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대한민국 마약 - 최정옥 케이스 ②

2022년 04월 13일 14시 00분

대한민국은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다. 2014년 9000명 수준이던 마약사범은 6년 만에 두 배로 늘었고, 같은 기간 관세청에 적발된 마약량은 20배 가까이 증가했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마약을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 범죄 도구로 전락한 SNS, 잘못된 수사 관행 등이다. <텔레그램 마약방> 보도를 통해 '대한민국 마약 실태'를 고발해 온 뉴스타파는 탈북 10년 만에 거물급 마약상이 된 한 마약범의 사례를 통해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마약 문제를 고발한다. <편집자 주>

검찰이 풀어준 최정옥, 거물 해외 마약상으로 진화

2018년 3월, 현직 경찰과 짜고 허위 마약 사건을 기획했지만 검찰 수사에 협조하며 불구속 수사를 받던 최정옥은 감옥에서 나온 직후 해외로 출국했다. 목적지는 북한·러시아 접경 지대인 중국 길림성이었다.  
중국 길림성에 자리를 잡을 때쯤 최정옥은 더이상 소규모 마약상이 아니었다. 교도소 '향방'(마약사범만 모아놓는 감옥)에서 만든 인맥, 경찰·검찰과 거래를 하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대형 마약상으로 성장할 내공을 갖추고 있었다.    
최정옥은 2018년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북한산 마약을 중국으로 들여온 뒤 이를 다시 한국으로 보내 유통하기 시작했다. 최정옥과 중국에서 몇 달간 같이 생활했다는 한 마약상은 "최정옥이 북한에 있는 가족으로부터 마약을 제공받았다"고 말했다.
2019년 10월과 11월,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마약상들의 법원 판결문에는 최정옥의 범죄 행위가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1) 피고인은 중국에서 알게 된 필로폰 판매책 최정옥과 필로폰을 판매하려고 했다. 피고인은 최정옥이 지정한 곳으로 가서 필로폰을 갖고 오기 위해 부산으로 이동했고, 모텔 객실 침대 밑에서 필로폰 약 880g를 미리 준비한 가방에 넣은 뒤, 서울로 이동했다.
2) 피고인은 최정옥의 지시를 받고, KTX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동한 다음 모텔 객실 화장실 천장 위에서 숨겨놓은 필로폰 약 1300g을 가지고 갔다.

중국에서 동남아로, 거대해진 마약 범죄

중국에서 활동하던 최정옥은 2019년엔 본거지를 동남아시아로 옮겼다. 중국 수사당국의 추적을 피해 도주했을 것이라는 게 최정옥을 아는 전현직 마약상들의 주장이다.
세계적인 마약 생산지인 일명 '골든 트라이앵글'을 끼고 있는 동남아시아는 우리나라에 마약을 가장 많이 밀반입하는 지역 중 하나다. 관세청의 마약 적출국 통계에는 항상 베트남과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가 상위권 국가로 등장한다. 
동남아에서 최정옥은 중국에서보다 범행 규모를 확장했다. 자신과 함께 마약 밀반입 일을 할 국내외 조직원들을 여러 명 구했고, 이전보다 많은 양의 마약을 유통하기 시작했다. 텔레그램, 위챗(중국 메신저 앱) 마약방에도 손을 뻗쳤다. 최정옥의 공범인 김OO 씨의 지인 Y씨는 이렇게 말했다.  
마약 투약자인 김00이 출소하자마자 저한테 전화를 했어요. 서울구치소에서 향방에서 어떤 형님이 '심심하면 서신 하나 주고받아라' 라고 해서 만날 (최정옥이랑) 서신을 주고받았나 봐요. 2020년에 출소하자마자 베트남으로 떠났어요. 최정옥이 비행기 비즈니스석을 끊어줬대요, 베트남으로 오라고. 

Y 씨 / 최정옥 공범 김00의 지인
Y 씨에 따르면, 최정옥과 그의 일당은 마약을 팔아 챙긴 돈으로 베트남 호찌민시티에 있는 수영장이 딸린 고급 빌라에 거주했다. 한 경찰 관계자도 "최정옥 일당은 태국에 있을 때 5성급 호텔에 머물렀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정옥 일당이 거주했던 곳으로 알려진 베트남 호치민시티의 고층 주상복합. (출처 : 부킹닷컴)

최정옥 일당, 최대 수백kg 마약 거래?

