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기념관’이 이승만의 과오를 기록할 수 있을까

이승만 띄우기가 한창이다. 여러 극우보수 매체에서 재평가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4·19혁명 이후 끌어 내려진 동상을 다시 세우자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건국전쟁>이라는 영화는 이승만 복권(復權)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승만 띄우기의 정점에 ‘이승만기념관’ 건립 추진이 있다. 
지난해 3월 국가보훈처 장(현재는 국가보훈부) 박민식이 이승만기념관 추진을 언급한 이후 기념관 추진위원회에서 국민 모금을 시작했다. 이후 각계에서, 심지어는 대통령과 장관, 서울시장까지 후원금을 기부하면서 이승만기념관은 마치 국가적 사업인 양 추진되고 있다. 모금 주관단체는 현재 모금액이 100억 원을 넘었다며 잔뜩 고무돼 있다. 
이승만기념관 추진이 이번 정부에서 처음 시도되는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권 시절이던 지난 2009년 이후에도 추진되다가 국민적 공감대 형성에 실패했다. 지금은 당시와는 달리 전방위적으로 기념관 추진을 몰아가고 있다. 최근에는 광화문 옆 열린송현광장이 이승만 기념관 건립 부지로 언급된 후 그곳이 최적지라는 목소리가 추진세력을 중심으로 거세지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서울시의회 시정질문에서 <건국전쟁>을 계기로 이승만기념관 건립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며 장소를 본격논의할 때라고 말했다. 오 시장은 또 송현광장이 다른 후보지에 비해 교통이 매우 좋다는 평가도 내놨다.   
송현광장 건립 추진 세력은 이곳이 미군정 시기에는 미군 숙소로, 이후에는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로 사용된 장소여서 한미동맹의 상징적인 장소라고 강조하면서 ‘(보수의) 성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열린송현광장에 이미 이건희기증미술관이 들어서기로 했고, 이승만기념관 건립도 추진되는데다 서울 상암동 박정희기념관까지 옮겨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울의 가장 중심 지역에 극우보수 가치의 ‘장소성’을 부여하려는 것이다. 
이미 광화문 주변을 ‘이승만광장’이라고 부르는 집단도 있다. 송현열린광장을 포함한 광화문 일대와 서울시청 광장 등은 촛불 집회 장소 등 시민의 역동적 민주 공간으로 자리매김해 왔으나 그런 역사를 바꾸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승만기념관 추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이승만이 국가적으로 추앙해 기념할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든다. 독재자로서 국민에게 쫓겨난 대통령이었으며, 제주 4·3과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의 책임자였고, 일제강점기 ‘위임통치론’과 임시정부 대통령직 하야 사건 등 부적합 이유가 한둘이 아니다. 심지어 종교적 분란의 불씨를 제공하였다며 불교계에서도 반대한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맞선 3.15 민주의거 64주년을 맞아 민족문제연구소 등 시민사회단체가 이승만기념관 건립이 추진되는 서울 열린송현광장에서 이승만기념관 건립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출처:연합뉴스)
이렇듯 기념관 반대 주장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어 필자가 굳이 거기에 이유를 더 붙일 필요는 없을 듯하다. 다만 기념관을 추진하는 세력들이 주장하는 것 중 꼭 짚어야 할 점이 있 다. 그것은 기념관에서 공과(攻過)를 균형 있게 기록하고 전시하겠다는 ‘주장’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개인을 대상으로 건립·운영하는 기념관은 목적이 그 대상 개인을 기리기나 선양(宣揚 /exaltation)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공적은 적극적으로 내세우고 과오는 피해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과오를 드러낸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거나 주변인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아예 언급하지 않기도 한다.
기념관이기 때문에 끄덕이며 양해하기도 한다. 그것이 기념관 건립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기념관은 공과를 균형 있게 기록하고 전시하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 이승만기념관을 추진하는 주체들은 이승만의 과오는 기념관을 만들고 그곳에 기록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기념관은 자서전이나 회고록과는 다른 것이다. 그래서 ‘기념관의 객관성’이라는 말이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본질적으로 기념관은 객관성이 없다.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주 장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미국의 ‘닉슨 대통령도서관·박물관(Richard Nixon Presidential Library and Museum)’의 워터게이트 사건 전시를 들며 공과를 객관적으로 전시하는 사례로 제시하는데 이것도 전후 맥락을 자세히 들여보지 않고 하는 주장이다.
먼저, 닉슨 대통령도서관·박물관은 기념관이 아니고 기록관(Archives)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미국은 대통령별로 각각 대통령기록관을 건립하고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대통령기록국(Presidential Libraries, and Museum Services)에서 통할한다. 민간에서 재단을 꾸려 모금을 통해 시설을 건립하고 국가에 기부채납하면 국가가 운영하는 방식이 제도화돼 있다. 보통 대통령도서관(대통령도서관·박물관)이 공식 명칭이다. 
