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는 기다리라고만"... 차별받는 이태원 참사 외국인 피해자

2023년 05월 30일 10시 15분

우리 정부가 '이태원 참사' 외국인 피해자를 사실상 차별해 온 사실이 여럿 확인됐다. 외국인 피해자(희생자· 유가족·생존자)들은 참사와 관련된 정보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고, 의료비 등 지원도 부족했다. 참사 직후 우리 정부는 외국인 피해자도 차별하지 않고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외국인은 모두 26명(16.4%)이다.    

오스트리아 국적 김나리 씨가 다시 한국에 온 이유

김나리 씨는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재외동포(오스트리아 국적자) 고 김인홍 씨의 누나다. 참사 직후 한국에 들어와 인홍 씨 시신을 수습해 오스트리아로 돌아갔던 나리 씨는 최근 다시 한국을 찾았다. 이태원 참사 외국인 피해자가 겪는 각종 차별을 세상에 알리고, 동생 인홍 씨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나리 씨는 "유럽 사람들은 이태원 참사를 자세히 모르고 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다. 한국에 와 인터뷰를 하는 이유는 유럽 등 외국에 이태원 참사의 진실을 알리고 싶어서다. 너무 말이 안 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김인홍 씨의 누나 김나리 씨. 인홍 씨 가족은 모두 오스트리아 국적자인 재외동포다.

외국인 유가족이 목격한 한국 정부의 '무관심'

우리 정부는 참사 직후 "외국인 피해자도 한국 국민에 준해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정부는 외국인 유가족들에게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장례비와 구호금(시신 이송 비용 포함)을 지원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후 상황은 사실상 방치에 가까웠다는 게 나리 씨의 주장이다. 나리 씨는 "장례식에 외교부 직원이 와서 명함을 주고 가기는 했다. 며칠 뒤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 연락했는데, 전화를 안 받았다. 출장을 갔다고 했다. 결국 기다려 다른 공무원과 연결됐다"고 말했다. 
나리 씨는 인홍 씨를 오스트리아로 이송하는 과정에서도 이해하기 힘든 일을 경험했다고 했다. 한마디로 한국 정부의 무관심이었다. 국경을 넘어 시신을 옮기려면 사망진단서와 시체검안서 등 여러 서류를 독일어로 번역하고, 공증과 법무부 인증을 거쳐 오스트리아 당국에 제출해야 했다. 절차가 많았다. 그런데 이 복잡하고 까다로운 일을 인홍 씨 가족은 스스로 해야 했다. 비용도 스스로 대야 했다. 한국 정부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 나리 씨의 말이다. 
한국 공무원들은 '저기 가면 된다', '여기 가면 된다'는 말만 했어요. 알아보고 처리하는 건 모두 저와 가족의 몫이었습니다. 문서를 번역하고 공증하면서 발생한 어마어마한 비용도 모두 가족이 냈습니다. (외교부 사람들이) 그 질문은 자주 하시더라고요. '언제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실 거냐.' 너무 많이 물어 어머니가 화를 낼 정도였어요. '도대체 (한국에) 있는 동안에 좀 도움이 됐으면 하는데, 왜 언제 가냐고만 묻냐'고. 그게 (한국에서) 어머니가 외교부와 한 마지막 통화였을 거예요. 그나마 우리는 한국에 사촌이라도 있어 여러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외국인 유가족들은 더 힘들었을 거예요.

김나리 씨 /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김인홍 씨 누나
인홍 씨 가족은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나리 씨와 부모님 모두 한국어가 가능했고, 한국에 친척도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태원 참사 외국인 희생자 26명(14개국) 중 재외동포는 3명(중국·오스트리아)으로 추정된다. 외국인 유가족 대부분은 한국어를 모르고, 한국에 아는 사람도 없다.  

