가명) 씨의 남동생 정상철(가명) 씨를 둘러싸고 생겼다. 미국 교포로 코네티컷 주에 살고 있던 상철 씨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수진 씨는 동생 상철 씨가 은혜로교회에 오면 병이 나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신 목사와 수진 씨는 상철 씨를 뉴욕으로 불러들였다.
그 해 9월 뉴욕에 온 상철 씨는 10월까지 신 목사와 신도들이 거주하는 단체 숙소에 함께 지냈다. 신옥주는 상철 씨에게 처방약 복용을 금지하는 등 상식 밖의 ‘영적’인 처방을 내렸다.
상철 씨의 상태는 악화됐다. 환각, 자해, 섭식장애, 강박 증상 등을 보이기 시작했다. 때로는 정신 이상 증세가 나타나 뉴욕 퀸즈 거리를 방황했고, 밤에 괴성을 지르기도 했다. 상태가 더 심각해지자 신옥주의 감독 하에 신도들은 상철 씨의 손목과 발목, 그리고 무릎을 의자나 침대에 묶었다. 소리를 지르지 못하도록 재갈을 물리는 것처럼 양말을 입에 넣었다.
결박 이후 상철 씨는 오른쪽 다리 통증을 호소했다. 일부 신도들은 그의 다리 색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상철 씨가 묶인 뒤 이틀이 지나서야 신도들은 그를 뉴욕의 한 피부과에 데려갔다. 의사는 당장 종합병원 응급실에 가야한다고 말했다. 상철 씨의 오른쪽 다리는 이미 괴사가 심하게 진행된 상태였다. 결국 상철 씨는 오른쪽 다리를 무릎 위까지 절단해야만 했다.
정상철 씨 측은 2016년 신 목사 등을 상대로 600만 달러 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뉴욕 지방법원은 2018년 9월 신옥주와 은혜로교회에 395만 달러(한화 약 52억)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앞서 지난 2014년, 대한예수장로회(합신)은 이미 은혜로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한 바 있다.
은혜로교회, ‘지상낙원’ 피지로 가다
피지 해변 (사진 : OCCRP)
미국에 뜻대로 정착하지 못한 신옥주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피지공화국이었다. 신 목사의 아들 김정용 씨는 자신이 60개 국을 여행한 끝에 피지라는 나라를 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에 올린 영상에서 “어머니에게 ‘사명’을 받고 외국 곳곳을 여행하기 시작했다”며 “연중 기온이 온화하고 따뜻해서 일년 내내 농사를 지을 수 있고 사람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를 찾기 위해 3년에 걸쳐 가난한 나라들을 다녔다. 피지에 도착한 후에 어머님을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 무렵, 은혜로교회는 더욱 비정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2013년에서 2014년 사이 이 이단교회는 본격적으로 신도들에게 피지로 이주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지가 성경에 나오는 낙토”라는 이유를 들었다.
2019년 7월 선고된 신옥주 사건 1심 판결문에는 당시 그가 신도들을 어떻게 압박해 피지로 이끌고 갔는지 자세하게 나와있다. 판결문에 따르면 신 목사는 “전세계에 기근이 닥칠 것인데 우리는 여기에 있으면 안 된다. 영원히 살 곳을 찾았다. 성경에 등장하는 낙토(pleasant land)가 남태평양의 피지공화국이고, 우리는 그곳에서 영생할 수 있다. 기근과 환난, 재앙, 핵전쟁 등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피지”라는 황당한 얘기를 신도들에게 주입했다.
한 고령의 신도는 이 말을 믿고 재산 1억 2천만 원을 은혜로교회에 냈다. “피지에 가려면 돈을 내야 한다”, “비자를 취득하는 데 3천만 원이 필요하다”는 신옥주의 말에 넘어갔다.
이 사례는 뒤에 신도 사기 사건으로 비화돼 법원에서 거론됐다. 담당 재판부는 “피지공화국의 비자를 취득하는 비용으로 3천만 원이 필요하지 않고, 신옥주 등은 이 돈으로 피해자가 (피지) 비자를 발급받게 할 의사도 없었으며, 오히려 피해자를 피지로 보내더라도 고령의 피해자로 하여금 견딜 수 없는 중노동을 시키고, 타작마당을 하다가, 각종 구실을 만들어 피해자를 즉시 한국으로 내보낼 계획이었다”고 판단했다.
