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公 자문계약의 비밀]②산업부의 '인사청탁' 있었다

2020년 08월 12일 09시 00분

한 공기업이 특정 퇴직 관료와 한 달에 무려 천만 원짜리 자문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퇴직 관료는 자문에 응하기로 한 분야에 전문성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특혜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계약에 따라 쓰기로 한 자문보고서는 공기업 직원이 대신 써줬는데 자문료는 그대로 지급됐습니다. 특혜를 넘어 배임 범죄까지 될 수 있는 상황. 이 사건은 그대로 묻혀있다가 3년만에 내부감사에서 적발됐습니다. 하지만 내부감사에서도 검찰 수사에서도 진상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다시 묻혀버렸습니다. 뉴스타파는 우리나라 굴지의 공기업 한국가스공사에서 일어난 이 믿기 힘든 사건의 이면을 추적해 3회에 걸쳐 보도합니다.-편집자 주

관련기사 : 가스公 자문계약의 비밀

① 월 천만 원 자문료...보고서도 대필해줘
② 산업부의 '인사청탁' 있었다

한국가스공사(이하 가스공사) 이승훈 전 사장 등 경영진이 실무진에 지시한 박석환 전 외교부 차관과의 ‘황당 자문계약’.

에너지 분야 전문성도 없는 전직 관료를 특정해 무턱대고 자문계약을 체결하라는 ‘묻지마 식’ 지시에다 박 전 차관이 써야 할 자문보고서까지 대신 작성하라는 지시도 내려졌다. 여기서 제기되는 의문은 도대체 왜 당시 가스공사 경영진은 이렇게 무리한 자문계약을 지시했냐는 것이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이 자문계약 이면에는 가스공사 주무 정부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가스공사 측에 박 전 차관 자문계약을 요구했던 산업부 공무원은 이 사건과 관련해 현재까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

가스공사 내부 문건에 적시된 ‘산업부’ 개입

뉴스타파는 이 자문계약 사건의 배경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국회의원실 등을 통해 지난해 말 작성된 가스공사 내부 문건 하나를 입수했다. 가스공사 ‘특별조사단’ 문건이다. 이 사건은 가스공사 내부 감사와 검찰 수사를 거쳤지만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급기야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거론됐다.

이 때문에 가스공사는 감사실과는 별개로 특별조사단을 꾸려 이 사건을 다시 조사한 바 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문건은 바로 이 특조단 단장과 2018년 내부 감사 당시 감사실 책임자였던 상임감사위원 사이의 문답서다.

▲ 지난해 12월 11일 특별조사단장과 상임감사위원이 주고받은 답변서.

이 문건에서 당시 상임감사위원은 “캐나다 소재 KCLNG에서 2015년 9월에 시행한 자문용역이 부당하다고 판단한 사유에 대해 말해달라”는 특조단장의 물음에 KCLNG와 박 전 차관간 자문계약의 특혜성을 지적하며 그 배경에 ‘산업부’가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는 “감사 결과 자문수행자 박석환은 자문결과보고서 제출도 하지 않고 자문료 5500만 원을 수령하였고, 자문보고서는 캐나다LNG사업팀 직원과 KCLNG 직원이 작성한 것으로 확인되었다”며 “공사 직원이 자문결과보고서를 대신 작성하면서까지 KCLNG 법인이 자문용역계약을 추진하게 하여 자문수행자에게 자문료를 지급해야 할 피치 못할 사유가 있었다”고 했다. 이 문건에서 ‘산업부’가 언급된 대목은 다음과 같다.

“이는 동 자문계약이 애초 산업부 가스산업과가 한국가스연맹 사무총장에 내정된 자문수행자 박석환을 취임 전까지만 자문 위촉해달라고 전임 사장에게 요청함에 따라 시행되었기 때문에 자문수행자가 자문결과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끝까지 끌고가야하는 상황이라고 인식했다는 당시 관련 실무자들의 진술로부터 그 사유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 내부 감사 당시 상임감사위원(2019.12)

본 자문 용역은 산업부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공사내 사장을 비롯한 최상위 경영층이 의사결정을 한 사안으로 만약 법률 위반 행위가 있다면 내외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내부 감사 당시 상임감사위원(2019.12)

산업부 → 가스공사 기획본부장 → 가스공사 사장 순으로 지시

문건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진술도 나온다. 산업부 가스산업과가 당시 가스공사 기획본부장 김 모 씨를 불러 해당 계약 추진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역시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산업부에서 김OO 기획본부장을 불러 한국가스연맹 사무총장에 내정됐으나 무직상태인 박석환 전 영국대사를 (한국가스연맹 사무총장) 취임 전까지 가스공사의 고문자리에 위촉할 것을 요구하였고 이를 들은 김OO본부장은 심각하게 듣고 귀사하여 당시 사장에게 엄중하게 보고하였습니다. 사장은 이를 듣고 산업부와의 원활한 업무 협조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월급 1천만 원, 6개월로 구체적인 위촉 조건을 정해 공사 담당 직원에게 지시한 것입니다. 실로 이것은 심각한 불법 채용비리 범죄이며 적폐인 것입니다.”
- 당시 상임감사위원(2019.12)

2015년 가스공사 직원들 이메일에서도 ‘가스과장’ 언급돼

지난 2015년 이 자문계약이 체결될 당시에 가스공사 직원들끼리 주고받은 이메일에서도 ‘산업부 가스산업과장’이 언급됐다. 가스공사 경영진의 지시를 받은 캐나다LNG사업팀 계약 실무 담당 송 모 주무차장은 캐나다에 있는 가스공사 자회사 KCLNG 안 모 차장에게 박석환과의 자문계약을 요청하며 “가스(산업)과장이 기획본부장에게 박 전 차관에 대한 고문 위촉 요구가 있었다”고 적시했다.

