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수 틀린 윤석열 정부 에너지 정책

2022년 06월 16일 20시 00분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자력 발전을 확대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이에 따라 지난달 3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를 통해 원전을 확대를 골자로 한 기후에너지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신한울 3,4호기의 건설 조속 재개 △운영 허가 만료 원전의 계속 운전 △녹색분류체계에 원전 포함 △화석연료 발전 비중 축소 추진 등이 새 정부가 제시한 '탈'탈원전 정책 주요 내용이다.
이같은 윤석열 정부의 원전 확대 정책은 탄소 중립과 에너지 안보 강화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단기적으로 기여는 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방향 설정이 잘못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정치적 구호만 있을 뿐, 정작 온실가스 배출 감축과 재생에너지 확대 등 핵심 대책은 논의에서 실종됐다는 지적이다.

핵폐기물 저장용량이 꽉 차고 있다

원전 확대를 이야기할 때 떼 놓을 수 없는 전제 조건이 있다. 사용후 핵연료, 즉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 문제다.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윤석열 정부가 추진 중인 원전 확대 정책은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현재 수준으로 원전을 가동할 경우 2031년 한빛 원전을 시작으로 원전 내 폐기물 저장소가 줄줄이 가득 차게 된다. 월성 원전의 경우, 이미 저장소가 포화돼 원전 부지 내에 설치한 임시 저장 시설에 폐기물을 보관하는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언대로 원전 확대 정책을 계속 추진해 나간다면 이같은 핵 폐기물 저장소의 포화 속도는 더 빨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원전별 발전소 내 고준위 핵폐기물 임시 저장 수조 포화 시점 (출처 : 산업통상자원부 2021.12)
윤석열 정부는 순조로운 방폐장 건설을 위해 국무총리 산하에 기구를 설치하겠다고 밝혔지만 실효성은 의문이다. 산자부의 고준위 핵폐기물 건설 로드맵 자료에 따르면,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장이 건설돼 정상 가동되기까지는 부지 선정 이후 약 37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주민의 반발 없이 부지가 선정되는 등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것을 가정할 때 나오는 최소한의 소요 시간이다.
국내 방폐장 부지 선정의 역사는 3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80년대부터 핵폐기물 처리장 부지를 찾았지만 번번이 지역 주민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2003년 부안 사태가 대표적이다. 논의가 시작된 지 약 30년 만인 2015년에서야 경주 중‧저준위 핵폐기물 처리장이 만들어졌다.
이 사업에 관여한 김형준 박사(전 원자력환경공단 소속)는 “정부가 방폐장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어떤 기술 개발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국민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새 정부의 계획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라며 “중저준위 방폐장을 하는데도 30년 가까이 걸렸는데 정부의 로드맵대로 쉽게 가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고준위 핵폐기물 영구처리장 건설 로드맵 (출처 : 산업통상자원부)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 발표를 통해 유럽연합의 사례를 참고해 원자력발전 산업을 국내 녹색분류체계에 포함시키겠다고 밝혔다. 녹색분류체계는 지속가능한 녹색 경제활동을 나누는 분류 체계로, 앞으로는 이 기준에 포함되는지 여부가 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전망이다. 앞서 유럽연합은 지난 2월 원전을 녹색분류체계, 이른바 '그린택소노미'에 포함시킨 바 있다.
새 정부는 유럽연합의 선례를 참고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유럽연합이 원전을 녹색분류체계 포함시키는 전제 조건으로 제시한 사항에 대해서는 말을 꺼내지 않고 있다. 유럽연합은 원전업계가 원자력 발전 가동에 따르는 핵폐기물 처리 문제에 대해 즉각적인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 2050년까지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 운영 계획을 수립할 것, △2025년부터 ‘사고저항성 핵연료’(사고시 핵연료의 위험성을 저감하기 위한 핵연료) 기술을 확보해 사용할 것 등 두 가지 전제 조건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원전업계는 스스로 유럽연합이 제시한 전제 조건을 달성하기 힘들다는 것을 자인하는 실정이다. ‘사고저항성 핵연료’는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기술인데다,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 역시 부지 선정 문제로 추진 중인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 시설 부지가 확보된 곳은 전 세계에서 핀란드, 스웨덴, 프랑스 세 곳뿐이다. 2023년부터 가동될 핀란드 고준위 처분장의 경우, 계획 수립부터 실제 가동까지 무려 40년의 시간이 걸렸다.

원전으로 탄소중립 할 수 있다?