외국인 피해자, '심리상담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다 

인홍 씨 시신을 수습해 오스트리아로 돌아간 뒤, 나리 씨 가족은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렸다. 참사 희생자 중 오스트리아 국적자는 인홍 씨가 유일했다. 오스트리아에는 인홍 씨 가족이 함께 슬픔을 나눌 다른 유가족이 없었다. 오스트리아 사회는 이태원 참사에 크게 주목하지도 않았다. 나리 씨는 "우리 가족은 혼자였다. 죄책감이 많이 들었다. 동생을 한국으로 보낸 우리 가족의 결정이 잘못된 거라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외로움과 울분은 심리적 이상 증세로 나타났다. 심리상담이 필요했다. 인홍 씨 부모님은 감정 표현에 익숙한 한국어로 심리상담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에는 한국어 상담이 가능한 시설이 부족했다. 한국 외교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소용없었다. 
주 오스트리아 한국 대사관에 문자를 넣었어요. '한국에는 트라우마센터가 있다고 하는데 저희 부모님한테 도움이 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요' 라고 연락했더니 대사관에서 신청 링크를 보내주더라고요. 그런데 한국에 살지 않는 사람들한테는 별 도움이 안 되는... 한국 주소가 있어야 되는 링크였어요.  

김나리 씨 /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김인홍 씨 누나
그동안 우리 정부는 외국인 피해자도 어디서든 화상·전화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공언해 왔다. 보건복지부의 '이태원 사고 통합심리지원단 심리지원 가이드라인'을 보면, 외국인 피해자도 트라우마센터에 심리상담을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외국인 피해자가 우리 정부의 심리상담 지원 제도를 이용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참사 직후인 지난해 10월 30일부터 최근까지(5월 18일) 복지부 '이태원 사고 통합심리지원단'은 이태원 참사 피해자를 대상으로 총 6759건의 심리상담을 진행했다. 이중 외국인 상담은 146건(3.8%)에 불과하다. 해외 거주 외국인은 3건(0.04%) 뿐이었다. 
이태원 참사 전체 희생자 159명 중 외국인은 26명(16.4%)이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이 행정안전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체 생존자 330명 중 외국인도 53명(16.1%)에 달한다. 이런 외국인 피해자 비율을 감안하면, 외국인 상담 건수(3.8%, 0.04%)는 너무 낮다. 국가트라우마센터 관계자는 "심리 상담은 피해자가 신청을 해야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통역 등 시스템은 다 갖춰져 있다. 외국인이 왜 신청하지 않는지는 잘 모른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피해자에 대한 정부 지원 심리상담 건수 중 외국인 비율은 3.8%(146건)다. 참사 희생자·생존자 중 외국인 비율(약 16%)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수치다. 

의료비 지원에서도 내외국인 '차별'

참사 피해자에 대한 의료비(치료 및 약제비 등) 지원에서도 외국인은 차별받았다.
복지부의 '이태원 사고 의료비 지원 지침'을 보면, 유가족과 생존자, 구조자 등 참사 피해자들은 신체적·정신적 후유증 치료를 위한 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당연히 외국인도 포함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한국 의료기관을 이용했을 때만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해외에서 치료받으면 지원받지 못한다.
이태원 참사 외국인 희생자 26명의 유가족 중 원래 한국에 살던 사람은 없다. 참사 직후 희생자 시신을 수습하려 잠시 한국에 왔을 뿐이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경 모두 본국으로 돌아갔다. 외국인 생존자 중에도 이미 귀국한 사람이 많다. 결국 현 제도에 따르면, 외국인 피해자 대다수는 한국 정부로부터 후유증 치료 비용을 전혀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현실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외국인 피해자에 대한 의료비 지원 비율은 한국인보다 낮았다. 행안부와 복지부, 장혜영 의원실 등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의료비 신청 자격이 있는 사람은 한국인 543명과 외국인 105명 정도다. 유가족(희생자 한 명당 유가족 2명 가정)과 생존자 수를 합한 수치다. 그런데 참사 직후부터 최근(5월 18일)까지 실제로 의료비를 지원받은 한국인이 274명(50.5%)인 반면, 외국인은 31명(37.1%)에 불과했다. 
'이태원 참사' 피해 관련 의료비 신청이 가능한 인원 중 실제 의료비를 지원 받은 사람의 비율은 한국인이 더 높았다. 정부 지침에 따르면, 참사 피해자는 오직 한국에서만 치료를 받아야 의료비 지원이 가능하다. 외국인 유가족과 생존자도 예외는 아니다. 
뉴스타파는 행안부, 복지부 등에 연락해 입장을 물었다. 복지부는 "한국에 와서 치료를 받으면 된다"고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건강보험공단에서 의료비를 대납해 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해외 의료기관 같은 경우에는 지원이 곤란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치료를 받는다고 하면 지원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행안부 이태원 참사 지원단 관계자는 "그런 사각지대가 있는 것 같아서 검토를 하려고 한다"고 답했다. 
김나리 씨는 "외국인 피해자에 대한 대우는 아예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주는 사람도 없었다. 한국에 있는 다른 유가족이나 유튜브를 통해 알아봤다"고 말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정부는 이태원 참사 피해자에게 의료비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내국인과 외국인을 차별해선 안 된다. 피해자와 유가족의 상황을 살펴 실질적인 지원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 유가족이라 구급일지 신청 못 한다"

