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본 이태원 참사 책임자들 ② 김광호, 경찰대 출신 청장 '패싱'... '마약수사'에만 집중

2022년 12월 05일 19시 30분

‘이태원 참사’ 책임자를 찾는 수사가 진행중이다. 국회 국정조사도 준비되고 있다. 하지만 참사 한 달이 된 지금까지 최종 책임자의 윤곽은 흐릿하다. 수사는 밑으로만 향할 뿐 위로 뻗지 못하고 있다. 재난 주무장관이면서도 ‘이태원 참사’를 막는데 아무런 역할을 못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뉴스타파는 각종 법령과 조례 등을 뒤져 ‘이태원 참사’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확인했다. 이상민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의 책임을 따져 세 번에 걸쳐 보도한다. 
① 이상민 장관, 대통령 지시 묵살하고 '중대본 설치' 도 지연
② 김광호, 경찰대 출신 청장 '패싱'... '마약수사'에만 집중
<편집자주>
‘이태원 참사’를 수사하는 경찰청 특별수사본부(이하 특수본)가 지난 2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피의자로 불러 조사했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과 달리 직무유기 혐의는 적용하지 않았다. 봐주기 수사가 아니냐는 의문이 나온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설명한다.
지난 2일 오전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이태원 참사 특별수사본부'에 피의자 조사 출석을 위해 들어서고 있다.

1. 경찰의 최우선 직무는 ‘국민의 생명 보호’

경찰관 직무집행법(이하 직무집행법)은 경찰공무원의 ‘위험 발생 방지’에 대한 책임을 규정한다.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극도의 혼잡, 그 밖의 위험 사태가 있을 때’ 경찰이 취해야 할 행동요령이다. 반드시 지켜야 할 ‘강제 법규’는 아니지만, 이를 근거로 경찰이 혼잡경비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의무 규정’이라 할 수 있다. 혼잡 상황에서 경찰이 취할 수 있는 행동요령은 아래와 같다.
그 장소에 모인 사람, 사물의 관리자, 그 밖의 관계인에게 필요한 경고를 하는 것, 또는 위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조치를 하게 하거나 (경찰이) 직접 그 조치를 하는 것.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5조
직무집행법 제2조는 경찰의 직무 범위를 정의한다.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1호), 범죄의 예방·진압 및 수사(2호), 경비 및 주요 인사 경호(3호) 순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경찰의 직무 중 가장 우선순위가 다름아닌 ‘국민의 생명 보호’라는 사실이다.
직무집행법에 ‘국민의 생명 보호’가 경찰관 직무 범위로 적시된 건 2011년이었다. 2005년 경북 상주에서 대형 압사 사고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국민의 생명 보호’는 경찰관 직무 범위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경찰은 상주경찰서장을 직위해제하면서 “상주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지역 치안책임자로서 공연장 안전관리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법이 있든 없든 경찰에게 주어진 가장 기본적인 책무는 ‘각종 위험으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고 생명을 보호하는 일’이란 ‘상식’을 확인한 것이다.

2.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이태원 경력배치 승인

10월 29일,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 배치된 경찰관은 모두 137명이었다. 이중 마약 단속 등 범죄 수사에 투입된 경력이 50명, 생활질서 유지 등 공공 안전 관리 업무에 투입된 경력은 87명이었다. 그중 극도의 혼잡, 그 밖의 위험 사태를 대비할 수 있던 경력은 기동대(20명), 교통(6명), 파출소(32명), 관광경찰대(10명) 등 68명에 불과했다.
참사 전날(28일)까지도 경찰은 이들 ‘68명’으로 이태원의 치안 유지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하 서울청장)의 판단이었다. 서울 지역 치안책임자인 그는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경찰법)에 따라 ‘서울 내 다중운집 행사 관련 혼잡 교통 및 안전 관리’와 ‘안전사고 및 재해·재난시 긴급구조 지원’ 사무를 관장하고 있다. (경찰법에 따른 경찰청과 서울경찰청의 업무분장은 3편에서 자세히 다룬다)
이태원 참사 당일 경력배치 현황
결과적으로 올해 핼러윈 축제에선 158명이 숨지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직무집행법이 정한 ‘위험 발생의 방지’ 및 ‘국민의 생명 보호’에 실패한 것이다. 물론 ‘서울청장이 서울에서 발생한 모든 인명피해의 책임을 질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그럼에도 김 청장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앞서 밝힌 경찰법과 뒤이어 설명할 경찰관기동대 운영규칙상 의무를 김 청장이 다 하지 않아서다.

