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도 다이스케'와 '한국 언론', 익명 소스의 공생자들

2021년 07월 08일 10시 00분

2021년 7월 27일은 한국전쟁 정전협정 68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 포성은 멎었으나 전쟁은 아직 공식적으로 끝나지 않았고, 남북한 평화 프로세스는 여전히 교착 상태다. 상호 신뢰 회복이 중요하지만 한국언론의 무분별한 북한 보도는 종종 대화의 걸림돌이 됐다. 걸핏하면 북한 최고지도자를 ‘죽였다가 살렸고’, 고위 인사 처형설과 같은 대형 오보를 내놨다. 핵 관련 소식, 북한 내부 동향 뉴스에서도 ‘묻지 마’식 보도행태를 끝없이 이어가고 있다. 북한 관련 뉴스는 과연 누가 만들고,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 것일까. 뉴스타파는 국내 22개 언론사의 북한 관련 기사 1년치, 8만여 건을 전수 분석해 북한 뉴스 ‘소스’를 추적하는 <북한 뉴스 해부 - 누가 북한 뉴스를 만드는가> 프로젝트를 시작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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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가요~♡".
한때 한국 사회를 풍미했던 미니 홈페이지 기반 SNS인 싸이월드에서 타인의 게시글을 퍼갈 때 달던 댓글이다. 이용자들은 이 댓글을 달고, 마음에 드는 글귀나 사진 등을 "퍼갔다". 
이런 '퍼가는' 행위를 언론사도 한다. '받아 쓴다'고 표현하기도 하는 이 행위는 기본적으로 특정 매체에서 보도한 내용을 다른 매체가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다. 이때 매체들은 "A(언론사명)에 따르면, B는 C다(혹은 B는 C라고 말했다"는 식으로 보도한다.  
제대로 된 언론사라면 다른 언론사 기사를 받아 쓰더라도 최소한의 검증은 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특히 북한 관련 보도에서는 더 그렇다. 문제는 특정 매체에서 '익명 소스'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이라 하더라도 이를 무분별하게 재생산 한다는 것이다. 신뢰할 만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의 구분 없이 무차별적으로 인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뉴스타파는 <북한 뉴스 해부 - 누가 북한 뉴스를 만드는가> 프로젝트를 통해 국내 22개 언론사의 최근 1년치 북한 관련 기사 중 '관계자', '소식통' 등의 '익명 소스'를 인용한 기사 1781건을 분해해 봤다. 무분별한 외신 받아 쓰기 관행이 '김정은 위중설' 오보 파동 이후에도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이 여실히 드러났고, 국내 언론 중에는 조선일보가 '소식통' 등 정체 불명의 출처 기사를 가장 많이 생산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틀려도 틀려도 또 베껴쓴다