은혜로교회는 이런 일반 신도들과는 달리 피지에서 꼭 필요한 사람들은 사실상 현지로 ‘모셔갔다’. 건축 기술이 있던 전 은혜로교회 신도 김용린 씨가 그런 경우다. 그는 교회 측에서 먼저 피지로 와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협업취재팀은 피지의 법인 등록청에서 은혜로교회가 현지에서 설립한 사업체 관련 문서를 확인해봤다. 그 결과 이 교회가 피지 이주 첫 해인 2013년 6월 처음으로 ‘그레이스 로드 부동산 개발 법인’이라는 업체를 등록한 사실을 확인됐다. 자본금이 250만 피지 달러, 등기이사에는 신옥주 목사와 아들 김정용이 나란히 올라와 있었다.
이 교회가 현지 선교나 단순 이주 목적이 아니라 처음부터 피지에서 사업을 벌이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피지 은혜로교회는 이후에도 문어발처럼 여러 회사를 잇달아 설립한다.(상세한 현지 사업체 내역은 2편 피지 정부, '은혜로교회' 비호 의혹에서 다룬다.)
‘타작마당’이 시작되다
이 무렵 수백 명의 신도가 피지로 속속 입국했다. 최대 400명 가량의 신도들이 피지에서 집단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샌가 피지 은혜로교회에는 야만적인 의식이 생기고 일상화 됐다. 이른바 ‘타작마당’이라는 폭행 행위였다.
“너 나의 타작한 것이여. 나의 마당의 곡식이여.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께 들은 대로 너희에게 고하였노라.” (성경 이사야 21장 10절)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성경 마태복음 3장 12절)
은혜로교회는 황당하게도 이 성경 구절들을 근거로 ‘타작마당’을 곡식이 아니라 신도에게 펼치기 시작했다. 타작으로 알곡과 쭉정이를 가려내는 것처럼, 사람도 타작해 쭉정이를 골라내야 한다는 궤변이었다.
전 신도 박찬문 씨는 “처음에는 타작마당 같은 게 없었다”고 말했다. 김용린 씨 역시 “피지에 가기 전에는 타작마당 같은 게 있었는지 몰랐다”고 했다.
신옥주 목사가 신도들을 구타하는 장면
은혜로교회 신도들은 툭하면 ‘타작’을 당했다. 신옥주 사건 검찰 공소장과 판결문 등에 따르면 신 목사는 자신에게 공손하지 않다, 논에 풀이 많다, 화학비료를 썼다는 등의 이유로 신도들을 구타했다. 피지 생활이 힘들어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신도가 있으면 또 구타했다.
심지어 피지에서는 ‘징계방’도 있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여기서 타작마당이 진행됐다. 구타는 새벽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들도 폭행과 비명 소리에 극심한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은혜로교회의 피지 사업장에서 일한 한 피지 현지인은 취재팀에게 “한국인 직원들이 관리자에게 구타당하는 소리를 매일 듣거나, 봤다. 그들은 울고 나서 다시 일하러 갔다”고 말했다.
은혜로교회 신도 자녀들은 학교도 못 갔다. 신옥주는 ‘학교에 가봤자 배울 게 없다’라고 설교했다. 아이들도 폭행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취재팀이 입수한 영상에는 은혜로교회 신도들이 아이들 뺨을 수차례 때리는 장면이 나온다.
극심한 노동과 반복되는 폭행
“처음에 피지에 갈 때는 무릉도원인 줄 알고 갔어요. 배고프면 망태기 하나 들고 나가면 얼마든지 음식을 채취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했어요. 거기에도 다 주인이 있을 텐데… 그렇게 얘기를 했다고.”
피지에서 2년 가량 지내다가 귀국한 전 신도 박찬문 씨의 말이다.
그러나 피지에서 신도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살인적 노동, 그것도 무임금 노동이었다. 은혜로교회는 피지에서 ‘그레이스 로드’라는 이름의 사업체를 설립해 쌀 농사부터 식당, 미용실 등 온갖 사업을 계획했다. 취재팀이 입수한 ‘그레이스 로드’ 법인 문서에는 이사 직책에 김정용이라는 이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신옥주의 아들이다. 신도들은 김정용인 대표 격인 은혜로교회 사업체에 강제로 노동력을 제공해야 했다.
