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학 북부지검장이 ‘국정원 사건’ 수사기록 유출 관여” (2018년 법정 증언)

2023년 01월 25일 14시 00분

윤석열 정부는 지난 연말 1373명을 특별사면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등 정치인 사면에 온통 관심이 쏠렸다. 반면 사면 명단에 전직 검사들이 여럿 들어 있다는 사실은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 수사를 방해한 전직 검사들(장호중·이제영)도 그 중 하나다. 국정원 파견 검사였던 이들은 2017년 재개된 수사와 재판을 거쳐 각각 징역 1년,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뉴스타파가 이들의 재판기록 일부를 입수해 살펴보니, 수사 당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등이 강압·회유 수사를 한 정황, 소위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되는 검사의 비위 의혹, 그리고 이를 검찰이 덮은 정황이 들어 있었다. <편집자 주>
① "윤석열 수사팀이 강압·회유 수사"...사면된 전직 검사의 법정 증언 확인
② “정영학 북부지검장이 ‘국정원 사건’ 수사기록 유출 관여” (2018년 법정 증언)
⬤  검찰, 2017년 '국정원 댓글 사건' 검찰 수사기록 유출 의혹 수사
⬤ 유출된 검찰 수사기록 '국정원 법률보좌관실'이 보관...“정영학 검사가 인계” 증언
⬤ "국정원 대응 문건도 정영학 검사가 작성" (이제영 전 부장검사 법정 증언)
⬤ 정영학 검사장·법무부, 뉴스타파 질의에 모두 답변 거부
정영학 검사장은 지난해 6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단행된 첫 법무부 인사에서 서울북부지검장(검사장)으로 영전했다. 윤석열 대통령과는 2018~2019년 서울중앙지검에서 지검장과 부장검사로 함께 근무한 연을 갖고 있다. ‘특수통’ 출신이 아님에도 ‘윤석열 사단’으로 꼽히는 이유다. 지난해 ‘공직자 재산 공개’에선 60억 원이 넘는 부동산과 주식을 신고해 화제가 됐었다. 
그런데 정 검사장이 2013년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댓글 수사' 당시 보안이 유지된 검찰 수사기록을 기소 전에 '국정원 파견 검사에게 건넸다'는 주장이 담긴 법정 증인신문 내용이 확인됐다. 2017년 서울중앙지검이 수사한 ‘국정원 댓글 수사 방해 사건’으로 기소된 이제영 전 의정부지검 부장검사의 법정 증언이다. 2018년 4월 이 전 부장검사는 재판에 나와 “2013년 국정원에 파견검사로 부임하였을 때 정영학 검사로부터 검찰 수사기록 사본을 인계받았다”고 증언했다. 검찰 수사기록의 기소 전 외부 유출은 ‘공무상 비밀누설’ 등에 해당하는 범죄다.
검찰은 2018년 4월 24일 ‘국정원 댓글 수사 방해 사건’ 재판에서 피의자인 이제영 전 부장검사에게 “국정원 댓글 사건 검찰 수사기록이 어떻게 유출됐는지” 묻는다. 국정원이 검찰 수사를 방해했음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아래는 당시 공판 검사의 질의 내용. (괄호는 이해를 돕기 위해 기자가 적은 것)  
공판 검사 : 증인은 검찰조사시, 증인이 국정원에 부임하였을 때 전임 파견검사(정영학)로부터 경찰이 검찰에 송치한 댓글사건 수사기록 사본을 인계받았다고 진술한 사실이 있지요?
이제영 : 예, 그렇습니다.
공판 검사: 국정원 사건이 최초로 법원에 기소된 시점은 2013.6.14이고 증인(이제영)이 국정원에 파견간 시점은 2013.4.23인데, 그렇다면 전임자(정영학)로부터 인수인계 받을 시점에는 아직 국정원 사건이 기소된 때도 아니어서 피고인 측에서 수사기록을 열람, 등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중략)... 그 당시 국정원 수사팀(팀장 윤석열)은 수사기록 유출에 대하여 각별히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수사기록 사본도 최소화하는 등 다각도로 신경썼다고 하는데, 기소도 되지 않은 수사기관의 수사기록 사본이 어떤 경위로 수사대상이 되고 있는 국정원에 가 있었는지 증인은 알고 있나요. 

