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가의 조세도피처 이용법] "자녀 해외유학 용도로 페이퍼컴퍼니"

2022년 06월 16일 11시 25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2021년 10월부터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함께 전 세계 14개 역외 서비스업체에서 유출된 조세도피처 데이터를 토대로 '판도라페이퍼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뉴스타파는 지난 5월 4일 ‘판도라 페이퍼스’ 시민참여 페이지를 공개한데 이어 판도라 데이터에서 한국 자산가들이 조세도피처를 활용하는 수법을 유형별로 취재해 보도합니다. 편집자 주
조세도피처와 페이퍼컴퍼니의 용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최근 고위공직자 자녀의 기상천외한 해외유학용 스펙쌓기 실태가 논란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 뉴스타파는 ‘판도라페이퍼스’ 조세도피처 자료를 취재하던 중 자녀 해외유학 용도로 역외 페이퍼컴퍼니를 운용했다는 주장을 접했다. 

“홍콩 페이퍼컴퍼니로 자녀 해외비자 마련”

지난 2010년 10월, 삼성증권 홍콩법인장으로 일하던 박현국 씨의 3년 임기가 끝났다. 2000년대 초에 이어 두번째 홍콩 근무였다. 한국 본사로 돌아가야 하는데 자녀들이 고등학생이었다. 박 씨는 아이들을 한국에 데려오지 않고 홍콩에 남겨두기로 결정했다.
배우자 송모 씨도 아이들과 함께 홍콩에 있기로 했다. 하지만 아내와 자녀들의 비자가 문제였다. 박 씨는 귀국 첫 해인 2011년 지인이 운영하는 홍콩 회사에 아내 송 씨를 직원으로 등록시키고 취업비자를 받게 했다. 아이들은 취업자 자녀(dependant) 자격을 받았다. 
그러나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아무리 친한 지인이라고 해도 너무 오래 신세를 질 수는 없었다. 더 나은 방법이 없나 알아봤다. 박 씨는 홍콩의 한국계 회계법인 및 기업컨설팅 업체 일신에서 조언을 받았다. 홍콩에 페이퍼컴퍼니를 차려서 자신이 법인을 운영하고 아내는 회사 직원인 것처럼 꾸미면 홍콩 취업비자를 유지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박 씨는 이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이 방법으로 자녀들은 홍콩에 합법적으로 체류하면서 대학 입학에 성공했고 무사히 졸업까지 했다. 
이상은 뉴스타파가 판도라페이퍼스 데이터에서 박현국 전 삼성증권 홍콩법인장의 페이퍼컴퍼니를 발견하고 해명을 요청하자 박씨 측이 취재진에게 알려온 내용이다. 

신종 ‘유령회사 활용법’…앞뒤 안 맞는 부분도 있어

박 씨는 공인회계사이자 투자은행(IB) 분야 전문가로, 삼성증권을 떠난 후에도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부대표, 동부증권 부사장 등을 거쳐 현재 트러스톤자산운용 사외이사로 있다. 경력으로 보면 그가 운용한 홍콩 페이퍼컴퍼니가 의미심장해 보인다. 역외 페이퍼컴퍼니 운용 목적은 주로 탈세나 검은 돈 숨기기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씨 측 해명, 즉 해외 거주 비자를 만들 목적으로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새로운 조세도피처 페이퍼컴퍼니 활용법이 등장한 것이다.
박 씨의 유령회사 관련 정보가 나온 2.9TB 규모의 판도라페이퍼스 데이터는 전 세계 14개 역외 서비스 업체에서 유출된 자료로 구성돼 있다. 이들 업체 중 한 곳이 홍콩의 일신회계법인 및 일신기업컨설팅(Il Shin Corporate Consulting Limited)이다.
판도라페이퍼스 데이터에 따르면 일신기업컨설팅은 박 씨가 홍콩에 투자해 회사를 설립, 운영할 계획이라며 홍콩 이민국에 투자비자 신청서를 제출했다. 신청서에는 박 씨는 은행 업무와 투자 부문에 20년 경력이 있고 한국 기업 고객들을 대상으로 홍콩 투자자문 서비스를 제공할 회사를 차릴 계획이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일신기업컨설팅이 대행한 박 씨의 홍콩 투자비자 신청서. 박 씨가 한국 기업을 상대로 하는 투자자문 업체를 홍콩에 설립할 계획이라는 내용이다.
일신의 서비스를 받아 박 씨는 2012년 3월, 홍콩의 페이퍼컴퍼니 하나를 샀다. 법인명은 '디지털브라이트'(Digital Bright Limited). 박 씨 부부는 이 회사 지분을 반반씩 소유하는 주주이자 회사 이사가 됐다. 서류만 존재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주소는 일신기업컨설팅 주소를 썼다.
박 씨 부부는 각자 디지털브라이트와 고용 계약서를 작성했다. 박 씨는 월급으로 매달 5만 홍콩달러(한화 726만원)를 받고 체류비는 따로 2만5천 달러(한화 363만원)를 받는다는 계약이다. 우리 돈으로 매달 1천만원이 넘는다.(첫 고용계약서가 작성된 2012년 3월 월평균 원-홍콩달러 환율 145.20원 기준) 
배우자 송 씨는 매달 3만 달러(한화 435만6천 원)의 월급을 받으며 체류비도 최대 2만5천 달러를 받았다고 기록돼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하고 매년 15일의 연차휴가를 쓸 수 있다고 돼 있다. 
이 계약서가 작성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인 2012년 5월 박 씨는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부대표로 선임됐다. 
이후 일신이 박 씨의 투자비자를 연장하기 위해 준비한 서류에 따르면, 박 씨는 디지털브라이트 이사로서 연 보수를 60만 홍콩달러(한화 8712만원 가량)를 받는 것으로 돼 있다.
▲일신기업컨설팅이 홍콩 국세청에 2019~2020 회계연도에 발생한 배우자 송모 씨의 급여소득세를 신고한 문서. 

