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덮은 집회의 자유

2018년 08월 17일 11시 18분

※ 이 기사는 2018년 7월 뉴스타파 탐사보도 연수에 참가한 연수생들(장예지, 박재현, 김규희)이 실습 과제로 제출한 결과물입니다.

 2018년 오늘, 한국 사회의 집회의 자유는 나날이 확대되어가는 듯 보인다. 지난 달 30일 헌법재판소는 법원 경계지점부터 100m내 집회 금지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외교기관, 국회, 총리공관에 이은 네번째 결정이다. 집회 금지장소를 지정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1조에 의해 집회의 자유가 제한될 가능성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집회가 일어나는 현실의 사정은 달랐다. 법적으로 보장된 자유는 그 법의 테두리 내에서 은밀하게 제한되고 있었다.

집회와 농성이 끝난 뒤엔 푸른 화단이 들어섰다. 자신의 존재를, 목소리를 외쳤던 사람들은 오간데 없었고 묵묵한 꽃밭이 그들을 대신했다. 서울 중구 대한문 앞과 정부서울청사 정문, 그리고 몇몇 지자체 청사 내 광장은 사람이 아닌 화단에게 자리를 내 주고 있었다. 국가는 환경을 아름답게 가꿔 시민과 관광객에게 인정받는 문화공간을 만들기 위함이라 말했다. 화단 철거 계획을 밝힌 지자체조차 ‘시민 불편’ 여부를 철거 조건으로 달았다. 그러나 집회할 장소를 잃은 시민들은 그들에 동의하지 않는다. 뉴스타파 탐사보도 연수생들이 ‘집회차단용 화단’으로 의심되는 곳들을 조사해봤다.

화단, 또 하나의 적폐시설물?

취재팀은 민주노총 지부 전역과 17개 지자체별 주요 시민단체에 의뢰해, 시·도청 청사 내 집회 차단용 화단으로 보이는 시설물 설치 사례를 제보 받았다. 그 결과 집회차단용으로 의심되는 화단 9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경기지역의 경우 수원시청, 시흥시청, 충청지역은 청주시청, 경남지역에는 진주시청, 창원시청, 경남도청, 경북지역에는 경주시청, 부산광역시와 울산광역시 시청앞에도 화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발견한 지역 대부분에서는 농성장 철거 직후 화단이 설치됐다는 정황을  공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지자체들은 화단 설치 목적이 ‘환경 미화’임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화단이 들어선 시기로 보아 향후 있을 집회를 막을 의도라는 입장이다. 또한 의심지역 9곳 중 6곳이 영남권에 몰려있고, 수원과 시흥을 제외하면 화단 설치 시기 지자체장은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출신이라는 점도 특징이다.

창원시청과 경남도청 앞 화단의 경우, 2014년도에 진주의료원, 무상급식 등으로 시민단체와 도청간 갈등이 심화되자 지자체는 화단을 조성했다. 지자체는 이 역시 환경미화 목적임을 밝혔다. 충북 청주시청의 화단도 우진교통 투쟁이후 시에서 ‘공원을 공원답게 한다’는 명분으로 집회장소 등을 화단으로 덮었다. 민주노총 충북지역 측은 “14년, 15년 노인병원투쟁 같은 경우 시청앞에서 천막농성을 하던 중 노조원이 격리된 상태에서 화단을 조성하고 철망까지 쳤다”며 “집회차단용이 명확하다”고 말했다.

수원시청 입구에 들어선 화단도 대표적 의심사례 중 한 곳이다. 시청 정문 앞 화단은 2014년 4월에 생겼다. 당시 경진여객 노조가 버스 운전사의 열악한 노동 환경 개선과 복직운동을 목적으로 2013년 3월부터 농성을 시작했다. 이후 2014년 노조는 농성장을 만들었고 수원시청은 행정대집행에 들어갔다. 경진여객 노조는 시민들의 보행에 불편이 되지 않기 위해 게시판 앞 벽 쪽에서 노숙농성을 했으나 행정대집행 끝에 농성장을 자발적으로 철거했다. 이후 게시판 앞쪽에는 빽빽한 화단이 들어섰다. 경진여객 노조가 농성장을 설치했던 장소와 정확히 일치했다.