이제영 전 검사 증인신문 내용 (2018.4.24)
이제영 전 검사 증인신문 녹취록 중 일부 (2018.4.24)
유출된 검찰 수사기록은 국정원 법률보좌관실이 보관했다. 당시 정영학 현 서울북부지검장은 국정원 법률보좌관실에 소속된 연구관이었다. 그의 후임자가 이제영 전 부장검사다. 이 전 부장검사는 국정원 댓글 수사가 확대되던 2013년 4월 23일 국정원에 부임했다.
따라서 수사기록 유출은 이 전 부장검사가 국정원에서 근무를 시작한 23일 이전에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정 검사장은 변창훈 법률보좌관, 장호중 감찰실장과 함께 댓글 수사 대응 업무를 맡고 있었다. 변 보좌관은 2017년 ‘국정원 댓글 수사 방해 사건’으로 수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반면, 정 검사장은 2017년 검찰 수사 당시 공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제영 전 부장검사와 변창훈 법률보좌관 모두 수사기록이 유출됐다는 사실을 검찰에 진술했지만 이에 대한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정 검사장에게 검찰 수사 기록 사본을 넘겨준 사람이 누군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이 전 부장검사는 국정원으로 검찰 수사기록이 유출된 이유와 경위에 대해선 “변창훈 보좌관도 수사기록이 있었다고 진술하신 것으로 봐서는 수사기록이 있었던 것은 확실한 것 같은데 그 입수 경위는 모른다”고 증언했다. (2018년 4월 24일 증인신문)
검찰 수사기록이 기소 전 피의자에게 전달된 것이 얼마나 큰 범죄인지는 최근 검찰이 열을 올리는 쌍방울그룹 수사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 1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수사 대상인 쌍방울 그룹 측에 압수수색 정보 등 수사 기밀을 유출한 수사관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런 행위(수사기록 유출)로 수사 대상자들의 조직적 증거 인멸과 범인 도피가 이뤄져 수사에 막중한 지장이 초래됐다"고 구형 이유를 설명했다.

“국정원 대응 문건, 정영학 현 서울북부지검장이 작성했다”

