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복 덕분에 5만 6천 원짜리 우동을 먹다

2014년 06월 12일 18시 52분

지난달 말, 지금은 인천시장으로 당선된 유정복 전 의원이 정치자금으로 밥값을 계산했던 호텔 식당을 직접 가봤다. 전화로 취재해도 될 법한 일이지만 방송 매체는 그림을 한 컷이라도 찍어야한다. 호기심도 있었다. 한 끼에 수십만 원 하는 호텔 식당 밥이라….

촬영기자와 함께 부자 코스프레를 하며 호텔 일식당에 입장. 입성이 그럴싸하지 않다. ‘차림이 허술한 부자가 진짜 부자’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호기롭게 룸을 달라고 한다. 룸에 앉으면 3만 원 추가. 메뉴판을 열자 7백만 원짜리 사케 가격이 눈에 들어온다. 야마가타현의 천재 장인이 한 방울 한 방울 정성스럽게 내린 술이다. 한 잔에 얼추 40만 원 정도. 실제로 이 술을 사먹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소시민다운 결론을 내린다.

20만 원이 넘는 코스 요리는 패스. 메뉴판을 뒤져보니 –글자 그대로 뒤졌다- 튀김우동이 가장 싸다. 5만 6천 원. 종업원에게 배가 불러서 한 그릇만 시키겠다고 말한다. 순간 흔들리는 종업원의 눈동자. 어색한 정적이 흘렀지만 호텔리어다운 친절함을 금세 회복한다. “장난하냐?” 환청이 들리지만 무시한다.

유정복 당선자는 국회의원 시절인 2012년 크리스마스 전날 이 호텔 일식당에서 79만 원어치 밥을 먹었다. 비용은 후원금 등으로 조성된 정치자금으로 지불했고, 명목은 ‘당직자들과의 식대’였다. 유 당선자는 1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뒤 11개월 동안 ‘당직자들과의 식사’ 명목으로 정치자금을 3천만 원 가량 썼다. 횟수로는 74회, 한 끼에 40만 원. 이 가운에 휴일에 사용한 것이 11차례다. (뉴스타파는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광역단체장 후보 가운데 19대 의원 출신 10명의 정치자금 사용 내역을 모두 분석했다. 이 가운데 유정복 당선자는 유독 ‘고급 식당’에 아낌없이 정치자금을 사용했다.)

유정복 당선자는 고급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은 ‘당직자들’이 누구냐는 질문에 “자료(같이 식사를 한 ‘당직자들’의 명단)가 있다”면서도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누구인지 알 방법이 없다. 따라서 지금 이 글에서 문제 삼는 것은 유정복 당선자의 ‘고급 식당 순례’가 적법한지 여부가 아니다. 정치자금을 사적으로 사용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는 정치자금법 조항도 아니다.

▲유정복 인천시장 당선자(좌), 김경래 기자(우)
▲유정복 인천시장 당선자(좌), 김경래 기자(우)

이달 초 정보공개센터가 공개한 문용린 전 교육감의 업무추진비 내역을 보면 문 전 교육감도 유 당선자와 자웅을 겨룰 정도의 ‘맛집 마니아’인 것을 알 수 있다. 각종 간담회와 업무 협의를 비싼 가격으로 소문난 고급 식당에서 진행했다. 이 둘의 단골 식당 목록은 상당부분 겹친다.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을 만나보면 식사 취향이 고급인 경우가 많다. 수십만 원짜리 식사 자리는 이들에게 지극히 당연하고 평범한 일상이다. 유정복 당선인의 특보는 “중앙 정치나 이런 바닥에서 그건 얼마든지 몇 백 번도 (지출이) 가능하고, 크리스마스 날 호텔에서 몇 십만 원 밥 먹은 게 뭐 큰 대수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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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을 위해’ 5만 6천 원짜리 튀김우동을 먹고 (예상대로 배는 부르지 않았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는데 종업원 한 명이 종종걸음으로 복도를 향한다. 우아하게 영수증에 사인을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러 나간다. 아까 종종걸음 친 종업원이 엘리베이터를 붙잡고 있다.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깊게 인사한다. 또 오세요. 황송하여라.

그렇다. 5만 6천 원의 우동 가격은 밀가루와 육수 가격이 아니다. 대접 받고 있다는 사실을 수시로 상기 시켜주는 서비스. 이 사회의 지도층이라는 것을, 특권층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는 대접. 이벤트 차원에서 직원들과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더라도 저녁은 대한민국 1%의 대접을 받고 싶은 욕망. 앞으로 이 대접을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다는 다짐. 여기서 정치인의 고급 식사 취향은 ‘사적인 취향’을 넘어서 ‘정치적 특권과 욕망’이 된다.

이런 고급 취향은 아마도 승진하면서 자연스럽게 기업 민원인들과 식사 자리가 잦아지면서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잘나가는 지인들 혹은 스폰서와 엮이면서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어떤 식으로든 시작된 이 고급 취향은 세금으로 만들어진 업무추진비와 후원금 등으로 조성된 정치자금 덕분에 ‘공짜로’ 지속가능하게 된다. 여기서 정치인의 고급 취향은 시민의 돈을 낭비하는 나아가 ‘절취’하는 행위가 된다.

당연하겠지만 50만 원짜리 식사를 하면서 업무 협의를 한다고 만 원짜리 식사를 할 때보다 50배 나은 정책이 나오지 않는 법이다. 정치자금 지출 내역을 보면 유정복 당선자의 지역구 사무실 직원들은 김밥천국이나 순댓국집 등에서 주로 식사를 해결한 것으로 나온다. 의원 나리가 가져오는 수십만 원짜리 식사 영수증을 처리하면서 이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 본 칼럼은 2014년 6월 11일 미디어오늘 [미디어현장] 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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