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악마의 편집? 뉴스타파는 편집 자체를 하지 않았다...공기업 사장의 거짓말

2020년 08월 28일 15시 39분

취재를 하다보면 다종다양한 취재원을 만나기 때문에 웬만큼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코레일네트웍스 사장들(전직과 현직)을 취재하면서는 두 번의 위기에 맞닥뜨렸다. 방심하면 안된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참 여러 종류다.

첫 번째 위기

뉴스타파는 지난 7월 31일 코레일의 자회사 코레일네트웍스 강귀섭 사장의 법인카드 부당 사용에 대해 보도했다. 휴일에 집 근처 중국집과 정육점 등에서 법인카드를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가족 여행, 개인 정치 활동 비용도 법인카드로 충당했다. 놀라운 것은 편의점에서 담배를 살 때도 법인카드를 썼다는 점이었다.

취재를 하면서 반론을 듣기 위해 당시 강귀섭 사장을 만나러 갔다. 뜻밖에 강 사장은 ‘너무나 순순히’ 법인카드를 사용했다고 시인했다. (뉴스타파가 법인카드 내역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시인하지 않을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그런데 곧바로 첫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강 사장은 법인카드 낭비와 관련해 세 가지 변명을 내 놨다. 첫째, 개인카드가 없어서 법인카드를 쓸 수밖에 없었다. 둘째, 자녀 앞에서 본인이 ‘성미상’ 결제할 수밖에 없었다. 셋째, 휴가도 업무의 연장으로 생각했다.

▲ 김경래 기자가 코레일네트웍스 취재에서 맞닥뜨린 첫 번째 위기.

인터뷰 화면에는 강 사장의 얼굴만 나갔다. 기자는 뒤통수만 비춰졌다. 당시 내 얼굴은 시쳇말로 ‘멘붕’이었다. 도저히 반박할 방법이 없는 ‘솔직한 답변’ 앞에서 나는 ‘아…’라는 감탄사와 함께 입만 벌리고 있었다. 가장 압권은 정치권 출신 낙하산 사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강 사장이 ‘내가 해봤는데 회사에 좋지 않더라’라고 대답할 때였다. (강귀섭 사장은 정세균 총리의 보좌관 출신이다.)

보도가 나간 뒤 강귀섭 사장은 사표를 제출했고, 해임됐다. 그리고 하석태 교통사업본부장이 신임 사장으로 취임했다. 하 신임사장도 고 박원순 시장의 선거 캠프에서 유세본부장 등을 지낸 정치권 출신이다.

보도 이후 사장 해임됐지만 내부고발자는...

8월 10일 취임한 하석태 사장은 8월 13일 직원 A씨를 사장실로 불렀다. 그리고 다짜고짜 묻는다. “법인카드를 조회한 기록이 나오는데… 내 것도 봤대?” 뉴스타파가 보도한 강귀섭 전임 사장의 법인카드 내역을 왜 조회했냐, 왜 본인의 카드 내역도 뒤졌냐고 다그쳤다.

그리고 4-5분 동안 호통이 이어졌다. ‘이XX’와 같은 욕설은 물론, ‘낯짝도 보기 싫다’는 폭언, ‘집에 가’라는 부당한 지시, ‘수사의뢰’와 ‘징계’같은 협박성 발언이 계속됐다. A씨는 그날 가방을 싸서 집으로 갔다. 이후 휴가를 내고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당시 A씨는 ‘신임 사장이 카드 내역을 누가 유출했는지 색출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들었던 상황이었다. 사장이 A씨를 부르자 만약을 대비해 전체 대화를 녹음했다. 녹음파일의 길이는 총 5분 9초이고 실제 대화는 4분 25초 동안 진행됐다. 뉴스타파는 이 녹음파일을 확보하고 하석태 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여기서 나는 두 번째 위기를 만났다.

