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인권 경찰'인가, '정치 경찰'인가

2017년 05월 30일 17시 00분

지난 5월 26일 경찰은 "앞으로 집회 현장에 경찰력, 살수차, 차벽을 배치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 백남기 농민 사건이 발생한 지 500여 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16일 만의 일이다.
백남기 농민이 경찰 물대포에 맞고 쓰러진 이후, 그의 가족은 수없이 진상 규명과 사과를 요구했지만, 경찰은 묵살했다. 여러 시민단체와 언론이 경찰의 살인적 진압을 비판했지만, 경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시민단체의 요청으로 방한한 유엔 측 조사단 대표의 지적에도 경찰은 오히려 공식적으로 반박하며 맞섰다. 사경을 헤매던 그가 저세상으로 가던 날, 경찰은 사과는 커녕 '사인 규명'을 해야 한다며 부검영장 강제집행을 시도했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도, 이철성 현 경찰청장도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그랬던 경찰이 5월 25일 수사권 조정을 전제로 한 ‘인권 경찰' 구현 방침을 마련하라는 청와대의 지시가 나온 지 불과 하루 만에 집회시위 현장에 경찰력, 살수차, 차벽을 배치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들고나온 것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수많은 시민단체와 언론, 유엔의 지적에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살수차를 사용해야 한다며 살수차 안전장비 예산 4억 6천 800만 원 증액신청을 했던 경찰이 정권이 바뀌자 갑자기 이렇게 달라졌다.
국민들의 인권개선 요구보다 바뀐 정권의 지시를 더 무겁게 받아들이는 경찰.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인권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지 않으리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는가. 경찰이 정치 권력의 눈치를 볼 때 '민중의 지팡이'보다 '권력의 하수인'에 가까워진다는 것은 우리 현대사가 잘 보여준다. 일제강점기와 정부수립 초기에 경찰이 저지른 고문과 인권유린은 국민의 불신을 사기에 충분했고, 이 뿌리 깊은 불신은 이후 수십 년간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경찰의 오랜 숙원은 ‘인권 경찰 구현'이 아닌 ‘수사권 조정'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인권 경찰' 구현 방안 마련 지시가 '수사권 조정'을 전제로 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경찰이 집회시위 현장에 경찰력, 살수차, 차벽을 배치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겠다고 발표했을까? 결국, 경찰청 입장에서는 인권 보호보다는 수사권 조정이 우선이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철성 청장이 백남기 농민 사건 재수사 가능성을 내비친 것도 청와대의 주문이 있기 불과 사흘 전이었다. 경찰이 고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직후 작성한 청문 감사보고서를 제출하라는 법원의 명령에 불복해 항고한 것은 고작 한 달 전이었다.
집회시위 현장에 경찰력과 살수차를 배치하지 않는 게 원칙이라면, 당장 살수차와 관련해 증액된 예산과 수많은 경비부서 근무 인력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또, 실무적으로 이 ‘원칙'이 어디까지 적용될 것인지도 묻고 싶다. 집회신고제가 사실상 ‘사전에 허용된 집회'만 가능한 구조로 운영되는 현실은 여전히 집회 결사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단순히 집회 현장에 경찰력, 살수차, 차벽을 배치하지 않는 ‘원칙'만으로 인권이 보장됐다고 할 수 있을까?
미국의 사회운동가 알린스키는 "올바른 일들은 잘못된 이유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경찰청의 이번 발표가 단지 새로운 정권에 잘 보이기 위한 것이거나, 수사권 조정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해도 앞으로 이 원칙을 잘 견지해 나간다면 인권 측면에서는 큰 진전이다. 그러나 결국 경찰청이 구현하겠다는 '인권 경찰'이란 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점에서 나는 낙관하기 이르다고 생각한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인권 경찰'이란 것은 '대통령의 마음에 들 만한 경찰'인가?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말을 빌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드리고 싶다.
청장님, 정치하지 마시고 경찰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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