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외면한 ‘낮은 목소리’

2014년 02월 25일 20시 35분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 실천 되기를 가장 간절하게 바랐던 사람은 누구일까.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복지공약을 발표하면서 다른 후보들과 달리 ‘발달장애인’, ‘65세 이상 어르신’, ‘월급 130만원 미만 비정규직’ 등 복지공약의 수혜자를 특정 지었다. 적어도 이들에게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을 터. 박근혜 대통령 취임 1년, 이들의 삶은 조금 달라졌을까?

뉴스타파가 직접 만나봤다.

#1. ‘반값등록금 공약’을 기대한 청소노동자 최종인 씨

아직 달이 떠 있는 새벽 5시 반. 최종인(62)씨가 출근길을 서두른다. 남들보다 하루를 빨리 시작하는 그는 비정규직 대학 청소노동자다. 새벽 5시40분에 버스를 타야 늦지 않게 일터에 도착한다.

오늘도 무사히 탑승. 이 시간 아침 버스에는 최 씨처럼 서둘러 출근길에 나선 사람들이 많다.

“이 시간에 출근한 지 벌써 3년이에요. 이 시간에도 버스에 사람들이 참 많죠? 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에요. 먹고 살려면 어쩌겠어요. 힘들어도 이런 일이라도 있다는 게 감사한거지.”

▲ 오전 5시 40분 청소노동자인 최종인씨가 학교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대학생 아들이 있는 그녀에게 절실한 것은 반값등록금 공약이다.

 

▲ 오전 5시 40분 청소노동자인 최종인씨가 학교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대학생 아들이 있는 그녀에게 절실한 것은 반값등록금 공약이다.

아침 6시 10분쯤. 학교 내 미화 휴게실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 먼저 온 동료들이 그녀를 반긴다.

저마다 사는 곳, 나이는 모두 다르지만 자녀 교육비, 결혼 자금 등 가계에 한 푼이라도 보태고자 청소 일을 시작한 ‘엄마’들이라는 점은 같다.

미처 아침밥을 먹지 못하고 출근한 동료들이 컵라면을 먹는다. “워낙 노동강도가 세다 보니, 일하기 전에 든든히 먹어둬야 한다”는 최 씨. 그녀도 컵라면 한 그릇을 비웠다. 이제 본격적인 청소 시작이다.

최 씨는 아침 6시반 부터 오후 3시 반까지 하루 8시간 청소를 한다. 한 달 130만 원 정도를 번다. 62살인 최 씨는 국민연금을 내지 않지만 4대 보험료를 모두 내는 다른 동료들의 월급은 120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최저임금(2014년 최저임금 : 5210원)을 간신히 넘는 수준이다.

이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공약했다. ‘월급 130만원 미만의 비정규직에게 국민연금 보험료·건강보험료를 100% 국가가 지급하겠다’고. 이 공약이 실천됐다면, 노동자들의 형편은 지금보다 나아졌을 터. 하지만 박 대통령의 공약은 100%에서 50%로, 현재 반쪽이 됐다. 공약이 지켜졌다면 사람마다 다르지만 10만 원 정도를 더 벌 수 있었다. 10만 원. 이들에게 적지 않은 돈이다.

“박근혜 대통령 공약을 보고 ‘아, 우리 같은 노동자들을 좀 생각해 주는 구나’ 생각했는데, 이제 와 보니 지켜진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 이른 아침 미화휴게실에는 최씨와 같은 엄마들이 일찌감치 출근해 있다.

 

▲ 이른 아침 미화휴게실에는 최씨와 같은 엄마들이 일찌감치 출근해 있다.

사실 최 씨가 가장 크게 기대한 공약은 비정규직 공약 보다도 ‘반값등록금’ 공약이었다. 늦둥이 막내 아들의 학비만 조금 줄어도 가계에 숨통이 트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최 씨는 지난 대선에서 “반값등록금 공약 이 가장 와닿았다” 고 말했다.

“반값등록금 공약이 제일 솔깃했죠. 학생 있는 집은 등록금이 가장 큰 고민이니까, 아이가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해도 자기들 용돈 쓰는 수준이지, 등록금도 학자금 대출금도 부모들 몫인데, 반값등록금 공약, 어쩌면 부모들이 더 원했을 거에요.”

하지만 아직도 아들의 등록금은 ‘반값’이 되지 않았다. 아들의 한 학기 대학 등록금은 470만 원 정도. 기존부터 나오던 국가장학금과 성적장학금을 보태도 300만 원이 넘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부턴 실질적으로 등록금이 반값이 되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현재 이 공약은 관련 예산 1조 4000억 원이 부족한 상황. 올해부터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크게 실망 안 해요. 원래부터 정치인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는 게 없다고 하던 데요? 그래도 기대했던 건 사실인데...앞으로 아이 등록금 벌고, 학자금 대출금 갚고,,그냥 정년인 70세까지 일할 수만 있으면 좋겠어요.”

