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명: 리베이트 중독]① 나는 '제약사 현금 배달부'입니다

2019년 12월 18일 08시 00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국내 의료시스템과 제약산업의 제반 문제, 그리고 정부의 감시감독 기능을 진단하는 <뉴스타파 백신프로젝트: ‘의,약,돈’>을 시작합니다. 의료, 약품은 국민의 생명, 재산과 직결됩니다. 하지만 올해 인보사 사태에서도 봤듯이 이 분야가 근년들어 자본과 산업 논리에 장악되면서 의약, 자본, 권력의 유착은 더욱 심해지고, 공공성은 점점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뉴스타파는 우리나라 의료, 제약계가 최소한의 공공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또 정부가 감시감독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백신’ 주사를 놓겠습니다. ‘의,약,돈 프로젝트’는 앞으로 3년간 계속될 예정입니다. 

그 첫 시리즈로 국내 한 제약사의 불법 리베이트 실태를 12월 18일부터 사흘간 3회에 걸쳐 보도합니다. ‘의,약,돈 프로젝트’는 제보를 기다립니다. vaccine@newstapa.org  -편집자주

우리나라 ‘완제 의약품 제조업’에 등록된 기업은 2100여 곳에 이른다. ‘매출 1조’가 넘는 거대 제약사들 틈에서 매출 100위권 진입에 간신히 성공한 중소기업이 있다. 이어질 이야기는 그 중 하나인 이니스트바이오제약의 불법 리베이트 영업 실태를 들춘다. 제약업계와 의료계의 고질병, 그 이야기를 폭로하기 위해 이 회사의 ‘현금 배달부’는 스스로 얼룩진 경력을 끝내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뉴스타파를 찾았다.


뉴스타파 취재와 이니스트바이오제약(이니스트) 영업사원 A씨의 증언·자료를 종합하면 이니스트는 최소 2016년부터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불법 리베이트 영업을 벌였다. 영업사원들은 회사의 지시·관리 아래 거래처 의사들에게 대가성 현금을 전달하고 자사 약품 처방을 유도했다. 

이니스트바이오제약, ‘불법 리베이트’ 조직적 기획·실행

회사는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영업사원들이 현장에서 뿌리는 리베이트 자금은 회사가 조달한다. 이니스트는 영업직들이 급여통장과 별도로 운용하는 ‘비밀계좌’에 리베이트 자금을 매달 입금한다. 업계에서는 이른바 ‘예산’이라 부르는 돈이다. A씨 증언에 따르면 영업사원들은 매달 적게는 200만 원에서, 많게는 2000만 원까지 거래처 처방 매출의 20~40%에 해당하는 리베이트 예산을 받아간다. A씨의 ‘비밀계좌’를 보면 한달에 1500만 원에 이르는 자금을 받은 내역도 확인된다. A씨의 비밀계좌 거래내역에는 리베이트 예산 입금자로 이니스트바이오제약을 뜻하는 ‘이니스트바이’라는 여섯 글자가 찍혀 있다. 거래점은 이니스트 그룹의 주거래은행인 기업은행이다. 

A씨와 같은 영업사원들은 회사가 지급한 ‘예산’을 현금으로 뽑아 일명 ‘처방사례비’를 마련한다. 자사 약품을 처방해주는 대가로 의사들에게 처방사례비 명목의 현금을 쥐어주는 것이다. A씨는 2016년 무렵에는 처방실적의 약 40%까지 의사에게 리베이트로 줬다. 즉, 거래처 의사가 이니스트 약품 1000만 원치를 처방하면 400만 원을 현금으로 받아챙길 수 있다는 뜻이다. 이니스트는 해마다 약 5%포인트씩 리베이트 지급 비율을 줄여나갔고, 최근에는 20~25%선에서 리베이트를 지급하고 있다. 

