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시티 리스트 '특혜 연결고리' 확인… '검찰 초동수사 부실' 의혹

2021년 04월 09일 11시 25분

'네거티브'로 얼룩진 재보궐 선거가 끝났다. 부산 최고급 아파트 '엘시티'도 선거의 핫이슈였다. 선거 결과가 나왔으니 이대로 끝인가. 특혜의 연결고리가 드러나고 있고, 검찰 초동 수사 부실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두 달 전, 유력 인사들에게 엘시티 분양 특혜를 제공했다는 진정서가 경찰에 들어갔다. 이른바 '엘시티 리스트'가 공개됐다. 전직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 법원장이나 검사장 출신의 전관 변호사, 대기업 총수, 향토기업 회장 등 100여 명의 이름이 나왔다. 
지난달 부산지방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수감 중인 엘시티 이영복 회장을 다시 조사했다. 수사의 핵심은 '유력 인사를 위한 특혜 분양이 실재했는가', 또 '무슨 목적으로 특혜를 제공했는가'이다.
▲ '엘시티 리스트'의 원본 엑셀 파일

엘시티 리스트-아파트 특혜 분양 '연결고리' 확인

3월 18일, 뉴스타파는 '엘시티 리스트 실체 추적'을 통해 이영복 회장과 그 아들 이창환 부사장의 비서들이 문제의 리스트를 작성했고, 리스트에 오른 106명 중 25명이 엘시티 아파트나 레지던스를 매입한 사실을 보도했다. 이후 취재를 계속했고 이영복 회장 측이 일부 인사에게 특혜를 제공한 구체적인 정황에 접근할 수 있었다. 
향판 출신의 이기중 변호사도 엘시티 리스트에 오른 106명 중 한 명이다. 그는 부산지방법원, 부산고등법원 법원장 등을 지냈다. 이 변호사와 이영복 회장의 관계는 각별하다. 
이 변호사는 엘시티 분양을 했던 2015년, 시행사인 '엘시티PFV'의 지분 2%를 갖고 있었다. 또 '엘시티PFV'의 3대 주주인 '(주)에코하우스'의 주식 41%를 보유한 최대 주주였다. 이영복 회장과는 특수 관계였고 최측근이었다. 
이 변호사는 엘시티 아파트를 보유 중이다. 등기부등본을 열람해 이 변호사가 아파트 분양 계약을 체결한 날짜를 확인했다. '2015년 10월 31일'이다. 이 날은 아파트 분양 계약 넷째날인데, 청약 예비당첨자와 3천만 원을 예치하고 사전 분양을 예약한 사람들만 계약이 가능했다.
확인 결과, 이 변호사는 청약 예비당첨자도 아니고 사전 분양예약자에 해당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2015년 10월 31일' 그날에 분양 계약을 했다. 어떻게 된 것일까. 이영복 회장으로부터 특혜를 제공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아파트 계약이다. 
▲ 2015년 10월 31일에는 청약 예비당첨자, 사전 분양예약자만이 엘시티 아파트 분양 계약이 가능했다.
취재팀은 사실 확인을 위해 이기중 변호사에게 수차례 연락을 했다. 하지만 이 변호사는 "인터뷰에 응하지 않겠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대신, 이 변호사는 취재 기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과거) 검찰 조사에서 충분히 답변했다'고 짧게 답했다.
▲ 엘시티 아파트 특혜 분양과 관련한 뉴스타파의 질의에 이기중 변호사가 보내온 문자 메시지
뉴스타파는 이 변호사의 경우처럼 수상쩍은 아파트 분양 계약 사례가 더 있는지 추적했다. 이 과정에서 2017년 이영복 회장의 1심 재판 판결문을 열람했고, 이 회장의 '범죄 사실 일람표'를 확인했다.  
2017년 11월, 당시 1심 재판부는 이영복 회장에게 사기, 횡령, 뇌물공여죄 등으로 징역 8년형을 선고했다. 재판부가 인정한 이 회장의 범죄 중에는 '주택법 위반죄'도 포함됐다. 즉, 이영복 회장이 주택법상 '공급질서 교란' 조항을 어기고 부정한 방법으로 지인, 가족에게 엘시티 분양권을 제공한 것이다. 재판부는 그 증거로  범죄 일람표에 제시했는데, 바로 엘시티 아파트 43세대의 동, 호수를 명확하게 적시해놨다. 이 회장도 이같은 범죄 사실을 인정했다.
▲ 이영복 회장의 1심 재판 판결문과 범죄 일람표
뉴스타파는 판결문에 나온 43세대의 아파트 동,호수와 리스트에 오른 106명 인사들이 사들인 아파트를 대조했다. 그 결과, 모두 7명이 일치했다. 
앞서 언급한 이기중 변호사, 지역 기업의 회장과 대표이사, 기업인, 그리고 이영복 회장의 아들, 딸 등이다. 문제의 엘시티 리스트와 특혜 분양의 '연결고리'가 구체적으로 확인되는 순간이다.
▲ 엘시티 리스트와 이영복 회장의 범죄 일람표를 대조한 결과, 특혜 분양의 '연결고리'가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검찰, 특혜 분양계약자 '초동 수사 부실' 의혹

