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마약왕' 박왕열과 김형렬, 언제쯤 데려와 처벌할 수 있을까

2021년 04월 30일 10시 50분

지난해 10월 필리핀에서 체포된 텔레그램 '마약왕' 박왕열. '전세계'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던 그는 아직 필리핀에 머물고 있다. 박왕열에게 마약을 공급한 것으로 확인된 마약 상선 김형렬도 베트남에 거주한다는 사실만 알려졌을 뿐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이들은 대체 언제쯤에나 법의 심판대에 올라 죄값을 치를 수 있을까.  
지난해부터 '텔레그램 마약방'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일명 '전세계 그룹'을 추적 보도해 온 뉴스타파는 필리핀 감옥에 수감돼 있는 일명 '전세계 그룹'의 총책 박왕열의 국내 송환 가능성, 그리고 종적을 감춘 마약상 김형렬의 최근 근황을 취재했다.  

'전세계 박왕열' 송환, 최대 수십 년 걸릴 수도

'마약왕' 박왕열이 받고 있는 혐의는 한둘이 아니다. 가장 죄질이 나쁜 건 살인. 2016년 필리핀의 한 사탕수수밭에서 3명의 한국인을 무참히 살해하고 돈을 빼앗은 뒤 사체를 유기한 혐의다. 거기에 더해 불법 무기와 마약 소지, 필리핀 감옥을 두 번이나 탈옥(2017년, 2019년)한 혐의도 받고 있다. 필리핀 현지에서 정상적으로 재판이 진행된다면 최소 수십 년의 징역형은 불 보듯 뻔한 상황. 참고로 필리핀은 사형폐지 국가다.  
지난해 10월 28일 필리핀 현지에서 검거된 '전세계' 박왕열. (출처 : 필리핀 현지 언론 GMA NEWS)
한국과 필리핀이 맺고 있는 '범죄인 인도 조약'에 따르면, 범죄인 인도는 현지에서 선고된 형의 집행이 모두 종료된 뒤에야 가능하다. 지난 2018년 우리 정부의 '범죄인 박왕열 인도 요청'을 필리핀 정부가 거부한 것도 이런 조약 내용 때문이었다.(당시 박왕열은 2차 탈옥 전 필리핀 감옥에 수감 돼 재판을 받고 있었다.) 박왕열의 범죄로 생긴 피해자가 대부분 우리나라 사람이지만, 필리핀은 필리핀대로 자국 내에서 벌어진 범죄에 대해 처벌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보다 훨씬 더 많은 죄를 짓고 구속된 박왕열의 국내 송환이 최대 수십 년 뒤로 미뤄질 수도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피해자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필리핀 사탕수수밭 살인 사건'의 피해자 유족 중 한 명인 A 씨는 "박왕열을 우리 법으로 처벌할 기회조차 없을 수도 있다. 필리핀에서 두 번이나 탈옥했던 박왕열이 또 탈옥해 사라질 수 있다는 점도 불안하다"고 말했다.

"필리핀에 '임시 인도' 요청하자"

그럼 박왕열을 한국으로 데려올 방법은 정말 없을까.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피해를 감안해 필리핀 정부가 '임시 인도' 조치에 합의해 주면 된다. '임시 인도'란 해외에서 형 집행이 완료되지 않은 범죄인을 데려와 재판을 받게 한 뒤 해당 국가로 다시 돌려 보내는 제도다. 형 집행이 끝난 범죄인만 송환이 가능케 하고 있는 '범죄인 인도 조약'의 예외 조항인 셈. '임시 인도'가 이뤄지면 최소한 피해자나 유족들이 재판도 받아보지 못하고 허송세월해야 하는 안타까움은 덜 수 있다.  
우리나라와 필리핀이 맺은 범죄인 인도 조약에는 '임시 인도'가 이렇게 규정돼 있다.   
범죄인의 인도가 가능한 경우, 피청구국은 자국법에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체약당사국이 합의하는 조건에 따라 인도청구된 자를 임시로 인도할 수 있다. 임시 인도 후에 피청구국으로 되돌아 온 자는 선고된 형의 집행을 위하여 이 조약의 규정에 따라 종국적으로 인도될 수 있다. 