그러나 2014년 화단 설치를 담당한 관계자는 “원래 화단이 있던 자리였는데 농성 이후로 화단이 조금씩 훼손이 돼 농성장 철거후 환경미화 목적으로 보수하면서 확장한 것”이라 말했다. 수원시청 회계과 관계자도 뉴스타파와의 인터뷰를 통해 “화단은 집회차단용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시청사 정문 일대의 화단조성은 환경미화 차원에서 예전부터 추진해 왔던 사업이라는 설명이다. 오해의 소지는 있어도 시민들의 집회·시위를 막기 위한 의도는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또 “시청 입구는 광장 같은 곳이 아니다.”라며 “시청이 아니더라도 근처 공원에서도 집회를 할 수 있다”는 뜻을 덧붙였다. 하지만 당시 농성에 참여했던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아샤 씨는 이를 비판하며 “공무원들이 장소가 가지는 상징성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목적에 맞게, 시장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시청앞에서 농성을 하는 건데 다른 데서도 할 수 있다는 건 너무한 처사”라는 것이다.  

“대한문 앞 화단은 집회차단용이 맞습니다”

2013년 4월, 덕수궁 대한문 앞에는 정체불명의 ‘화단’이 들어섰다. 삼각형과 마름모꼴로 된 8개의 ‘미니 화단’에는 잔디가 심어졌다. 각 화단 면적이 좁아 사람들이 편하게 앉아 쉴 수도 없고, 쉽게 지나갈 수도 없다. 화단에는 숨은 사연이 있다. 당시는 쌍용차 해고노동자 집회가 한창이던 때였다. 쌍용차노조에서는 중구청과 문화재청 복구 작업을 위해 농성장을 옆으로 이동하기로 협의 했으나 중구청은 행정대집행으로 쌍용차농성장을 철거했다. 철거 후 중구청은 분향소가 있던 자리에 흙을 붓고 꽃·묘목 등을 심어 화단을 급하게 만들었다. 화단 주위에는 사람이 들어갈 수 없게 펜스를 쳤다. 분향소 설치 및 반정부 집회를 원천봉쇄하겠다는 의도였다. 이후 경찰은 24시간 동안 화단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집회 장소를 통제했다. 화단 앞과 주변에 앉아 있거나 서 있는 것도 금지시켰고, 다수의 경찰을 동원해 농성자들을 강제로 이동시켰다. 당시 집회에 참석했던 윤충렬 쌍용차노조 수석부지부장은 “저 화단때문에 전과 5범이 된 사람도 있다”며 “허가받은 집회 장소를 화단으로 차단했다”고 밝혔다.

뉴스타파 탐사보도 연수생들이 서울 중구청으로부터 확보한 문건에 따르면 대한문 앞 화단은 당시 최창식(자유한국당) 중구청장의 지시로 설치됐다. 최 전 중구청장은 2011년부터 2018년까지 중구청장을 지냈고,  ‘박정희 기념공원 사업’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 인물이다. 이 사업은 지난해부터 최 전 청장이 추진한 것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군사정변을 계획했던 신당동 가옥을 전시관, 지상 녹지 등으로 꾸며지는 주차장 건물과 연계해 공원화하는 사업이다.

중구청 문건에는 ‘대한문 앞 불법시설물 정비계획 구청장방침’으로 적시되어 있다. 특이한 점은 문건의 ‘향후 계획’이라는 항목에 “새로 조성되는 화단은 임시시설로 쌍용차 농성 종료 후 철거예정”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는 화단이 ‘환경미화’ 등의 목적이 아니라 집회 및 시위와 연관해 설치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국민세금으로 만들어진 화단이 정작 국민의 집회 시위의 자유를 침해한 셈이다. 헌법재판소가 집회의 자유를 “집회를 주최하는 쪽에서 목적에 맞게 장소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까지 포함한다”고 결정한 것과는 정면 대치된다(2004헌가17, 2000헌바67).