▲ 캐나다LNG사업팀 송 차장이 KCLNG 안 차장에게 보낸 이메일. ‘가스과장’이 기획본부장에게 박 전 차관에 대한 자리를 요구했고, 이를 기획본부장이 사장에게 보고했다고 적혀있다.

정리하자면 당시 산업부 가스산업과장이 외교부 퇴직 후 한국가스연맹 사무총장에 내정된 박 전 차관을 위해 공식 임기 시작 전 6개월 동안 가스공사에 고액 자문역 자리를 마련해 주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당시 산업부 가스과장 이호현, “박석환 추천한 바 있다”

 당시 산업부 가스산업과장은 이호현 현 무역정책관으로 확인됐다. 이 정책관은 지난 2017년 일반직 고위공무원으로 승진해 현재 한일 수출관리 정책대화에 한국 수석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이호현 무역정책관. 특혜 계약 당시 산업부 가스산업과장이었다. 한일 수출관리 정책대화에서 한국 수석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이 정책관은 취재진과 통화에서 처음에는 해당 자문계약에 개입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가 나중에는 “가스공사 측에 박 전 차관을 추천한 바 있다”고 밝혔다. 그는 “박 전 차관을 활용해보라고 가스공사 측에 추천한 바 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런 취지로 이야기는…”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면서 “어차피 (한국가스연맹 사무총장으로) 가실 분”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자문을 받는 방안들에 대한 것도 검토해 볼 수 있는지를 이야기는 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월 1000만 원, 기간 6개월’ 등의 계약 조건에 대해서는 개입한 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박 전 차관을) 추천은 했지만 구체적인 계약 조건에 대해서 이야기 한 적은 없다”며 “정부가 추천을 하더라도 문제가 있도록 하라는 이야기는 할 수 없지 않느냐. 그것은 (가스공사) 본인들이 잘 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가스공사 측이 자문계약 관리를 잘못 했다는 주장이다.

산업부 인사 청탁...‘돌고 돌아’ 해외법인이 떠맡은 ‘황제자문’ 계약

산업부의 특혜 인사 요구는 결과적으로 가스공사 내부 여러 부서의 ‘폭탄 돌리기’로 이어졌다. 가스공사 내부 감사 자료를 종합하면, 당시 박 전 차관 자문계약 건은 가스공사 내 국제사업팀, 중동사업팀, 호주사업팀을 돌아 캐나다LNG사업팀에서 결국 캐나다 캘거리에 있는 자회사 KCLNG로 떠넘겨졌다.

당시 이호현 산업부 가스산업과장에게 지시를 받은 가스공사 기획본부장 김 씨는 가스공사 감사실과의 문답에서 해당 자문 계약을 ‘해외사업본부’에서 맡게 된 배경에 대해 “(박 전 차관이 사무총장으로 내정된) 한국가스연맹 담당인 가스공사 국제협력팀이 거절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본인이 당시 국제협력팀장 정OO을 불러 자문계약 위촉 가능 여부를 검토해달라고 했고, 정 팀장은 며칠 후 어렵다고 말했다”며 “그 이후 사장님께 본 사안에 대해서는 업무성격상 해외사업본부에서 검토하는 게 좋겠다는 취지로 말씀 드렸다”고 했다.

박 전 차관과 자문계약을 실시한 KCLNG 실무 담당 안 모 차장은 “수차례에 걸친 거부 의사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으로 추진을 결심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이냐”는 가스공사 감사실의 질문에 “당시 중동사업팀 이OO 차장과 통화 중, 동 계약이 호주사업팀을 거쳐 KCLNG까지 오게 된 정황을 인지하게 됐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동 계약과 유사한 계약을 중동사업팀에서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며 “따라서 우리 법인만 안 하겠다고 할 수 없는 상황임을 알게 되었고 그 내용을 유OO 법인장님께 보고드렸다”고 말했다.

이재근 참여연대 권력감시국장은 이에 대해 “사실상 정부 부처와 산하 공기업은 지배종속 관계”며 “가스공사에서 산업부 담당과를 상대로 ‘저쪽에서 부당한 청탁을 해서 우리가 이런 문제를 만들었다’고 고백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이 수사하긴 했으나…그대로 묻힌 ‘정부 개입’

가스공사가 한 달에 천만 원씩 자문료를 지급하고, 자문보고서까지 대신 써주는 이 ‘황제자문’ 계약은 그 뒤 3년이나 그대로 묻혔다가 가스공사 감사실의 해외법인 감사 때 우연히 드러났다.

결국 가스공사는 2018년 박석환 자문계약 건에 대해 감사를 실시할 수밖에 없었고 계약 당시 가스공사 최고경영자 이승훈 전 사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 고발장에서 가스공사는 이 전 사장이 “외부의 청탁을 받고” 이 자문계약을 하위 직원들에게 지시했다고 적었다. 그러나 ‘외부’라고만 적고 끝내 산업부의 청탁 사실은 적시하지 않았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고발 6개월만인 2019년 5월 ‘증거부족’을 사유로 이 전 사장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접촉한 한 가스공사 관계자는 “산업부 산하기관 입장에서 산업부를 문제 삼는 건 불가능하다. (가스공사는) 산업부를 걸고넘어질 수가 없다”며 “(이 자문계약 건을 수사한) 검찰이 (윗선 규명을) 안 한 것”이라고 검찰의 미온적인 수사태도도 비판했다. 뉴스타파가 검찰 불기소의견서와 가스공사 관계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취재한 결과 검찰 수사 과정에 여러 의문점이 발견됐다. (3편에서 계속)

제작진
취재강혜인
촬영최형석 이상찬 오준식
편집박서영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