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돈 로비 추적] ②공개도 감시도 않는 엉터리 지출보고서

2020년 10월 22일 08시 00분

3년 전 새롭게 시행된 불법 리베이트 억제 정책에 따라 제약·의료기기 업계는 영업대상인 의료인들에게 각종 물질적 로비를 제공한 내역을 담은 문서, 즉 ‘경제적 이익 등 제공 내역에 관한 지출보고서’(이하 지출보고서)를 의무적으로 작성하게 됐다. 법 시행 이래 한 번도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던 지출보고서 일부를 뉴스타파가 최초로 입수해 분석했다.
뉴스타파는 1편에서 업계를 대표하는 제약사, 의료기기업체마저 제품설명회 등 합법적 접촉 수단을 악용해 의료인들을 상대로 고가의 식사 접대 등 비상식적인 영업 활동을 한 기록을 공개했다.
뉴스타파는 이어서 제약사와 의료기기업체가 문제의 지출보고서를 얼마나 엉터리로 작성해왔는지, 보건복지부는 이를 어떻게 관리 감독해왔는지 살펴봤다.

공개도 감시도 없던 지출보고서, 금액・보고연도 모두 엉터리

뉴스타파는 한국애보트와 종근당이 2019년 10월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지출보고서를 입수해 분석했다. 두 업체가 제출한 지출보고서에선 금액, 보고연도 등에 오류가 확인됐다. 지출보고서를 거짓으로 작성할 경우 의료기기법 제54조에 따라 작성자는 200만 원 이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2018년 국내 심혈관 스텐트 시장에서 매출 1위를 차지했던 의료기기회사 한국애보트는 2018년 3월 대한심혈관중재학회 회원 의사들이 홍콩 학술대회에 참가하도록 비용을 지원했다. 애보트가 지난해 의료기기산업협회에 신고한 내역을 보면 모두 1천6백만 원가량을 지출한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애보트가 작성해 보건복지부에 낸 지출보고서에는 해당 지출 비용이 5천만 원으로 돼 있다. 뉴스타파가 애보트의 2018년 지출보고서와 협회 신고내역을 대조한 결과, 학술대회에 지원했다는 내역 18건 중 10건에서 이같은 금액 오류가 확인됐다.
▲ 한국애보트가 학술대회에 지원했다는 내역 중 10건에서 총 9천만 원의 금액 오류가 확인됐다.
제약회사 종근당이 제출한 지출보고서에서도 오류가 확인됐다. 2018년 한 해 동안 학술대회에 지출한 내역이라며 2016년, 2017년 지원한 학술대회 내역을 보고했다. K-선샤인액트는 2018년부터 시행돼 2018년 1월부터 지출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한 제도로 2016년과 2017년 지원내역은 보고 대상이 아니다. 엉뚱하게도 종근당은 이전 해 지원 내역을 기재했고, 2018년 내역은 빼고 제출했다.
▲종근당이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지출보고서 중 2018년도 학술대회 지원내역

보건복지부, 3년간 6800여개 업체 중 단 4곳에만 지출보고서 제출하라고 요청

한국애보트와 종근당으로부터 금액과 연도가 잘못 표기된 지출보고서를 받고도 보건복지부는 1년 가까이 이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출보고서 관리・감독 기구인 보건복지부는 법 시행 이후 일관되게 소극적 태도를 취해왔다. 보건복지부의 소극적 관리·감독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됐던 바 있다.
인재근 의원(더불어민주당) : 2018년 1월부터 작성이 의무화된 경제적 이익 지출보고서를 복지부가 1건도 제출받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제도 정착 초기에 지출보고서 제출 요구를 통해서 복지부의 정책 의지를 보여 줄 필요가 있는데 이렇게 1건도 제출받지 못했다고 하네요. 복지부의 의지 부족이 아닌지 묻고 싶고요. 장관님, 그 이유가 무엇인지 얘기해주시기 바랍니다.
박능후(보건복지부장관) : 그게 지금 위원님 말씀대로 18년부터 시행이 돼서 작성을 하기 시작했는데 18년도 자료가 올 3월까지 작성하도록 돼 있습니다. 아마 지금쯤은 대부분 작성됐으리라 생각이 되는데 저희들이 실질적으로 얼마만큼 경제적 이익 지출보고서가 작성됐는지 다시 한번 확인을 해 보겠습니다.
인재근 의원(더불어민주당) :  지금은 제출됐을까요?
박능후(보건복지부장관) : 대부분 다 작성되었을 걸로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제도 시행 후 3년 동안 보건복지부가 지출보고서 제출을 요구한 업체는 한국애보트, 종근당, 대웅바이오, 유한양행 총 4곳에 불과하다. 지출보고서 제출을 요청할 권한은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있지만, 보건복지부는 나머지 6천8백 개 업체가 보고서를 제대로 작성하고 있는지 단 한 번도 검토하지 않았다. 

