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경찰청 매뉴얼’을 찾아서

2023년 02월 08일 14시 00분

이태원 참사 이후 경찰청이 “없다”며 국회에 제출하지 못했던 ‘수익성 행사 관리 매뉴얼’이 경찰청 부속기관에 버젓이 있는 등 최초로 만든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에 대한 경찰청의 관리 실태가 엉망인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가 된 ‘수익성 행사 관리 매뉴얼’은 2005년 10월 경북 상주시민운동장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 직후 경찰청이 재발 방지를 위해 만든 것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이다. 
현재 경찰청은 이태원 핼러윈 데이처럼 이른바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 대비한 새로운 안전관리 매뉴얼을 제작 중이다. 결국 안전관리 매뉴얼의 효시에 해당하는 초판의 내용을 전혀 살펴보지 않은 채로 새 매뉴얼을 만들고 있지만, 경찰청은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경찰청 “매뉴얼 1판 없다”…이유 묻자 “시간이 오래 됐지 않냐” 반문

‘수익성 행사 관리 매뉴얼’과 관련, 경찰청의 기록물 관리 실태가 드러난 것은 지난해 12월,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두 달이 돼 갈 무렵이었다. 
당시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소속의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찰청에 세 가지 자료를 요청했다. 다중운집 행사에 대한 안전 수칙을 담아 경찰청이 각각 2005년, 2006년, 2014년에 발행한 안전관리 매뉴얼이었다.
경찰청은 이 중 두 개만 제출했다. 제출한 두 자료는 2판에 해당하는 ‘혼잡경비 실무 매뉴얼’과 3판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이다. 1판인 ‘수익성 행사 관리 매뉴얼’은 제출하지 못했다. 경찰청은 “자료를 보관하고 있지 않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고 권칠승 의원에게 해명했다. 
▲ 국정조사 요구자료(3차) 중 권칠승 국조특위 위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답변. 
매뉴얼 1판은 왜 보관하지 않는지 취재진이 경찰청에 물었다.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경찰청 담당자는 “찾아봤는데 없어서 못 드린 것”이라며 “시간이 오래됐지 않냐”고 반문했다.   
경찰청 내에서 전부 다 샅샅이 뒤져봤는데, 경찰청 밑에 지하에 서고까지 가서 샅샅이 뒤졌었는데 못 찾았거든요.

경찰청 자료 제출 담당자

수익성 행사 관리 매뉴얼, 상주 참사 이후 시대 상황 맞게 두 차례 개정

경찰청이 국조특위에 제출하지 않은 ‘수익성 행사 관리 매뉴얼’은 ‘상주 참사’를 계기로 나왔다. 2005년 10월, 경북 상주시민운동장에 마련한 공연장에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11명이 숨지고 158명이 다쳤다. 
유사한 또 다른 참사를 막으려면, 당시 경찰청이 매뉴얼 머리말에 적었듯 “현장 경찰관의 안전 활동 지침서”가 필요했다. 이런 시대적 요구에 따라 경찰청이 처음 만든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이 바로 2005년 ‘수익성 행사 관리 매뉴얼’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이다.
18년 전에 나온 이 매뉴얼은 이후 두 번의 개정을 거쳤다. 시대 상황이 변화함에 따라 내용을 고치거나 강화한 것이다. 2006년에는 ‘혼잡경비’ 개념을 삽입해 경찰이 다중운집 행사의 안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도록 ‘혼잡경비 실무 매뉴얼’로,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에 다시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로 개편됐다. 
▲ (위에서부터) 2005년 수익성 행사 관리 매뉴얼, 2006년 혼잡경비 실무 매뉴얼, 2014년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에 수록된 머리말.

이태원 참사 이후 새 매뉴얼 제작 중…잃어버린 ‘수익성 행사 관리 매뉴얼’ 찾아야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있었다. 경찰청이 주장한 대로라면 주최자가 없는 다중운집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안전관리 매뉴얼이 필요한 상황. 현재 매뉴얼을 제작 중이다. 
그런데 개정판을 제대로 내기 위해서는 먼저 ‘수익성 행사 관리 매뉴얼’을 비롯한 앞서 나온 3개의 매뉴얼을 꼼꼼히 살피는 게 일의 순서로 보인다. 
이 사안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관리하고 집행하고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한 체계가 매뉴얼에는 나와 있잖아요. 다중운집 행사 같은 것들에 대한 책임을 하기(지우기) 위해서 매뉴얼을 (새로) 만든다고 하면 그 이전에는 어떻게 했길래, 그 이전의 시스템에서는 어떤 것들이 빠졌길래 지금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한 건지 (알아야 하죠.)

정진임 /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
이전 매뉴얼의 내용을 보지도 않고 제대로 된 개정판이 나올 수 있을까. 더구나 “오래된 자료여서 없다”는 경찰청의 해명을 믿어도 되는 걸까. 뉴스타파가 잃어버린 경찰청 매뉴얼 즉, ‘수익성 행사 관리 매뉴얼’을 직접 찾아보기로 한 이유다. 