회사는 매출 대비 리베이트 지급 비율을 매년 조정한다. 이를 영업사원들에게 비밀리에 공지한다. A씨에 따르면 이니스트는 매년 1월 1일 시무식을 기점으로 전국 영업사원들을 소집한다. 이 자리에서 영업기획이사가 리베이트 지급 비율, 이른바 ‘정책’을 발표한다. 이때 회사 측은 현장 기록도 통제한다. A씨는 “(리베이트) 정책을 구두나 간단한 표로 공개한다”며 “표를 공개하는 순간부터 사진을 못 찍도록 일체 휴대전화를 못 들게 한다”고 말했다. 

영업사원 “대표이사가 직접 리베이트 승인, 전달”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대표이사가 직접 리베이트 전달에 가담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A씨가 이니스트로 이직한 직후인 2016년, A씨와 거래하던 대형 피부과 체인의 최모 원장은 이니스트 쪽으로 거래를 바꾸는 대가로 선(先)지원금, 이른바 ‘랜딩비’를 다시 요구했다. 랜딩비는 의사가 특정 제약사의 약품을 처방하는 조건으로 6개월에서 1년치 처방 매출에 이르는 목돈을 첫 거래 때 미리 받아챙기는 불법 자금을 말한다. 최 원장은 서울 신사동과 하계, 경기 안양에 같은 상호의 피부과 3곳을 운영하는 개인병원계의 큰손이다. 회사로서는 최 원장만 잡으면 단숨에 병원 3곳에서 월 1500만 원 이상의 처방 매출을 끌어낼 수 있다. A씨는 랜딩비로 3000만 원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기안서를 수기로 작성해 회사에 제출했다. 영업본부장과 대표이사의 결재를 받았다. 최 원장에게 랜딩비 3000만 원을 전달하기 위해 병원을 방문한 인물이 바로 김국현 당시 대표이사(현 이니스트 그룹 회장)였다고 A씨는 증언했다.  

저랑 부사장님이 병원 1층에 있었습니다. 사장님(김국현 대표)이 오시는 건 알았죠. 사장님이 그전에 직접 자기가 전달하신다고 해서. 사장님 차가 오고 기사가 사장님 내려다 드리고 제가 병원 건물 앞에서 인사했고요. 사장님 혼자 건물 8층으로 올라가셔서 그 사이에 저는 부사장님이랑 인근 커피숍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고요. 소요시간은 40분 정도 됐던 거 같아요. 사장님이 내려오셔서 ‘열심히 해라’ 그런 말씀하시고. 바로 헤어졌습니다.

A씨 / 이니스트바이오제약 영업사원

취재진이 입수한 A씨의 휴대전화 통화 녹취를 들어보면 최 원장 역시 A씨에게 “사장(김 대표)과 만난 적이 있다”며 이니스트와의 거래는 A씨가 아닌 사장과의 거래라는 취지로 발언하는 대목이 확인된다. 


리베이트 비자금 연 수십억 추정…불법 회계 의혹

과거에 적발된 유사 사건을 들여다 보면 불법 리베이트 자금 세탁 수법의 양상을 짐작할 수 있다. ‘허위정산·분산회계’ 방식이다.

● “거래처 의사에게 제공할 현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영업사원 개인이 사적으로 사용한 카드·현금 영수증을 회의·식대 비용 명목으로 허위로 정산하는 방법으로 현금 마련” (2014년 12월, 서울서부지검 동화약품 리베이트 수사 사건

● “리베이트로 제공할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상품권을 구입한 후 … 현금화하여 의사·약사에게 제공” (2014년 8월, 서울서부지검 CMG 제약 리베이트 수사 사건)

● “거래처인 병·의원에 접대성 경비를 관행적으로 지출하고, 판매촉진비, 복리후생비 등으로 분산하여 회계처리한 것으로 확인” (2010년 7월, 국세청 리베이트 업체 세무조사 사건)

이니스트는 2016~2018년 2년 사이 매출이 대폭 증가했다. 이 회사 감사보고서를 보면 2016년 270억 원대에 그친 매출은 2018년 530억 원으로 2배로 늘었다. A씨 증언에 따르면 이 회사는 영업이익을 보전하기 위해 리베이트 지급율 자체는 매년 줄이고 있다. 그러나 공격적인 영업과 이에 따른 매출 증가에 비례해 리베이트 지출 총액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니스트가 굴리는 리베이트 비자금은 매년 최소 수십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니스트 직원은 현재 270여 명이다. 이 가운데 3분의 1 수준인 90여 명이 영업사원이다. 이들이 매달 리베이트 예산으로 300만 원씩만 받는다고 가정하면, 회사는 연간 32억 4000만 원을 현금으로 마련해야 한다. 1인당 매달 500만 원을 받는다고 치면 연간 54억 원이 필요하다. 이 같은 막대한 음성적 자금 지출을 정상적으로 회계처리하기란 불가능하다.

