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족벌' 플러스] 최후진술 김종철 "걸레 같은 신문방송 보는 게 고문"

2021년 03월 29일 19시 13분

경기도 의왕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수장고에는 오래된 녹음테이프가 보관돼 있습니다. 자유언론을 위해 싸우다 동아일보 사주와 박정희 독재정권에 의해 해직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기자들의 유신법정 최후진술이 담겨 있습니다. 
1978년 11월 동아일보 해직기자 7명이 이른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됐습니다. 주류매체가 보도하지 않은 시국 사건 등을 ‘보도되지 않은 민주 인권 사건 일지’라는 제목으로 정리해 배포했다는 게 혐의였습니다. 이듬해 1월에는 또 다른 동아일보 해직기자 3명이 추가로 구속됐습니다.
이 녹음테이프에는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고 쓴 게 죄가 돼 감옥에 갇힌 ‘진짜 기자’들이 살벌한 유신법정 항소심(1979년  재판에서 피를 토하듯 쏟아낸 최후진술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동아일보 해직기자들의 최후진술은 뉴스타파 영화 ‘족벌-두 신문 이야기’에 일부 들어갔습니다. 
뉴스타파는 이들의 최후진술이 현재 언론상황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고 기록 가치도 높다는 판단 하에 진술 육성과 녹취록을 함께 전문 공개합니다. 
첫 순서로 1979년 7월 25일 서울고등법원 213호 법정에서 몰래 채록된 당시 동아일보 해직기자 김종철의 최후진술 전문입니다.
--이하 녹취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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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 피고인 김종철
김종철: 예
재판장: 1943년 9월 22일생이죠?
김종철: 44년 9월이요. 
저희가 아까 홍 변호인께서 말씀하셨듯이 1심 과정에서 충분한 재판, 또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했다는 판단은 확실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후진술의 기회도 가질 수가 없었고 우리 스스로 거부를 했고 그리고 하지 못했던 변론은 변호인들께서 해주셨는데, 저희들은 어디까지나 개인이 아니고 동아투위라는 단체로서 지금 집단적으로 영어(수감) 생활을 하고 있고 제 항소이유서도 바로 그런 의미에서 작성을 했습니다. 
항소이유서를 토대로 최후진술을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10명이 3개 교도소에 분산 수용이 돼 있는데 해방 이후에 자기 나라에서 자기 나라 사람에게 통치를 당하는 사람으로서 작년(1978년) 10월 24일부터’ 현재까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 중에 연인원 16명이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10명이 구속돼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무리 자기비하를 하거나 자기겸손을 한다고 하더라도 해방 이후에 동족의 치하에서 일어난 한국 언론 사상 최대의 사건임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입장은 바로 한국의 언론이 오늘날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 캄캄한 벽을 뚫고 나오려는 하나의 가냘픈  몸부림이 이와 같은 엄청난 집단적인 투옥이라는 정치적 탄압으로 번진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이번 사건의 의미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항소이유서에서 자세히 밝히고 1심에서 자세한 진술이 있었기 때문에 맥락만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는 1960년에 소위 5.16 쿠데타 이후에 계속 목을 졸리는 신문기자들, 그리고 언론자유를 앞장서서 지켜오는 기자들이 이미 유신체제의 성립 또는 그에서 파생된 파쇼 정권의  강화, 이런 사태하에서 계속 목을 졸려오다가 1974년 10월 24일, ‘도저히 이런 상태에서는 우리는 언론인으로서 존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가해지는 비난의 화살을 더 이상 양심으로 견딜 수 없다’, 이런 입장에서 10.24 자유언론선언을 했고, 그 실천의 당위성으로써 옛날처럼 ‘하나의 휴지로 버려질 선언이 아니라 그것은 실천의 경전이 돼야 된다’ 이런 입장에서 매일 회의를 열어가면서 우리 나름의 어떤, 나중에 야사에나 기록될 그런 입장에서, 피와 땀을 흘리면서 자유언론실천에 열중하다가 당국과 권력기관의 야합, 