뉴스타파, 경찰 부속기관 3곳에서 ‘수익성 행사 관리 매뉴얼’ 5권 발견

취재진은 매뉴얼에 대한 ‘기록 관리’가 반드시 돼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정부 기관의 매뉴얼은 법 규정만큼 중요한 자료인 데다, 찾고 있는 매뉴얼은 시민의 안전을 다루고 있다. 수익성 행사 관리 매뉴얼이라는 공공기록물은 생산된 순간부터 관리 대상으로, 기록물 가치에 따라 일정 기간 보존되고, 폐기할 때도 정해진 절차를 따라야 한다. 
그러나 당초 경찰청은 수익성 행사 관리 매뉴얼의 정확한 보존 기간과 보존 필요성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다. 대신 경찰청 내부에서 못 찾았다는 말만 반복했다. 2005년에 매뉴얼을 만들었던 인쇄소에도 연락했지만 “오래돼서 없다”고 했다. 
▲ 경찰대학 김구도서관 홈페이지에 ‘수익성 행사 관리 매뉴얼’을 검색한 화면. 중앙경찰학교, 경찰대학교 등이 매뉴얼을 소장 중임을 확인할 수 있다.
수소문 끝에 경찰대 도서관 홈페이지를 찾아 검색했다. 이곳에는 경찰청이 없다던 ‘수익성 행사 관리 매뉴얼’이 있었다.
더 찾아보니, 경찰대 도서관 말고도 경찰인재개발원에 한 권, 중앙경찰학교 도서관에 세 권이 더 존재했다. 경찰청이 없어졌다고 한 안전관리 매뉴얼이 경찰 부속기관 3곳에, 다 합쳐 5권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경찰대학 도서관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저희가 당연히 있다면 (국조특위에) 드려야죠. 그런데 저희가 이거를, 자료 확인을 급박하게 하는 과정이었어서 그런지 경찰대학 도서관까지는 저희가 못 찾아봤던 거고.

경찰청 자료 제출 담당자
권칠승 의원실은 수익성 행사 관리 매뉴얼이 경찰청 밖에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다시 경찰청에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경찰청은 “경찰대학 도서관까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히며 매뉴얼 사본을 제공했다.  
▲ 뉴스타파가 찾아내 권칠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수익성 행사 관리 매뉴얼’의 사본.
뉴스타파의 취재 이후, 경찰청은 뒤늦게 경찰대 도서관과 경찰인재개발원에 있는 매뉴얼 책자를 대출해갔다. 현재 경찰청 내부 자료실에 ‘수익성 행사 관리 매뉴얼’ 두 권을 새로 구비해둔 것으로 확인됐다. 

매뉴얼 초안과 기초 자료도 “없다”는 경찰청

사라진 경찰청 매뉴얼을 찾았다고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 매뉴얼의 초안과 매뉴얼을 만드는 데 참고했을 각종 기초 자료 역시 보존돼야 한다. 수익성 행사 관리 매뉴얼의 ‘기록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일(매뉴얼)을 어떻게 기획하고 어떤 경과를 거쳐서 어떻게 마무리됐다라고 하는 것을 한꺼번에 이렇게 묶어서 관리하거든요. 그 묶음을 보통 ‘기록철’이라고 해요. 그렇게 (기록철로 관리)할 때만이 일의 전체적인 모든 것을 조망할 수 있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그 일이 제대로 수행되었는지를 밝히는 투명하고 책임성 있는 도구로서 기록이 관리되는 거거든요.

조영삼 / 뉴스타파 전문위원 (전 서울기록원장)
수익성 행사 관리 매뉴얼의 초안과 기초 자료들이 기록철 형태로 보존되고 있는지 경찰청에 물었다. 경찰청 기록부서 관계자는 “간행물(매뉴얼)에 대한 초안은 결재를 받기 때문에, (매뉴얼) 책자는 없더라도 초안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매뉴얼 초안과 기초 자료 모두 찾을 수 없었다. 자료 제출을 담당한 경찰청 경비과 측은, 최종적으로 수익성 행사 관리 매뉴얼이 경찰청 특수기록관에 없고, 기록철 역시 “시간이 오래돼 확인이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지금 (매뉴얼) 1판 같은 경우에는 우리 경찰청 특수기록관에는 없는 것으로 확인을 했고. 이게 (매뉴얼 기록철들은) 과거 자료를 이관을 어떻게 했는지를 좀 확인해야 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돼서 확인하기가 좀 곤란하거든요.

경찰청 자료 제출 담당자
매뉴얼 기록철이 폐기됐다면, 경찰청 기록물관리 규칙에 의해 기록물평가심의회의 폐기 심의를 받았어야 한다. 그러나 별도로 폐기 절차가 진행된 적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 간행물 책자는 저희가 폐기 대상으로 넣은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냥 해당하는 부서에서 (매뉴얼을) 받으면 저희가 계속 관리를 하고 있지, (기록물) 평가심의회 대상으로 들어간 적은 없어요. 

