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시티 리스트' 실체 추적

2021년 03월 18일 19시 48분

2021년 03월 18일 19시 48분

6년 만의 ‘소환’이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공방'이 뜨겁다. 대상은 부산 해운대 엘시티(LCT) 아파트다. 해수욕장 바로 앞에 우뚝 솟은 3개의 고층 빌딩이 위용을 자랑한다. 지상 400미터를 넘어 드론 촬영도 힘들다. 1채 거래 가격은 최소 30억 원을 넘는다. 부산에선 최고급 주거공간이다. 엘시티가 또 다시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다. 
2015년 엘시티(LCT) 분양 과정에서 엘시티 실소유주인 이영복 회장 측이 측근, 지인, 지역경제 대표 등 고위층 인사들에게 분양 특혜를 제공했다는 진정서가 경찰에 들어갔다. 이와 관련 '분양 리스트'가 언론에 보도됐다. 이영복 회장 측은 로비 가능성을 부인한다. “고객 영업용이었다”는 것이다. 부산지방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20여 명의 인력을 투입해 수사 중이다.

부산지방경찰청 ‘LCT 리스트’ 수사...분양 특혜 의혹 규명될까

이른바 엘시티 리스트에는 휴대전화 연락처와 함께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름이 등장한다. 모두 106명이다. 전직 국회의원, 고위 판,검사 출신 변호사, 부산시 출신 고위공직자, 대기업 총수, 중견기업 사주, 부산지역 언론인과 경제단체 대표 등이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리스트에 올라간 인사들이 구체적인 요구한 것으로 보이는 요청사항 문구가 적혀 있다는 점이다. 바로 ‘선택 호실’이란 항목이다. 아파트 분양 관련해, 요청 사항이 비교적 자세히 적혀 있다. 희망하는 평형, 층수, 동호수 라인 등이 나온다.   
뉴스타파는 이 리스트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누가, 어떤 목적으로 작성했는지 취재를 집중했다. 특히 리스트에 적힌 요청 사항과 실제 아파트 입주의 일치 여부에 주목했다. 해당 요청 사항을 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취합해 작성했는지도 파악하려 했다. 이에 따라 리스트의 성격이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엘시티 리스트① 원본 파일 확보…‘누가 왜 만들었나’

뉴스타파는 이 과정에서 ‘엘시티 리스트’ 원본 파일을 입수할 수 있었다. 컴퓨터 엑셀 파일(.xlsx) 형태로 신원 공개를 거부한 제보자에게서 제공받았다. 
▲ 뉴스타파 최근 입수한 엘시티 리스트 원본
엑셀 문서는 회장님 시트(A4 기준 5쪽)와 이창환 부사장(A4 기준 1쪽) 시트로 나뉘어 있다. 여기서 ‘회장님’은 엘시티 시행사인 엘시티PFV의 실소유주 이영복 청안건설 대표를 지칭한다. 이창환 부사장은 이영복 대표의 아들이다. 

‘LCT 리스트’ 작성자는 이영복 일가 수행비서... 분양계약 직전 만들어

엑셀 문서는 2015년 10월 27일 생성됐다. 1차 분양 하루 전날이다. 엑셀은 파일을 만든 사람과 수정한 사람의 정보, 문서 생성 시간, 최종 수정 시간을 자동으로 기록한다. 파일을 만든 사람은 A씨, 최종 수정한 사람은 B씨로 확인된다. A와 B는 엘시티PFV의 직원으로 알려져 있는데 정확한 직위는 알 수 없었다.
취재팀은 해당 파일의 생성 경위를 알고 있는 복수의 제보자를 만났다. 이를 통해 A씨와 B씨의 회사 내 직책을 파악할 수 있었다. A씨는 이영복 대표의 사무비서, B씨는 이창환 부사장의 수행비서로 확인됐다. 이영복 일가의 비서가 문제의 리스트를 작성한 것이다.
▲ 뉴스타파 최근 입수한 엘시티 리스트 원본 엑셀파일의 '속성'
리스트가 작성된 2015년 10월 27일 당시 엘시티PFV는 아파트 분양 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다음날인 10월 28일이 엘시티 분양계약 첫째 날이다. 즉, 엘시티 시행사는 최초 분양계약 하루 전날에 리스트를 만든 것이다. 당첨자 발표는 10월 22일이었다.

