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부터 JTBC까지 '사기 전기차' 홍보...언론은 공범인가? 주범인가?

2021년 10월 25일 17시 37분

2017년 7월부터 중국의 한 전기차 업체가 갑자기 방송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불과 석 달 사이에 6개 채널에 전기차 홍보 방송이 나갔습니다. 지상파, 종편, 보도채널까지 가리지 않았습니다. “00 전기차 업체가 기술력이 뛰어나다, 한 번 충전하면 600km를 달릴 수 있다, 곧 한국에 들어온다…” 채널은 많았지만 내용은 대동소이 했습니다. 투자자들이 몰렸습니다. 전기차 업체 대표는 TV조선에서 주는 CEO상을 수상했습니다. 투자자들은 이 업체가 애플과 테슬라처럼 될 것이라는 말에 현혹됐습니다. 재산을 모두 넣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1년이 채 되지 않아 방송에 나왔던 사람들이 구속됐습니다. 사기꾼들이었습니다. “투자는 본인이 책임지는 거다.” 투자자들은 억울했지만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었습니다. 일부 방송사는 서둘러 다시보기를 삭제했습니다. 대다수는 그 정도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뉴스타파 ‘체리 박사’ 위장 취재가 진짜 사기였다면? 

뉴스타파는 지난 8월 교양 프로그램 등을 이용한 방송사들의 '사실상 광고 영업' 실태를 취재하기 위해 가짜 체리 유통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도대체 얼마를 주면 방송을 할 수 있고, 어떤 내용까지 방송이 가능한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SBS의 자회사 채널인 SBS비즈 제작사에 6백만 원을 입금했습니다. 이후 제작은 일사천리였습니다. 협찬금을 입금한 회사의 입맛에 맞게 방송이 만들어졌습니다. 가짜 사례자를 세워 촬영했고, 가짜 전문가의 엉터리 발언도 여과 없이 방송됐습니다. SBS비즈는 방송이 나간 뒤에도 뉴스타파가 사례자를 사칭한 것처럼 왜곡된 해명을 했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SBS비즈에 대해서 법정 제재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 뉴스타파의 위장 취재로 방송사들의 노골적인 협찬 영업 실태가 일부 드러났다. 돈을 지불하면 일방적인 홍보성 방송이 가능했다. 시청자에 대한 고지는 없었다. 
체리 위장 방송은 이렇게 마무리가 됐습니다. 하지만 방송사들이 돈을 받고 홍보성 방송을 하는 관행은 SBS비즈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수많은 광고대행사들은 돈만 주면 홍보성 방송에 내주겠다고 노골적으로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시청자들은 광고인지 정상적인 프로그램인지 모를 방송을 보며 계속 속고 있습니다.
만약에 뉴스타파의 위장 취재가 아니라 진짜 사기꾼들이 돈을 내고 방송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여기 진짜 사례가 있습니다. 

