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 노조 파괴 ② ‘S그룹’ 노조 파괴자는 사장으로...달라진 게 없다

2021년 08월 19일 16시 24분

‘S그룹 문건’에 따라 노조 파괴 범죄를 저지르고 유죄 판결을 받은 삼성 임직원들이 징계도 받지 않고 여전히 삼성그룹과 그 협력사에 일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는 인사와 노무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고, 노조 파괴 공작을 지휘한 인물은 감옥에 있는 1년 4개월 동안에도 그룹 임원 자리를 유지했다. 지난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무노조 경영 폐기’를 선언하며 대국민 사과까지 했지만, 노조 파괴 범죄에 대한 책임은 아무에게도 묻지 않았다.
뉴스타파는 파리바게뜨 제빵사들이 말하는 SPC그룹의 ‘노조 파괴 공작’이 10년 전 삼성이 작성한 ‘S그룹 노사전략’ 문건 내용과 같거나 유사하다고 보도했다. 회사가 주도해 만든 이른바 ‘어용 노조’를 통해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꾸린 ‘진짜 노조’를 와해시키는 전략이다. 이 같은 사측의 노조 파괴 공작이 어떻게 10년 넘게 이어질 수 있었을까.   

‘S그룹 문건’ 만든 강경훈 전 부사장, 수감 중에도 임원 등재

강경훈 전 삼성전자 부사장은 2019년 12월 13일, 삼성에버랜드 노조 와해 사건 1심에서 노조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1년 4월을 선고받았다. 바로 나흘 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으로 또 다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하지만 공시자료를 확인한 결과 강 전 부사장은 올해 3월 말까지 삼성전자 경영지원실 소속 임원으로 등재돼 있었다. 수감 생활을 하면서도 임원 신분을 유지한 것이다. 그 이유와 급여 지급 여부 등을 삼성전자에 문의했지만 답변은 없었다.  
삼성에버랜드 노조 파괴 공작을 지휘한 강경훈 전 삼성전자 부사장. (출처: 인사이트)
삼성에버랜드 노조 와해 혐의로 2심까지 유죄 판결을 받은 삼성 임직원은 13명이다. 최근 퇴직한 것으로 알려진 강 전 부사장을 제외한 12명 모두 삼성에 재직 중이다.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최정점인 삼성물산에 8명이 있고 삼성생명에 1명, 삼성웰스토리 1명,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협력사에 각 1명씩이다. 이들의 직위는 삼성물산 리조트사업부의 그룹장과 센터장, 골프사업팀의 팀장, 건설부문 부사장, 협력사 사장 등이었다. 
삼성에버랜드 노조 와해 사건의 피고인 13명 명단.
강 전 부사장 등 13명 전원은 노조 파괴 범죄를 저지른 뒤 한 차례 이상 진급했다. 심지어 1심 선고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도 진급은 이뤄졌다. 노조 대응 상황실 실무를 총괄했던 당시 삼성에버랜드 본사의 문 모 부장, 직접 노조 탈퇴를 종용했던 협력사 유 모 부장은 각각 삼성물산 골프사업팀 팀장과 협력사 대표로 영전했다. 또 인사와 노무 업무를 맡은 이들도 2명 있었다. 징계 등 인사상 조치는 누구도 받지 않았다. 
◼ 기자 : 검찰 수사 그 전부터 이미 인사상 조치가 난 케이스가 있었잖아요. 조장희 씨(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지회 부지회장)가 제일 대표적인 케이스고요. 근데 이건(노조 와해 혐의 임직원들) 왜 재판 결과가 끝까지 나와야지만 인사상 조치가 가능하다고 하시는 거예요?
◻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관계자 : 거기에 대해서도 지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최종적으로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 사규에 따라서 조치할 계획입니다.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관계자 인터뷰 중 
삼성에버랜드 노조 와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 판결은 올해 말, 내년 초쯤 나올 것으로 법조계는 보고 있다. 

여전히 살아 있는 ‘어용 노조’