“LCT시행사가 미리 분양권 사들여”

뉴스타파와 만난 복수의 제보자는 “엘시티 시행사 측이 분양권 확보를 위해 오랫동안 작업을 진행해왔다”고 주장했다. 유력 인사들의 아파트 분양을 도울 목적으로 시행사 측이 분양권을 대량으로 매집했다는 것이다.
실제 엘시티 리스트에 등장하는 건설업체 사장 송모 씨는 2015년 10월 22일, 엘시티 청약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그는 원하는 아파트를 얻어 입주했다.  송 씨는 “당시 (엘시티) 58평 청약을 했는데 떨어졌다”며 “거기(엘시티PFV)에서 먼저 이야기가 나와서 당첨권을 받았다”고 말했다. 즉, 이영복 회장 측이 먼저 미분양분이 있다며 입주를 제안했다는 것이다.
확인 결과, 송 씨는 2015년 10월 31일 배우자 명의로 65평 규모의 엘시티 아파트를 분양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리스트에 적힌 요청 사항 ‘58평인데 65평이나 75평으로’가 그대로 실현된 셈이다.
엘시티 리스트를 일반 영업용으로 만들었다는 이영복 회장 측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려운 사례는 또 있다. 리스트에 등장하는 고위판사 출신 이기중 변호사가 그 예다. 이 변호사는 송 씨와 같은 날, 엘시티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이 변호사는 2007~2009년까지 부산지방법원장, 2009~2010년까진 부산고등법원장을 지냈다. 이 변호사가 분양받은 아파트는 65평 규모로  ‘로열층’인 50층 구간이다.

“청약 떨어지자 이영복이 먼저 연락”...수상한 내부자 거래도

그런데 이 변호사는 엘시티 시행사의 의결권을 가진 핵심 주주였다. 그는 엘시티 아파트의 청약과 분양이 이뤄진 2015년 엘시티PFV 지분 2%를 갖고 있었다. 또 엘시티PFV의 3대 주주인 (주)에코하우스의 주식 41%를 보유한 최대 주주이기도 했다. 분양 시점을 기준으로 엄연히 ‘내부자’이자 이영복 회장과 특수관계인 이 변호사가 영업 대상인 고객에 포함돼야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이 변호사는 아파트 분양 과정 등에 대한 뉴스타파의 질문에 일체 답변을 거부했다.
▲ 사진 안은 엘시티 회장으로 불린 이영복 청안건설 대표

엘시티 리스트② 25명 소유 확인...‘요청 사항’ 상당수 반영

뉴스타파가 입수한 엘시티 리스트 기준으로 이기중 변호사와 건설업체 사장 송모 씨를 포함해 엘시티 아파트(레지던스 포함) 소유가 확인된 이는 모두 25명이다. 이들 중 12명은 리스트에 적힌 세부 요청사항이 실제 반영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리스트에 있는 조모 씨는 일반 청약으로 당첨돼 아파트를 분양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청약 당첨 외에 아파트를 분양받는 방법은 있다. 당첨권 발표 이후 입주를 포기한 사람의 분양권을 웃돈을 주고 사는 경우다. 하지만 수요가 많은 아파트의 경우 ‘프리미엄’이 붙어 분양권을 구하기는 그리 쉬운 게 아니다. 
▲ 부산 해운대 LCT 전경
2015년 청약 당시 엘시티는 부산 해운대에 세워진 최고급 아파트로 이목을 끌었다. 평당 분양가가 2,700만 원으로 부산에선 가장 비쌌다. 분양에선 15억~27억 원을 줘야 아파트를 얻을 수 있었다. 펜트하우스 등 초고가 물량은 제외한 금액이다. 평범한 시민은 꿈도 꿀 수 없던 '꿈의 아파트'였다. 

2015년 청약 당시 부산 최고가 아파트...인기 매물엔 프리미엄 붙어

올해 들어 아파트 가격은 더 올랐다. 부동산정보 업체인 부동산뱅크 기준 엘시티 시세는 30 ~ 41억 원으로 추산됐다. 최고가인 펜트하우스의 분양가는 68억 원이다. 엘시티 리스트에 등장하는 고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2015년 펜트하우스를 분양받았다. 리스트에는 그의 요구조건이 ‘75평 1개, 58평 1개, 펜트하우스 1개’라고 기재돼 있다.
리스트에 등장하는 골프장 운영업체 S사의 김모 회장도 엘시티 아파트 2채를 회사 명의로 보유하고 있다. 김 회장은 경주에서 대형 골프장을 운영 중이다.  리스트에 적힌 그의 요청사항은 ‘75평 3호, 4호, 2개’다. 
▲ S사가 2015년 구입한 아파트. 리스트의 요구사항에 적힌대로 실제 분양이 이뤄졌다.
김 회장의 S사는 리스트에 적힌 그대로 2015년, 엘시티 75평 3호 라인을 분양받았다. 또 2016년엔 같은 평수 4호라인을 받았다. S사 측은 아파트 매입 경위에 대해 “모른다”고 답했다. 
김 회장처럼 실제 분양받은 아파트와 리스트 속 요청사항이 정확히 일치하는 사례는 또 있다.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중견기업 신모 회장의 경우다. 리스트엔 신 회장의 요구조건이 ‘75평 30층대’라고 기재돼 있다. 리스트에 적힌 대로 신 회장은 부인 이모 씨 명의로 2015년 10월 30층대(34층) 75평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매매가는 22억여 원이다. 신 회장은 아파트 매입 경위를 밝히지 않았다. 
신 회장과 같은 날 75평형 아파트를 구입한 건설사 사주 박모 회장도 리스트에 등장한다. 박 회장의 요구조건도 ‘75평’이었다. 그는 아파트 매입 경위에 대해 “이영복씨는 좋은 사람”이라며 “당시 아파트가 안 팔려서 우리가 도와준 것”이며 특혜 의혹을 부인했다.

