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타파][현장에서] “협력사 없으면 우리도 죽어요” 현대중공업의 황당한 하소연

2019년 12월 13일 08시 00분

“협력사 없이는 현대중공업이 죽습니다. 어느 시대인데 손실을 협력사에게 전가하겠습니까.”

지난 12월 4일 세종시 공정거래위원회 심판정에서 현대중공업 ‘하도급 갑질’ 관련 전원회의가 열렸다. 위의 발언은 현대중공업을 대표해 참석한 경영지원본부장이 한 말이다. 전원회의를 참관하던 중 이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그만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기 때문이다.  

“협력사 없이는 현대중공업이 죽는다”는 말은 당연히 협력사 쪽에서 들었다. 뉴스타파가 지난해 12월 <갑질타파> 현대중공업 두 번째 시리즈로 보도한 현대중공업 사외협력업체 동영코엘스의 이원태 대표였다. 동영코엘스는 20년 넘게 현대중공업에 해상용 배전반(선박 안에서 전기를 배분해주는 역할을 하는 설비)을 납품하는 협력업체였는데 지난 2015년부터 무려 300억 원의 손실을 보고 지난해 3월 공장 문을 닫았다. (동영코엘스가 공정위에 신고한 사건은 이번 건에 병합되지 않았고 공정위 서울사무소에서 현재 조사 중이다.)  

관련 보도 : [갑질타파]현대중공업②’삼단콤보’ 중복갑질(2018.12.5 방송)  

이원태 대표는 당시 인터뷰 말미에 이런 말을 했었다.  

“현대중공업에서 저를 지칭하는 대명사가 있어요 미친놈이라고. 일반 명사가 아니고 대명사가 됐습니다. 미친놈이라는 게. 동영코엘스라는 데가 저렇게 정치인들도 만나고 언론 인터뷰도 하고 심지어 국정감사에 (현대중공업 대표를) 증인 채택까지 한다고 했는데도 현대중공업은 아무런 데미지가 없고 지금까지 해 온 대로 계속하면 된다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순간 저와 비슷한 업체들은 실업자 양성소가 되는 거고 제일 궁극적으로 현대중공업은 망합니다.”

 
▲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에는 “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 될 수 있는 길이다”라는 문구가 써 있다.

이날 전원회의에서 심의한 안건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한국조선해양 및 현대중공업의 불공정 하도급거래 행위’, 다른 하나는 ‘한국조선해양 및 소속 직원의 조사방해 및 자료 미제출 행위’였다. (올해 6월 현대중공업은 사업을 분리하고 한국조선해양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현대중공업지주 아래 한국조선해양(중간지주회사), 그 아래 현대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이 속해있다.)

“손실을 협력사에게 절대 전가하지 않았다”라는 현대중공업 경영지원본부장의 항변이 무색하게 이 사건을 직권조사한 공정위 심사관은 현대중공업의 불공정 하도급거래 사실을 인정했다.  

공정위 심사관 “제조원가보다 낮게 하도급대금 결정”

심사관이 전원회의 위원들에게 보고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하청업체에 작업을 지시하면서 서면(계약서) 발급 의무를 위반하고, 2016년 상반기 엔진 부품을 납품하는 사외협력업체들에게 일률적인 비율로 단가를 인하해 하도급 대금을 결정한 혐의가 드러났다.

특히 공정위 심사관은 현대중공업이 제조원가보다도 낮게 일방적으로 하청업체의 하도급대금을 결정했다고 인정했다. 이 부분은 공정위 신고 당사자인 하청업체들이 주장하는 핵심 내용이다. 뉴스타파는 노동자들에게 인건비조차 주지 못하는 수준의 낮은 기성금을 받고 빚에 허덕이는 하청업체의 현실을 지난해 12월 <갑질타파> 첫 시리즈로 보도한 바 있다.   

관련 보도 : [갑질타파]현대중공업①번개탄과 농약 그리고 ‘성과급 잔치’ (2018.12.3 방송)  

현대중공업은 일부 서면발급 의무를 위반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일방적으로 하도급대금을 낮게 지급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오히려 자신들의 조직인 생산부서가 공수(일정한 작업에 필요한 인원수를 노동시간으로 환산한 개념) 예산을 유리하게 배정받기 위해 과도하게 수치를 부풀려 보고했다며 본인 회사 특정 부서에 책임을 떠넘기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공정위 조사 전 대대적 PC 교체…“자료 은닉, 폐기” 

이날 전원회의에서는 한국조선해양이 공정위의 조사를 전방위적으로 방해한 혐의도 드러났다. 공정위 심사관이 이날 위원들에게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한국조선해양은 공정위 조사가 있기 전 해양사업부 10개 부서의 PC 101대를 없애고 VDI(가상데스크톱) 장비를 도입했다. 심사관은 이에 대해 “PC 교체로 해양사업부에서는 확보한 자료가 거의 없는 수준”이라며 “조사가 불가능할 정도로 자료를 대부분 은닉 또는 폐기했다”고 밝혔다.  