동아일보의 야합, 이것이 00안보라는 초유의 사태로 발전됐고 거기서 동아일보의 비겁한 사주가 정권과 결탁을 해서 새벽에 우리를 쫓아내고 우리는 바로 동아일보 새벽, 영하의 온도 속에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결성해서 오늘까지 만 4년 반이 걸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일단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동아일보에서 ‘소위 자유언론을 한다, 그리고 없는 자, 빼앗긴 자, 억눌린 자 편에 선다는 자들을 이미 쫓아냈으니까 이 땅에는 이미 그런 기자들은 없어지고 완전히 관제언론만이 확립될 것이다’ 이런 판단을 했겠지만, 우리가 동아일보에서 자유언론을 실천하면서 가지고 있던 이념이라든지 또 우리의 정통성, 이것은 우리를 폭력으로 밖으로 쫓아낸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새벽에 동아일보사 앞에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즉각 결성해가지고 그 당시에는 무려 200명에 가까운 기자, 프로듀서, 아나운서들이 쫓겨났는데 그 사람들이 구성원이 돼가지고 무려 6개월 동안 동아일보 앞에서 시위를 하고 각종 유인물을 돌려서 우리가 정당하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그중에 국가보안법이라든지 국가긴급조치, 심지어 폭력, 별의별 악랄한 죄명들을 다 동원해가지고 수십 명이 연행되거나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거나 아니면 신체적인 가해를 주는 사태가 있었고, 마침내 가족과 생활 전선에서 싸우면서도 우리를 자유언론의 대열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현재 제도언론의 죄악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이 왜 이런 정치적인 탄압으로 발전했는가, 그 배경으로서 현재 언론이 얼마나  추잡한 죄악을 저지르고 있는가, 여기에 대한 사례를 몇 가지만 들지 않을 수가 없겠습니다. 
1977년 여름에 윤보선 전 대통령이 후쿠다 일본 수상, 지금은 수상이 아니겠지만, 그 사람한테 서한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이 서한이 한국 언론이 현실을 보도하지 않는 것뿐 아니라 얼마나 악랄하게 조작하고 있는가 하는 대표적인 예가 되겠습니다. 
당시 윤보선 전 대통령은 후쿠다 수상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일본은 계속 이 (박정희) 정권과 검은 유착 관계를 더해주면서 독재에 파트너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런 역할을 하루빨리 청산을 하고 진정한 선린 우방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의 민주적인 투쟁을 지원할 것이며 이 독재정권을 비호하지 마라’ 이런 내용의 서한인 것을 저도 분명히 읽어봤습니다 원문을.
그러나 그때 동아일보를 비롯한 중앙일보, 조선일보, 한국일보엔 그 기사가 일제히 거의 같은 날 같은 신문에 기사와 칼럼을 동원해가지고 ‘윤보선 씨가 일본에 내정간섭을 요구했다. 이것은 한일합방 직전에 송병준이나 이용구를 비롯한 일진회의 앞잡이들이 한 것과 마찬가지 행위다. 따라서 윤보선 씨는 매국노다’ 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기사를 일제히 실었습니다. 
이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한국의 언론에 어떻게 그런 명백하게 기사가 한꺼번에 나올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원격 조작이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명백한 조작을 받고 있는 기사의 실례가 되겠습니다. 
또 한 가지 예로1978년 소위 함평고구마사건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 사건은 그 당시에 투위 기자들이 생업으로 해서 일하고 있던 월간<대화>지에 자세하게 보도가 됐습니다만, 일간 신문에는 소위 신문 제작의 상식에 속하는 육하원칙을 벗어나고 사건 내용은 없이, 농협 직원들이 부정 결탁해가지고 212억 원이라는 돈을 협작을 했다. 이런 기사가 조그맣게 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국가로부터 수탈을 당한 것입니다. 농협이 거의  국영기업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은 알려져 있기 때문에 고구마를 심으면 다 수매를 해주겠다 해놓고 중간 상인하고 결탁해가지고 농협 직원들이 무려 수백억 원의 돈을 횡령하고, 감사원의 자체 감사 결과 600명 이상의 직원이 파면 내지 징계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제도언론에선 철저히 무시를 했고, 그다음에 소위 유명한 동일방직의 노동조합사건이 있습니다. 