이 전 부장검사의 또 다른 증인신문 기록에는 ‘정영학 검사(현 서울북부지검장)가 댓글 수사를 앞두고 국정원을 위해 대응 문건을 작성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문건 작성 시점은 2013년 4월 22일부터 23일까지로 이 전 부장검사가 정영학 검사로부터 국정원 법률보좌관실 업무를 인계받던 시점이었다. 문건 제목은 ‘국정원 압수수색 범위 검토 보고서’였다. 이 문건에는 검찰 수사에 대비한 국정원의 대응 기조, 압수수색 거부 방안 등이 담겼다. 이 전 부장검사는 해당 문건의 작성 경위를 아래와 같이 진술했다. (괄호는 이해를 돕기 위해 기자가 임의로 적은 것)
(변호사가 증거기록 중)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사건 관련 압수수색 범위 검토’ 제 11078쪽을 제시하고,
변호사 : 피고인은 이 문건에 대해 아는가요.  
이제영 : 이번 수사 과정에서 제가 작성한 거라고 처음에 추궁을 당했었는데, 사실상 정영학 검사가 감찰실장(장호중 전 부산지검장)님의 지시를 받아서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중략)...
변호사 : 피고인의 생각에는 2013.4.22 저녁 정영학 검사가 부지런히 작성한 문건이 이 문건이었던 것으로 생각되지요?
이제영 : 예, 제가 하루 전날 갔는데, 정영학 전임 검사실은 한 번 들어가면 차가 없으면 못 나오기 때문에 정영학 검사가 ‘ 나 일하는 것 있으니까 이것 좀 하고, 내 차 타고 같이 나가자’라고 해서 저는 소파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정영학 검사가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마 이 문건인 것 같고, 그 문건을 완성해서 다음날 아침에 저한테 보내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영 전 검사 증인신문 내용 (2018.5.2)
2018년 4월 24일 재판에서 이 전 부장검사는 국정원의 또다른 문건도 “정영학 검사가 작성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문건 제목은 ‘현안사건 관련 전 심리전단장 조사 결과’다. 여기서 ‘현안사건’은 2013년 국정원 댓글 수사, ‘심리전단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민간인 댓글 부대’를 운영한 핵심 피의자를 가리킨다. 당시 국정원은 검찰 수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정당한 국가안보활동’이란 대응기조를 내세웠다. 이에 따라 민간인 댓글 부대 활동은 철저히 은폐됐다.
변호사 : 이 문건 또한 피고인의 부임 3일 후에 작성된 것으로서 피고인이 작성한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되고, 특히 보고서에 자주 사용된 검정색 동그라미 번호 기호는 피고인이 평소 전혀 사용하지 않는 기호이지요?
이제영 : 세 번째 첫 페이지 중간에 1, 2, 3번이 검정색으로 되어 있는데, 사실 기획부서에 자주 근무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꼭 쓰는 기호가 있는데 저 기호는 제가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기호입니다. 그런데 아까 정영학 검사가 쓴 압수수색 범위 검토 보고서에 보면 저 기호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저것을 보고서 ‘아, 이것은 정영학 검사가 만들었나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영 전 검사 증인신문 내용 (2018.5.2)
이처럼 이 전 부장검사는 자신의 무죄를 다투기 위해 정 검사장의 사건 연루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정 검사장은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근무한 인연으로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장을 거쳐 검사장(서울북부지검장)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사 시절 국정원 댓글 수사에 남다른 의욕을 보였다. 자신의 집으로 국정원 파견 검사를 불러 직접 회유하는 ‘수사기법’까지 활용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검찰 수사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변창훈 검사(2013년 당시 국정원 법률보좌관)였다. 아래는 2018년 이제영 전 부장검사 재판에서 나온 증인 신문 내용 중 일부.   
변호사 : 증인은 검찰에서 “연구관으로 부임하고서 2-3일 후에 당시 박형철 부장검사, 변창훈 법률보좌관과 같이 윤석열 당시 특별수사팀장 집으로 가서 압수수색에 관해 논의를 하였는데 당시 윤석열 팀장이 압수수색을 하더라도 국정원에서 제출하는 자료만 받아오겠다고 말씀하셨다”고 진술했는데 그것이 사실인가요?
이제영 : 예, 사실입니다.

이제영 전 검사 증인신문 내용 (2018.4.24)
판사 : 증인이 국정원으로 파견 나간 지 얼마 안 되어 4.28자 검토자료 며칠 전인 것으로 보이는데, 윤석열 팀장 댁에 변창훈 보좌관과 박형철 부장하고 갔었다고 했지요.
이제영 : 예. (중략) 제가 다시 말씀드리자면 100% 기억은 아니고 저도 특이한 경험이라서 거의 확실히 기억나는 워딩을 말씀드리자면 윤석열 팀장님께서 '모양새 갖추어 수사 마무리 하려면 압수수색 받아야 된다. 원장한테 이야기해서 압수수색받으라 해. 압수수색받으면 자료를 주는 것만 가지고 나올 게'라고 말씀하셨고, 그 후에 박형철 부팀장께서 '이건 농반진반인데 박스 채울 걸 좀 줘'라고 했고…

- 이제영 전 검사 증인신문 내용 (2018.4.25)
윤석열 정부가 지난달 단행한 특별사면 대상에는 ‘국정원 댓글 사건’ 관련자 대부분이 들어 있었다. 두 명의 국정원 파견검사(장호중·이제영) 외에도 원세훈·남재준 전 국정원장을 비롯해 서천호 전 국정원 2차장,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 등이 포함됐다. 우연인지 의도가 있는 결정인지는 알 수 없다. 
뉴스타파는 이 전 부장검사의 법정 증언이 사실인지, 만약 허위라면 이 전 부장검사를 위증죄로 고발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묻는 내용의 질의서를 정영학 서울북부지검장 측에 보냈다. 하지만 정 검사장 측은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법무부에도 같은 내용의 질의서를 전달했지만 역시 답이 없었다. 
제작진
취재강현석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