홍콩 국세청에 허위 신고

박 씨 소유의 디지털브라이트는 2019~2020 사업연도에 배우자 송 씨가 급여로 33만 홍콩달러를 받았다고 홍콩 국세청에 신고했다. 
그러나 일신이 이 회사를 대신해 홍콩 국세청에 제출한 법인소득세 자료에는 해당 사업연도 동안 “매출과 매입 내역이 없다”며 (No sales and purchases transactions) 총수입(gross income), 이익(profit), 손실(loss), 지불가능 세금(tax payable) 모두 0 달러라고 신고했다. 
▲일신기업컨설팅이 홍콩 국세청에 제출한 디지털브라이트의 2014~2015, 2018~2019 회계연도 법인소득세 신고서.
임직원에게 상당한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는 회사, 하지만 실적은 전혀 없는 회사. 뭔가 말이 맞지 않는다. 뉴스타파는 박 씨에게 이 회사의 정체는 무엇인지 물어보려고 했으나 대리인이 답을 했다. 박 씨가 직접 나서기를 꺼려한다고 했다. 
박 씨 대리인은 취재진 질의에 대해 “워킹 비자라는 게 거기서 일을 했고 근무하고 했다는 사실 증빙을 위해서 이 회사를 인수한 것이고, 그렇다면 임금을 줘야한다”며 “워킹 비자인데 돈도 안 주면 그게 (비자가) 성립이 안 되지 않냐”고 말했다. 
즉, 비자 유지를 위해 직원 급여를 준 것으로 홍콩 국세청에 신고했지만 실제 법인의 계좌에서 급여를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인소득세 신고 때는 직원에게 급여를 지급한 내역이 없는 것으로 신고했다는 주장이다. 결국 세무당국에 허위 신고를 했다는 말이 된다.

자녀들 대학 졸업 이후에도 페이퍼컴퍼니 수년간 유지

박 씨 자녀들이 홍콩에서 대학을 마친 시기는 2015년 무렵이다. 그러나 박 씨는 비자 유지 목적으로 운영했다던 페이퍼컴퍼니를 없애지 않고 2021년까지 6년가량 더 유지했다. 매년 홍콩 기업등록소에 법인등록비를, 일신컨설팅에 법인 관리 대행료를 계속 냈다.
박씨 측은 지난 2012년 초 일신컨설팅에서 페이퍼컴퍼니 디지털브라이트를 매입해 2021년 9월 폐업했다고 말했다. 이 역외 법인을 9년 이상 유지했다는 뜻이다.
서류상 존재하는 회사라도 유지하는데는 돈이 든다. 매년 일신컨설팅에 회사 서류 관리 대행 기장료로 200만원 가량을 냈고, 법인을 살려놓기 위해 홍콩 정부에 매년 적게는 250 홍콩달러, 많게는 2250 홍콩달러를 내야했다. 홍콩 정부는 매년 법인 등록료를 정해 발표한다.
유령회사를 유지하기 위해 매년 우리 돈 200만원 이상을 썼다는 얘기다. 9년이면 최소 1830만원 가까이 된다.
취재진은 자녀 대학 졸업 후 회사를 바로 없애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박 씨 대리인은 “기장료 연간 200만원 정도 들어가는 거 밖에 없어서 별 생각 없이 그냥 둔 것으로 안다. 큰 돈도 안 들어가니까 그럴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시 “기장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작년 9월에 완전 폐업을 했다고 들었다”고 주장했다. 
대리인은 박 씨 자녀들이 홍콩에서 대학까지 졸업했기 때문에 추후 이 회사를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런 마음이 있었을 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혹시 이왕 만든 거 (유지하는 데 연) 2백만원 밖에 안 드는데. 그런데 그 뒤에 마음이 바뀐 거죠”라고 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박 씨가 어떻게 유령회사를 이용해 비자를 받을 생각을 하게 됐는지 질의했다. 박씨 측은 “고민을 하던 끝에 일신컨설팅을 누가 소개해줬다”며 “그분(김찬수 일신컨설팅 대표)을 통해서 아주 소액인데 그 페이퍼컴퍼니를 하나 샀다”고 해명했다.  
취재진은 박씨 측 주장대로 일신컨설팅이 ‘디지털브라이트’의 매입부터 운영까지를 설계해 줬는지 확인하기 위해 김찬수 대표에게 전화를 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박현국 전 삼성증권 홍콩법인장이 운영한 페이퍼컴퍼니 디지털브라이트의 진짜 용도는 무엇이었을까? 조세당국의 철저한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제작진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