유신헌법도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고 노동자들의 주장은 당연한 것인데 78년 3월에 동일방직에 여성노동자들을 비롯한 전체 노동자가 노조개편대회를 하는데, 사복경찰이 보는 앞에서 회사 측에서 동원한 폭도가 여자 노동자들의 옷에다 똥을 퍼붓고 귀에다 똥물을 퍼붓고 말할 수 없는 수모를 가해가면서 노동조합을 분쇄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호소할 데가 없는 여공들이 3월 20일 ‘한국의 언론이라는 게 도대체 이게 뭐하는 거냐. 이렇게 어마어마한 사건이 있는데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조합 단결권이라든지 단체교섭권 이런 것을 행사하는 데 이런 만행을 가한 것조차 보도를 안 하는가’, 그래서 기독교방송에 올라와가지고 주조정실을 점거하고 이런 방송이나 이런 신문은 있을 필요가 없다고 항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해 노동절에 최규하 국무총리가 장충체육관에서 노동절 기념행사를 하는데 이 여공들이 너무나 억울하고 호소할 데가 없으니까 거기 수십 명이 찾아가가지고 데모를 했습니다. 그래서 국영방송에서 그 행사를 중계하는 게 무려 몇 차례나 끊어졌는데, 이것은 그 사건의 본질이 어쨌든 간에 엄청난 사건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테레비를 보던 국민들은 왜 총리가 중계되는 테레비가 중단이 되느냐? 이 사실만이라도 알아야 되는데 동일방직 사건은 물론, 중계가 중단된 사실조차 보도가 되지 않았고, 또 한 가지 대표적인 것으로 작년에 그 노풍(노풍벼: 당시 정부가 권장한 신품종 벼) 피해사건이라는 게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이 정부가 새마을운동, 충효사상, 농산물증산, 여러 가지  좋은 점도 있고 그런데, 봄이 되면  면장을 비롯한 새마을 지도자들이 못자리를 낸 논에 가서 막 신을 벗고 정부에서 권장하지 않는 품종을 심으면 막 밟아버립니다. 
일단 이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영농권, 농민이 자기가 무슨 씨앗을 뿌리고 무슨 벼를 심고 이런 것은 기본적인 자유에 속할 뿐 아니라, 그건 아마 하느님이 주신 자유겠죠? 그렇게까지 짓밟아놓고, (노풍벼를) 심었는데 가을이 되니까 열매가 맺지 않고 낱알이 다 빈 깍지가 된 걸 알았다는 말입니다 농민들은. 
근데 이 사실이 신문에는 1단도 나지 않고 국회에서 때마침 선거가 다가오니까 신민당이라는 야당에서 일종의 저의 기자적인 안목으로 볼 때, 표 끌기 작전을 위해서 국회에서 농민들의 비위를 맞추는 발언을 합니다. ‘노풍이 이렇게 처참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신문에선 가십난에 약간 나고.,,이건 전체 수백만 농가에 엄청난 사건입니다. 그리고 어떤 나라든지 새 품종이 하나 나올 때는 여러 해에 걸친 검사 결과 이것은 확실한 품종이라 할 때 나오는 건데, 노풍이라는 것은 2, 3년째 시험을 안 했다고 그럽니다. 
이런 끔찍한 사건을 보도를 안 하다가 장덕진 농수산부장관이 이게 너무나 심각한 문제고 자기들로서도 도저히 발을 뺄 수 없는 문제기 때문에 피해조사를 포함해서 다 올렸는데, 관료들의 습성이란 건 뻔하니까 자기 책임 벗어나기 위해서 줄여서 조사한 것만도 엄청난 수에 달합니다. 
