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하지 못한 세금의 결과

2014년 10월 08일 19시 06분

 

얼마 전 정부는 담뱃값과 자동차세 그리고 주민세 인상안을 발표했다. 그러자 ‘서민 증세’ 논란이 불붙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위 세 가지 세금 모두 부자와 가난한 사람 구분 없이 똑같이 내는 세금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세금은 자신이 보유한 자산에 비례해서 내게 되어 있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은 상대적으로 더 많이 내고, 돈이 없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게 내는 게 상식이자 ‘조세정의’의 기본이다. 하지만 위 세 가지 세금은 부자와 가난한 자를 구분하지 않는다. 담배를 구입하면, 자동차를 구입하면, 같은 지역에 살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똑같은 세금을 내야 한다.

당연히 서민 입장에서 이러한 세금 인상은 불공평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담뱃값의 경우 인상된 후 1년 동안 내게 될 세금(하루 1갑 소비시) 121만 원이 ‘9억짜리 주택’에 대한 재산세 혹은 ‘연봉 약 5천만 원’에 대한 소득세와 맞먹는 금액이라고 하니 집도 없고 연봉도 턱없이 낮은 서민 입장에서 보면 불공평한 수준을 넘어서 분노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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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재산이 많을수록 더 많이 걷는 ‘법인세’와 ‘소득세’는 어떨까? 역시 증세를 했을까? 안타깝게도 이 세금들은 모두 이명박 정권 때 ‘감세’를 실시한 그대로 ‘현행 유지’다. 심지어 상속세의 경우엔 30년 이상 된 명문장수기업 오너에게 500억원에서 1천억원으로 ‘공제한도 확대’한다고 하니 부자들의 입장에선 ‘추가 감세’라고 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복지 재원 확충’을 증세의 명분으로 내세우면서도 막상 복지 규모는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발표했던 공약에 비해 축소됐다는 사실이다. ‘반값등록금 공약’은 최대 지급률이 25%까지 축소됐고, ‘4대 중증 진료비 전액 국가 부담 공약’은 3대 비급여가 제외되었으며, 모든 노인(65세 이상)에게 지급하기로 한 ‘기초연금 공약’은 소득 하위 70% 노인에 한해 차등 지급으로 결정됐다.

결국 갈수록 심화되는 빈부격차와 양극화를 줄이기 위한 ‘소득 재분배’는 커녕 오히려 가난할수록 세금을 더 많이 내는 ‘소득 역진’이 아니냐는 비판을 박근혜 정부는 피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이와 비슷한 논란에 처했던 한 여성 정치인이 있었다. 연이은 선거 승리로 너무나 자신만만했던 그녀의 이름은 다름 아닌 전 영국 총리 마가렛 대처. 대처는 국가 재정 확충을 목표로 그동안 소득별 차등으로 걷던 세금을 사람 머릿수에 따라(인두세) 동일하게 물리기 시작한다.

그렇지 않아도 빈부격차 심화와 인플레이션으로 고통 받던 영국 국민들은 인두세가 불공평하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하지만 ‘철의 여인’ 대처는 국민의 말을 결코 귀 기울여 들르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영국 전역으로 인두세를 확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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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인두세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은 1990년 3월 31일 트라팔가 광장에 모여 반인두세 시위를 열게 된다. 주최측의 예상과 달리 무려 20만 명의 사람들이 광장에 모이긴 했지만 시위라고 해봤자 웃고 떠들며 행진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대처 정부는 총리 관저 쪽으로 모여드는 시민들을 보며 크게 당황했고 급기야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곤봉을 휘두르며 강경진압을 하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대처 정부의 일방통행식 정책에 불만을 품던 시민들에게 기름을 들이부은 것이다.

평화롭던 시위는 순식간에 시위대와 경찰간의 상호 폭력으로 이어졌는데, 특히 한 여성 시위자가 경찰이 탄 말에 깔리면서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다다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시민들은 인근 상점을 약탈하는 등 ‘폭동’으로까지 변질되고 만다.

아니나 다를까, 대처 정부는 바로 다음 날 시위대를 폭도로 몰면서 여론 몰이를 시작한다. 그러나 밤새 경찰의 과도한 폭력 진압을 TV를 통해 목격한 영국 시민들은 시위대가 아닌 대처 정부에 등으로 돌리게 된다. 무리한 ‘서민 증세’와 역시 무리한 ‘강경 진압’이 연일 승승 장구하던 마가렛 대처 정부에 큰 상처를 남기고 만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마가렛 대처의 입지는 크게 흔들리게 되고 그해 11월 20일에 실시된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결국 존 메이어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만다. 임기를 다 채우지도 못한 채 총리 관저를 빠져 나오는 ‘철의 여인’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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