유사 사건들과 A씨 증언을 토대로 이니스트의 재무제표를 보면 수상한 점이 발견된다. 이니스트는 2018년 재무제표상 판매비·관리비에 속한 복리후생비로 30억 1700여만 원, 여비교통비에 20억 7400여만 원, 광고선전비로 34억 9000여만 원을 지출했다. 이 3개 계정 지출을 모두 합하면 85억 8000여만 원에 이른다. 그런데 2017년 대비 복리후생비는 무려 3배, 여비교통비는 2.5배, 광고선전비도 1.4배까지 가파르게 증가한 사실이 확인된다. 반면 직원 수는 2017년 기준 264명, 2018년 277명으로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직원 수에 비례해 지출이 늘어나는 해당 계정의 특성상, 복리후생비와 여비교통비 등이 1년 만에 대폭 증가할 요인은 없어 보인다. 허위정산, 분산회계 처리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과거 리베이트 적발 사건들처럼 이니스트도 영업사원들의 개인 영수증을 모아 리베이트 자금을 회사경비 지출로 둔갑시켜 왔다고 한다. A씨에 따르면 영업사원들이 지급받은 리베이트 예산액수만큼 식당, 차량 주유 영수증 등을 매달 회사에 제출하면 회사는 이 영수증들을 광고선전비, 여비교통비, 복리후생비 등 계정으로 정산한다. 실제로는 영업사원 본인이 쓰지 않은 영수증을 제출해도 회사는 묵인했다고 한다. A씨는 “잘 아는 식당이 있으면 부탁하거나 지인들한테 부탁해서 영수증을 얻어 정산금액을 맞춘다”며 “자기 명의로 된 카드 영수증도 아니고 여기 저기서 금액만 맞추기 때문에 저희끼리도 나중에 문제가 되면 소명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

 
▲ 이니스트는 매달 영업사원들에게 리베이트 예산을 지급했다.

리베이트, 최근 4년간 180여 건 적발…약가인하 처분에도 불복

이렇듯 이니스트가 저지른 현금성 리베이트 제공은 업계에서 해묵은 수법이다. 검찰 등 수사기관의 발표자료에서 흔히 등장하는 방식이지만 지금까지 업계에서는 걸리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계속 진행했다. 우리나라는 이미 10년 전인 2010년 11월부터 ‘리베이트 쌍벌제’를 시행하고 있다. 불법 리베이트를 준 업체뿐 아니라, 받아챙긴 의료인까지 모두 처벌하도록 현행법상 처벌 규정을 강화한 것이다. 이에 따라 불법 리베이트 수수 사실이 적발된 업체, 의사 양쪽 모두 3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의사는 최대 1년의 면허자격 정지 또는 취소 처분까지 받게 된다. 또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정거래법상 ‘부당한 고객 유인 행위’ 혐의로 리베이트를 준 업체를 조사하고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리베이트 처벌 규정과 행정 조치도 현실에서는 무력하다. 업체와 의사들은 서로의 이익에 따라 여전히 위태로운 모험을 감행하고 있다. 올해 국정감사 기간 보건복지부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의약품 업계(제약사·도매상)에서 총 188건, 495억 원대 불법 리베이트 사례가 적발됐다. 연도별로는 2015년 30건(108억 원), 2016년 96건(220억 원), 2017년 35건(130억 원), 2018년 27건(37억 원)이다.