이글에서는 ‘대통령기록관’이라고 부르지만 재임 중의 대통령기록을 보존관리하고 서비스하며, 박물관을 운영한다. 전직 대통령과 정권의 직분과 책임 그리고 일에 대한 설명책임(Accountability)을 실현하는 기관이다. 결국, 그 시대를 설명하는 가장 훌륭한 제도이고, 도구이다. 예컨대 뉴딜정책 및 제2차 세계대전을 연구하려면 F. 루즈벨트 대통령기록관을, 원폭 투하와 냉전의 기원에 대해서는 트루먼 대통령기록관을, 그리고 베트남전쟁과 대중국 외교에 대해서는 닉슨 대통령기록관의 기록을 뒤져야 한다. 
따라서 개별 대통령의 기록관이기 때문에 해당 대통령의 기념사업을 하긴 하지만 ‘기념관’과는 명백히 구별된다.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이 통할하므로 각 대통령의 재단이 일방적으로 운영할 수 없는 구조이다(국가가 운영하는 대통령기념관은 따로 있다. 미국은 워싱턴, 링컨, F.루즈벨트 등 세 대통령의 기념관을 국립공원관리소에 운영한다). 닉슨 대통령기록관도 마찬가지이다. 닉슨 대통령기록관은 미국의 다른 대통령기록관과는 다르다. 닉슨은 불명예로 임기 중 퇴임했기 때문에 물러난 뒤 바로 대통령기록관을 건립하지 못했고, 재임 중 기록은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이 직접 관리했다. 
1990년에 닉슨 재단에 의해 닉슨도서관이 사설로 설립됐으며, 2007년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과 협의해 모든 기록을 닉슨도서관에 이관해 옴으로써 대통령기록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어 2016년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의 대통령기록관 체계로 재개관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 워터게이트 사건 관련 기록은 사설 기념관 형태이던 닉슨도서관 초기부터 전시된 것이 아니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2007년 닉슨 대통령기록관장이었던 팀 라프탈리(Tim Naftali)에 의하면 사설 도서관이던 시절에는 ‘닉슨충성파’들의 대통령 역사 사유화가 극심했다. ‘닉슨충성파’들은 워터게이트가 1972년 선거를 뒤집기 위해 언론과 민주당이 조율한 쿠데타였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를 도서관이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산하의 연방기관이 되면서 현재의 틀로 수정됐다고 한다(참고; The Atlantic, Jun 3, 2022). 
즉, 국가가 관리하는 기관이 됨으로써 워터게이트 사건의 전개와 결과에 대한 전시가 가능했다. 만약 사설 기념관으로 계속 존속되었다면 워터게이트 사건 관련 기록은 전시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듯 워터게이트 사건이라는 닉슨의 과오가 기록되고 전시되는 것은 국가가 통할하는 대통령 기록관 체제에서 운영되기 때문이다. 
지금 이승만기념관 추진 세력의 기념관이라면 절대 가능하지 않다. 이것은 박정희기념관의 전례를 보면 알 수 있고, 최근 영화 <건국전쟁>을 보면 더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문서와 기록에 의해 사실을 객관적으로 전달한다는 <건국전쟁>에서는 이승만은 독재가 아니라 장기집권했을 뿐이며, 4·19혁명이 이승만정권의 교육정책의 힘이고, 3·15부정선거는 이승만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또, 4·3사건과 한국전쟁 중 민간인 학살 사건은 사실을 왜곡하거나 아예 언급하지 않고, 항일무장투쟁을 폄훼하거나 위임통치론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심지어는 이승만 때문에 3·1운동이 무르익었다는 인터뷰를 담기도 했다. 이렇듯 일부는 사실을 다르게 말하거나, 또 다른 일부는 아예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을 왜곡할 것이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이승만기념관이 이승만의 과오까지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전시한다는 주장을 믿기 힘든 까닭이다. 
‘기념관’으로는 절대 역사와 특정 개인을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설명하지 못한다. 그 역할을 ‘기록관’이 온전히 수행한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기록관은 공식적인 기록으로 설명책임을 실현하는 기관이므로 그나마 객관성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한계가 매우 뚜렷한 이승만기념관을 정부와 지차체가 지원하고 나서는 것은 분명 잘못된 현상이다.
만약 이승만기념관을 추진하는 주체들이 재임 중 기록과 유품 등 기념물까지 함께 국가가 관리하고, 국민이 제한없이 이용하는 이승만 대통령기록관을 건립하자고 주장했다면 필자는 그 진정성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제작진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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