지난 17일, 뉴스타파는 김나리 씨와 함께 서울 용산소방서를 방문했다. 동생 김인홍 씨의 소방구급일지를 받기 위해서다. 소방구급일지는 구급 상황시 현장에 출동한 구급대원이 작성하는 공식 문서로 참사 당시 희생자들의 몸 상태와 발견 시간, 병원 출발 시간, 증상 등이 적혀 있다. 희생자의 마지막 모습인 셈이다. 이미 행안부와 소방청은 지난 1월 말 유가족들에게 구급일지 발급 절차를 안내했고, 실제로 약 60건의 구급일지를 발급해 줬다. 
하지만 나리 씨는 이런 사실을 몰랐다. 구급일지가 있다는 사실만 어렴풋이 들었을 뿐, 어떤 절차를 통해야 받을 수 있는 지 듣지 못했다. "한국 정부에선 항상 기다리라고만 했어요"라는 게 나리 씨 설명이다. 참다 못한 나리 씨는 직접 한국에 와서 소방서를 찾아 구급일지 발급을 신청하기로 했다.
지난 17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인 김나리 씨는 동생 김인홍 씨의 구급일지 발급받기 위해 서울 용산소방서를 찾았다.  
소방서 민원실에서 나리 씨는 인홍 씨와 본인의 여권, 가족관계증명서 등을 제출했고, 구급일지 발급 신청서도 작성했다. 그런데 얼마 뒤 소방서 직원은 "외국인이라 신청 대상 자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소방서 설명을 종합하면, 구급일지 발급은 정보공개제도를 통해서만 이뤄진다. 현행 정보공개법에 따르면, 정보공개청구는 한국인, 그리고 '국내에 일정한 주소를 두고 거주하는' 외국인만 가능하다. 오스트리아에 사는 외국인 나리 씨는 해당되지 않는다.
정보공개청구 이외에 외국인 유가족이 구급일지를 발급받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 소방서 측은 "법적으로 그렇게 돼 있는 상태여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이런 문제(외국인의 신청)에 대해선 지침을 받은 게 없다"고 말했다. 결국 이날 나리 씨는 동생의 구급일지를 받을 수 없었다. 
외국인은 왜 신청조차 할 수 없는 건지, (참사 이후) 6개월이 지났는데도 왜 신청을 못 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됩니다. 너무 화가 납니다. 차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동생은 인간이 아닌가요? 제 동생도 똑같은 인간이고 똑같이 귀한 사람이었는데 왜 구급일지를 신청할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김나리 씨 /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김인홍 씨 누나