뉴스타파는 최정옥 일당이 해외에서 국내로 보낸 마약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를 법원 판결문을 통해 계산할 수 있었다. 최정옥이 해외로 나간 2018년 3월부터 현재(2022년 3월 30일 기준)까지, 최정옥과 공범들이 마약을 국내에 밀반입한 사실이 적시된 20개의 판결문을 통해서다.
합산해 보니 필로폰만 9.4kg 정도에 달했다. 필로폰 1g의 평균 소매가가 60만 원 선이니, 4년간 약 56억 4000만 원에 달하는 마약을 국내에 유통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마약 밀반입 사건의 적발률이 낮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정옥 일당이 국내외에 유통한 실제 마약 규모는 20개 판결문으로 확인한 것보다 훨씬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 전직 마약 판매상은 이렇게 말했다.
국제우편이든 '지게'(마약을 운반하는 사람)를 통해서든 작업 형식만 아니면 대부분 다 들어옵니다. 해외에서 물건을 보내면, 배송받는 사람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 사람이 이미 사건화가 돼서 검거하려는 세관, 경찰이 있으면 물건이 들어오는 동시에 잡혀요. 보통 그게 아니면 거의 다 들어와요, 물건은.. (중략).. 인천, 부산, 평택으로 다 옵니다. 

임 모 씨 / 전 마약 판매상
일반적으로 수사기관에서는 적발된 마약 거래량과 실제 거래된 마약량간의 비율을 계산하는 방법을 '암수율'이란 표현으로 계산하곤 한다. 쉽게 말해, 수사기관에 의해 드러나지 않는 범죄 비율이다. 이미 적발된 사건 규모에 암수율을 곱해 실제 범죄 규모를 추산하는 식이다.
마약 범죄의 암수율을 연구해온 박성수 세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에 따르면, 대검찰청이 수사에 참고하는 암수율은 대략 10배, 박 교수가 별도로 계산한 암수율은 28.57배에 달한다. 이 계산법을 적용하면 최정옥 일당이 지난 4년간 국내외에 뿌린 마약량은 최소 94kg, 최대 268kg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최소 188만여 명, 최대 537만여 명이 한 번씩 투약할 수 있는 정도의 어마어마한 양이다.

경찰 상해 사건에도 연루된 최정옥... 범죄 음성·영상 입수

'최정옥 일당'이 벌인 마약 범죄는 인명 사고로도 이어졌다. 지난해 3월, 최정옥이 전라북도 전주로 보낸 필로폰 2kg의 행방을 수사하던 경찰이 최정옥의 국내 공범이 모는 차에 부딪혀 중상을 입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 사건으로 피해 경찰관은 14번이나 수술을 받아야 했다. 아래는 당시 사건을 다룬 언론 보도다.
지난해 3월, 최정옥의 국내 공범은 자신을 검거하려던 경찰관을 차로 치어 중상을 입게 했다. (출처 : 노컷뉴스)
뉴스타파는 최정옥의 국내외 행적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최정옥의 각종 범죄 행위가 고스란히 기록된 카카오톡 대화 내역, 음성·영상 파일을 다수 확보할 수 있었다. 모두 최정옥이 동남아에 있는 동안 만들어진 것들이다. 카카오톡 대화 내역에는 최정옥이 국내 공범을 통해 가상화폐 대포통장을 만든 과정, SNS에 마약 광고를 게재한 사실, 공범을 모집한 사실 등이 기록돼 있었다. 
심지어 최정옥은 공범과 영상통화를 하며 직접 마약을 투약하는 모습을 촬영하는 대담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뉴스타파가 확보한 최정옥 영상. 최정옥이 스스로 마약을 투약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마약상이 잡혀도 계속되는 마약 유통 시스템