또 조선사업부에서는 기존 전산업무팀이 아닌 조선협력사지원팀 주도로 273개의 HDD(하드디스크드라이브, PC저장장치)를 제거하고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PC저장장치)를 설치한 사실이 드러났다. 공정위는 지난해 10월 1일부터 18일까지 현대중공업에 대한 현장조사를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일부 직원들은 공정위의 외장하드디스크 등 자료 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대대적인 PC 교체와 자료 미제출과 관련해 공정위 심사관은 법인에 대한 과태료 1억 2천만 원, 직원 2명에 대해 각각 2500만 원, 2700만 원의 과태료 부과 조치 의견을 제시했다.  

 
▲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전경.

이에 대해 한국조선해양 측은 전원회의에서 “해양사업부의 경우 퇴직자들이 자료를 갖고 퇴사해 소송에 제출한 사례가 있어 자료 관리를 위해 VDI로 교체한 것”이라며 “조사 개시 전 행위는 조사방해 행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협력사 사장들, 임금체불로 구속되고 집은 경매로 

이날 세종시 공정위 4층 심판정 방청석은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참관인들로 꽉 들어찼다.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대표들, 현대중공업 버스를 타고 온 현대중공업 직원들, 현대중공업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관계자들이었다. 전원회의에서는 공정위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이 참석해 사건을 조사한 공정위 심사관의 보고를 듣고 피신청인(현대중공업)들의 의견을 듣는다. 사건 신청인 (하청업체)들은 방청석에서 참관할 수 있고 자신들의 입장을 밝힐 기회도 얻는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 성일기업 대표를 맡은 김창조 씨는 “국민연금을 못 내 울산 구치소에서 징역을 살고 나온 지 2년 됐다”며 “현대중공업은 먹고 살 만큼의 돈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손해를 보면서도 계속 업체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현대중공업으로부터) 일을 받지 못하면 직원들에게 월급을 못 주고, 현대중공업 물량이 매출의 100%였기 때문에 일을 안 하면 폐업할 수밖에 없었다”며 “작업 구역이 할당됐는데 인력 투입을 중단하면 그 손해배상을 어찌 감당하겠느냐”고 하소연했다.  

대기업 조선3사 하도급 갑질 피해 하청업체 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익길 경부산업(현대중공업 하청업체) 대표는 “협력사 사장들은 임금체불로 구속되고 집은 경매로 넘어갔다”며 “우리들끼리 이게 불공정거래가 아니면 무엇이 불공정거래냐고 말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공정위의 강력한 처벌을 촉구했다.  

공정위 위원 “대기업으로서 정당한 경영인가 의문” 

‘협력사 없이는 현대중공업도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회사는 왜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왔을까. 수많은 하청업체 대표들이 막대한 임금체불로 인한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오늘도 죽음의 문턱을 오르내리고 있다. (실제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례도 다수다.) 안건을 심의한 공정위의 한 위원은 “현대중공업 입장에서는 효율화가 중요하겠지만 2년 넘게 이런 상황을 끌고 가는 게 대기업으로서 정당한 경영인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최근까지 불공정 하도급거래 건으로 공정위에 신고한 현대중공업 관련 하청업체만 17개가 넘는다.  

전원회의가 끝나고 <갑질타파> 현대중공업 1편과 3편에 출연했던 한익길 대표와 김도협 대표에게 “손실을 협력사에게 전가했다고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던 현대중공업의 경영지원본부장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관련 보도 : [갑질타파]현대중공업③"나를 구속하라" 하청사장의 셀프고발(2018.12.7 방송)  

한익길 대표는 한 마디로 “개가 웃을 일”이라고 표현했다. 김도협 대표 역시 “한 마디로 거짓말”이라며 “현재도 하청업체들이 매달 기성금 부족으로 월급이 20~30%씩 이월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도협 대표는 얼마 전 국회에 기자회견을 하러 올라온 당일 집에 있던 가전제품을 모두 가압류당했다.     

공정위 심사관은 이날 현대중공업에 대해 △서면 발급 의무 위반 △정당한 사유 없이 일률적인 비율로 단가를 인하해 하도급대금을 결정 △일방적으로 낮은 단가에 의해 하도급대금을 결정한 혐의 등을 적용해 한국조선해양을 고발조치하고 앞으로 이런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시정명령을 내리는 한편, 현대중공업에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조치 의견을 제시했다. 과징금 액수를 비롯해 전원회의 위원들의 최종 의결 내용은 다음 주께 공개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대우조선해양에 대해서도 부당한 하도급대금 결정, 서면 미발급, 부당 특약 설정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하고 과징금 108억 원을 부과하는 한편 법인을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최근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 인수 작업을 벌이고 있다.  

제작진
취재기자조현미
디자인이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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