그래서 농지세를 면제해준다느니 여러 가지 사탕발림을 했는데 그 뒤에 과연 그런 보상이 됐는지, 당연히 언론이라면 그 사실을 폭로하고 거기에 대한 피해보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 추적을 하고, 그것이 안 된다 하면 집권층이나 집권하고 있는 정권을 당연히 비판을 해야 되고, 그것이 시정됨으로써 나라의 주인인 농민이 자기의 권리를 찾게 되는 건데 이런 노력은 전혀 없었어요.
이렇게 여러 가지 죄악이 있었고, 그래서 저희들은, 사실 저희가 용감한 투사라든지 저희 자신이 정말 역사에 모범이 될 수 있는 아주 훌륭한 투사로서 싸웠던 것이 아니라 우리의 최소한의  어떤 실천의 기준, 이런 것에서 벗어날 수 없는 양심적인 몸부림이 있었고 비록 우리는 동아일보에서 폭력으로 쫓겨났지만 지금 부당해임 무효 확인소송이 대법원 계류 중이기 때문에 법률적인 신분으로서는 언론인입니다. 
그리고 한국 언론이 그런 엄청난 사건을 보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권력의 앞에 서서 권력자가 좋아하는 기사만을 조작까지 하고 있는 비참한 현실을 볼 때 저희로선 도저히 이것을 그대로 묵과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특히 박동선 사건의 보도에서, 이미 미국 신문이나 미국 의회나 일본의 신문에서는 신문 표지에, 이것은 ‘한국 정부의 미 의회 매수기도 사건’이라고 보도되는 것이 기정사실입니다. 
1978년 1월 1일자 뉴욕타임스에 ‘청와대에서 미 의회 매수공작 회의를 해가지고 거기서 매수하기로 합의를 봤다’, 이런 엄청난 기사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신문에는 박동선 개인을 처음에는 무슨 영웅 취급을 하다가 나중에는 똥바가지를 온통 씌워가지고 ‘너 혼자 잘못했다. 한국 정부는 잘못한 거 없다. 김형욱이라는 놈이 괜히 과거에 중앙정보부장 하다가 거기 가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폭로하니까 괜히 이렇게 된 거다’ 
그러니까 한국 언론은 완전히 자기고착증에 빠져가지고 정부에서 나팔을 불라는 대로 붑니다. 그럼 국민들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근원이 어디가 있습니까?
이런 상황을, 우리는 과거에 기자 생활을 했고 아나운서나 프로듀서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런 전문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어서 도저히 매일매일 하루하루 지내는 것이...그런 걸레 같은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서 지내는 것 자체가 고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의 개인적인 고충도, 가족을 이끌고 여러 가지 취직에 봉쇄도 당하고 원천적으로 우리를 다시 언론계에 보내지 않는다는 것이 당국자들의 철저한 방침이고 온갖 방해를 받으면서, 그러나 우리가 언론 자유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독재정치가 싹틀 수 있는 온상이 생기고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방관할 때 우리는 엄연히 언론인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일을 안 할 수가 있느냐? 이것은 필연적인 소명입니다. 