두 번째 위기

하 사장에게 “코레일네트웍스에서 제보자를 찾고 있냐”고 물었다. 하 사장은 “전혀 그렇지 않다, 징계할 의사도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건강한 내부 고발자는 회사를 건강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해석의 여지도 있다”고 강변했다. 녹음에서 ‘수사의뢰’와 ‘징계’를 운운했던 건 누구였을까. 나는 누구와 통화를 한 것인가.

보통의 사람은 이 정도 순도 높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곤란하면 아예 말을 하지 않거나, 전체가 아닌 디테일에서 작은 거짓말들을 만들어 내기 마련이다. 녹음 파일을 여러차례 다시 듣고 목소리가 하석태 사장임을 다시 확인했다. A씨에게 당시 상황을 다시 디테일하게 확인하고, 코레일네트웍스 다른 직원에게도 교차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하석태 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이번에는 “A씨를 사장실에 불러서 대화를 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하 사장은 “그 친구가 뉴스타파에 제보한 사람인지 몰랐다”고 대답했다. 진정한 위기였다. 전임 강귀섭 사장과는 또 다른 차원이었다. 녹음 파일에서 뉴스타파를 언급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사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이건 인간에 관한 철학적인 질문이었다. 그 하석태는 하석태인가 하석태가 아닌가.

▲ 김경래 기자가 코레일네트웍스 취재에서 맞닥뜨린 두 번째 위기.

뉴스타파는 8월 21일 내부고발자에 대한 하석태 사장의 폭언을 보도했다. 하석태 사장의 거짓말이 지나치게 노골적이어서 녹취는 전체를 편집없이 실었다. 뉴스타파가 편집으로 왜곡했다는 상투적인 투정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계속되는 거짓말, 그 거짓말을 그대로 받아주는 언론

하 사장은 보도 이후 기자 개인 휴대전화에 아침 7시가 되기 전부터 밤 12시가 넘어서까지 문자메시지를 보내면서 보도를 철회해 달라고 요구했다. 보도에 문제가 없어 철회나 수정은 곤란하지만, 원하신다면 언론중재나 소송을 하시라고 안내했다.

이후 하 사장은 몇몇 인터넷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거나 개인 SNS에 본인의 주장을 쓰고 있다. 당연히 개인의 자유이지만 사실 관계를 왜곡하거나 뉴스타파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부분도 있어 몇 가지 교정을 해 드린다.

한 언론은 하석태 사장의 인터뷰만 듣고, 사실 관계에 대한 확인도 없이 “4분짜리 악의적 편집”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하 사장은 수시로 ‘악마적 편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위에서 말씀 드렸듯이 뉴스타파는 처음부터 녹취 전체를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내부고발자의 음성만 변조한 뒤) 공개했다. 악마도 아니거니와 편집도 하지 않았다.


뉴스타파는 해당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사실 관계를 설명했다. 이 언론사는 곧바로 기사를 삭제했다. 그랬더니 하석태 사장은 본인의 SNS에 뉴스타파가 “언론사들에 읍소하며 기사를 내려달라고 한다”고 썼다. ‘읍소’를 ‘항의’라고 하면 꽤 정확하고 좋은 문장이다.


또 다른 언론도 하석태 사장의 말만 듣고 “뉴스타파, 범법 혐의자만 취재했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올렸다. 내부고발자를 ‘범법 혐의자’라고 부르는 하 사장의 태도도 문제가 있지만 이걸 인터뷰했다고 사실 확인도 없이 그대로 올리는 언론도 분명 문제가 있다. 이 언론사에도 전화를 해서 기사를 수정했다.

코레일네트웍스의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나는 뜻하지 않게 두 번의 위기를 겪었지만 비교적 무사히 극복하고 정상적으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코레일네트웍스 직원들은 어쩌란 말인가. 낙하산들의 천국이기도 한 코레일네트웍스는 지난해 적자를 기록했다.

제작진
취재김경래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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