최창식 전 중구청장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쌍용차 노조의 대한문 앞 시위는 집회가 아니라 숙식이었다”며 “술을 먹고 잠도 자고 1년씩이나 숙식을 하는 집회가 어디있냐”고 말했다. 이어 “왜 하필 대한민국 관광의 중심지 덕수궁 앞에서 꼭 시위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농성장을 치우고 나니까 또 들어오고 그래서 그러지 말고 그걸 좀 예쁜 화단으로 조성하면 어떻겠냐고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말 그대로 집회가 외관상 보기 좋지 않으니 화단을 심어 집회의 자유를 제약하겠다고 인정한 셈이다.

‘대한문 앞 집회방해 사건’의 당사자였던 권영국 변호사는 즉각 반박했다. 화단 또한 ‘불법설치물’의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권영국 변호사는 “중구청장이 자신의 권한을 남용했다. 인도나 차도로 고시가 돼 있는 곳이기 때문에 화단을 설치하려면 도로에 대한 용도변경이나 토지에 대한 형질변경이 선행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아무런 지목변경 없이 모래를 쌓고 화단을 설치한 것은 행정기관이 불법으로 시설물을 인도위에 설치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이어 “중구청의 관할이라는 것은 그 도로를 잘 사용할 수 있도록 권한이 있다는 것이지 거기에 자의적으로 법적 근거없이 화단을 설치할 권한은 애초에 없었다”며 “이는 자기의 권한을 넘은 위법행위”라고 일갈한다.

최창식 전 중구청장은 대한문 앞 시위로 인해 “많은 시민들의 권리가 박탈됐다”고 말했다. 최 전 청장은 “쌍용차 노조면 쌍용차 본사로 가든지, 노동부로 가든지, 덕수궁 앞에서 왜그러냐”며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이고 시민들도 지나다니는 곳이라 안전문제도 있었다”고 말했다. 권영국 변호사는 이에 대해 “‘안전하지 않다’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논리를 말하는데 농성을 하시는 분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더 이상 자기들의 목소리를 낼 만한 언론매체나 방법 등을 찾지 못해서 농성을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또는 동료들의 생존을 위해서 나와 있는 사람들인데 ‘그분들이 스스로 위험을 자초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법적인 한계도 있다. 법원은 집회 및 시위 장소의 불법설치물에 대한 판단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서울행정법원의 ‘대한문 앞 집회’에 관한 판결(2013아 2286)도 ‘집회 자체가 정당하다’고 판단했을뿐 불법설치물에 대한 판단은 하지 않았다. 대법원의 판결도 마찬가지다. 권영국 변호사는 “어떤 경우에는 화단과 같은 불법설치물이 공적 시설물인 것처럼 인정하는 판결도 있다”며 “설령 집회 자체를 제재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불법적으로 설치되고 있는 시설물에 대해서 법원이 옹호하는 판단을 한다는 것은 형평성에 반한다”고 말했다. 집회에 대한 판단과 불법설치물에 대한 판단은 법적 요건에 따라 달리 판단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권교체 후 정부청사 앞 집회 차단용 의심 화분 설치

 정권이 바뀌어도 의도가 의심되는 화단은 계속해서 설치됐다. 2017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 설치된 화분 또한 집회 차단용이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현재 청사 정문 앞 도로에는 대형 화분 8개와 이동식 화분 9개, 원통형 화분 10여개가 일렬로 줄지어 있다. 화단과 화단 사이 폭은 성인 2-3명이 겨우 걸어갈 정도로 좁았다.

 이런 종류의 화분은 작년 8월 정문 앞에 있던 ‘노동자·민중 생존권 쟁취를 위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위원회(이하 공투위)’와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 국민행동, 강원행동’의 농성 천막이 철거된 직후 설치됐다. 종로구청은 계고장 고지 후 행정대집행을 실시해 종로경찰서와 농성장 철거에 나섰다. 이후 경찰은 공투위가 집회 신고를 한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 인도에 대형 화분을 설치해야 한다며 폴리스라인을 치고 노동자들의 접근을 차단했다.  