그래서 만족하지는 못하나마 저희들이 작년 1978년 봄에 세미나라든지 우리의 자기 간섭, 관여, 우리가 앞으로 과연 이런 서글픈 풍토에서 이것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되느냐, 이런 반성 끝에 동아투위소식이라고…(녹음 잠깐 끊김) 
...연행해가지고 10명이 구속됐는데, 그러면 제가 좀 전에 말씀드렸듯이 이 사건을 다룬 1심 재판부의 문제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검찰은 검찰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당연히 자기들이 판단해서 범죄로 본다면 떳떳하게 법정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검찰로서는 국가의 입장을 밝히고, 우리는 일단 투위라는 집단이 있으니까 같이 공식적으로 해결하면 좋겠습니다만 그런 신사적인 장을 마련하려고 하지 않고 애초에 과정서부터 이 사건을  2명, 3명 적당하게 쪼개가지고 검사도 따로 정하고 그러면서 따로따로 불러서 재판을 하려고 그러길래 우리는 무슨 죄 위반 대가, 실정법에 어떻게 걸리거나 이런 재판보다도, 우리 재판을 한국 언론의 현 위치에서 우리가 왜 이런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 그런 일련의 맥락 속에서 같은 주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반드시 병합심리를 해달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합의11부재판장이신 한정진 판사께서 그런 주장을 끝내 외면을 하시고 저희들이 끝내 재판을 거부할 기미를 보이니까 마지못해서 병행심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1심에서 재판부 법관기피신청을 내게 된 이유는, 이번 사건은 이게 사실왜곡이냐 어쩌냐 하는 아주 유치한 논쟁 이전에, 한국 언론의 현황이 어떠며 이 사람들의 행동의 당위성은 뭐냐, 그리고 사실 왜곡이라는 것을 전직 언론인의 입장에서 볼 때 어떻게 볼 것이냐. 이런 것을 가리기 위해서 현역 국회의원인 남재희 공화당, 조세형 신민당, 그리고 저희 투위와 같은 길을 걷고 계시는 천관우, 송건호 두 선배, 그리고 안성열 선배, 공소사실에 포함돼 있는 민주국민선언을 썼다고 해서 지금 형집행정지로 다시 구속되신 문익환 목사, 이렇게 6분을 증인으로 신청하자는 거였습니다. 
그러나 재판장께서는 전혀 납득할만한 이유도 없이 저희들에게는 절대로 어떤 형량을 결정한다거나 저희들의 행위의 정당성을 입증해주는 데 필요한 분들의 증언을 들어주지 않고...긴급조치 재판이라는 건 다 이렇게 하는 거 아닙니까? 도저히.. 정통적인 절차를 밟아줄 법관이라면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없는, 상식 밖의 말씀을 하신다면 저희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이. 
재판을 하자고 그 양반이 하신 말씀이 미국에 쉥크 재판이 어떻고, 홈스 판사가 어떻게 말을 했는데 좌익 재판은 어떻고... 
저희 사건하고 좌익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런 모욕적인 말씀을 하실 뿐 아니라 명백히 이 사건에 대한 선입관을 뚜렷이 내보였고, 저희 사건과는 관계없이 크메르 루즈가 왜 망하고 월남이 왜 망하고 비유적으로, 
오늘 구치감에서 저희끼리 그런 얘기까지 했습니다. ‘저분은 어떻게 재판장인데 검사보다 더 지독한 말씀을 참 많이 하신다’ 이런 얘기까지 했는데요. 
무슨 사상을 선동한다는 둥, 저희가 무슨 사상을 가졌는지 재판장께서 아실 리도 없는데 우리나라에서 사상 운운할 때 그것이 어떤 무기로 쓰이며 어떤 식으로 재판이 진행되는가 뻔히 알면서 그런 위험한 발언을 함부로 하시고 그래서 법관이 이렇게 지정을 해서 결국 대법에까지 기각이 돼서 재항고까지 기각이 됐습니다. 
다음으로 미칠 과정에서 그런 부당한 재판 진행, 그리고 아까 홍 변호사께서 말씀하셨듯이 어린애가 봐도 웃을 정도의 그 공소사실. 바로 저에게도 해당됩니다만, 7, 80명이 모여가지고 유인물을 돌리고 그것을 그냥 집어 들고 읽었다는 것이 공소사실 두 가지 중에 하나로 들어있는데, 제가 법률문제 전문가는 아니지만 기소편의주의니 기소법정주의니 모든 편리한 이론을 적용을 해도 이건 국민학교 학생이 봐도 도저히 납득을 할 수가 없고, 이런 식으로 재판을 하기 때문에 긴급조치 재판 자체가 모두 치욕이 돼버리는 측면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아까 이범열 변호사께서 잘 말씀을 하셨는데, 홍 변호사님도 말씀을 하셨는데 이 공소사실 자체의 본 문안으로는 유신헌법이나 긴급조치를 철폐하라는 객관적인 주장은 들어있지 않는 건 명백하다고 저도 봅니다. 