3. 서울경찰청장에게 ‘다중운집 행사 관리’ 의무

김 청장은 이태원 참사 당일 현장에 배치된 경력이 부족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지난 달 7일 김 청장은 국회에 나와 “코로나19 거리두기가 해제됐기 때문에 (몰려드는 인파에 대비해) 할로윈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참사 당일) 경력배치에 대한 보고를 받고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며 재차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이는 경찰법 제4조 2호에 규정된 ‘다중운집 행사 관련 혼잡 교통 및 안전 관리’ 의무에 따른 조치였다. 경찰법상 ‘지역 생활안전 및 교통·경비’ 등에 관한 사무는 시·도경찰청장이 관장하도록 돼 있다.(경찰법 제4조, 제28조) 아래는 김 청장의 국회 발언 내용. 
지금까지 핼러윈과 관련해서 서울청에서 개입해서 대책을 수립한 바는 금년이 처음입니다. 그것은 제가 10월 17일날 1차, 핼러윈과 관련해서는 '코로나가 해제되고 조금 강도 높은 대책이 필요한 것 아니냐'라고 지시를 한 번 했고, 또 10월 24일 날 재차 관광경찰을 10명 배치한다는 일보(일일보고)가 있어서 ‘관광경찰만 10명을 배치해서 될 일이 아니고 좀 더 면밀하게 체크를 하라’고 지시를 해서 거기에 따라서 용산·마포·강남에서 각각의 대책을 수립해서 그것을 10월 27일 날 우리 112 실장이 총괄해서 저한테 보고를 했고, 그 내용이 137명을 배치하는 것이었습니다.

김광호 서울청장 발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11월 7일)
정리하면, 김 청장이 핼러윈 축제를 대비해 스스로 치안 대책을 수립한 것은 법령이 정한 ‘다중운집 행사 관리’ 의무에 부합한다. 오히려 김 청장이 아무런 대책을 수립하지 않았다면 그 자체로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경찰법상 서울청장은 자치경찰 사무에 한해 ‘국가경찰’ 수장인 경찰청장으로부터 독립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참사 당일 질서 유지를 위한 경력배치에 대한 권한이 전적으로 김광호 서울청장에게 있었다는 얘기다.

4. 서울경찰청장이 경찰관기동대 총괄 지휘

경찰관기동대 운용 권한도 마찬가지다. 경찰청훈령인 ‘경찰관기동대 운영규칙’(이하 운영규칙)에는 ‘시·도경찰청장은 경찰관기동대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하여 총괄 지휘’를 한다고  돼 있다. 또 운영규칙 제4조 2항엔 ‘시·도경찰청장은 필요시 자치경찰 사무에 대한 경찰관기동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구체적인 기간·임무 등을 정하여 지원근무를 하도록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한마디로 김 청장의 판단에 따라 경찰관기동대를 배치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결국 참사 당일 ‘기동대’와 ‘경력’을 상황에 맞게 배치했는지가 김 청장의 책임 유무(직무유기)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직무유기죄는 정당한 이유 없이 해야 할 직무를 하지 않았을 때 성립한다.
이에 대해 서울경찰청(이하 서울청)은 이미 이태원 참사 직후 “경력배치에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경력배치 현황을 그 근거로 들었다. 실제 2017~2019년 핼러윈 축제에 배치된 경력은 37~90명 수준으로 올해 배치된 137명보다 적다. 이전에 비해 더 많은 경력을 배치했으므로 업무상 과실치사상 또는 직무유기 등이 성립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5. 예년보다 더 많은 경력이 필요했던 이유