1·2심 판결을 통해 사측이 만든 이른바 '어용 노조'로 밝혀진 ‘에버랜드노동조합’. 올해 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지회가 과반 조합원을 확보하기 전까지, 에버랜드노동조합은 회사와 교섭을 벌이는 교섭대표 노조였다. 금속노조가 노조법에 따라 이 어용 노조의 설립 신고를 직권으로 취소해달라고 용인시에 진정을 넣었지만 거부당했다. 
◼ 용인시청 관계자 : 판결 내용을 살펴보면 (어용 노조라는 게) 추정이 가능할 뿐인 거지.
◻ 기자 : 판결들에 의하면, 예컨대 임원 선정을 했다는 둥 설립총회 회의록이 있다는 둥 이런 것들이 허위로 확인된다, 이렇게 써 있거든요.
◼ 용인시청 관계자 : 행정청에서 판단하기에는 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용인시청 관계자 인터뷰 중
금속노조 법률원의 박다혜 변호사는 “S그룹 문건이 처음 공개됐을 때도, 대법원이 조장희 금속노조 부지회장의 부당 해고와 함께 ‘S그룹 문건의 작성자는 삼성’이라고 인정한 뒤에도, 고용노동부와 검찰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2013년 당시 두 기관은 S그룹 문건의 출처를 확인할 수 없다며 무혐의로 결론 냈고, 2016년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재수사에 착수하지 않았다. 2017년에는 국제노동기구(ILO)가 한국 정부에 검찰 조사 결과를 통보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법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보냈을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 관련 ‘다스 사건’ 수사과정에서 삼성의 노조 탄압 관련 문건을 무더기로 발견해 재수사에 돌입한 2018년 4월에서야 삼성에버랜드 노조 와해 사건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SPC 측 증거 인멸 정황…서둘러 증거 확보해야”

SPC그룹의 노조 파괴 공작에 대해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7월 초 고용노동부와 경찰에 고소장과 고발장이 접수됐지만 압수수색과 같은 적극적인 조사는 없는 상태다. SPC 역시 구체적인 해명을 거부했다. 대신 뉴스타파에 보낸 답변서에서 “(교섭) 대표노조인 한노총 소속 노조는 (민주노총 파리바게뜨지회와) 상반된 입장과 의견으로 수차례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고 밝혔다. 어용 노조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한국노총 산하 피비파트너즈 노조에 책임을 떠넘긴 셈이다.  
8월 11일 SPC 노조 파괴 사건을 비판하는 시민단체들이 모여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공동대책위원회는 회사 관계자가 현장 관리자들과의 업무 단체 채팅방을 없애라고 지시하는 등 사측의 증거 인멸 정황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정부와 수사기관이 서둘러 부당노동행위의 증거들을 확보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 7월 14일, 강은미 정의당 의원의 질의에 대답하는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
강은미 정의당 의원도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과 수사기관의 조사를 촉구했다. 7월 1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부당노동행위가 분명한데 빨리 조사가 필요한 것 아니냐”고 질의했다. 안 장관은 “강제 수사가 필요하면 하겠다”고 답변했다. 

힘 센 어용 노조의 등장…“교섭창구 단일화가 문제”

근본적으로는 현행 노조법의 한계 때문에 이런 노조 파괴 공작이 벌어진다는 학계와 노동계의 목소리도 있다. 복수노조가 허용될 때 생긴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문제라는 주장이다.
회사가 만든 '어용 노조'가 과반 조합원을 확보해 교섭대표 노동조합이 되면, 소수 노조가 된 '진짜 노조'는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없다. 
교섭창구 단일화란 한 사업장에 두 개 이상의 노조가 생기면 이 노조들 중에서 조합원 과반을 확보한 단 하나의 노조만 회사와 교섭할 수 있게 한 제도다. 회사가 만든 ‘어용 노조’가 몸집을 키워 교섭대표 노조가 될 경우 제 2노조, 제 3노조가 돼 버린 이른바 ‘진짜 노조’는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없다. ILO와 UN 등에서도 노조의 단체교섭권과 파업권을 저해하는 등의 문제 소지가 있다며 그동안 여러 차례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복수의 노동조합의 설립을 허용하자’는 취지는 결사의 자유를 제한받아서는 안 된다는 취지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기존 노조에서 분할한다든지 노조 간의 서로 경쟁을 해서 빼오기가 된다든지 이런 식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교섭대표노조가 공정하게 전체 근로자를 대표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일정한 제도 보완이 이뤄지고는 있다고 하지만, 소수 노조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한이 확장되고 있다고 평가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민주노총과 노동계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노동 3권 즉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고 제도의 전면 폐기를 주장하는 집회 등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7월 15일, 서울 용산구 SPC 빌딩 앞에 자리 잡은 민주노총 파리바게뜨지회의 천막 모습.
파리바게뜨 제빵사들은 사측의 노조 파괴를 중단하고, 본사직과 임금을 맞추기로 한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라고 SPC에 요구하고 있다. 제빵사들은 지난달 1일부터 서울 용산구 SPC 빌딩 앞에서 천막 농성을 하고 있다. 
(2017년) 처음에 불법 파견이 이슈가 되면서 사회적으로도 많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그때는 (천막 농성이) 일찍 끝났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사회적 합의서를 쓴 거였고. 그런데 아마 (이번에는) 저번 130여 일보다는 좀 더 길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왜냐하면 임금(사회적 합의)이랑 노조 탄압이 들어가 있다보니까 쉽게 해결되진 않을 것 같거든요.

김예린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 대전분회장
제작진
영상 취재이상찬 김기철
편집김은 정지성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