이영복 회장이 재판을 받던 2017년 11월, 당시 부산참여연대는 특혜 분양 의혹이 불거진 계약자들도 함께 수사해야 한다며 부산지방검찰청에 고발장을 넣었다. 이후 검찰은 수사를 시작했고 약 3년 뒤인 지난 해 10월 27일, 수사를 종결했다. 
수사 결과는 초라했다. 특혜 분양 의혹을 사고 있는 43명 가운데 딱 두 명만 주택법 위반(공급질서 교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영복 회장의 아들 이창환 부사장과 엘시티 분양대행사 이 모 대표이다. 나머지 41명은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 부산지방검찰청의 불기소 결정서
검찰이 이렇게 수사를 마친 날은 지난해 10월 27일이다. 주택법 위반의 범죄 시효 만료를 불과 3일 앞두고 있던 시점이다. 고발 당사자인 부산참여연대는 시간이 촉박한 탓에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항고하는 등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린 근거는 뭘까?

불기소 결정서에는 이렇게 써있다.
· 분양계약자들은 사전예약자들에 앞서 분양 계약이 체결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취지로 주장.
· 분양계약자들에게 사전예약자들에 앞서 계약을 체결한다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았다는 취지의 이영복의 진술이 이에 부합.
· 증거 불충분하여 혐의 없다
간단히 정리하면, '불법이나 특혜인줄 몰랐다'는 특혜 분양 계약자들의 말을 믿고 수사를 끝낸 것이다.

당시 검찰은 제대로 수사했을까?

뉴스타파는 불기소 처분을 받은 유력 인사들과 접촉해 당시 검찰 수사를 어떻게 받았는지 확인했다. 대부분 전화를 받지 않거나, 연락이 닿아도 곧바로 전화를 끊고 증언을 거부했다.  
단 한 명, A씨가 이야기를 털어놨다. A씨는 청약 예비당첨자, 사전 분양예약자가 아닌데도 2015년 10월 31일에 엘시티 아파트를 분양받았고 현재도 보유 중이다. 당시 A씨도 검찰의 조사 대상자였다.  
그런데 A씨는 대면 조사를 받지 않았다. 검찰에 간 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어느날 검찰 수사관으로부터 전화가 왔고, 10분 가량 통화를 한 게 전부였다고 했다. A씨는 당시 검찰과의 통화에서 "불법이나 특혜인줄 모르고 계약했다"는 취지로 진술했고, 검찰은 A씨를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그냥 전화 한 통화, 전화하고 끝났었는데. 이창환 사장(이영복 회장 아들)의 전화번호부에 제 전화번호가 있었다. 그 얘기를 한 게 기억이 나네요. 10분, 15분 얘기한 거라서… 그 수사관도 자기네들이 봐도 저 같은 경우에는 뭐를 '별 그거는 없어보이는데' 하면서 몇 가지 물어보고 끊고 그 이후는 연락 없었습니다.

A씨 (엘시티 아파트 특혜 분양 계약 의혹)
뉴스타파는 당시 수사를 맡았던 부산지검에 질의서를 보냈다.
  • '주택법 위반죄의 공소 시효 만료 시점까지 시간을 끌며 수사를 진행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에 대한 검찰의 입장
  • 수사 대상자들에 대한 조사는 정확히 어느 시점에, 어떤 방식(대면, 전화통화 등)으로 이뤄졌는지
  • 수사 대상자들의 진술 외에 제출받은 별도의 증거가 있는지, 혹은 증거 수집을 위해 청구·집행된 영장이 있는지
  • 진술의 신빙성을 입증하기 위해 제출받은 별도의 증거가 있는지, 혹은 증거 수집을 위해 청구·집행된 영장이 있는지 등을 물었다.
며칠 뒤, 부산지검에서 답변이 왔다. 내용은 짧았다. '장시간이 소요되었지만 공소시효가 임박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수사했다', '현재 경찰에서 관련 수사가 진행 중에 있으므로 구체적 사항에 대하여 답변 드리기 어렵다'고 답했다. 
지난 3월 18일, 부산참여연대는 검찰이 엘시티 특혜 분양 계약자들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며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와 검찰 간부들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제작진
취재임선응, 박중석
촬영이상찬
편집박서영
CG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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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