리스트 등장 인사 모두 특혜 의혹 부인....65평-75평 아파트 집중 매입

부산고등법원장 출신으로 엘시티 고문을 맡기도 했던 박모 변호사는 기업인이 아니지만 리스트에 올라가 있다. 그는 법원장 퇴임 직후인 2015년 11월, 엘시티 아파트 1채를 본인 명의로 분양받았다. 75평형, 해운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50층대 '오션뷰'였다. 
리스트에 적힌 그의 요구사항은 ‘65평 1개’였다. 즉 요구사항보다 더 넓은 평수를 분양받은 것이다. 하지만 박 변호사는 자신의 법률사무소 직원을 통해 “(아파트를) 매수한 건 맞지만 특혜 분양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며 “이런 질문을 받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 엘시티 리스트에 적힌 유력인사들의 요구사항
이영복 회장 측으로부터 직접 연락을 받은 건설업체 사장 송 씨를 포함해 리스트에 오른 인사들은 모두 특혜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리스트에 적힌 요구사항과 실제 분양 정보가 일치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영복 대표 측에 아파트 분양을 따로 부탁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일부 인사는 부동산업체를 통해 웃돈을 주고 직접 분양권을 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때는 58평, 75평이 인기가 있었고, (내가 입주한) 65평은 미분양이 굉장히 많았어요. 미분양이 있으니까 미분양분 산 것 밖에 없어요.

송OO 건설업체 사장 / 65평 1채 매매
아니, 그때는 그거(엘시티 분양) 아무도 안 했다니까요. 그 비싼 거를 될지, 안 될지도 몰랐고, 또 실제로 처음에는 미달됐어요. 청약이 미달됐다니까. 

최OO 중견기업 회장 / 65평 1채 매매
뭐가 잘못됐습니까? 리스트에 (내 이름이) 있어도 전화하지 마세요. 

정OO 건설업체 회장 / 75평 1채 매매
(특혜 분양) 그런 거 없습니다. 그 때는 부탁하고 할 것도 없고, 그 때는 뭐 소나 개나 다 사면 다 (입주)했습니다.

우OO 건설업체 회장 / 75평 1채 매매
당첨된 사람한테, 그야말로 우리가 이야기하는 피를 주고 샀어요. 

조OO 중견기업 회장 / 75평 1채, 레지던스 매매
이영복 회장이 소개해 준 게 아니고 내가 피(프리미엄) 주고 샀어요. 5천만원 피(프리미엄) 주고 샀어요. 

박OO 전 OO시생활체육회장 / 75평 1채 매매
우리가 처음 청약에는 안 들어갔고, 그 뒤에 (청약)하고 나서 복덕방을 통해 샀어요. (분양 관련) 딱지 사서 들어갔습니다. 

임OO 제조업체 회장 / 75평 1채 매매 
당시에 (분양권) 전매가 되고 했으니까 이 사람 저 사람 사면서 나도 피를 주고 산 사람인데.

이OO 제조업체 회장 / 75평 1채 매매

엘시티 리스트 속 입주자들 ‘프리미엄 아파트’ 평균 10억 이상 시세차익

현재로선 정치권 일각의 주장처럼 엘시티 리스트를 ‘특혜 분양 리스트’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리스트에 들어 있는 기업 회장, 전관 변호사 등 유력 인사들은 대부분 프리미엄이 붙은 30층 이상의 오션뷰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인기 있는 물량이 다수였다. 부동산업체 관계자들은 “1차 청약 당시엔 분양이 잘 됐다”고 말했다. 즉 특혜 여부와는 별개로 좋은 아파트를 분양받은 것이다.
▲ 엘시티 아파트의 최근 실거래가 (국토부 공시 실거래가 참조)
현재 엘시티 아파트는 10억 원 이상 올랐다. 국토교통부 부동산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65평형 기준, 2015년 17억 원이던 엘시티 아파트는 2020년 28억 원에 거래됐다. 또 같은 기간 75평형은 22억 원에서 35억 원으로 거래 가격이 뛰었다. 
결국, 엘시티 리스트가 로비용이었든, 단순한 입주자 확보 차원이었든, 확실한 것은 가진 자, 힘 있는 자일수록 최고급 아파트를 통해 너무나 손쉽게 부를 증식, 축적하고 있다는 현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진정서에 나온 리스트 명단 자체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다.
제작진
취재임선응, 강현석, 박중석
촬영최형석, 이상찬
편집정지성
CG정동우
그래픽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