그러나 참사 당일 현장 상황을 보면, 서울청의 주장이 일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사 당일(29일) 이태원에 몰린 인파는 경찰이 기준으로 삼은 2017~2019년보다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뉴스타파가 서울시 공공데이터인 ‘서울시 지하철호선별 역별 승하차 인원 정보’를 분석한 결과, 참사 당일(10월 29일) 이태원역에서 내리거나 탑승한 승객은 모두 13만 131명으로 2017~2019년 핼러윈 축제 당시 승객 수인 9만 6463명~10만 3972명보다 최소 2만 5000명 이상 많았다.
2015년~2022년 핼러윈데이와 가장 가까운 토요일에 이태원역을 이용한 승객 수
 특히 ‘10월 29일 이태원역 시간대별 승하차 현황’을 보면, 주요 시간대인 오후 5~10시 사이 이태원역에서 ‘하차’한 승객은 ▲5~6시 8068명 ▲6~7시 1만 747명 ▲7~8시 1만 1873명 ▲8~9시 1만 1666명 ▲9~10시 9285명 등 모두 5만 1639명이었다. 이는 같은 날 이태원역에서 내린 전체 승객의 63%에 해당한다. 참고로, 참사 전날(28일) 같은 시각(5~10시) 이태원역에서 하차한 승객은 그 절반도 안 되는 1만 9372명이었다. 참사가 일어난 곳은 이태원역 1번 출구와 약 30m 정도 떨어져 있다. 
그런데 핼러윈 축제 당일 현장에 배치된 경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앞서 밝힌대로 이날 현장에 투입된 137명 중 ‘마약 수사·단속’ 업무에 투입된 직원 50명을 빼면 87명이 남는다. 2017년(90명)에 비해 3명이 적다. 여기에 밤 9시 33분이 돼서야 현장에 도착한 교통기동대(20명)를 빼면 가용 인원은 67명으로 줄어든다. 예년에 비해 더 많은 경력이 배치됐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그 결과가 어땠는지는 참사 당일 오후 이태원파출소가 처리한 ‘112신고 내역’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최초 압사 관련 신고가 접수된 오후 6시34분 이후 이태원파출소는 참사 발생 직전(10시 13분)까지 시간당 20건이 넘는 신고를 처리했는데, 신고 대부분은 극심한 교통정체 및 교통사고 처리, 또는 참사 현장 인근의 ‘도로 통제’를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현장 직원들은 “(압사 외에도) 각종 신고 수십 건이 떨어지는데, 그에 대응할 인력이 없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경찰청의 ‘112 신고·접수·지령 매뉴얼’에 따르면, 일반적인 112 신고는 서울청이 개설한 112치안종합상황실(서울상황실)을 통해 용산상황실로 전파된다. 용산상황실은 다시 신고 내용에 따라 관할 지구대·파출소로 출동 지령을 내린다. 다만, 긴급상황의 경우는 서울상황실이 용산상황실을 거치지 않고 지령을 내릴 수 있다. 이번 이태원 참사는 긴급상황에 해당하지만, 서울상황실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6. 김광호 서울청장, ‘자치경찰’보다는 ‘국가경찰’ 사무에만 치중

여기서 눈여겨 볼 대목은 김광호 청장의 당일 행적이다. 김 청장은 참사 당일 오후 1시 2분 대통령실 주변 집회 관리를 위해 집무실로 출근했고, 집회가 끝난 오후 8시 36분 퇴근했다. 그 사이 김 청장이 핼러윈 축제와 관련해 서울상황실에서 보고를 받았다거나 업무 지시를 내린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 적어도 핼러윈 축제는 참사 발생 전까지 서울청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던 걸로 보인다.
서울청으로선 당면한 집회 관리가 더 중요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정과 판단이 다중운집 행사에 대비한 혼잡 대책의 부재를 정당화해주진 않는다. 집회와 마찬가지로 핼러윈 축제 역시 많은 인파가 몰렸고 교통 혼잡도 예상됐기 때문이다. 교통 혼잡은 참사 이후 응급구조기관의 출동 시간에도 상당한 영향을 줬다.