그러나 저희는 이런 것이 공소사실이 돼서 우리가 기소가 돼가지고 재판을 받는 입장에서 저희들의 생각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고, 그 생각을 밝힐 필요는 어디에서 나오느냐 하면 이런 것을 객관적으로 폐지하라는 주장을 안 했다 하더라도 저희가 구속돼가지고 아내나 아들이나 혹은 동지나 친구들과 강제로 격리돼있는 이유는 뭐냐. 바로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미 지금 9개월에 가까운 감금생활 속에서 유신헌법과 긴급조치에 대해서 아주 깊이 생각을 해봤습니다. 정말 저희가 이 주장 중에 만약 객관적으로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를 철폐하려는 주장으로 명백하게 드러나고, 또 사실 우리는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다고 말을 했습니다만, 우리의 행동 중에 한 점이라도 어긋난 점이 있을까를 심각하게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우리를 뭘 잘못해서 여기다 잡아넣고 가족과도 못 만나게 하고 이렇게 하는지 납득이 안 갑니다. 
그 이유를 시간상 간단하게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유신헌법에 대해서 도저히 납득이 안 가는 게, 1심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좋은 구절은 다 있습니다. 전문에 보면 ‘국민생활에 균등한 향상을 기한다’ 그러면 이것은 헌법의 정신을 대표적으로 집약해놓은 건데 균등한 향상은 정말로 기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1977년에 가장 믿을 만한, 재무부에서 낸 자료를 보면, 국회에 국정감사 때도 제출을 했는데, 국민의  재산이나 국민적 부라고 하는 GNP를 분석해놓은 결과를 보면 전체 국민의 0.4%가 GNP의 46.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0.4%라면 15만 명 미만인 인구, 어디 저 수원이나 천안만도 못되는 데 오골오골하게 찬 인구가 전체 국민 생산의 반을 차지한다는 겁니다. 
그럼 이 나라가 과연 균등한 향상을 기하는 그런 나라냐? 그러면 맨날 교도소에서 (라디오) 틀어주면 뭐 ‘좋아졌네 좋아졌네’ 하는데 여기 교도관들 잘 아시겠지만 이분들 밤새도록 근무해야 300원 줍니다, 300원. 
밤새도록 8시간 근무하고 300원, 300원이 어디 돈입니까? 그러면 저런 분이나 우리같이 이런 정치범들이나 맨날 마이크에서 나오는 노래 듣고 이건 어떤 최면술, 사실 재무부가 제시하는 숫자도 그렇게 돼 있는데 ‘잘 살게 돼있다. 국민총화를 하면 안보가 된다’, 이런 논리가 유신헌법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유신헌법에 가장 독소조항인 53조 긴급조치를 발동한다는 권한. 이것은 천재지변 아니면 내정이익에 무슨 문제가 있으면 대통령 자의로,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밖에 없는 겁니다. 대통령이 선포하면 그 자문이라든지 청와대에 관련된 관료들이 있겠지만, 언제나 선포할 수 있고 긴급조치도 아니고 이미 75년 5월 13일 날 선포해서 4년 반이 지났는데 항상 긴급한 사태로,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참 살기가 좋아졌다’ 이런 모순된 주장, 그것이 바로 유신헌법의 또 한 가지 권한이라고 봅니다. 
세계 어떤 헌정 사상 그런 법률이 있는 것은 저희로서는 알 수가 없고, 또 한 가지 아까 변호사께서 말씀하신 국회해산. 헌법이면 해산을 해야 된다는 이유가 있어야 될 텐데 그냥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할 수 있다’ 권리만 준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통일주체국민회의. 
유신헌법도 그럴 뿐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이 1972년 10월 17일에 대통령 특별선언이라는 걸 해가지고 국회를 불법적으로 해산한 근거가 조국의 평화적인 통일입니다. 