일본의 한 주간지 슈칸 겐다이(주간 현대)는 '북한 김정은 위중설'이 돌던 당시인 지난해 4월, 단순 위중설을 뛰어 넘어 '김정은 식물인간'을 주장하고 나섰다. 기사의 작성자는 '곤도 다이스케'라는 이 매체의 편집위원이었다. 
곤도 다이스케는 익명의 '중국 의료 관계자'를 인용해 "김 위원장이 지방 시찰 도중 갑자기 쓰러져 급하게 중국 의료진을 불렀지만 너무 늦어져 북한 의료진이 직접 스텐트 시술을 집도했고, 김 위원장이 거구의 몸이라 의료진이 버벅이던 사이 김 위원장이 식물인간으로 변했다"고 보도했다. 
이 내용을 국내 언론사인 YTN과 뉴스1, 뉴시스 등이 받아 썼다. 뉴스타파의 분석 대상에 없는 다른 매체들(국내 22개 언론사를 제외한 타 인터넷 언론사 등) 역시 이 내용을 기사화 했다. 
보도 당시에는 몰랐다 하더라도, 김 위원장이 십여일 뒤인 그해 5월 2일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후 시점에서 보면 곤도 다이스케의 기사는 소설이었다. 
그러나 약 5개월 후 곤도 다이스케는 또 다시 한국언론에 등장했다. 이번에는 '김정은 암살 시도설'이었다. 곤도 다이스케는 지난해 9월 "북한에서 김 위원장에 대한 암살 시도가 있었다"는 주장을 일본 전직 자위대 인사와의 대담 형식을 통해 보도했다. 그 전직 자위대 인사는 해당 내용이 ‘익명의 한국정부 관계자’에게 들은 말이라고 주장했다. 
해당 기사에서 곤도 다이스케는 "2018년 12월 원산 갈마지구 시찰을 나선 김 위원장을 북한 군 일부가 죽이려고 했고, 계획에 실패해 동해상으로 달아났다"며 "북한에서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한국 측에 긴급 연락을 했고 그에 따라 한국이 그들을 수색하려 했다. 그때 동해 상에서 일본 항공자위대 초계기가 다가가자 한국 해군 구축함이 레이더를 조사했다"고 주장했다. 
통일부와 국방부 측은 ▲해당 시기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긴급 연락을 취해온 사실이 없고, 당시 동해상에서 북한 사람을 구조한 것은 맞지만 ▲북한군이 아닌 북한 어선이었다고 뉴스타파에 밝혔다.  
곤도 다이스케는 앞서 지난 2015년에는 "시진핑은 왜 김정은을 죽이려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펴내기도 한, 극우·반한 성향의 인물이다. 그러나 보도 이후 국내 통신사인 뉴스1과 뉴시스가 이 내용을 기사화 했다. 뉴스1은 당시 이 내용을 받아 쓰면서 기사 하단에 "곤도 다이스케가 지난 4월 주장했던 '김정은 식물인간설'은 결국 오보로 판명됐다"라고 적었다. 오보로 드러난 것을 알면서도 검증 없이 또 한 번 부정확한 내용을 옮겨온 것이다. 

'익명'발 정보가 퍼져나가는 매커니즘

취재진은 2만 3천여 건의 북한 기사 중에서 '관계자', '당국자', '소식통' 등의 '익명 소스'가 한 번이라도 등장한 기사 1781건을 추려냈다. 이중 로이터 통신과 CNN 등 외신이 익명 소스를 인용해 보도한 기사를 인용한 한국언론 기사는 886건으로 전체의 49%로 집계됐다. 
예컨대 일본 지지통신이 익명의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의 코로나19 추정 사망자가 260명"이라고 보도한 것을 국내 매체인 뉴스1이 "일본의 지지통신이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북한의 코로나19 추정 사망자가 260명"이라고 보도하는 식이다.   
외신이 북한 관련 기사를 내보내면 상당수 국내 매체는 지난해 4월 '김정은 위중설'의 경우처럼 이를 빠르게 받아 쓴다. 지난해 6월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한미일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외화가 2023년에 고갈될 것"이라고 보도한 내용을 YTN, 뉴시스, KBS, 뉴스1, 조선일보, 국민일보가 기사화했다. 
같은해 10월에 요미우리신문이 역시 '복수의 한미일 협의 소식통'을 인용해 "문재인 정부가 당시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북미 정상회담 개최 등을 위해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방미를 추진했다"고 보도한 내용을 문화일보, 연합뉴스, SBS, MBN, 뉴시스 등이 보도했다. 
이밖에도 익명의 소소를 인용해 "북한이 국제 단체에 코로나19 백신을 요청했다"라는 월스트리트저널 보도는 연합뉴스, MBC, 뉴스1, KBS, 뉴시스, YTN, MBN 등 국내 다수의 매체가 그대로 인용해 보도했다. 
"중국이 북한에 대한 지원을 강화했다"는 아사히 신문의 보도(2020.11), 자유아시아방송(RFA)이 평양의 체코 대사관 관계자를 인용해 "북한의 국경 봉쇄로 인해 설탕과 식용유가 동났다"고 보도한 내용(2021.2) 등도 국내 매체에서 검증 없이 받아 썼다. 
박영흠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는 뉴스타파와 인터뷰에서 이 같은 북한 뉴스 생산 관행에 대해 "한국언론이 외신을 과도하게 신뢰하고 있고, 북한 관련 취재원을 한국언론이 그만큼 많이 확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면서 "한반도 문제에 가장 중요한 이해 당사자인 한국이 북한 관련 보도에서 가장 취약한 취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언론이 과연 북한에 대해서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노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정체불명' 익명보도, 누가 가장 많이 생산하나