사기꾼들의 가짜 전기차...방송사들은 대대적인 홍보

중국기업인 금일그룹은 2017년 4월부터 한국에서 공격적인 투자를 유치합니다. 30분 충전에 600km를 달리는 ‘꿈의 전기차’를 개발해 곧 양산에 들어간다고 홍보했습니다. 조만간 나스닥에 상장될 예정이며 “나스닥 상장에 성공하지 못할 확률은 내일 아침에 해가 뜨지 않을 확률보다 가능성이 없는 얘기”라고 공언했습니다. 2018년 금일그룹 한국지사 길 모 대표가 투자설명회 때 한 말은 허황된 말이지만 투자자들은 믿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의 모든 옷, 모든 차, 모든 집, 다 바뀔 겁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은 루이비통이나 샤넬, 프라다, 그 외의 브랜드를 입으면 몸에서 아마 피부병이 날 겁니다 앞으로 5천cc 밑의 자동차를 타면 멀미가 날 겁니다. 앞으로 60평짜리 밑의 아파트 살면 아마 숨이 막혀 못 살 겁니다.” 
▲ 허황된 꿈을 부추기는 금일그룹 측의 감언이설을 투자자들은 신뢰했다. 언론의 역할이 컸다고 피해자들은 입을 모았다. 
투자자들이 이렇게 길 대표를 신뢰한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방송사에서 앞다퉈 프로그램을 만들어 금일그룹 전기차가 얼마나 기술력이 높은지 홍보해줬기 때문입니다. 2017년 금일그룹을 다룬 방송은 아래와 같습니다. 
▲ '사기 전기차' 홍보 프로그램을 방영한 방송사들. 주요 방송사들이 망라돼 있다. 
사실상 KBS와 MBC를 제외한 모든 주요 방송사들이 금일그룹의 전기차를 홍보해주는 방송을 한 셈입니다. MBN은 메인뉴스에서 다뤘고, 나머지는 이른바 교양프로그램이었습니다. 
▲ MBN은 메인뉴스에서 금일그룹을 홍보하는 내용을 방송했다. 사기로 판명된 이후에도 정정보도는 없었다. 
금일그룹 한국지사의 대표라고 불리는 길 씨는 위에 언급된 모든 방송에 나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테슬라보다 기술력이 높다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길 씨는 2018년 TV조선에서 주최하는 ‘한국의 영향력있는 CEO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 상은 정부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후원했습니다. 두 부처에 문의를 했더니 이름만 빌려줬을 뿐 수상자 선정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말하더군요. 본인들은 책임이 없다는 말이겠지요. 
▲ 전기차로 사기를 친 길00은 2018년 TV조선 주최 '한국의 영향력 있는 CEO'에 선정됐다. 사진은 조선일보 전면 광고. 
길 씨는 TV조선에서 ‘한국의 영향력있는 CEO’로 선정된 지 석 달 만에 일당 10명과 함께 구속됐습니다. 사기 등의 혐의였습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확인된 투자자만 3613명이고 투자금은 418억 원입니다. 2019년 길 씨 일당은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가짜 전기차 홍보 방송사들은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이 방송사들은 사기꾼들에게 속아 넘어간 피해자였던 걸까요. 방송사 취재진들이 그렇게 순진했던 걸까요. 아니면 전기차에 대해 너무도 무지했던 걸까요. 그것도 아니면 말하지 못 할 사정이 있었던 걸까요. 
금일그룹은 2017년 투자자들과 한국 취재진들을 데리고 중국 현지 공장에 여러 차례 투어를 갑니다. 당시 투어에 참여했던 투자 피해자 하 모 씨는 현지에서 한국 기자들을 “금일그룹의 앞잡이”로 느꼈다고 표현했습니다. 금일그룹이 이끄는 대로 따라다니는 게 전부였다는 겁니다. 취재진들이 금일그룹 간부에게 지나치게 저자세인 것도 의아했습니다. 물론 하 씨의 주관적인 평가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 중국 현지에서 금일그룹을 취재하는 한국 언론들. 법원은 판결문에서 취재비 등을 금일그룹에서 지원했다고 밝혔다. 
뉴스타파는 당시 취재진으로 중국에 갔던 한 피디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굿모닝충청이라는 대전 지역 언론사 소속이었습니다. 피디와 굿모닝충청 송광석 대표의 말을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2017년 금일그룹 한국지사의 이 모 이사가 굿모닝충청에 접근했습니다. 이 이사는 언론사에서 광고 담당으로 일을 했던 경력이 있어서 인맥이 있었습니다. 이 이사는 금일그룹 전기차와 관련된 기사를 실어주면 돈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굿모닝충청은 실제로 6백만 원을 받고 관련 기사를 썼습니다. 굿모닝충청 송광석 대표는 “전국의 모든 언론이 그렇게 영업을 한다.”고 털어놨습니다. “보도자료 써주고, 특집기사 내주고, 광고 받아오는 형태죠. 취재를 하거나 그러지는 않아요. 그냥 보도자료에 있는 그대로 쓸 수밖에 없어요.” 
이후 굿모닝충청 취재팀이 중국 현지에 취재를 갔습니다. 취재에 참여했던 피디는 항공료, 숙박비 등은 모두 금일그룹 측에서 부담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숙박이나 식사 등은 호사스럽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피디는 현장에서 촬영을 하는 도중 투자자들로부터 수상한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저거(공장) 가짜 같다, 그런 얘기가 오고 갔었어요. 쟤네들 쇼한다고 저희(취재진)에게도 그러더라고요. 장갑도 안 끼고 하는 척만 한다고.” 
현지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주행거리 테스트였습니다. 금일그룹 측은 2-30분 충전하고 600km를 달릴 수 있다는 점을 적극 홍보했고, 그걸 시연하는 행사였습니다. 시연 행사도 의문이었다고 피디는 기억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쫓아다니지 않는 이상 어디서 충전을 하고 왔는지는 모르는 거라서… 중간에 (취재진에게) 점심을 먹여요. 그때 충전을 하는지 어떤 지는 모르는 거고…” 피디는 취재를 마치고 돌아와 상황을 데스크에 보고했습니다. 굿모닝충청은 취재했던 영상을 보도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중앙의 대형 방송사들은 모두 관련 내용을 프로그램이나 뉴스로 만들어 방송했습니다. 공인된 실험도 아니었지만 대부분 시연 과정을 확정적으로 보도했고, 금일그룹 측의 일방적인 홍보를 검증없이 방송했습니다. 
▲ 방송사들은 대부분 공인되지도 않은 실험을 확정적으로 방송했다. 적절한 검증 절차는 없었다.  
법원(대전지법 형사11부)은 판결문에 이렇게 썼습니다. “주행시험 당시 참석자들은 충전하는 모습이나 충전 시간을 확인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차량에 부착된 배터리의 모습을 확인시켜달라는 요구도 거절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주행시험에 사용된 차량은 금일그룹이 아닌 리우펑자동차에서 생산된 모델이었다.” 한마디로 취재진이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거나 못했다는 말입니다. 
사기 전기차를 홍보했던 한 방송사 피디는 항변했습니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검증이 실제로는 어렵다는 변명이었습니다. “저희뿐만 아니라 모든 방송사들이 기술에 관한 검증, 그 공장이 사실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팩트 체크가 어렵지 않습니까. 저희가 전기 배터리 관련된 전문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상 언론이든 방송이든 팩트체크가 어렵지 않습니까.”
오랫동안 금일그룹 사기사건을 추적해 온 정유수 부산대 금융대학원 겸임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당시 20분 충전에 600km를 갈 수 있는 전기차가 가능한지는 전문가에게 한번 물어보기만 해도 간단하게 답이 나왔을 거라는 얘기입니다.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충분히 검증이 가능하고, 중국 인터넷을 보면 당시에도 금일그룹과 관련된 의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언론의 최소한의 검증도 없었다는 게 정 교수의 시각입니다. 