'그레이스 로드 부동산 개발 회사' 관련 문서. 김정용 씨가 이사로 등재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피지로 이주한 신도들은 정해진 숙소에서 집단 생활을 했다. 전 신도 김용린 씨에 따르면 7~8명 정도가 한 방에서 잤고, 매일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6시에 아침을 먹고 일을 시작했다. 각자 농사, 건축 노동 등에 동원됐다. 저녁 6시에 일이 끝나면 예배를 위해 모였다. 야간 일이 있는 경우에는 밤 10시를 넘기기도 했다. 예배를 마치면 새벽 1시, 그리고 다시 새벽 5시 반에 기상해 일터로 나가는 쳇바퀴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김용린 씨는 건축 분야 책임자로 일하며 2014년부터 2020년까지 6년을 피지에 거주했다.
또 다른 전 은혜로교회 신도 이윤재 씨도 “하루 4~5시간 이상을 잔 적이 없다”고 회상했다. 이 씨는 피지 은혜로교회의 농업 파트에서 부장으로 일했다. 밤에는 매일 보고서를 작성해 김정용 등에게 보고했다.
“피지에서는 잠 자고, 밥 먹고, 화장실 가는 것 외에는 오로지 일만 했어요. 이렇게 하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신옥주의 그 말만 믿고 다들 그렇게 살고 있는 거예요.” 김용린 씨의 말이다.
은혜로교회의 피지 농장 입구 (출처 : OCCRP)
신옥주는 신도들에게 이 모든 것이 “성경에 근거한 것”이라고 주입했다. 피지로 이주한 신도들은 아무리 일을 해도 임금을 받을 수 없었다. 신옥주는 성경 구절을 근거로 신도들에게 재산을 모두 바쳐야 한다고 압박했다.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성경 사도행전 5장)
신도가 재산을 몰래 감추었다가 예수의 제자 베드로에게 들켜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는 내용인데, 신옥주는 신도의 재산을 교회에 헌금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 구절을 읽었다고 한다.
김용린 씨는 취재진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죽지 않으려면 재산을 다 헌금을 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이게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입니까. 신 목사는 신도들에게 ‘재산을 다 헌금해라’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말씀’이라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교회가 여권 보관, 휴대폰 사용도 제한…현지서 사망해도 국내 가족은 몰라
피지에 간 신도들에겐 최소한의 자유도 없었다. 피지 공항에 도착하면 교회는 신도들의 여권을 가져갔다. 추후 비자 발급을 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개인 휴대폰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었다.
“휴대폰을 갖고 있어도 쓰지를 못해요. 그 나라에서는 와이파이 사용에 돈을 내야하는데 그걸 해주지 않아요. (건축부장이었던) 나에겐 휴대폰을 쓰게 해주기도 했는데, 다른 신도들한테는 안 그랬어요.” 김용린 씨의 증언이다.
은혜로교회 전 신도 이윤재 씨
한국에 있는 가족과 연락하기도 쉽지 않았다. 전 신도 이윤재 씨는 피지에 아들이 있는데, “최근 들어서는 애가 산 건지 죽은 건지 연락도 안 된다”고 말했다.
더 끔찍한 것은 현지에서 신도가 사망해도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연락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동생인 오만식 씨가 은혜로교회 신자였던 오모 씨(56세)는 동생의 사망 소식을 수년이 지난 후에야 들었다.
오 씨는 동생이 피지에 간 뒤 초기에는 전화 통화도 하고 메신저도 주고받았다고 한다. 만식 씨는 2015년 피지로 갔다. 곧 딸과 아내도 뒤따랐다. 그러나 이상하게 몇 년 전부터 아무리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보내도 답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연락이 안 된 채로 4년이 흘렀다. 딸과 식사를 하던 중 무심코 연락이 두절된 동생 만식 씨 얘기를 꺼냈다. 딸이 그 자리에서 인터넷 검색을 시작하더니 만식 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찾아냈다. 지난 3월 일이다.
“엄마, 이거 삼촌…” 딸이 찾은 기사에는 피지에서 사망한 은혜로교회 신도 이름이 적혀 있었다. 만식 씨가 피지의 야사와라는 섬에서 수영을 하다가 익사했다는 것이다.
오 씨는 말문이 막혔다. 피지 주재 한국대사관을 통해 간신히 현지에 있는 올케와 연락이 닿았다. 그는 “그냥 그렇게 됐다”며 익사한 만식 씨 시신을 직접 확인하고 부검 현장에 입회했다고 말했다.
오 씨는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대화마다 올케가 누군가에게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메신저도 본인이 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엊그제 울고 불고 통화를 했는데 (다음에) 메시지를 보내니까 ‘진짜 오랜만이다’ 이런 식으로 답이 오는 거예요.”