▲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 조성된 화분 (제공: 이재정 의원실)

철거 당시 현장을 지켰던 금속노조 강정주 국장은 “경찰이 시위대를 막아서고, 종로구청 직원들이 농성장을 철거한 직후 청사 직원들이 화단을 설치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공투위와 동양시멘트 공동대책위원회,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 국민행동 측은 기자회견을 열어 “노동존중”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의 농성장 철거를 비판한 바 있다. 철거 직후 폴리스 라인까지 세우며 화단을 설치한 것은 향후 일어날 집회를 막기 위한 의도라는 의심이 거셌다.

정부서울청사 앞 화단설치를 단행한 쪽은 구청이 아닌 청사측이었다. 서울청사관리소측은 화단을 둔 계기가 집회 방해 의도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농성장 철거 및 화단 설치에 관한 서울청사관리소 관리팀의 입장은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① 철거는 농성장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② 통행하는 시민과 관광객의 불편이 컸다.
③ 화단 설치로 청사 앞 도로는 ‘문화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서울청사관리소 관계자는 농성장 안전 문제와 시민 불편 문제 등을 거론했다. 겨울철 농성이 길어지면서, 휘발유통을 세워 두거나 발전기를 설치해 화재위험이 높았다는 것이다. 또한 청사앞 도로는 통행로이자 문화공간임에도 천막이 설치돼 미관을 해쳤다는 생각이다. 조경팀 관계자는 “처음에 (농성장) 설치됐을 때 너무 흉물스럽고, 국가 재산인 나무를 다 죽였다.”라며 화단 설치 필요성을 긍정했다. 시설물 설치 자체가 집회 주최측에겐 하나의 압력이 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엔 “시민들이 무더운 날씨에 그늘막이 될 수 있고, 블루베리도 따 먹을 수 있으니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화단의 존재로 집회 공간이 축소되고 있음에도 집회의 자유 침해 가능성은 고려되지 않았다. 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오창섭 교수는 “안전이나 환경미화는 명분일 뿐”이라 일축한다. 안전을 이유로 농성장을 철거해버리는 방식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부적절한 대처라는 주장이다. 그는 “(거리를 꾸미는) 디자인을 이용해 여기선 집회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화단) 형태가 얘기하고 있다”라며 디자인 차원에서 화단의 의미를 분석했다. 시민 편리와 문화공간 조성 목적이 있었다는 입장도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자전거를 탄 시민들은 화단을 피해 이동해야 했고, 화분 안엔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거나 파손 흔적이 역력한 화분들도 눈에 띄었다. 시들어버린 꽃들은 이동화분 속에서 죽어갔다. 시민들이 향유하는 문화공간이라 하기엔 그 관리조차 허술하게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다.

절차없는 행정, 깊어지는 의심

청사앞 화단길의 조성 및 관리 주체 선정과 설치 계획도 제대로 된 절차를 밟지 않았다. 농성장이 철거된 정문 앞 도로 관리주체는 엄연히 종로구청이다. 그러나 화단 설치 및 이후 관리는 모두 서울청사관리소 관리과가 책임지고 있다. 관리과에 따르면 2017년 농성장 철거 이후 구청과 ‘구두’로 협의한 뒤 청사 차원에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대형 화분과 이동식 화분 등을 가져다 두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일정 구간 내 도로 시설물 관리 문제를 구두로 상의한 뒤 결정한 것은 절차상의 불투명성을 보여준다.

현재의 대형 화단이 들어선 목적과 과정도 석연치 않다. 청사관리소 측은 2017년 3월 수립된 ‘정부서울청사 무궁화동산 기본계획 수립’에 따라 무궁화를 식재하고 지금과 같은 화단길을 조성했다고 밝혔다. 계속되는 집회로 식재가 미뤄지다 철거 후에야 기존 계획을 실행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농성장 천막 철거 후 ‘환경개선’을 위해 식재했다던 무궁화 화분은 현재 찾아볼 수 없다. 그 자리엔 기존 화분보다 큰 팔각형꼴 대형화분 8개가 들어섰다. 수종도 바뀌어 무궁화 일부만 청사 외벽에 소량 식재됐고, 나머지 화분은 아로니아와 블루베리나무 등 사업과 관련 없는 수종으로 채워졌다. 화단의 종류, 식재 수종이 바뀌었으나 공식 계획에 따른 변경은 아니었다. 청사관리소 관계자는 “무궁화가 빨리 죽기 때문에 대형화분으로 교체한 것”이라며 대형 화분 설치가 사실상 무궁화동산 기본계획과 무관함을 밝혔다. 결국 현재의  통행로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 화분들은 공식적인 배치 계획없이 집회하던 자리에 놓인 셈이다.