참사 당일 마약 단속 직원 50명 투입은 ‘국가경찰’ 사무와 무관

그런데도 김 청장은 참사 발생 이틀전인 10월 27일 핼러윈 관련 대책으로 ‘형사과 직원 투입’을 내놨다. 당초 15명으로 계획했던 마약 단속 인력을 50명으로 늘린 게 골자다. 다중운집 상황에 대비한 ‘지시’는 없었다. 여기서 문제는 김 청장이 지시한 형사과 직원 투입이 ‘자치경찰’ 사무와 전혀 관련없는 조치였다는 데 있다. 형사과가 수행한 마약 수사 및 단속 업무는 경찰법상 국가수사본부장 또는 경찰청장에게 지휘권이 있는 ‘국가경찰’ 사무에 속한다.
경찰법에 따르면, 시·도경찰청장은 경찰청장의 지휘·감독을 받아 국가경찰로서의 사무를 수행해야 한다. 시·도경찰청장이 독자적으로 수사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김 청장은 이번 핼러윈 축제를 앞두고 용산경찰서에 직접, 자신의 판단으로 ‘마약 수사’ 지시를 내렸다.
김광호 청장은 지난달 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 질의에서 “마약 수사 인력 투입을 누가 지시했느냐”는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내가 결정했다”고 답한 바 있다.
- 10월 12일 날 용산서에서는 강력 3개 팀 15명만 동원하려 했습니다, 그러니까 3개 팀만. 그런데 실제 나간 게 10개 팀 50명이 나갔어요. 그렇게 변경된 사유는 뭡니까? 
“예, 10월 27일 날…”
- 직접 지시하셨어요?
 “예, 지시했습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 질의(11월 7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지난달 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안 질의에 답변한 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윤희근 경찰청장,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경찰법 제4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장의 사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자치경찰 사무와 국가경찰 사무다. 앞서 설명한대로 국가경찰 사무는 경찰청장이 지휘·감독권을 갖는다. 그 중 ‘수사’는 국가수사본부장이 지휘·감독권을 행사한다. 서울청장은 지역주민의 생활·안전 관련 6개 자치경찰 사무에 한해서만 제한적으로 지휘·감독 권한을 갖는다. 1)학교폭력 등 소년범죄, 2)가정폭력 및 아동학대 범죄, 3)교통사고 및 교통 관련 범죄, 4)공연음란 및 성적 목적을 위한 다중이용장소 침입행위에 관한 범죄, 5)경범죄 및 기초질서 관련 범죄, 6)실종아동 관련 범죄 수사다. 이 6개 자치경찰 사무에 대한 전권은 서울경찰청장에게 있다.
정리하면, 김광호 청장은 ‘마약 수사’라는 명목으로 자치경찰이 아닌 국가경찰 사무를 수행했다. 그 과정에서 경찰청장 또는 국가수사본부장의 지휘를 받았는지는 불분명하다. “내가 지시했다”고 밝힌 것을 보면 경찰청장 등의 지휘를 받은 것은 아닌 걸로 보인다. 반면 자신에게 전권이 있는 자치경찰 사무는 소홀히 했다. 158명이 숨진 유례 없는 참사와 관련, 김광호 청장의 책임을 반드시 가려야 하는 이유다.

7. 기동대 배치 검토했지만 철회… 대통령실 인근 집회 관리에 집중

김광호 청장이 ‘자치경찰’ 수장으로서 제 할 일을 다하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증거는 이 뿐만이 아니다. 참사 발생 이틀 전인 10월 27일, 서울경찰청이 운영하는 서울상황실은 이태원·홍대·강남 등이 포함된 ‘주요 행사지역의 핼러윈데이 치안여건 분석 및 대응 방안’을 김 청장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김 청장은 서울경찰청 경비부장과 기동대 운영 방안을 논의했을 뿐 실제 기동대 인력을 증원하는 등의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당시 김 청장은 “(대통령실) 주변 집회·시위로 인해 경력 운용에 여유가 없다”는 경비부장의 보고를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경찰청의 참사 당일 ‘경력운용 계획’을 보면, 이날 서울경찰청은 경기남부경찰청과 인천경찰청 등에서까지 기동대 인력을 파견받아 집회·시위 현장에 투입했다. 서울경찰청이 집회·시위 관리에 얼마나 골몰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다. 하지만 그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다중운집이 예견된 이태원에 기동대를 제대로 배치하지 않은 점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경력운용 계획상, 서울 전역의 집회·시위 종료 시점은 오후 8시 30분으로 참사 발생 시각(10시 13분)과 차이가 있다. 마음만 먹었다면, 집회 관리와 이태원 질서 유지가 동시에 가능했던 것이다.
집회·시위에 투입된 기동대 규모도 논란거리다. 참사 당일 하루에만 70여개 기동대가 대통령실 주변 집회 관리에 투입됐다. 시위가 벌어진 삼각지역 일대는 이태원 참사 현장과 겨우 2km 정도 떨어져 있다. 도보로는 불과 35분 거리다. 역시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기동대를 투입해 이태원 질서 유지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김 청장은 핼러윈 축제 당시 이태원 주변에 기동대 배치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집회와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서울상황실이) 사고를 사전에 예견하거나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핼러윈 축제 당일인 29일 보수단체가 주관한 ‘윤석열 대통령 지지’ 집회에 배치된 경찰기동대(76기-2) 모습(위). 집회 장소는 대통령실 인근(삼각지역)이다. ‘경력운용 계획’상 경찰기동대는 이날 오전(9시)부터 집회 종료(오후 8시30분) 때까지 현장을 지켰다. 이날 서울청이 삼각지역 주변에 배치한 기동대는 총 9개로 모든 집회를 통틀어 가장 많았다. 아래 사진은 참사 당일 ‘서울청 경력운용 계획’