한국언론의 외신 보도 받아쓰기 관행이 국내 매체의 취재 '능력' 문제라면 국내 매체가 자체적으로 확보한 익명 소스를 인용하는 것은 '의도'의 문제일 수 있다. '익명 소스'는 북한 기사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실명 취재원이나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소스 자체'를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남는 질문은 "누가(어느 매체가) '익명 소스'를 활용한 기사를 가장 많이 생산해 내는가"이다. 
뉴스타파는 1781건의 '익명 소스' 인용 기사들 중 국내 매체가 외신이 아닌 직접 익명 취재원을 활용한 기사를 다시 추렸다. 모두 892건으로 전체의 약 50%다. 여기에 활용된 '익명 취재원'은  '청와대 관계자', '청와대 고위 관계자', '통일부 당국자', '군 관계자' 등 대부분(약 77%)이 특정 기관 소속 취재원이었다. 기사에서 인용한 소스 중, 소속 기관이 전혀 없는 '소식통', '북중 관계 소식통', '외교 소식통' 등의 모호한 출처를 활용한 기사(23%)만 다시 골라냈다.  
익명의 소스를 인용한 기사 생산 순위 1위는 조선일보로 34건이었다. 2위는 22건의 동아, 3위는 21건의 연합뉴스. 4위 뉴스1은 17건 5위 KBS는 15건이었다.
1위는 조선일보였다. '정체 불명 소스'를 인용한 북한 관련 기사 211 중 34건을 생산했다. 2위는 동아일보(22건)였다. 기사 속 북한 정보의 출처가 '소식통', '대북 소식통', '베이징 소식통', '전언' 등이거나 때로는 아예 출처가 없는 내용이 담긴 기사들이다. 
조선일보는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보위성이 강연을 통해 남조선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묻힌 돈과 쌀을 풍선이나 플라스틱 통에 담아 북측에 보내고 있다고 비방하고 있다"라는 내용을 보도(2020.4)하거나,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이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여성 도우미를 모집하고 있다"(2020.4)라고 보도했다. 
또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평양 시민들 속에서 애완견을 기르는 것은 부르조아 사상에 물든 행위"라면서 "애완견 금지령을 내렸다"(2020.7), 이밖에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최근 평양의 관문역인 간리역에 꽃제비가 눈에 띄게 늘었다"는 내용(2020.8) 등을 보도했다. 주로 북한의 내부 동향을 부정적으로 전하는 기사들이다. 
▲뉴스타파 보도 내용 캡쳐
조선일보는 오래 전부터 '익명 소스'를 인용해 수시로 북한 관련 대형 오보를 내보냈다. 지난 2013년 '중국 내 복수의 대북 소식통'이라는 소스를 인용해 "현송월 당시 보천보전자악단 소속 가수가 김 위원장의 지시를 어기고 음란물을 제작·판매 해 공개 총살됐다"고 보도한 것도 그 중 하나다. 그러나 현송월 씨는 멀쩡히 살아있다. 
뉴스타파는 <북한 뉴스 해부 - 누가 북한 뉴스를 만드는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정체 불명의 익명 출처를 인용한 국내 매체의 기사 목록 데이터를 웹사이트(https://newstapa.org/)에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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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입력황다예 이준엽 김이향 이종현
촬영오준식 이상찬 신영철
편집박서영
CG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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