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삼성의 위험한 공장 ② 7년 악취의 비밀

2023년 03월 16일 20시 00분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에서 유해 물질을 장기간 무단 방출한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를 통해 드러났다. 뉴스타파는 시민단체 반올림과 함께 삼성전자 박닌공장에서 사용된 화학제품 정보를 토대로 무단 방출된 유해 물질의 구체적인 성분을 추려냈다. 분석 결과, 삼성은 스스로 금지한 유해화학물질을 비롯해 노동자, 주민 등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독성물질이 광범위하게 사용된 사실이 파악됐다. 공장 내부의 노동자들은 배기시설이나 보호구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었다.

뉴스타파-반올림, 삼성전자 해외공장 사용 유해 물질 분석

뉴스타파는 전직 삼성전자 직원에 대한 심층 인터뷰와 자료 분석, 현장 취재를 통해 삼성전자 베트남 박닌공장에서 장기간에 걸친 유해 물질 방출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박닌공장의 악취 문제는 도장, 인쇄 공정 등에서 생긴 유해 물질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삼성 경영진은 이 같은 사실을 보고받고도 최소 7년 넘게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기사 : 글로벌 삼성의 위험한 공장 ① 안전 관리자의 고백 )
뉴스타파는 2016년 삼성 박닌공장 내부에서 사용된 화학 제품 리스트를 입수해 시민단체 반올림과 함께 자료를 분석했다. 2016년 당시까지 지속적으로 무단 방출되고 있었던 유해 물질의 구체적인 위험성을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입수한 자료를 토대로 물질들의 구성 성분을 알아낸 뒤, 각 성분의 유해성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분석이 진행됐다. 삼성의 공장에서 사용된 구체적인 유해 물질 정보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2016년 박닌공장에서 사용한 제품에 포함된 물질의 유해성 (출처 : 반올림)
분석 대상은 박닌공장에서 사용된 27종 제품이었다. 취재진은 입수한 기초 자료, 제보자의 증언, 전문가 조언 등을 종합하여 분석 대상을 정제했다. 이 제품들을 물질 별로 쪼개 총 49종 화학물질 리스트를 만들 수 있었다. 이 물질들을 분석한 결과, △ 사람 또는 동물에게 암과 돌연변이, 생식능력 이상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CMR 물질(발암성(Carcinogenicity), 생식독성(Reproductive toxicity), 생식세포변이원성(Mutagenicity)), △ 단시간의 노출로 두통, 어지럼증, 구토, 혼수 등의 증상을 일으키고 최악의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물질인 급성중독/흡인유해성 물질, △ 1회 노출 혹은 반복 노출에 의해 간, 신장 등 특정 장기에 독성을 일으키거나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주어 어지러움, 실신 등의 영향을 주는 특정 표적장기 독성 물질, △ 시력저하나 피부병 등을 일으킬 수 있고 심하게 노출되면 화상을 입어 영구적으로 손상될 수 있는 눈 피부 독성 물질, △ 하천 등에 유입 시 하천 생태계를 오염시키는 수생환경 유해성 물질 등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 2016년 박닌공장에서 사용한 제품의 유해성 (출처 : 반올림)
이 같은 유해 물질 정보를 다시 제품별로 모아보니 급성중독/흡인 유해성이 포함된 제품은 전체 29개 제품의 70%에 달했다. 이 제품들에 함유된 물질은 두통, 어지럼증, 구토, 혼수 등의 증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증상은 삼성전자 공장에서 일하는 베트남 여성 노동자들을 심층 인터뷰한 2017년 IPEN-CGFED 보고서에서 언급된 바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인터뷰에 참여한 공장 노동자 45명 모두 현기증이 나거나 어지러움을 느낀 적이 있다고 호소한 바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제품은 CMR 물질이 함유된 제품이다. 사람 또는 동물에게 암과 돌연변이, 생식능력 이상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물질로, 엄격한 관리를 필요로 한다. 29개 분석 제품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유해화학물질 사용 실태를 조사해온 이상수 반올림 상임활동가는 이에 대해 “박닌공장이 독성 화학물질을 많이 쓰고, 양으로 따져도 훨씬 더 많을 수 있다”라고 하면서 “반도체 공장에 비해 사용하는 방법은 훨씬 더 위험한 방식으로 쓰고 있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등을 통해 2016년 이후 자신과 협력사의 공장에서 유해 물질 사용을 제한하거나 금지하고 있다고 홍보해왔다. 그런데 이번 박닌공장 화학물질 유해성 조사를 통해 삼성이 스스로 금지한 유해화학물질을 해외공장에서 사용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 삼성전자는 자신이 제한 물질로 지정한 '톨루엔'을 최소 2016년까지 박닌공장에서 세척제로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2022년 현재 화학물질 톨루엔을 세척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뉴스타파 분석에 따르면, 최소 2016년까지 박닌공장에서는 톨루엔이 포함된 제품을 세척제로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삼성이 톨루엔을 처음 사용 제한 물질로 설정한 시점은 확인되지 않았다. 톨루엔 사용 제한 사실이 대외적으로 처음 공개된 것은 2018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였다.
뉴스타파의 분석 자료를 검토한 최상준 가톨릭대 교수는 "톨루엔은 생식독성 물질로 산모에 노출될 경우 태아의 기형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2017년 아이펜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이 유산, 선천 기형으로 인한 임신 중절 등을 겪었다는 내용이 언급되기도 한다.

배기장치는 먹통, 보관 용기는 뚜껑이 열려있어

이러한 유해 물질은 당시 박닌공장 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2013년 삼성전자의 박닌공장 환경안전 조사 보고서 등에 따르면, 당시 공장의 국소배기장치는 곳곳이 먹통인 상태였다. 악취와 함께 유해 물질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상황에서 현장 노동자들이 의지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시설이었다. 
자료에 따르면, 무선 1동, 부품 1동~3동, 청소기동 등의 건물에서는 국소배기시설 설치 부적합 상태였다. 부적합 설치 사실이 밝혀진 곳은 모두 10곳에 이른다. 사실상 도장, 인쇄, 세척 등의 공정 전반에서 발생한 유해 물질들이 노동자들의 신체에 직접 영향을 주고 있었던 상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 2013년 박닌공장 내부 국소배기시설 설치가 부적합한 것으로 확인된 장소
또 제보자 강 씨 등에 따르면, 베트남 현장 노동자 대부분은 보호구 착용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하고 있었다. 특수 처리된 마스크가 필요한 공정에서도 일부 노동자들은 일반 마스크만을 착용한 채 작업하는 식이었다. 2012~2013년 강 씨가 찍은 사진을 보면 일부 공정에서 유기용제 보관 용기의 뚜껑을 연 채 작업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전 세계 사업장에서 환경안전 관련 법규와 규정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라며 “규정 미준수 등이 발생한 경우 즉각 개선 조치를 취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현재 박닌공장에서는 유해 물질이 함유된 화학제품을 주로 사용하는 도장, 인쇄 공정 등이 사라진 상태다. 이 공정은 외부 협력사들에 넘어갔다. 전문가들은 위험 공정의 외주화와 함께 유해 물질에 의한 위험 역시 외부로 확대된 것이 아닌지 우려한다. 뉴스타파는 계속해서 삼성전자 베트남 협력사들의 유해 물질 사용 실태를 보도할 예정이다.
제작진
촬영정형민, 이상찬
편집윤석민, 박예은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