8. ‘핼러윈 축제 사고’ 가능성 충분히 예견

김 청장이 서울상황실로부터 ‘핼러윈 치안여건 분석 및 대응방안’을 보고받기 하루 전인 10월 26일, 용산경찰서 정보과 직원은 ‘이태원 핼러윈 축제 공공안녕 위험 분석’이란 보고서를 서울청 첩보관리시스템에 등록했다. 현재 경찰이 수사 중인 정보보고서 삭제 및 증거 인멸 의혹에 등장하는 바로 그 보고서다.
보고서에는 ‘이태원 해밀턴호텔 일대 집중 인파로 인한 교통사고가 우려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보고서를 열람한 서울청은 이 보고를 사실상 묵살했다. 누가 언제 보고서를 열람하고 어디까지 보고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청장은 “(열람 직원이) 일반적으로 예상되는 내용이라고 판단해 별다른 추가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해명한 바 있다.  
보고서 삭제 여부와 무관하게, 서울청이 이 같은 정보 보고 및 내부 분석을 통해 다중운집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참사 발생 전에 용산경찰서는 ‘2022년 이태원 핼러윈데이 치안상황 분석과 종합치안 대책’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도 작성해 서울청에 보고했는데, 이 보고서에는 ‘기동대 1개 제대(약 20명)를 지원받아 오후 8시부터 12시까지 이태원역 인근 횡단보도 ②∼⑤ 거점에 나눠 배치하겠다’는 계획이 담겨 있었다. 이 경력배치 계획 속엔 참사 발생 장소도 포함돼 있었다. 다중운집에 따른 사고 위험을 용산경찰서가 인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다. 
 참사 발생 전에 용산경찰서가 서울청에 보고한 ‘핼러윈 대책 보고서’ 내용 중 일부. 기동대를 참사 현장 인근(④)에 배치한다는 계획이 담겨 있다. 
심지어 용산경찰서는 “2021년의 경우 기동대(교통) 배치로 교통불편 신고가 급감하는 등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서울청은 참사 당일 용산경찰서에 기동대 1개 제대(약 20명)를 배치하기로 했다. 하지만 오후 8시가 넘도록 기동대는 현장에 도착하지 않았다. 이태원역에 배치됐어야 할 기동대가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당일 밤 9시 30분이 넘어서였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몰려드는 인파로 ②∼⑤ 거점 진입 및 통제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날 오후 7시 30분~8시 사이 용산경찰서의 대응이다. 이때 용산경찰서 직원은 집회에 투입된 기동대를 최대한 빨리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같은서 소속 교통과 직원은 ‘대통령실 인근 집회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파견을 거절했다. 대통령실 경비가 참사 발생에 일부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는 근거다. 
이렇게 경찰의 대응 실패, 특히 서울경찰청장의 잘못된 판단과 직무유기 단서가 드러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경찰 특수본은 참사 당일 기동대가 제때 투입되지 않은 책임을 이임재 전 서장 등 아랫사람들에게만 묻고 있다. 
참고로, 특수본이 이태원 참사 관련 책임을 묻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경찰대 출신이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보고서 삭제 의혹을 받고 있는 박성민 전 서울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경무관), 참사 당일 서울상황실을 비워 수사를 받고 있는 류미진 전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 등이다. 김광호 서울청장은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경찰에 투신했다.