#2. ‘발달장애인법’ 공약 이행이 절실한 소민이네 가족

‘프래더-웰리 증후군 : 먹어도 쉽게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는 희귀 질환’

18세 여고생 소민이가 앓고 있는 병이다. 곧 있으면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만, 아빠 없이 혼자 거리를 다니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

소민이처럼 스스로 자신의 욕구를 제어하지 못하거나, 인지능력이 저하돼 스스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장애를 발달장애라고 한다. 국내 260만 장애 인구 중에 18만 명이 발달장애인이다. 장애인 중에서도 숫자가 적어 발달장애를 ‘장애 사각지대’라고도 한다.

그런 이들을 위해 지난 대선 박근혜 대통령은 ‘발달장애 지원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안’을 새누리당 첫 법안으로 제정하겠다고 공약했다. 법안은 대선 전 이미 발의돼 있었다. 2조 6000억 원이라는 구체적인 예산추계액도 제시됐다.

박 대통령이 당선되면 이 법안은 현실화 될 것처럼 보였다. 소민이 아버지는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우리 소민이한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뽑았는데,,지금은 실망스럽죠”
(박문규 씨/소민이 아버지)

▲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발달장애인 법을 제1호 법안으로 제정하겠다고 했지만 2년 가까이 법안은 국회에 계류돼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발달장애인 법을 제1호 법안으로 제정하겠다고 했지만 2년 가까이 법안은 국회에 계류돼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 당선 이후, 새누리당 1호 법안이라던 발달장애인법(새누리당 김정록 의원 발의)은 전혀 진척이 없다. 2년 가까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법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예산 문제로 난색을 표했다.

장애인 단체들은 하루빨리 이 법을 제정해 달라고 반발했다. 결국 지난해 말에는 새누리당 김명연 의원이 다시 보건복지부 의견을 반영해 비슷한 이름의 ‘발달장애인 지원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그런데 이 법안에선 당초 2초 6천억 원까지 추계됐던 관련 예산이 4000억 원으로 대폭 줄었다. 새누리당 1호 법안이라고 홍보했던 것의 6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발달장애인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되기 때문에 그에 맞는 교육시설이 절실한데 지금 소민이는 특수학교 졸업 후 마땅히 갈 곳이 없어요. 다른 장애인과 달리 인지능력이 떨어져 맞춤형 교육이 필요한데, 선생님도 너무 부족하고요. 그래서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별도의 법안이 필요한 것인데, 이렇게 예산도 축소되고, 논의도 지지부진하다 결국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닌지 불안하기까지 하네요.”

#3. 폐지 줍는 노부부의 꿈 같았던 ‘기초연금 20만원’ 공약

오후 7시 반 구로디지털단지역.

직장인들이 대부분 퇴근하는 시간, 이철수(71)·박점임(65) 부부가 리어카를 끌고 출근길에 나선다. 폐품을 모아 파는 일이 유일한 생계수단인 이 씨 부부는 오늘도 구로3동 곳곳을 누빈다. 재활용품이 많이 나올만한 곳을 찾아 동네 구석구석을 돌다 보면 어느새 새벽 2시.

그나마도 예전보다 폐지량이 줄어 이철수 할아버지는 걱정이 많다. 노인인구가 늘면서 폐지를 줍는 노인도 늘어났다고. 이철수 씨는 “예전에는 하루에 3만 원을 벌었는데, 요즘은 2만 원 벌기도 힘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 부부는 방 두칸 반지하 집에 아들(31살)과 함께 살고 있다. 아들이 있지만 정신질환을 앓고 있어 생계는 모두 이 부부가 책임진다. 아들과 노부부의 병원비 마련만도 빠듯한 형편, 하지만 이씨 부부는 반지하 집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 수급자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 이철수, 박점임 부부는 매일 오후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폐품을 팔아 하루 2만원을 번다.

 

▲ 이철수, 박점임 부부는 매일 오후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폐품을 팔아 하루 2만원을 번다.

현재 이들 부부의 한달 소득은 폐품 판 돈 20만원 남짓과 국민연금 15만원, 기초노령연금 9만4000원이 전부다. 이철수 씨가 지난 대선 ‘박근혜 대통령이 모든 어르신들께 20만 원씩 기초연금을 드리겠다’고 했던 공약에 솔깃했던 이유다.

“20만원씩 준다고 하길래, 정말 주려나 보다 했지요. 노인네들은 그래서 박근혜 많이 뽑았잖아. 그런데 아직까지는 안 됐나봐요. 아직도 9만 원만 나오던데...”

만약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 실천된다면, 이씨 부부는 총 40만 원의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다. 올해부터는 65세가 되는 박점임 할머니도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공약 역시 예산 문제로 소득 하위 70%노인에게만 10~20만 원까지 차등지급하는 것으로 축소된 상태다. 2014년 7월부터 지급하는 것이 목표지만, 지급 대상을 두고 여전히 국회에서 논쟁을 벌이고 있어 제때 시행될지는 미지수다.

“노령연금 신청하라고 해서 하긴 했는데, 얼마 나올지는 모르겠어요. 약속대로 20만 원 나와서 우리 아들 약값에라도 보탤 수 있으면 좋을텐데..”

뉴스타파가 만났던 비정규직 청소노동자와 발달장애아의 부모, 폐지줍는 노부부. 박근혜 대통령에게 여전히 기대를 건다.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가 강조했던 복지공약인 만큼, 남은 임기 4년 안에는 모두 이뤄지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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