 의심된다면, 철거할 수도

청사앞 화단 문제는 농성장 철거 직후에도 한 차례 불거진 바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은 2017년 8월 21일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집회나 시위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방식으로 (화단을) 존치시킬 것이냐”고 질의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광화문 전체는 시위나 집회에 늘 열려 있다”며 “(그곳이) 인도이기도 해서 행정행위를 한 것일 뿐 그분들의 생존권 요구 자체를 막은 것은 아니다”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서울청사관리팀장은 화단 설치 절차상 문제점을 지적받고 “방침을 정해 만약 (집회방해가) 의심된다면 철거할 의사도 있다”는 뜻을 전했다. 농성이나 집회를 막을 의도는 없었지만 통행 불편 사항 등을 따져 철거도 검토해볼 수 있다는 의미다. 서울시도 지난 달 대한문 앞 화단에 대해 철거 검토 여부를 정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정부청사의 계획이 구체화된다면 이는 서울 지역 내에서 서울시 사례 이후 두 번째다.

광장의 갈등과 소란을 인정하라

촛불 이후, 시민은 광장을 되찾았지만 그것만으로 민주주의의 가치가 회복되진 않는다. 공공기관과 지자체는 여전히 농성장의 안전문제를 지적하거나, 주변 경관을 해치고 관광객이나 보행자에게 피해를 준다는 논리를 고수했다. 그러나 집회의 자유는 ‘불편함’과 ‘시끄러움’을 전제로 한다. 권영국 변호사는 민주주의의 작동원리가  서로 다른 목소리가 터져나오도록 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듣기 싫더라도 들어야 하는 목소리들이 있다는 것이다. 권 변호사는 정부기관의 행태를 “집회의 자유가 불편을 초래하니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관광객에게 보기 좋은 미관을 위해 국민의 말할 수 있는 권한을 봉쇄할 수는 없다”며 비판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사회의 광장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집회·결사의 자유에는 집회 주최측의 목적에 맞게 장소를 선택할 자유까지 포함된다. 따라서 집회 장소는 일방적 외침이 난무하는 허공의 공간이 아닌, 소통의 가능성이 열린 곳이어야 한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3조 1항은 누구든 집회나 시위를 방해해선 안 된다고 명시한다. 3항에선 집회 방해의 우려가 있을 경우 주최자가 관할 경찰관서에 보호 요청을 할 권한까지 보장한다. 그럼에도 집회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정부기관은 화단을 두는 무언의 방식으로 소통을 거부해왔다.

그러나 희망의 신호도 감지된다. 최근 부산광역시와 경남도청의 경우 집회차단용 화단으로 의심받는 설치물 등을 철거하기로 했다. 부산시의 화단 철거 결정은  6.13 지방선거 당시 더불어민주당 오거돈 후보의 주요 공약 중 하나였다. 당선 후 오거돈 부산시장은 첫 시정 중 하나로 화단 철거를 지시해 시민사회와의 약속을 지켰다. 철거된 화단은 현재 시청어린이집 등 시민들에게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남도청은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 시절 설치했던 화분을 상당 부분 치운 것으로 전해졌다.

농성장이 있던 자리에 화단을 설치하는 일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집회하는 사람들의 거친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지난한 싸움에 진정한 마침표를 찍는 일은 너무도 어렵다. 어쩌면 화단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덮는 ‘쉬운 방식’이었을지 모른다. 이제 우리는 그 쉬운 방법을 벗어나, 모두에게 열린 광장을 다시금 논의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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