9. 무너진 서울상황실 재난 대응체계

서울상황실은 ‘압사’ 신고에 대한 초동 대처 실패로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서울종합방재센터와 마찬가지로(①편 내용 참조) 서울 전역의 112 신고를 접수하는 서울상황실이 현장의 긴박한 상황을 제때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날 오후 6시34분부터 10시13분까지 모두 11건의 ‘압사’ 신고가 접수됐음을 고려하면 서울상황실의 ‘재난대응체계’는 완전히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찰의 ‘112 신고·접수·지령 매뉴얼’에 따르면, 이번 이태원 참사와 같이 재난에 해당하는 ‘동시 다발’ 신고가 접수된 경우, 신고접수자(112요원)는 상황실 팀장에게 신고 내용을 보고해야 한다. 또 상황실 팀장은 전 직원에게 그 상황을 공유해야 한다. 아울러 상황실 팀장은 인접 경찰서나 지자체, 재난관리기관 등에 상황을 전파해야 한다. 상황실 책임자인 상황관리관(또는 상황실장)도 상황실 팀장의 보고를 받고 서울청장에게 통보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그런데 위 매뉴얼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유일하게 지켜진 건 ‘동시 다발 신고를 인지했다’는 것 뿐이었다. 참사 당일 오후 9시1분, 서울상황실은 용산상황실에 무전 지령을 내리면서 “핼러윈 관련 계속해서 추가 신고, 112 신고가 들어오는 중에 대형사고 및 위험방지건으로 있는 상황”이라며 “우리 지구대 지역경찰 근무자 독려하셔서 해당되는 핼러윈 이태원 관련하여 확인 잘 해 주시고 질서 관련 근무를 해주시길 바란다”고 지시했다. ‘다중운집’에 의한 사고 가능성을 예견했음에도 상황관리관 보고나 기동대 투입이 아닌 ‘지구대 차원의 대응’만 주문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서울청은 앞서 밝힌 보고체계를 밟지 않음으로써 기동대 투입과 교통 통제 등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 1차적으로는 당시 상황팀장이었던  정모 씨가 상부 보고를 지연했다. 정 씨는 최초 112요원이 ‘대형사고 위험’을 인지한지 2시간 38분이 지난 11시 39분에야 류미진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뒤였다.

10. 서울청장, 재난관리 규칙상 보고 의무 위반

그런데 상부 보고를 지연한 건 정 씨만이 아니었다. 김 청장도 경찰청훈령인 ‘경찰 재난관리 규칙’(재난규칙)이 정한 보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재난규칙 제18조 2호는 “시ㆍ도경찰청 등의 장은 재난으로 인하여 피해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바로 위 상급기관의 장에게 피해내용을 지체 없이 보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김 청장은 어떤 이유인지 윤희근 경찰청장에게 ‘재난 발생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서울경찰청 등에 따르면, 김광호 청장은 이임재 당시 용산경찰서장에게 처음 이태원 참사 상황을 보고받았다. 참사 당일 오후 11시 36분이었다. 그리고 8분 뒤인 11시 44분부터 서울청 간부들에게 상황 대응을 지시했다. 첫 지시는 경비과, 다음 지시는 서울상황실에 내려졌다. 서울 전역의 기동대 운용을 관장하는 기동본부에 “가용부대를 급파하라”는 지시를 내린 건 그 다음이었다. 당연히, 가장 먼저 보고했어야 할 경찰청장을 '패싱'한 것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경찰청 상황담당관을 통해서야 재난 상황을 보고받았다. 윤 청장은 참사 다음날인 30일 오전 12시 19분 김광호 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고를 받아야 할 사람이 보고를 해야 할 사람에게 먼저 연락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김 청장을 비롯한 서울청의 이 같은 ‘뒷북’ 대응은 재난규칙상 ‘재난 예방·대비’ 의무를 어긴 것이었다. 재난규칙 제17조는 “시·도경찰청 등의 장은 재난 요인을 사전에 제거하거나 감소시킴으로써 재난 발생 자체를 억제 또는 방지하기 위한 재난예방대책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청장이 내린 ‘지시 내용’에 대해서도 재난규칙 위반 여부를 따질 부분이 있다. 재난규칙 제18조는 “재난이 발생하였거나 발생이 임박한 경우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장 접근통제 및 우회로 확보 ▲교통관리 및 치안질서 유지 등이다. 이에 따르면, 당시 서울청은 소방 및 응급구조인력이 이동할 수 있는 우회로 확보와 현장 교통관리를 했어야 한다. 환자를 신속하게 구조하고 필요한 응급처치를 받게 하려면 현장의 교통 통제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김 청장은 초동 조치에서 ‘교통관리’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고, 오후 11시 56분에야 서울상황실을 통해 ‘교통경찰’에 대한 배치를 지시했다. 경찰법이 정한 서울청장의 사무 중 ‘안전사고 및 재해·재난시 긴급구조 지원’ 임무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다음 편에선 윤희근 경찰청장을 중심으로 경찰의 재난대응체계, 혼잡경비 및 지역축제 매뉴얼, 경찰국 신설에 따른 행정안전부 장관의 경찰청장 지휘 문제 등을 다룬다. 
제작진
취재강현석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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