그리고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것은 조국의 평화적인 통일을 이룩하는 주체가 된다는 겁니다. 그러나 (대의원이) 이천 몇 명인데 관제언론에 보도되는 걸 보더라도 이 사람들이 뭐냐, 양조장 주인 아니면 시골에서 관과 밀접하게 결탁돼있는 사람들, 심지어 1억 원에 가까운 선거비용까지 쓴다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과연 통일을 하려고 1억 원을 쓰겠습니까? 
그건 아니고 거기에서 나오는 반대급부, 자기가 통일의 주체가 됨으로서 세금 문제라든지 기타 여러 가지 시골에서 국회의원과 같은 자리에 앉는 특전이라든지 양조장이나 뭐를 하면서 누리는 이런 거, 큰 재벌들도 많고, 이런 사람들을 통일주체라고 뽑아놔서 하는 일은 대통령 선거하고 무슨 산업 시찰 다니는 두 가지가 중요한 행사입니다. 
유신헌법에서 통일을 내세우면서 ‘대통령은 실제 임무가 조국의 평화적인 통일을 이루며 국가를 보위한다’, 그런 사람들을 모아놓고 통일을 한다는 게 기껏 행사가 대통령 뽑는 거, 그것도 다른 사람의 출마는 제도적으로 관례적으로 철저히 봉쇄돼있고, 심지어 출마한다 그러면 어디 가서 어떻게 다 하는 건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렇게 모아놓고는 나오는 건 99.6%. 
그러면 이것이 과연 통일을 하기 위한 유신헌법이며 유신체제이며 통일을 하기 위한 통일주체국민회의라고 믿을 사람은 아무 사람도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헌법을 세 살 먹은 아이라도 반대하고 거기에 대한 저항을 벌일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그 안에 긴급조치라는 독소조항은 당연히 들어가게 돼있습니다. 
그래서 아까 이범열 변호사께서 말씀하셨듯이 유신체제가 선포된 뒤에 그 삼엄하고 무시무시하던 상황에서 1973년 10월 2일에 서울대학교 문리대학생 200명이 아주 용감하게 정말 엄청난 용기를 가지고 데모를 시작한 이래 조금씩 조금씩 이쪽에서도 저항하는 목소리가 번져가고 그것이 드디어 기자들의 양심을 자극해가지고 엄청난 민중의 운동으로 발전되고, 한때는 긴급조치 1호, 4호를 통해서 일시적으로 탄압이 가해지는 듯했지만 다시  불타오르지 않을 수 없는 바로 기본적인 원인이 거기에 있는 겁니다.
그러나 헌법이나 그런 조치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그런 걸 납득하고 그런 체제에서 계속  최면술에 걸려서 그냥 우왕좌왕한다는 것은 인간의 양심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저항하고, 저항하는 목소리 때문에 또 긴급조치가 필요하게 되고, 그래서 그 저항이 거세지니까 이제는 긴급조치는 거기에 맞설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린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 여당권에서도 그런 걸 알았는지, 아니면 외세와의 작용 속에서 필연적으로 해제하지 않으면 안 될 묵계가 있는지 해제하자는 귀띔을 하고 000를 날린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만, 이런  허구를 가진 겁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1심에서 검찰관께서도 그렇게 물어보셨고 재판장께서도 ‘동아투위가 정치적인 단체는 아니지 않냐’, 물론 그것은 정확한 표현입니다. 저희는 속되게 말하는 그런 정치인은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단체를 가지고 조직생활을 하고 있지만 기결수면 나중에 국회의원을 한 자리 한다든지 그런 정치적인 야망을 가진 단체는 아니지만, 이런 사건처럼 어떤 정치적인 발언이 필연적으로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유신헌법이나 긴급조치 같은 그런 악법이나 제도가 있는 한 우리나라에서 언론자유는 있을 수가 없고, 따라서 국민은 매일 속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 종사했고 실천 이념을 가졌기 때문에 그것을 실천해야 된다’, 이러한 명제 때문에 한국에서 볼 때는 정치적인 행위, 이런 것이 나올 수 있는 필연성밖에 없고 그리고 모든  민주적인 저항운동은 속성으로써 정치성을 띠지 않을 수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제 다른 분들도 말씀하실 기회가 있어서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드리겠습니다.  장윤환 선배하고 안성열 선배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저희들을 참 부끄러운 점이 많은 지식인이었습니다. 