경찰청 기록 부서 관계자

새 매뉴얼 만드는 경찰 대혁신TF, 매뉴얼 1‧2판은 “본 적 없다”

경찰청은 지난해 11월 9일 ‘경찰 대혁신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TF를 중심으로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을 다시 제작하고 있다. 
▲ 2022년 11월 18일 경찰청에서 진행된 경찰 대혁신 TF 전체회의 장면. (출처 : 뉴스1) 
앞서 지적한 대로 경찰청은 초판을 확인하지 않고 매뉴얼 개정 작업을 하고 있었다. TF 관계자는 매뉴얼을 새로 만드는 과정에서 매뉴얼의 1판과 2판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2005년 수익성 행사 관리 매뉴얼과 2006년 혼잡경비 실무 매뉴얼을 아예 참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경찰 대혁신 TF 관계자 : 저는 사실 05년 수익성 행사 관리 매뉴얼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 기자 : 06년도에도 이게(매뉴얼이) 개정돼서 나왔거든요.
◼ 경찰 대혁신 TF 관계자 : 제가 죄송한데 그것까지는 제가 정확히 몰라서. 일단은 저는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3판)은 봤고 확인했고 그건 좀 봤고요. 그 전(1, 2판) 거는 제가 본 적이 없습니다. 이건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경찰 대혁신 TF 관계자
경찰 대혁신 TF에 따르면, 새로운 인파 안전관리 매뉴얼의 초안은 지난해 12월 초순에 나왔다. 매뉴얼의 현장 적합성을 검토하려고 1박 2일 워크숍도 진행했다. 또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단의 감수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 매뉴얼에 대한 감수·검토 여전히 진행 중…공개 시점 안 밝혀

올해 1월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경찰청에 매뉴얼 초안을 제출하라고 요청했지만, 경찰청은 자료를 주지 않았다. 대신 “감수와 검토가 완료되면 매뉴얼을 발간해 배포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취재진은 언제 매뉴얼을 공개할 것인지, 또 감수와 검토는 언제 끝나는지 거듭 경찰청에 확인을 요청했지만, 명확히 답하지 않았다. 
경찰 대혁신 TF는 지난 2월 3일 활동을 종료했다. TF는 “인파가 밀집한 상황에서 경찰의 대응 요령을 담은 ‘인파 안전관리 매뉴얼’을 제작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정책 제안서를 경찰청에 제출했다. 현재 경찰청 내 경비 관련 부서에서 매뉴얼 제작을 맡고 있는데, 여전히 매뉴얼에 대한 감수와 검토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잃어버린 경찰청 매뉴얼은 찾았지만…

이번 뉴스타파 취재를 통해 두 가지 사실이 드러났다. ① 대한민국 최초의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인 ‘수익성 행사 관리 매뉴얼’에 대한 경찰청의 공공기록물 관리 실태가 낙제점이라는 사실, ②번 째가 더 중요한데, 경찰청은 안전관리 매뉴얼 초판의 내용을 들여다보지도 않고서 새 매뉴얼 개정을 진행했다는 사실이다. 
경찰청의 기록 관리를 점검할 필요성과 함께, 초판 참조 없이 제대로 된 개정판이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매뉴얼이라는 게 새로운 버전이 나오면 이전 버전은 사실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은 “경찰청이 ‘설명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는데, 시민들에게 신뢰받겠느냐”며 행정의 불투명성을 지적했고, 조영삼 뉴스타파 전문위원은 경찰청 매뉴얼 같은 공공기록물의 경우 정부 차원에서 철저히 관리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설명 책임’이라고 하는 게 행정이 하고 있는 일들을 어떻게 기록으로 설명해내고 신뢰를 얻고, 이런 부분이란 말이에요. 하다못해 의원실의 자료 제출 요구서에서도 (문제가) 드러난 건데, 그러면 이 행정이 과연 시민들에게 자기의 행정 업무를 설명하고 그것을 책임질 수 있다고 하는 신뢰를 받아낼 수 있겠는가라는 의심이 드는 거고요.

정진임 /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
국가적 차원에서, 정부적 차원에서 외교, 안보, 재난, 안전 그리고 시민 생활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매뉴얼)들은 정부적 차원에서 하나로 묶어서 관리를 해야 한다고 저는 기본적으로 생각을 하고요. 국가기록원이 이렇게 제도(매뉴얼)와 관련된 것들은 철저하게 높은 보존 기간과 철저한 관리를 지도·감독해야 한다고 봅니다. 

조영삼 / 뉴스타파 전문위원 (전 서울기록원장)
▲ 경찰청 외경. 
물론 곧 발표할 경찰청의 새 매뉴얼이라는 결과물에는 이렇다 할 ‘흠결’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한 법이다. 잃어버린 안전관리 매뉴얼의 초판은 찾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정부의 역할과 책임 자체를 잃어버렸던 것은 아닌지 경찰청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제작진
영상 취재신영철 이상찬
편집박서영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