탄소중립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온실가스를 줄이는 일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발전의 상당 부분을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석탄화력발전소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단번에 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해법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대표적인 에너지원인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확대해 석탄화력발전의 비중을 줄여나가는 것이다. 이에 따라 원전 확대를 통해 탄소중립 목표치를 달성하겠다는 것이 윤석열 정부의 구상이다.
새 정부가 목표로 하는 화석연료 발전 비중 감소 폭은 이전 문재인 정부가 설정했던 목표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2030년 41.3%, 윤석열 정부는 2027년 40%대로 화석연료 발전 비중을 줄여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새 정부가 발표한 국정과제 목표치에 따라 원전 발전 비중을 조절했을 경우,  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중은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에너지환경정책 싱크탱크 넥스트 분석에 따르면 새 정부의 국정과제 안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원전 비중은 23.9%에서 37%까지 올라가고,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지난 정부에서 제시한 30%에 한참 못 미치는 17%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발전 비중과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안 반영한 발전 비중 비교 (자료 출처 : 넥스트)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두 에너지원의 비중을 함께 높여가도 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지만, 간단히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다. 발전량 조절 방식의 차이로 인해 두 에너지원의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재생에너지는 바람이 많이 불 때, 햇볕이 좋을 때 전력을 많이 생산할 수 있다. 반면 기상이 좋지 않을 때는 전력 생산량이 줄어든다. 이처럼 전력 생산량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재생에너지를 ‘변동성' 에너지라고 부른다. 원전의 경우, 핵분열을 통해 얻은 열에너지로 발전을 한다. 일정한 양의 발전을 할 수 있는 대신 핵분열을 제어하는 데 시간이 필요해 발전량 조절이 쉽지 않다. 이른바 ‘경직성' 발전이다.
설명을 돕기 위해 두 에너지원이 확대됐을 때 생기는 상황의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전력 수요량이 10이라고 가정해보자. 원전은 경직성 전원이니 일관되게 7만큼 공급을 하고 빠른 시간 내 공급량 조절이 힘들다. 풍력발전은 평소 3만큼 공급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바람이 많이 불어서 공급량이 6까지 올라갔다. 이렇게 되면 공급량은 13이 돼 수요량을 넘어서게 된다. 공급량이 부족해도 문제지만 이 같이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는 상황이 벌어지면 대규모 정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전력 공급 기저에 있는 원자력 발전의 비중이 높아지면 변동성이 강한 재생에너지와 균형을 이루기 어렵다 (이미지 출처 : 에너지전환포럼) 
이를 막기 위해 두 발전원 중 하나는 출력을 의도적으로 줄여야 하는데 경직성 발전인 원전은 기술적으로 이것이 쉽지 않다. 풍력발전의 공급량을 강제로 낮출 수밖에 없는데, 비효율적이기도 하고 민간 전력 생산자 입장에서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게 된다. 이 같은 특성으로 인해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두 발전원의 비중을 함께 높여갈 경우, 안정적이고 유연한 전력 공급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전과 에너지 안보, 그리고 경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발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전 세계에 에너지 안보 문제가 대두됐다. 에너지원의 90%를 해외에 의존하는 국내의 경우 피해가 더 큰 상황이다. 연료비 폭등으로 인해 한국전력은 지난 1분기 7조 8,000억 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치의 적자를 기록했다.
윤석열 정부는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해서도 원전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연료비가 싸기 때문에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충격파를 줄일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원전 확대로 단기적인 효과는 볼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에너지 안보 문제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원전의 연료 역시 해외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원자력이라고 해도 연료로 쓰이는 게 우라늄 아니겠습니까. 우라늄도 다 백 프로 다 수입을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만약에 수입하는 것 때문에 에너지 안보가 위험하다면 원자력도 에너지 안보를 증진시키는 관점에서는 보기 어려운 거고요

유승직 / 전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장
안전의 측면에서 원전은 오히려 위협이 된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 원전은 산지가 많은 동해안에 밀집돼 있다. 지난 3월 울진-삼척 산불이 발생했을 때, 산불이 원전 인근까지 번지면서 원전 출력을 50%로 줄이는 비상조치가 이뤄진 적이 있다. 다행히 산불이 비껴가면서 문제는 생기지 않았지만, 자칫 원전이나 송전선로에 문제가 생겨 대형 재난이나 대규모 정전이 발생할 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기후 위기로 인해 대형 산불의 빈도가 많아지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간과할 문제가 아니다.
지난 3월 영동 지역의 거대한 산불로 울진에 있는 원전 출력을 강제로 줄이는 비상조치가 시행됐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원전 확대 정책이 도움이 안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해 제품을 생산하겠다는 RE100에 동참하겠다는 해외 주요 기업들의  선언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애플이나 테슬라 같은 대형 글로벌 기업들이 RE100에 참여하지 않은 기업의 제품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RE100에 참여하는 기업의 수는 앞으로도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다.
원자력 발전을 이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이 RE100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세계적인 추세에 거슬러 원전을 확대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기업들이 국내 생산한 제품을 해외에 내다 팔기 어려워지게 되는 셈이다. 실제 최근 LG에너지솔루션과 SKC는 재생에너지가 풍부해 RE100 요건을 맞출 수 있는 해외에 공장을 지었다. 다만 SKC는 뉴스타파에 "RE100 요건을 맞추는 건 여러 고려 사항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전력 소비량 상위 30개 기업이 필요로 한 전력량은 102.9TWh,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43.09TWh이다. 여전히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 정부의 원전 확대 정책은 세계 시장의 추세를 거슬러 국내 기업의 수출을 발목 잡을 수도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안일하다고 지적한다. 이미 주요 선진국들이 2035년까지 발전 부문에서 나오는 탄소를 제로로 만들겠다고 선언했지만, 새 정부의 목표치는 여전히 이전 문재인 정부가 수립한 목표치 수준에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탄소 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화석 연료를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일을 우선적인 정책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는 7월, 윤석열 정부는 세부적인 에너지 정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제작진
촬영이상찬 신영철
편집정애주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