10달러 이상 지출 모두 공개 미국, 회원사 자발적 대외 공개 일본

미국의 선샤인액트 제도는 환자 보호 및 의료비용 합리화법(the 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에 따라 제약·의료기기·구매대행 회사에게 의사 및 교육병원과의 금전적 거래 관계를 연방정부에 보고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연방정부는 취합된 정보를 웹사이트에 게재하고 있는데 의사 이름, 병원명, 업체명 등을 검색해 10달러 이상의 지출내역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지출 정보 누락이 확인된 경우 개별지급내역에 대해 최대 10만 달러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연간 과징금의 최대 액수는 백만 달러에 이른다.
일본 역시 제약・의료기기 업계 스스로 투명성 가이드라인을 도입해 자사 웹사이트를 통해 보건 의료인과의 거래 관계를 해마다 공개하고 있다. 미국과 같이 처벌규정이 있는 법률은 아니지만 협회 회원사들이 공동으로 규범을 마련해 업계 자정 활동에 나섰다. 공개 대상은 연구・개발비용, 학술연구 조성비용, 원고 집필료, 정보제공 관련 비용, 기타비용 등이 포함된다.
이외에도 호주, 네덜란드, 프랑스 등에서도 투명성 강화를 위해 지출내역 데이터를 공개하고 있다. 이러한 데이터 공개는 투명성 강화를 통해 언론 감시와 의료소비자의 합리적 판단을 도와 리베이트를 근절하는 것을 공통적 목표로 한다. 실제 미국의 프로퍼블리카(ProPublica), 일본의 와세다크로니클(Waseda Chronicle)같은 비영리 언론은 각국의 공개된 지출보고서를 분석해 의료산업 감시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입법화 과정에서 공개도 감시도 없는 기형적 'K-선샤인액트' 탄생

2016년 8월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이 대표발의한 약사법・의료기기법 개정법률안(원안)의 경우 현행 제도보다 더 많은 책임을 제약회사와 의료기기회사에 부여했다. 업체는 매년 지출보고서를 작성해 감독기관에 의무제출하도록 했다. 감독기관으로 지정한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의 경우 제출된 지출보고서를 검토하고 조사하며 범죄행위가 있다고 인정될 경우 고발 조치까지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국회의 법안 검토과정에서 해당 법안은 여러 반대 의견에 부딪쳐 현재 시행되고 있는 안으로 대체된다. 당시 보건복지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해당 법률안 검토보고서에 “음성적으로 제공되는 리베이트의 속성상 거래 내역이 지출보고서에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상당하여 그 실효성에는 한계”가 있다며 “선제적으로 보고하도록 하려는 것은 의료기기 제조업자 등에게 새로운 의무를 부담시키는 것"이라고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당시 보건복지부 역시 “지출보고서로 작성하여 복지부에 제출하도록 하는 것이 기업에게 이중으로 업무부담을 지우는 것"이 아닌지 우려했고, 보건복지부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경우 해당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2016년 10월 의료기기법 일부개정법률안 보건복지위원회 수석전문위원 검토보고서
2016년 최초 법안 발의 당시 보건복지부의 정책담당자는 해외에 유사 입법 사례가 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미국은 2010년 ‘오바마 케어'의 일환으로 선샤인액트를 제정했고 2014년부터 공공웹사이트를 통해 업체와 의사 간 지원 내역을 공개해왔다. 그러나 당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의원의 질문에 해외에 유사 입법 사례가 없다고 거듭 답변했다. 결국 해당 법안은 공개도 감시도 없는 기형적 제도가 되고 말았다.
2016년 11월 보건복지위 2차 법안심사소위에서 나온 발언 내용이다.
송석준(당시 새누리당 의원) : 해외에 이런 입법 사례가 있나요?
김강립(당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 현 보건복지부 제1차관) : 사실 리베이트를 이런 식으로 규제하는 법 자체가 다른 나라에 있는 사례는 아닙니다.
송석준(당시 새누리당 의원): 해외 입법 사례는 없다는 얘기인가요?
김강립(당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 현 보건복지부 제1차관) : 예, 마땅하게 해외 입법 사례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작진
취재홍우람 연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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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박서영 정지성 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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