소방청·행안부, 외국인 유가족은 신경도 안 썼다

뉴스타파는 소방청에 연락해 이유를 물었다. 소방청은 외국인 유가족이 구급일지를 달라고 할 줄은 몰랐다며 대책을 논의해 보겠다고 했다. 외국인 유가족 중 구급일지 발급을 신청한 사람은 나리 씨가 처음이라고 했다.
이후 나리 씨는 소방청 등 관련 기관에 항의한 끝에야 동생 인홍 씨의 소방일지를 받을 수 있었다. 나리 씨는 "직접 나서서 끈질기게 전화하고 따져서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았으면 빈 손으로 오스트리아로 돌아가야 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끈질기게 직접 나서서 따지고 계속 전화했기 때문에 이거라도 받은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어제도 소방서에다가 그랬어요. '제가 노력을 안 했으면, 아무것도 못 받고 빈손으로 다시 돌아가는 경우였다'고요. 소방서에서는 제게 연락할 계획도 없었고요...어제(5월 18일) 노르웨이인 희생자 어머님과 통화했는데, 구급일지에 대해선 모르고 계셨어요. 최근 대사관에서 연락이 왔는데, '참사가 난 지 200일이 됐다고 분향소에 사람들이 왔다 갔다'는 말밖에 없었데요.

김나리 씨 /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김인홍 씨 누나
취재 결과, 소방청은 구급일지 발급 정책을 시행하며 애초에 외국인 유가족은 고려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외국인 유가족을 대상으로 한 안내도 없었다. 소방청 관계자는 "희생자 명단을 보면 (외국인이어도) 한글 이름으로 된 사람들이 있어서 외국인이 있는 줄 몰랐다. 소방청은 그걸 관리하는 곳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유가족 지원을 총괄하는 행안부도 외국인 유가족을 배제했다. 한국인 유가족들에게만 구급일지 발급 절차를 안내했다. 참사 발생 200일이 넘도록 외국인 유가족들은 구급일지의 존재도 알 수 없었다.
뉴스타파 취재가 시작되자 행안부와 소방청은 서로 책임을 떠넘겼다. 행안부는 "외국인에 대해서는 소방청에서 협조 요청을 받은 바 없다"고 했다. 소방청은 "안내는 행안부가 맡았다. 행안부가 내국인 유가족들에겐 안내를 했는데, 외국인에겐 못 했던 것 같다"고 했다. 
서울시청 광장 분향소에 있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김인홍 씨의 영정 사진. 
나리 씨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를 마치며 이렇게 말했다. 
부모님은 항상 저와 동생에게 '한국 정체성을 잃지 않고 한국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이런 사고를 당하고 (한국 정부로부터) 이런 대우를 받다 보니 한국인이라는 게 너무 부끄럽고, (한국인이란 걸) 어떻게 생각해야 될지도 모르겠어요. 나도 이런 생각이 드는데 부모님은 오죽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나리 씨 /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김인홍 씨 누나

외교부 "외국인 피해자에 필요한 조치 다 했다"

뉴스타파는 외교부에 연락해 한국 정부가 외국인 피해자들을 차별해 왔다는 비판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외교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이미 몇 달 전에 발생한 사고다. 저희가 모든 분들에 대해 조치를 다 취했다. 필요한 조치는 다 했다"고 주장했다. 외교부 측은 "그동안 외교부는 유가족과 수시로 접촉하면서 장례 및 운구 전 과정을 지원했고, 유가족 측 요청사항을 적극 접수해 관계기관에 전파했다. 희생자 사망 경위 및 수습 과정 소명 요구와 관련해서는 경찰·소방 등과 긴밀히 소통하며 유가족 입장을 전달하고 납득할 만한 설명이 이뤄지도록 적극 협조를 요청했다. 또 국내에서 지원 가능한 심리 상담 및 치료 프로그램을 확인받아 안내하는 등의 지원을 제공했다"고 그동안 자신들이 해 온 일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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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홍주환
촬영오준식 이상찬 최형석
편집박서영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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