대한민국-필리핀 공화국 간 범죄인 인도 조약 제5조 2항 - 임시 인도
우리나라는 이미 '임시 인도'로 한국인 범죄자를 송환받은 경험이 있다. 바로 한국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필리핀으로 도주한 뒤, 한인 여행객들을 상대로 납치·강도를 저질렀던 '최세용 사건'이다. 
2012년, 최세용은 필리핀에서 태국으로 넘어가다 여권·공문서 위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태국 법원에서 징역 9년 10월을 선고받았었다. '범죄인 인도 조약'을 따른다면 10년 가까이 기다린 뒤에야 송환이 가능했던 상황이었다.
우리나라 법무부와 외교부는 "송환이 늦어지면 최세용이 저지른 살인 사건에 대한 수사나 재판이 어려워진다"고 태국 당국을 설득했고, 결국 2013년 태국 정부로부터 '임시 인도' 결정을 이끌어냈다. 2017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받은 최세용은 태국 정부의 협조로 현재 우리나라 감옥에서 형을 살고 있다. 
2013년 태국에서 우리나라로 '임시 인도'됐던 강도살인범 최세용(가운데). (출처 : 연합뉴스)
오랫동안 '필리핀 사탕수수밭 살인사건' 유족을 지원해 온 전성규 한국심리과학센터 이사는 최세용의 사례를 박왕열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왕열의 살인 혐의에 대해선 이미 필리핀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같은 혐의로 범죄인 인도를 청구하면 효력이 없습니다. 박왕열이 국내에 다량의 마약을 들여온 사실 등 새로운 범죄 혐의를 필리핀 당국에 계속 알린다면 '임시 인도' 조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성규 한국심리과학센터 이사
박왕열 송환이 점점 늦어지면서 피해자들 사이에선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를 요구하는 목소리와 함께 자구책을 찾는 흐름도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피해자 유족인 A씨가 "박왕열을 '궐석 기소'해 달라"는 내용의 고소장을 검찰에 제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궐석 기소'란 피의자가 없는 상태에서 기소하는 것을 말한다.  
A 씨는 "검찰은 피의자가 없는 상황에서 기소를 진행하는 게 어렵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살인 혐의만으로는 박왕열을 데려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박왕열의 '마약 범죄'를 명분으로 '인도 청구'가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어 작게나마 기대를 걸어 보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타파와 인터뷰 중인 '필리핀 사탕수수밭 살인 사건' 피해자 유족 A 씨(오른쪽).
취재진은 범죄인 송환 업무를 담당하는 법무부 검찰국 국제형사과에 연락해 '박왕열에 대한 송환 업무가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임시 인도 추진 계획이 있는지' 등을 물었다. 법무부는 외교관계상 비밀유지 의무 등을 이유로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베트남 마약상 김형렬은 마약 사업 준비 중?

지난 2월 뉴스타파가 '전세계' 박왕열에게 마약을 공급한 사실을 확인해 보도했던 베트남 마약상 김형렬 문제도 심각하다. 인터폴에 지명수배하고 베트남 측과 수사 공조 체제를 구축해 쫓고 있지만, 아직 행적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취재진이 확인해 보니, 김형렬은 이미 자신이 살던 베트남 호치민시의 고급 아파트를 떠났고 텔레그램 아이디(salagim, 김사라)도 삭제한 상태였다.  
올해 초까지 김형렬이 살았던 것으로 파악된 베트남 호치민 소재 고급 아파트 조망도.
그런데 뉴스타파는 김형렬이 최근 새로 만든 텔레그램 아이디를 통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 내용을 입수했고, 그의 근황을 확인했다. 놀랍게도 김형렬은 마약 사업 재개를 준비 중이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전세계' 박왕열의 상선 김형렬의 최근 대화 내용.
텔레그램 마약상들 사이에서도 김형렬이 새로운 국내 유통책을 모집한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김형렬이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보내는 마약을 받아줄 국내 직원, 일명 '하선'을 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텔레그램 마약상은 취재진에게 "지난 2월 실명 보도가 나간 이후 김형렬은 기존에 갖고 있던 마약 물량을 대부분 처분하고 일을 중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 수사가 잠잠해지면 다시 나타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마약 범죄와 마약 유통 조직에 대해 잘 아는 분들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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