대개 대학교육을 받고 비록 집안이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간에 이 사회에서 특혜를 누리고, 특히 동아일보에 입사할 때 어떤 의미에서는 기자나 언론인이 갖는 특혜 속으로 들어간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그때부터 자유언론을 해야 되겠다는 뜻을 가졌던 것도 아니고 다만 저희들의 무지한 지식 속에서 ‘동아일보는 정론지다. 그리고 항일운동에 빛나는 찬란한 역사를 가졌다’ 이런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거기에  들어간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희들이 그러한 데서 기자로서 반드시 자기 신분을 보장하고 자기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노동조합운동을 하다가 한 번 다시 파면됐던 일도 있고, 30여 명이. 그 안에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 자유언론실천운동이라든지, 신문사에 출입하는 보안사라든지 정보부가 상주하면서 자유언론을 노골적으로 용해하는 사람들과의 싸움, 이런 것이 소극적으론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동아일보로 대표되는 언론의 속성, 한국 언론의 죄악상을 누구보다도 뚜렷하게 목격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건 장황한 것보다 요새는 학자들의 여러 가지 연구나 아니면  용기 있는 분들이 글을 써가지고 발표된다는 기본적으로 그 일장기 말살사건이라든지 동아일보의 민족자치론이라든지 아니면 경성방직을 앞에 내세운 산업자본으로의 전환, 아니면  재벌로서의 은신. 
그리고 역대 조선총독들과 은밀한 관계를 가지고 실제로 민족진영이라는 허울을 쓰고 민족을 반역했고 심지어는 김성수 같은 사람은 사이토 총독에게 때맞춰서 선물까지 보내는가 하면 여러 가지 그 죄악, 
그리고 그것이 현대에 와서는 다시.. 그런 것 때문에 저희들이 특혜를 받은 속에서 우리로서는 
최소한 한국의 언론이 지금까지 죄악, 그것을 인정을 하고 새로운 시점에서 출발을 하자. 그리고 우리도 죄악을 저지르는 그런 무리들 속에 잠시나마 섞였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자. 그리고 그것을 바로 잡고 잘못된 것을 실천하는 것이 민주민족언론에 정통성을 지켜가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드릴 것은 현재 우리나라 지식인은 총 파탄 상태라고 저희는 생각을 합니다. 
머리가 좋아서 무슨 시험 봐서 합격을 한다거나 어디 가서 의사가 되거나 그 대다수가 이 체제를 유지하는 데 자기가 배운 모든 지식, 특히 실용적인 지식을 악용하는 쪽에 도구가 되고 있다는 이 사실. 
그래서 저희도 그런 지식인이지만 이제는 지식인이라는 것을 막연하게 부끄러워하면서 역사적인 허무주의에 빠진다든지, 지식인이 어차피 싸워봐야 역사라는 건 힘센 놈이 잡고서 흔들면 당대 영화를 누리는 게 최고라든지, 아니면 우리 가족이나 우리 주변만 그저 쉬쉬하면서 잘 살자. 이렇게만은 살 수 없다는 것을 이번 경험을 통해서 철저히 느꼈기 때문에 저희는 밖에 있는 동지들이나 저희 가족들이 그와 똑같은 생각에서 저희들과 같은 길을 걸어가고 그리고 앞으로도 꿋꿋하게 저희들과 함께 갈 수 있으리라고 믿고 그동안 여러 가지로 수고해주신 분들에 대해서 정말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제작진
편집윤석민
녹취 정리조연우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