“거기 가면 죽지도 않는다면서요.” 오 씨는 허망한 동생의 죽음에 기가 막혔다. 취재팀이 확인한 결과, 만식 씨의 시신이 야사와 섬에서 인근 도시인 라우토카로 옮겨질 때까지 은혜로교회 간부 중 그 누구도 사고가 발생한 야사와 섬으로 오지 않았다.
오 씨는 묘비 하나 없이 저세상 사람이 되어버린 동생을 위해 현지 대사관에 사망 신고라도 해달라고 올케에게 간곡히 부탁했지만, 이내 연락이 끊겨버렸다.
외교부는 뉴스타파에 “주피지 한국대사관은 2018년 1월 15일, 주재국 경찰을 통해 오 씨가 14일 12시쯤 해변에서 물놀이 도중 익사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며 “오 씨의 사망 소식을 인지한 즉시 피지에 거주하던 동인의 직계가족인 배우자에게 사망 소식을 알렸다”고 말했다.
한국에 있는 유족에게는 왜 연락을 취하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가장 가까운 직계 가족에게 연락을 취하는 게 원칙”이라고 답했다.
오만식 씨 외에도 피지로 간 은혜로교회 신도 중 일부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혜로교회 피해자 모임 대표를 맡고 있는 이윤재 씨는 “2020년까지 피지 은혜로교회 신도 중 사망한 사람은 모두 16명”이라고 말했다. 현지에서 탈출한 신도들의 전언을 통해 집계한 것으로 정확한 사망자 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취재팀은 피지 은혜로교회 측에 사망자 수를 포함, 신도 폭행과 감금 등 여러 의혹에 대해 서면 질의서를 보냈지만 답변은 오지 않았다.
신옥주 목사 체포
신옥주와 은혜로교회의 범죄 행위는 한국 경찰의 귀에도 들어갔다. 은혜로교회 신도가 무더기로 피지에 거주하기 시작하고 3년 가량 지났을 때, 현지와 인근 남태평양 국가에는 ‘피지에 이상한 한국 사람들이 있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첩보를 입수한 경찰은 은혜로교회의 한국 본거지인 과천 은혜로교회와 신옥주 목사 등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피지에 있던 신옥주가 2018년 7월 베트남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인천공항에서 그를 체포했다. 신 목사는 특수폭행, 특수감금, 아동복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법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현재 수감 중이다. 신옥주와 함께 범행에 가담한 은혜로교회 신도 신모 씨(4년), 장모 씨(2년 6개월), 최모 씨(1년), 안모 씨(4개월) 등에게도 실형이 선고됐다. 이모 씨에게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김정용과 은혜로교회
은혜로교회가 피지에서 운영하는 대형 마트. 출처 : OCCRP
신옥주가 한국에서 체포된 이후 피지의 은혜로교회는 어떻게 됐을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들 김정용 씨가 피지에서 리더 역할을 하며 사업을 꾸준히 확장했다.
은혜로교회가 피지에 정착한 지 10년이 채 안 된 지금, 은혜로교회는 단순한 종교 집단이 아니라 신도의 피와 땀, 목숨을 바탕으로 여러 사업체를 운영하는 기업 집단이 됐다. 피지 수도 수바에서 45분 떨어진 곳에 120만 평의 농장과 함께 피지에서 가장 큰 식당 체인을 거느리고 있다. 은혜로교회가 경영하는 식당, 카페 등은 피지의 주요 도시 쇼핑센터에 입점해있다. 은혜로교회는 현재 케이터링, 화장품 사업에서 치과, 건설업으로까지 영역을 넓혔다. 한국에서 온 이 이단교회는 현재 피지에서 최소 9개의 현지 법인을 세워 운영하고 있다.
은혜로교회가 이렇게 각종 사업을 벌이고 성장한 배후에는 피지 정부의 특혜와 재정 지원이 있었다. 2006년에 쿠데타를 일으킨 뒤 장기집권 중인 조세이아 바이니마라마(Josaia Voreqe Bainimarama) 피지 총리는 여러 차례 은혜로교회의 사업을 공개 지지했다. 바이니마라마 정부의 2인자로 불리는 아이야즈 사예드 카윰(Aiyaz Sayed-Khaiyum) 법무부 장관이 관할하는 피지 국책은행은 외국 기업 대상으로는 매우 이례적으로 은혜로교회 측에 수십억 원의 자금을 대출해준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