복지부는 리베이트가 적발된 제약사와 소송전을 벌이는 처지다. 복지부는 리베이트 약제품목에 대해 약가 인하 처분을 내린다. 리베이트 관행은 국민들이 마련한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고 약값을 상승시키기 때문이다. 또 치료 적합성보다 리베이트 제공 여부에 따라 약을 처방하게 되므로 환자의 선택권을 침해한다. 처방 실적에 따라 리베이트가 증가하기 때문에 과잉처방의 우려도 낳는다. 복지부는 지난해에도 불법 리베이트 제공이 적발된 11개 제약사의 약제 340품목의 약가 인하를 결정했다. 이 가운데 한 곳이 바로 이니스트다. 업체들은 복지부를 상대로 약가인하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달 동아에스티, 아주약품, 일양약품, 한국피엠지제약 등 4곳이 1심에서 승소했다.

이니스트, 복지부와 소송 중에도 리베이트 살포

이니스트도 복지부와 약가인하 취소 처분 소송 중이다.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이니스트는 과거 ‘제이알피’라는 상호를 가졌던 2007년에서 2012년 사이 영업사원을 통해 의사 13명에게 모두 1억 5800여만 원의 현금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2012년 당시 회사 대표이사는 약사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2017~2018년 이니스트의 리베이트 연루 약제 49종에 대해 약가 인하 처분을 내렸으나, 회사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니스트는 1, 2심에서 모두 패소했지만 현재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이니스트는 복지부를 상대로 리베이트 소송전을 벌이던 시기에도 불법 리베이트 영업을 벌였던 것이다.

뉴스타파는 보도에 앞서 영업사원 A씨의 증언과 기록을 거듭 검토했다. 지난 10월부터 최근까지 그를 7차례 만나 대면 인터뷰했다. 서면 인터뷰도 1차례 더 진행했다. 같은 질문에도 그는 일관되게 진술했다. 취재진은 A씨가 의사에게 돈봉투를 전달했다는 장소와 상황, 현금인출 은행지점 등은 현장을 찾아가 직접 확인했다. 또 그의 진술을 ‘비밀계좌’ 거래내역과 거래처 처방실적 자료, 리베이트 지급액 기록 등과 비교검토한 뒤 신뢰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뉴스타파는 이니스트 본사를 찾아가 리베이트 등과 관련한 질의서를 전달하고 공식 해명을 요청했다. 이니스트는 “경영진이 불법적 영업 방식을 지시, 관리한 사실이 없다”고 답했다. 또 “직원들에게 정기적으로 준법 교육을 시행하고 있으며 영업사원들의 불법 영업 행위 발견시 규정에 따라 인사 조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취재진은 또 억대 리베이트 수수 의혹의 당사자인 최 원장에게 반론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전화를 걸고 문자메시지로 취재 취지를 설명했지만 최 원장은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 원장은 뉴스타파가 해명을 요청한 직후, 도리어 영업사원 A씨에게 전화해 상황을 파악하려고 한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취재진을 만나기 전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를 접수했다. 최근 이 사건은 경찰청과 공정위에 이첩돼 본격적인 수사와 조사를 기다리고 있다.

A씨는 리베이트 자금 일부를 개인적으로 쓴 적도 있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또 자신이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책임질 각오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니스트를 다니며 서울, 경기권 개인병원 10여 곳과 거래했다. 월 단위 처방 실적이 최소 수백만 원 수준을 유지하는 병원 원장들에게 현금 리베이트를 지속적으로 제공했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한 명이 김국현 이니스트 회장이 직접 방문했다는 피부과 체인의 최 원장이다.



A씨는 올해 들어 최 원장과 관계가 틀어졌다. 지난 8월경부터 리베이트 지급일을 지키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최 원장은 “약을 바꿀 수도 있다”며 그를 다그쳤다. A씨는 최 원장의 독촉이 반복되면서 리베이트에 환멸을 느꼈다고 한다. A씨는 2016년부터 올해까지 최 원장에게만 총 1억 원이 넘는 현금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A씨가 공익신고를 결심한 계기가 된 인물, 최 원장의 행태는 영상 리포트에서 낱낱이 고발한다.

제작진
취재기자김지윤, 홍우람
촬영기자이상찬, 오준식, 최형석, 신영철
편집정지성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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