일방적인 홍보의 진짜 이유

검증이나 팩트체크가 어려웠다는 방송사 피디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진짜 어려웠던 걸까요. 아니면 할 의지가 없었던 걸까요. 관련해서 법원의 판결문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위와 같은 언론보도는 금일그룹코리아 측에서 언론사에 고액의 취재비용을 지급하고, 중국에 촬영을 간 기자들의 항공료, 숙박비, 식비 등 부대 경비 또한 전액 부담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는 바, 사실은 기사나 교양프로그램의 형식만을 빌린 광고에 불과하다고 봄이 상당하다.” 
법원이 보기에도 방송사들의 보도나 프로그램은 돈을 받고 만든 광고에 불과했다는 겁니다. 당시 중국에서 취재를 했던 기자와 피디들을 접촉했습니다. 한 기자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때 아마 광고를 받았을 겁니다. 협찬인지 광고인지는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그 돈을 아마 받았을 겁니다. 그거(금액이 얼마인지)는 잘 몰라요.” 
한 종편 제작진은 전기차 아이템 자체가 광고를 담당하는 미디어랩에서 내려온 거라고 털어놨습니다. “미디어 렙에서 내려준 아이템이었어요. 회사가 내려준 거고 저희는 이제 본사에서 아이템이 내려오면 진행을 해야 되니까... 다만 협찬이 어떻게 들어오고 협찬인지 아니면 제작비 지원이 있었는지는 (제작진은 잘 몰라요).”
대부분 협찬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금액이 얼마인지는 확인해 줄 수 있다는 취지의 답변이 왔습니다. SBS 같은 경우는 답변을 전혀 하지 않았고, MBN은 모른다는 무책임한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취재 중 채널A는 공식적인 답변을 뉴스타파에 보냈습니다. “협찬금이나 광고금을 받은 바 없으며 사실과 어긋나게 보도할 경우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아무도 정정하지 않았다...책임 지지 않는 언론

2017년 방송사들은 전기차 사기 업체를 대대적으로 홍보했습니다. 협찬금을 받았다고 시인한 곳도 있고 부인한 곳도 있습니다. 어쨌든 취재와 검증은 부실했습니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이 투자를 했습니다. 수 개월 뒤 사기업체는 검찰 수사를 받고 관계자들이 구속됐습니다. 검찰에서 보도자료도 냈습니다.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 뒤 방송사들은 방송을 정정하거나 사과를 했을까요. 놀랍게도 아무도 방송을 정정하지 않았습니다. 뉴스타파가 취재를 위해 전화를 하니 그제서야 알게 됐다고 말하는 방송사들도 있었습니다. 왜 정정하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아무도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습니다. 
지역의 작은 언론사인 굿모닝충청 송광석 대표는 자신들도 돈을 받고 기사를 쓴 부분에 대해서 부끄럽다고 고백했습니다. 굿모닝충청은 금일그룹으로부터 6백만 원을 받았습니다. 다른 방송사들이 얼마를 받았는지는 추측만 할 뿐입니다. “우리가 2백이면 거기(중앙언론사)는 2천일 거다, 이 정도만 생각을 하죠.” 송 대표의 말입니다. 굿모닝충청은 검찰 수사 이후 후속보도를 이어가면서 나름의 정정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다른 언론들은 왜 정정보도나 사과보도를 하지 않을까. 송 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론들이 사과하기 시작하면 매일 사과판이 날 거예요. 그러니까 못 할 겁니다.”
▲ 지역의 작은 언론사도 정정보도를 하면서 오보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다. 하지만 대형 방송사들은 아무런 후속 조치가 없었다. 
주범들은 대부분 구속이 됐지만 잔당들이 남아서 사기 행각을 이어가고 있다는 흔적들이 있습니다. 취재 중 알게 된 사기 피해자는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수억 원을 투자했다고 합니다. 언론들이 적극적으로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정유수 교수는 꼬집었습니다. 
“실컷 광고비 받아서 뉴스라든지 혹은 생활정보방송이라든지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지만, 그 이후 입을 싹 닦고 있잖아요. 그걸 봤던 사람들이 이걸 아직 진짜라고 믿는 거고 잔당들도 지속적으로 사기를 칠 수 있는 거죠.” 
제작진
촬영최형석, 정형민, 오준식
편집정지성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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