2018년 3월 한국을 떠난 뒤 거물 마약상으로 성장한 최정옥은 지난 1월 말 우리 경찰과 국정원, 인터폴, 동남아 현지 경찰의 오랜 공조수사 끝에 캄보디아에서 붙잡혔다. 그리고 지난 4월 1일 국내로 압송됐다.
지난해 7월 최정옥이 마약 소지 및 밀입국 혐의로 태국 현지에서 체포됐지만, 2억 원에 달하는 보석금을 내고 빠져나온 뒤 또 마약을 팔고, 캄보디아로 넘어갔던 사실도 경찰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현재 최정옥이 얽혀 있는 국내 마약 사건은 10건이 넘는다. 이마저도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일 뿐 경찰 수사에 따라 언제든 사건은 추가될 수 있다. 한 변호사는 "수사 협조를 많이 한다고 해도 최소 십수 년은 감옥 생활을 해야 할 정도로 사건이 이미 많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캄보디아 현지에서 붙잡힌 최정옥. 가운데 검은 옷을 입은 여성이 최정옥이다. (출처 : 경찰청)
앞서 자세히 설명한 바와 같이, 단순 마약 투약자이자 소규모 마약 거래상에 불과했던 최정옥이 국제 거물 마약상으로 진화, 발전한 데는 우리 교정 시스템, 수사기관의 책임이 크다. 교도소 '향방'에서 최정옥은 각종 마약 정보·인맥을 쌓았다. 수사기관은 최정옥을 이용해 사건을 만들었고, 또 그 사건을 수사한다는 명목으로 최정옥을 조력자로 활용했고, 그 대가로 최정옥을 불구속 수사했다. 이 과정에서 마약상 최정옥은 진화했다. 우리 사회의 교정·수사 시스템의 협조 혹은 방조 속에 괴물이 탄생한 것이다.        
최정옥을 이용해 실적을 챙겼던 검찰과 경찰은 별다른 반성의 말 한마디 내놓지 않고 있다. 허위 마약 사건을 기획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최정옥을 불구속 처분해 결국 최정옥에게 해외 도주의 길을 터줬던 검사는 최정옥 사건에 대한 입장을 묻는 뉴스타파의 질의에 "최정옥이 도주해 국외에서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른 점은 안타깝지만, 그것이 수사 과정에서 부정한 요소가 개입돼 발생한 결과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운이 안 좋았을 뿐, 검찰에는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마약의 평범성

마약은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 뻗어 있다. 세대와 성별, 직업을 가리지 않는다. 지난 3월, 마약상 최정옥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32살 C씨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최근까지 마약 중독자였다가 현재 치료를 받고 있다는 C씨는 "평범한 대학생 시절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마약 중독자가 됐고 오랜 시간 고통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데이트 앱을 통해 만난 여성이랑 숙박업소에 갔어요. 다짜고짜 누워 보라고 하더라고요. 기분 좋게 해주겠다면서 눈을 감아 보래요. 그래서 눈을 감았죠, 몇 초 있다가 눈을 떴는데 팔에 주사기가 꽂혀 있었습니다. 진짜 평범하다면 평범한 사람들 중에 투약자들 상당히 많다고 봅니다. 제가 딱 그랬거든요.

C 씨 / 전 마약 투약자
뉴스타파가 만난 32살 C씨. 그는 '강제 투약'에 당해 마약 중독자가 됐다고 말했다.
마약 전문가인 박성수 세명대 교수는 이제 마약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진짜 심히 우려할 만한 일입니다. (연간 마약사범이) 1만 명이 넘은 이후로 계속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지금 1만 8천, 1만 6천 이렇게 나오고 있습니다. 마약 투약자의 경우는 암수율을 심하게는 100배까지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마약류에 대한 경각심이 없어요. 기존의 대책을 넘어서는 새로운 방안도 없습니다.

박성수 세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 서 모 전 검사는 뉴스타파 보도가 나간 뒤인 4월 13일 오후 입장을 밝혀 왔다. '최정옥을 일부러 불구속 수사한 것이 아니며, 여러 사정을 고려해 불구속했다. 최정옥을 구속·기소하려던 게 당시 수사의 방향이었기 때문에 최정옥이 검찰 수사 도중 도주했다고 해서 검찰이 최정옥을 풀어줬다는 식의 표현은 사실과 다르다'는 취지의 내용이다.
제작진
취재홍주환
촬영이상찬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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